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83화 (1,184/1,419)

청해성 인근

작은 마을

"우아아아아앙!"

"흐으윽...흐으윽..흐윽..엄마."

"흐아아아아앙"

설움 가득한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귀살대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구슬픈 울음소리였다.

".............."

정철문주 거왕은 구슬피 우는 아이들을 그저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달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아이들에게 부모는 하늘 같은 법.

하늘이 무너져내린 슬픔을 어찌 말 몇 마디로 달래줄 수 있겠는가

무리였다.

자신이 아니라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때문에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켜보았을까

쭈욱

"아저씨..."

예닐곱 정도 되는 여아가 거왕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그러느냐?"

"엄마가...일어나지 않아요."

여아는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조막한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눈을 부릅뜬 채 혀를 빼고 있는 여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원통함에 눈을 감지 못한 주검임을 알 수 있었다.

"...흐극....흐극..도와주세요...엄마를...살려주세요..

아이의 울음을 터트리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도와달라고

엄마를 살려달라고

"................"

하지만 거왕은 그 요청에 응할 수 없었다.

그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가

어찌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할 수 있겠는가

"흐아아아아앙! 도와주세요...저희...엄마...살려주세요오....제발요...흐아아아앙!"

거왕이 반응이 없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욱더 격해지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거왕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연민과 슬픔

그리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의 표정을 어둡게 만든 것이다.

"어찌 그리 구슬피 우는 것이냐? 아가."

그때 선우가 그들 곁으로 다가오며 입을 떼었다.

"엄..엄마가..흐으윽...엄마가....일어나지 않아요...눈을 뜨고 있는데..흐으윽...일어나지..않아요."

그 물음에 여아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엄마를...흐극...살려주..세요..흐윽....흐으윽."

그리고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엄마를 살려달라고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미안하구나, 아가 그건 아무래도 내 능력밖에 일인듯 하구나. "

선우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비록 자신이 인간을 초월하여 신선경에 다다르긴 하였지만

이미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할 수는 없었다.

아이를 바램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이다.

"후아아아아아앙!"

선우의 말을 들은 아이는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말이 어미의 죽음을 확정하는 선고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애써 부정하던 죽음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어찌 서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우는 그런 여아를 가만히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꼬오옥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어 아이를 품 안에 꼬옥 감싸안았다.

"미안하구나, 아가."

토닥 토닥 토닥 토닥

그다음 조그만한 등을 부드러이 토닥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구슬픈 울음소리가 그치고

아이의 몸이 추욱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울다 지쳐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제가..안아들겠습니다. 전하,"

그 모습을 지켜보던 거왕은 팔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부탁하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이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는 여인의 주검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후우."

그 모습을 확인한 선우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가진 아비로서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던 여인의 심정을 조금이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려

죽는 순간까지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일테니

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부족함없이 잘 돌보도록 하겠소. 부디 극락왕생하시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인의 두 눈을 감겨주었다.

부디 그녀가 안심하고 저승에 갈 수 있기를 빌면서 말이다.

********

"후우.."

거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구해진 것까진 좋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아이들의 처우를 어떻게 해야할 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정철문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문제는 숫자였다.

자신 혼자 챙기기엔 아이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다.

정철문과 이 마을 사이의 거리는

성인의 발걸음으로도 며칠은 걸리는 장거리였다.

그런 장거리를 많아봤자 예닐곱 정도 되는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한숨이 깊군."

그때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선우가 입을 떼었다.

"....무례를 보여 죄송합니다. 전하."

거왕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되었네, 자네 나름의 고민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선우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그는 고민 섞인 한숨마저 무엄하다고 할 정도로 박한 이가 아니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거왕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군왕의 넓은 아량에 최선의 예우를 표한 것이다.

"이해랄 게 어디있겠는가? 그저 당연한 것을."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을 이었다.

"그보다 고민이 무엇인가? 내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와주지."

"아닙니다! 어찌 제가 전하께 도움을.."

거왕은 고개를 필사적으로 내저었다.

위대한 군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느낀 까닭이었다.

"왕명일세."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사실은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되옵니다."

그 말을 들은 거왕은 곧바로 이실직고를 하였다.

아무리 내키지 않는다해도

감히 왕명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그렇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모두를 정철문으로 데려가고 싶으나 몸도 성치 않은 제가 홀로 책임지기엔 아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마을에 계속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어떻게 해야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거왕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 것이다.

"그건 걱정할 필요없네."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을 이었다.

"이제 곧 조력자가 올터이니."

"조력자..말씀입니까?"

거왕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그 순간 거친 땅울림이 사방에 진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화들짝 놀란 거왕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저..저들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거왕의 눈빛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날렵하게 생긴 전마.

고급스러운 녹빛의 무복

금색 자수실로 수놓아져있는 당문唐門이라는 두 글자.

비록 청해라는 낙후된 지역에 적을 두고 있긴 하였지만 그 식견마저 낙후되진 않았다.

천하제일가

사천당가의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독천대주 갈지천! 군왕 전하께 인사올립니다!"

당가의 무사들을 이끌던 남자.

청수검왕 갈지천은 선우를 바라보며 우렁차게 인사를 건네었다.

"반갑네, 갈대주, 예상보다 일찍 왔군."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인사를 받았다.

"아무래도 뒷처리에 곤혹을 겪고 있을 것이라 판단되어 더욱더 서둘러 달려왔습니다!"

갈지천은 당당히 말을 내뱉었다.

"잘되었군, 그럼 일처리를 부탁하지."

"걱정마십시오! 신 갈지천 전하의 명을 완벽히 수행토록 하겠습니다!"

갈지천은 가슴을 쿵 쿵 두드리며 호언장담을 하였다.

"독천대는 들어라! 지금부터 순번대로 세 개의 조로 나눠 마을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조는 혹시 모를 생존자를 탐색한다! 2조는 마을의 시체들을 수습하여 한곳에 모아 장례 준비를 치르도록 하라! 3조는 아이들을 모아 안전한 곳으로 이동토록 하라!"

그리고 곧바로 뒤를 돌아 독천대원들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대주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군기가 제대로 잡힌 독천대는 마을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답하였다.

그리고 각자 조를 나누고 역할에 맞게 뿔뿔히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마을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곤란하던 참이었는데 잘되었군, 고맙네, 덕분에 한시름 덜었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는 흡족스럽다는듯 입을 떼었다.

"그저 당연할 일을 하였을 뿐이옵니다. 전하."

갈지천은 말투는 담담했지만 표정은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존경하는 군왕의 칭찬에 절로 뿌듯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 당연한 일이 내겐 고맙구나, 검왕劍王이여."

두근 두근

갈지천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남자가 누구란 말인가

군왕이기 전에

검을 다루는 자라면 존경해마지 않던

천하제일검.

검신劍神이라 불리우던 남자가 아니던가

그런 남자가

자신을 검왕劍王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었다.

어찌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당가의 다른 부대들은 어찌 되었는가?"

"예엡! 현재 청해성 각지에 흩어져 대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당가의 부대는 청해성 각지에 흩어진 채 대기를 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마교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별일 없을 것입니다! 당가 뿐 아니라 사천 연합에 청성과 아미 또한 합류한 상태이니까요."

"그럼 또 다행이지."

선우는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다행히 당가와 더불어 구파 중 두 곳이 함께 참전해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면전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다른 지원군들을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그렇게 안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찌릿

순간 선우의 눈살이 찌푸려지기 시작하였다.

아주 짧은 찰나

한없이 불쾌하고 사악한 기운이 몸속을 스쳐지나간 까닭이었다.

'........천마天魔..네놈이더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기운이 천마가 가진 근원의 마기魔氣라는 사실을

'구태여 찾을 수고를 덜었구나.'

탁 탁 탁

선우는 가볍게 발을 굴렸다.

파팟

그리고 어느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땅을 접어 거리를 줄이는 초월의 술법

축지縮地를 사용한 것이다.

"전하?....전하?!"

"전하!?"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정철문주 거왕과 갈지천은 어안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하였다.

허깨비처럼 사라져버린 선우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땅을 접어 이동한터라 육안으로 쫓을 수 없는 거리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군왕 전하께서....축지법을 쓴다는 소문이 있던데....아무래도 그 소문이 사실인듯 하구먼.."

갈지천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축...축지법을 말입니까!?"

거왕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축지법이 무엇이란 말인가

동에번쩍 서에번쩍

천하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초월의 술법이 아니던가

그런 걸 사용할 수 있다니!?

"축지가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어찌 설명되겠는가? 전하께서는 인간을 완전히 초월한 게야."

갈지천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존경하는 군왕의 위용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한층 더 뿌듯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허어.."

거왕은 새삼 감탄할 뿐이었다.

선우의 위대함에 말이다.

************

파스스스

파스스스

기분 나쁜 바람이 휘몰아치는 울창한 대나무숲

파팟

별안간 선우의 신형이 연기처럼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근원의 마기魔氣를 따라 이곳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두리번 두리번

대나무숲에 도착한 선우는 다급히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근원의 마기魔氣로 자신을 도발한 천마天魔를 찾기 위해

'없어?'

하지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천마天魔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을씨년스러운 대나무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헛다리를 짚은 건가?'

그렇게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낄 낄 낄 낄 낄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휘익

그 순간 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비열히 웃고 있는 괴인을

"네놈이더냐? 감히 위대한 천마께 대적하려든다는 건방진 놈이 말이야."

"넌 누구지?"

선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괴인을 노려보았다.

"악천마惡天魔."

악천마는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놈의 적이지."

우우우우우우웅

그의 주위로 한없이 불쾌하고 사악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선우가 애차게 찾던 천마天魔의 기운.

근원의 마기魔氣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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