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89화 (1,190/1,419)

해동시 중앙관청에 마련된 대회의실

중앙 상석에는 장난기 어린 눈매가 인상적인 절세가인.

요랑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끼이이익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회의실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열린 문틈사이로 그녀 못지 않은 절세가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각 또각 또각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고귀함과 품위가 절로 느껴지는 우아한 여인이었다.

과거 악정왕惡情王 주태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수많은 사마외도 무리를 보이는 족족 척살하였던 위대한 여협.

혈검향血劍香 옥령의 등장이었다.

그녀는 요랑을 향해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털썩

그리고 상석과 마주하는 자리를 차지하였다.

또각 또각 또각

그 다음 모습을 드러낸 건 비단결같은 검은 머릿결과 녹빛을 머금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당가의 직계혈족이자

여인의 몸으로 당가의 무공을 극성까지 익힌 무공광이자 사천제일미라는 명성까지 거머쥐고 있는 여인.

독서시毒西施 당서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털썩

그녀 또한 옥령과 마찬가지로 가벼이 인사하고는 상석에 앉은 요랑의 옆쪽에 자리를 잡았다.

뒤이어 두 명의 여인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처럼 새하얀 머릿결과 창공처럼 푸르른 눈빛이 인상적인 아리따운 냉미녀

드넓은 북해를 다스리는 유일무이한 거대문파.

북해빙궁의 궁주이자

대대로 궁주에게만 전해진다는 천음빙백신공을 극성까지 익힌 절대고수.

북궁연.

암호랑이를 연상케하는 드센 인상을 가진 아리따운 귀부인.

과거 천무맹의 봉황대주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수많은 여협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던 여협이자

여중제이인으로 크나큰 명성을 날렸던 절대고수.

강하윤.

모습을 드러낸 두 여인은 회의실 내부로 들어와 각각 자리에 착석하였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침묵을 한 채 얌전히 기다렸다.

회의가 시작되기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타타타탁

다급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문밖으로 흑백이 조화롭게 배치된 도복을 입고 있는 아리따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가 너무 늦었나요?"

한 세대전 무림 최고의 검객으로서 이름을 날렸던 절대고수이자 검신을 제외한다면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정파 최고수.

곤륜검성昆仑劍聖 운설의 등장이었다.

"아니, 딱 맞춰왔어."

요랑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내저었다.

갑작스러운 소집에

이정도 속도면 차고넘칠 정도의 빠르기였다.

구태여 늦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후우, 다행이네요."

그 대답에 운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민폐를 끼친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까닭이었다.

"그럼 올사람은 모두 온 것 같으니까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도록 할게."

이내 요랑은 절세가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마경魔警이 개방됐어."

그리고 곧이어 한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장난기와 여유넘치는 평소와는 전혀 상반된 얼굴이었다.

**********

"마경魔境? 그게 뭐죠?"

운설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강산이 열번은 더 변했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였지만 마경魔境이라는 말은 난생처음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게 대체 무엇이길래 항상 여유가 넘치던 요랑이 저리 긴장을 한다는 말인가

"마경魔境이라....저도 처음 듣는 것 같네요. 요랑....마교와 관련된 것 같긴한데.."

옥령 또한 운설의 말에 동조를 하였다.

연배가 꽤나 되는 그녀였지만

운설과 마찬가지로 마경魔境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다른 여인들 또한 의문 어린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연배가 가장 높은 두 여인조차 모르는 걸 다른 여인들이 알 수 있을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마경魔境은...."

그녀들의 의문 어린 시선에 요랑이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모든 마물들의 근원과 같은 곳이야."

"모든 마물들의 근원?"

당서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응, 내노라하는 마물들은 모두 마경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

요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철을 먹고 몸집을 키운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조선의 마물 불가살이, 요사스러운 요술로 둔갑하여 인간을 꾀고 간을 빼먹는다는 구미호, 아홉개의 머리와 아홉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호왕狐王 농질, 톱 같은 송곳니와 갈고리 모양의 발톱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지는 날개 달린 범 궁기窮奇를 비롯한 사흉四凶의 괴수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마물들의 왕이자 최초의 마물이라고 불리우는 아홉 머리의 악룡, 구영九嬰까지.........모두 마경에서 유래된 마물들이야."

"말도 안돼....모두 신화나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괴물들이잖아?"

당서윤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같이 신화나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괴물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의 유래가 마경이라는 곳이라니

어찌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야. 모두 내 눈으로 직접 마주한 녀석들이니까."

"직접 마주했다고?"

"나도 마경魔境 출신이거든."

요랑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은 하나같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폭탄발언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요랑이 마물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경 출신이라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잠깐만요, 요랑님은 분명 남만 출신이잖아요? 고독관에 들어오기 전 분명 그곳에 머물렀다고 들었는데...."

운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듣기로 요랑은 고독관에 입관하기 전 남만에 머물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마경 출신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최초로 나고 자란 건 마경이었어, 그후에 남만으로 옮겨가게 된거고."

최초의 탄생은 마경이었다

그후 피치못할 사정으로 남만으로 이동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정말 그 괴물들은..."

운설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응, 전부 실존하는 존재들이야."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순간 여인들의 안색이 하나같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신화나 전설 속에서나 볼법한 괴물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에 심각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마경이 개방되었다는 건 ......그 존재들이 풀려났다는 뜻인가요?"

당서윤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응,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홉 머리의 악룡이 나타났다는 서신이 하나가 도착했거든."

"아홉 머리의 악룡?"

"아마 최초의 마물인 구영일거야. 정신나갈 정도로 강한 괴물이지."

요랑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당서윤은 놀랍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평가가 꽤나 박한 요랑이었다.

천재라고 칭해도 부족치 않는 두뇌.

선우의 여인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무력.

천하제일미라는 말이 부족치 않은 아름다운 외견까지

모든 걸 다 갖췄기에

누군가를 평가하는 게 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요랑이 긴장을 잔뜩한 채 정신나갈 정도로 강한 강자라는 언사를 입에 담았다.

그녀를 누구보다 오래봐온 당서윤으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왜 마경에서...남만으로 옮겨갔는지...알아?"

요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구영九嬰에게 죽기 싫어서 도망친 거였어."

"요랑이 도망쳤다구요?"

당서윤은 놀란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도망치는 그녀의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당시 나는 구영의 한끼 식사거리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거든, 죽기 싫으니 마경에서 도망쳐 남만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던 거지."

요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럴수가.."

당서윤은 믿기 어렵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인면지주는 영물들 중에서도

그 강함이 정평나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죽기 싫어 그대로 도망쳐버리다니

어찌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면 승산있지 않을까요?"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옥령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요랑은 그전과는 비교조차할 수 없는 성취를 이룩하셨잖아요? 지금이라면 충분히 싸워볼법하지 않을까요?"

처음 마주했을 때만해도

요랑은 고작 화경에 못미치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초절정은 뛰어넘었지만 화경이라고는 애매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정녕 요선妖仙을 바라볼 정도로 급격히 성장을 하였다.

웬만한 현경의 고수는 찜쩌먹을 정도로 강대한 무력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모르겠어."

요랑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내가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건 잘 알아, 아마 지금이라면 마경 내에서도 내 적수가 될만한 존재는 많지 않을 거야."

자신은 강하였다.

마경 내에 존재하는 흉악스러운 마물들조차 감히 덤벼들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구영만큼은 도저히 승부를 예측할 수 없어. 내가 강해진 만큼 그놈도 강해졌을지 모르니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였다.

자신이 수백년간 강대해진 만큼

구영 또한 수백년동안 강대해질 가능성은 또한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섣불리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사안이 심각하네요. 요랑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라니."

옥령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왜 사안이 심각한 지 모르겠는데?"

그때 북궁연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냥 다같이 덤벼들면 되는 것 아닌가? 대체 무엇이 문제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요랑 홀로 상대하는 게 힘들다면

모두가 힘을 합치면 되는 게 아니던가

당서윤과 강하윤 또한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라면

함께 힘을 합치면 될 일이었다.

후에 합류할 능소화와 주소양을 더한다면

현경에 다다른 고수만 일곱이나 되었다.

전쟁터에서 합공이 비겁하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는 것만 아니라면 문제 될 게 전혀 없는 것이다.

"구영 혼자라면 문제가 없겠지만.....마경에는 지금의 나와 대등한 마물들이 존재하고 있어."

"그대와 대등하다?"

북궁연은 꽤나 놀랍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요랑은 오만한 그녀조차 인정할 정도의 강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와 대등한 마물들이라니?

"여우들의 왕 농질, 악을 형상화시킨 최악의 마물 사흉四凶 등 하나하나가 나와 대등히 맞설 수 있는 괴물들이야....그런 괴물들이 동시에 날뛰게 된다면 온전히 구영에게만 집중할 수는 없을 거야."

"흐으음...확실히 곤란하군."

그 말을 들은 북궁연은 침음성을 흘렸다.

과연 그정도로 강맹한 존재들이 날뛴다면 상당히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결국 마경의 마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우리가 각개격파를 하는 수밖에 없어."

요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최선은 각개격파였다.

중원의 연합군이 가진 힘으로는

강맹한 마물들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을테니

".....다들 괜찮겠어?"

요랑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자신과 대등한 마물들을 각개격파해야한다는 건

다시 말해 생존률이 극히 낮아진다는 걸 의미하였다.

서로 보완해주며 싸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제안이

소중한 친우들을 사지로 몰고가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 된 까닭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걸요?"

옥령은 어쩔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아니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테니까요."

"오히려 걱정은 마물들이 해야할 거야. 내 천음빙백신공에 눈대중따위는 없으니."

북궁연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꽤나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비록 현경은 아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마물들을 상대하도록 하겠어요."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요랑님과 맞먹는 상대라니...오히려 피가 끓는 느낌이 드네요."

강하윤은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강자에 대한 호승심이 자극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영은 제가 맡도록 할게요. 마魔를 근본으로 삼고 있는 괴물이라면 선기仙氣에 맥을 못추게 될테니까요."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모두 불복따윈 전혀 없었다.

그저 당당히 맞설 생각을 할 뿐

"........엄청 위험할거야."

"위험하지 않으면 그건 전쟁이 아니라 소꿉장난이지."

북궁연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전쟁의 본질은 위험이죠."

강하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하였다.

"위험을 감수하고 이 자리를 함께한게 아닌가요? 이제와서 두렵다 발을 빼면 그것만큼 창피한 게 어디있겠어요?"

당서윤은 녹안을 반짝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요랑님이 걱정이라니, 이건 이거대로 신기하네요. 하지만 상당히 어색하니 원래대로 돌아와주셨으면 해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오만한 요랑님의 모습으로 말이에요."

운설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저희는 승리할 거예요. 요랑. 그리고 모두와 함께 행복해질 거랍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를 믿어주세요."

옥령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요랑을 응시하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한치의 떨림도 없었다.

"......응, 믿을게."

요랑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두의 승리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말이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던 그때였다.

벌컥

별안간 대회의실문이 거칠게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다급해보이는 남자, 재경각의 부각주 당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큰일났습니다! 청해성 곳곳에 끔찍한 외형의 마물들이 범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다급히 고함을 내질렀다.

번쩍

그 순간 여인들의 눈빛이 일제히 반짝였다.

아무래도 승리를 쟁취할 시기가 앞당겨진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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