덥석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흉측한 개머리를 움켜쥐었다.
"크아아아아앙...크아아아앙...."
머리통을 붙잡힌 개인간은 발악하듯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머리통을 붙잡고 있는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던 것이다.
"흐으으읍...나무아미..."
광해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꿈틀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리거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타불!"
콰지지직
곧이어 개머리가 형체조차 남기지 않은 채 그대로 짓뭉겨져버렸다.
그리고 온사방에는 붉은 핏물과 회백색의 뇌수가 비산하기 시작하였다.
".....관세음보살."
뇌수와 핏물을 뒤집어쓴 우락부락한 승려.
여래신권如來神拳 광해는 조용히 합장을 하였다.
내세에는 부디 마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빌면서 말이다.
"그르르....."
그륵.....그르륵..."
그 광경에 개인간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기 시작하였다.
우두머리의 머리가 터져나갔다는 사실에 사기가 현저하게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두머리가 죽었다!"
"더욱더 몰아쳐라!"
"주제도 모르는 마물에게 부처의 위대함을 새겨넣어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한당의 승려들은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미곤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개인간들을 더욱더 몰아부치기 시작하였다.
"깨갱...깨갱."
"크아앙...크앙."
그 기세에 개인간들은 맥없이 밀려나게 되었고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십의 개인간들은 모두가 부처의 곁으로 떠나게 되었다.
나한당의 완벽한 승리였다.
"와아아! 괴물들이 모두 죽었다!"
"흐윽...흐윽..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목숨을 위협받았던 사람들은 적셔진 눈빛으로 나한당의 승려들을 바라보며 감사인사를 하였다.
그들이 아니였다면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광해는 태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저 부처를 모시는 불자로서
협과 정의를 숭상하는 명문대파의 거두로서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이었다.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당연한 일이, 이곳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구해주었습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남자가 감격에 젖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저 부처님의 은덕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평생토록 이 은덕을 잊지 않고 공양하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광해는 손을 합장한 채 조용히 염불을 외었다.
그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뜻이었다.
곧이어 다른 이들 또한 하나둘씩 조용히 합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부처님의 은덕을 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창 은덕을 기리고 있던 그때였다.
"와아~ 모두 합장하는 거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휘익
그 소리에 놀란 이들이 일제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뿐히 걸어오고 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을
곱게 빗어진 긴 생머리
눈처럼 새하얀 살결
장난기 어린 눈매
오똑한 콧대
꽃잎을 옮겨놓은 것처럼 붉은 입술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
길죽한 다리와 곱디 고운 발목까지
그녀는 절세가인이라는 말이 전혀 부족치 않는 여인이었다.
멍
그녀의 등장에 광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초월적인 아름다움에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수양이 깊은 나한당의 승려들조차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나도 같이 할까? 이렇게 하는 거 맞지? 아닌가? 이건가?"
짜악 짜악 짜악 짜악
곧이어 여인은 손뼉을 마주치며 합장을 따라하기 시작하였다.
몇 번이고 반복을 하면서 말이다.
"......네년은 누구지?"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광해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나한테는 왜 친절하게 안해줘? 사람 차별하는 거야? 지금?"
여인은 불만이라는듯 볼을 부풀리며 말하였다.
친절하지 않은 광해의 태도가 불만인듯 보였다.
"말은 똑바로 하거라, 요망한 것, 네년은 인간이 아니지 않더냐?"
광해는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인간도 아닌 존재가 인간인 척하는 걸 보니 부아가 치밀어오른 것이다.
"아닌데? 인간인데? 봐봐, 이렇게 예쁘잖아? 가슴도 엄청 크고."
여인은 풍만한 가슴을 쭉 내민 채 말을 내뱉었다.
"갈喝! 시치미떼지말거라! 요망한 것!"
광해는 언성을 높이며 크게 꾸짖었다.
요사스러운 몸짓에 분노가 차오른 것이다.
"겉모습은 어찌어찌 속일 수 있었어도 네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요사스러운 기운만큼은 숨기지 못한다! 정체를 밝혀라!"
겉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 없을진 몰라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운은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인외人外의 존재만이 내뿜을 수 있는 불길하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헤에에, 땡중 아저씨, 생각보다 수양이 깊나봐?"
그 말을 들은 여인은 감탄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겼는데...그걸 감지하네."
들키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담았던 요기妖氣였다.
그런데 설마 그걸 감지해낼 줄이야.
수양이 깊은 고승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헛소리 말고 정체를 밝혀라! 네년은 누구지! 뭣때문에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거지!"
광해는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닥달하기 시작하였다.
"알았어, 알았어, 말해줄게, 말해주면 되잖아? 왜 그렇게 급해? 급한 남자는 매력없어, 좀더 여유를 가져야지, 땡중 아저씨."
여인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인간이 아닌 걸 알아챘으니까, 그 보상으로 정체를 가르쳐줄게,"
우우우우우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주위로 어마어마한 요기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다.
살랑
그리고 그녀의 뒤편에 몽실몽실한 느낌의 커다란 꼬리 하나가 솟구치기 시작하였다.
살랑
뒤이어 두개.
살랑
세 개
살랑
네 게.....다섯 개.....여섯 개
그리고 종국에는 아홉 개의 꼬리가 뒤편에서 살랑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광해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있는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구미호."
인간의 지능과 요사스러운 신통력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요사스러운 여우
그리고 천하에 산재되어있는 수많은 요물들 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드높은 특출난 요물.
그 존재가 여인으로 둔갑한 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잘아네."
구미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난 백월白月이야, 보는 것처럼 구미호지, 구미호가 어떤 영물인지는 말안해도 대충 알지? 엄청 유명하니까."
스스로 백월이라 소개한 여인은 당당히 말하였다.
스스로의 유명세를 너무나 잘알고 있는 그녀기에 구태여 부연설명을 하진 않았다.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저의가 무엇이더냐?"
광해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다 죽이려고~"
백월은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잠자리를 해체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뭣이!"
그 말을 들은 광해는 곧바로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야, 나도 사실 그냥 지켜보고 싶었거든? 근데 니들이 자꾸 우리 똥강아지들을 죽이니까,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더라고. 이해해줄 수 있지? 땡중은 착하잖아? 그치?"
백월은 싱글거리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역시 마물들과 한패였구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저 구미호는 옥수를 습격한 마물들과 함께였던 것이다.
"응, 맞아. 전부 내가 끌고 왔어. 잘했지?"
백월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갈喝!"
광해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사자후를 내뱉었다.
마물들을 이끌고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주제에 저리 해맑은 표정이라니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느껴졌다.
우우우우웅
그 사자후와 함께 항마의 기운이 구미호를 향해 그대로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저릿 저릿 저릿
"헤에...따끔하네?"
백월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신을 저릿하게 만드는 항마의 기운이 꽤나 신선하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정도까지 항마력이 강인할 줄이야.
"소림의 제자들이여! 십팔나한진을 펼쳐라!"
광해가 소림의 제자들을 향하여 고함을 내질렀다.
십팔나한진으로 단숨에 끝내버릴 요량이었다.
멍
하지만 그 명령에 움직이는 소림의 제자는 없었다.
그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은 채 멍하니 자리를 지킬 뿐인 것이다.
"뭣들 하는 것이더냐! 어서 움직여라! 어서!"
광해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제자들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어서 나한진을 펼치라고
어서 움직이라고
어서 저 요물을 척결시키라고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내질러도 미동조차 없는 것이다.
"소용없어."
백월은 그런 광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두 좋은 꿈을 꾸고 있는 중이거든."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광해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언성을 높였다.
"별거 안했어, 그냥 원하는 걸 보여줬을 뿐이지."
".....홀렸구나."
광해는 깨달았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요사스러운 힘으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홀려다는 사실을
"홀리는 건 내 전문이거든."
백월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장난스레 미소 지을 뿐.
"요망한 것! 당장 원래대로 되돌리지 못할까!"
"싫은데? "
백월은 혀를 내밀며 그를 자극하였다.
"그렇다면 강제로 되돌리는 수밖에!"
광해는 잔뜩 흥분한 채 돌덩이같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우우우우우웅
더불어 당장에라도 머리통을 터트려버릴듯한 기세를 흩뿌리기 시작하였다.
"때릴거야?"
백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머리통을 터트릴 것이다!"
곧이어 광해가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돌덩이 같은 주먹을 치켜세운 채로 말이다.
"터지기 싫은데~ 큰일났다~"
백월은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성난 멧돼지처럼 돌진하는 광해를 향해서
콰콰콰콰쾅
곧이어 커다란 굉음성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어흐으으으응!
허흐으으으응!
아홉 머리를 가진 거대한 사자가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으으윽!"
"크으윽!"
그리고 그 포효성에 휘말린 독천대의 무사들은 지체없이 뒤편으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울음소리에 담긴 거대한 파동을 도저히 견딜 수 없던 탓이었다.
"하체에 내력을 집중하라! 버티란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독천대주 갈지천이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밀려난다면 유효타를 먹일 수 없었다.
어떻게든 버텨야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독천대 무사들은 일제히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 명을 따라 하체에 내력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저 포효성을 견뎌내기 위해서 말이다.
"잘하였다! 이제 한 발 한 발 내딛어라! 검을 치켜들고 저 괴물을 향해 달려들어라!"
갈지천을 검을 늘어뜨린 채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예엡!"
독천대 무사들은 그런 대주의 뒷모습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저 흉악스러운 괴물에게 칼을 꽂아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크아아아아아아!
그 모습에 구두사자九頭獅子는 크게 울부짖었다.
한낱 인간따위가 자신에게 대항하려드는 게 가소로우면서도 건방지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어디 감히 인간따위가
위대한 사자왕에게 덤벼든다는 말인가
크와아아아앙
곧이어 분노한 구두사자는 커다란 앞발을 거침없이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건방진 인간들에게 주제파악을 시킬 요량이었다.
부우우우우웅
곧이어 둔탁한 파공성과 함께 커다란 앞발이 선두에 선 갈지천에게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모조리 분쇄시켜버릴듯한 기세를 담은 채로 말이다.
"........."
갈지천은 날아드는 앞발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그저 검을 강하게 움켜쥔 채로 말이다.
크릉
그 모습에 구두사자는 비웃음을 흘렸다.
수십 배는 왜소한 인간따위가
몸통보다 몇 배는 두터운 자신의 앞발을 감당할 생각을 하다니?
건방지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멍청한 생각이 들 뿐
부우우우우웅
이내 앞발은 코앞에 다다르게 되었고
구두사자는 예상하였다.
뼈와 살이 분리되고 말 것이라고
쿠우우웅
하지만 그 예상이 틀렸다는 걸 알게되는데는 그리 긴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왜소한 인간의 몇 배는 커다란 앞발이 땅에 그대로 떨궈졌기 떄문이었다.
잘린 것이다
저 어리석은 인간이 휘두른 검에 의해서 말이다.
"............!?!?"
순간 열여덟개의 눈이 크게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앞발이 잘린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서걱
그렇게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절삭음과 함께
한 개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두 개째
세 개째
네 개째
.
.
.
.
종국에는 마지막 남은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하였다.
쿠우우우웅
더불어 머리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몸뚱이가 그대로 땅에 처박혀버렸다.
사자들의 왕
구두사자가 완벽히 척살되버린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대주께서 괴물을 죽였다!"
"아홉 개나되는 목을 자르셨다!"
"과연 검왕!"
곧이어 열렬한 환호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갈지천의 초월적인 위용에 독천대 모두가 찬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후우우우..."
그들의 환호소리에
갈지천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느정도 일단락 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서문은 안전하리라
그렇게 한창 안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꽤 대단하군, 설마하니 구령원성九靈猿聖이 당할 줄이야."
귓가에 중후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휘익
갈지천은 그 목소리를 따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타는듯한 적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너, 강하구나."
남자는 갈지천을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갈지천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렸다.
덜 덜 덜 덜
더불어 전신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 미소를 하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전신을 그대로 휘감은 까닭이었다.
저 끔찍할 정도로 공포스러운 존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너는....누구지?"
곧이어 갈지천은 공포를 간신히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적사赤蛇."
스스로 적사라고 소개한 남자는 입을 떼었다.
"인류의 적이지."
그리고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