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 저벅 저벅
한쪽 팔이 헐렁한 외팔의 중년인은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다급한 용무가 있는 것마냥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뚝
곧이어 중년인 막다른 벽을 마주보며 걸음 멈춰세웠다.
이내 중년인은 벽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꾸우욱 꾸우욱 꾸우욱
그리고 석벽 이곳저곳을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쿠우우우우웅
그러자 굉음성이 울리며
석벽이 그대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기관이 작동되며 숨겨졌던 비밀장소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석벽이 완전히 개방되자 지하로 통하는 계단 하나가 시야에 들어오기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외팔의 중년인은 망설임없이 안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얼마나 안쪽으로 들어갔을까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더불어 음산하고 사이한 기운이 안쪽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 기운을 감지한 중년인은 더욱더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목적지가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뚝
이내 외팔의 중년인은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커다란 공동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바라던 목적지에 닿게 된 것이다.
공동을 향해 한 걸음을 떼었다.
"총군사를 뵙습니다!"
그 순간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그를 반기기 시작하였다.
꽤나 음침한 인상의 남자가 몸소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래, 반갑군."
외팔의 중년인, 마뇌는 담담한 어조로 인사를 받았다.
"맡긴 일은 잘되가는가?"
"현재 철강시를 육할 이상 수급하였습니다!"
"육할? 정녕 그게 사실이더냐?"
마뇌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예상이상으로 빠른 일처리에 놀라움을 느낀 것이다.
오할정도만 만들어도 대단하다고 치켜세웠을 건만
벌써 육할이라니
"재료가 풍족한터라 흐름이 끊기지 않고 쭉쭉 양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빠른 속도라니? 네 스승인 시마屍魔도 이정도로 빠르게 강시를 만들진 못하였다."
마뇌는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정도 속도는
강시술의 대가이자
눈앞에 청년의 스승인 시마屍魔조차 혀를 내두를 속도였다.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광섭, 네가 시마屍魔의 별호를 갖게 되는 날도 얼마남지 않았구나."
"과찬입니다. 철강시처럼 기본적인 강시제조는 손기술과 체력이 양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강시나 천강시처럼 고급 강시제조라면 스승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시마의 젊은 적도 네놈만 못하였다. 자부심을 가져도된다."
"그리 말씀하신다니..그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시마의 제자, 광섭은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치켜세워주니 괜스레 부끄러움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철강시는 그렇다치고 독강시와 천강시의 제조는 어떻게 됐더냐? 가능한 것이더냐?"
"독강시 같은 경우에는 어찌어찌 가능할 듯합니다. 마침 오독문의 후예들을 찾은터라, 그대로 죽여 그 시체를 쓰면 될 듯 합니다."
광섭은 기분좋은듯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스승인 시마屍魔 못지않은 사악함과 음산함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세상이 교를 돕는구나. 이렇게 절묘한 시기에 훌륭한 재료들을 찾을 수 있게 되다니."
마뇌 또한 기쁜듯 말을 내뱉었다.
마치 세상의 만물이 교를 돕는 것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천강시는 어찌되었느냐? 이번에도 쓸만한 재료를 찾았더냐?"
마뇌는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되물었다.
"......아쉽게도...천강시에 걸맞는 재료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광섭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단 한 놈도 말이더냐?"
"아무래도 천강시의 조건이 워낙 까다로운터라...쉽사리 재료를 수급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강시의 조건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생전 화경에 다다른 경지를 이룩해야하며
썩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어야하고
심각한 외상을 입지 않은 존재여야했다.
직접 죽이지 않고서야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길 정도로
힘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시마가 따로 챙겨둔 재료도 없는 것인가?"
"아쉽게도 재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광섭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시마는 지난 전쟁 때 모든 재료를 소진하였다.
남아있는 재료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애석하군."
마뇌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반쯤 포기하고 있긴 하였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아쉬움이 배가 되었다.
'생전 화경이상의 경지를 이룩하였고 멀쩡히 보관되고 있는 시체라니........그런 걸 쉽사리 구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
그렇게 한창 실망을 하고 있을 때였다.
번뜩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이기 시작하였다.
천강시의 재료를 걸맞는 시체가 별안간 떠올려진 것이다.
'.......조사전에 잠들어있는 시체라면..'
조사전
역대 마교주들의 시체가 안치되어있는 곳
그들은 하나같이 천강시의 재료에 적합한 존재들이었다.
생전 화경을 뛰어넘었던 고강한 경지.
심각한 외상이 없는 깨끗한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시체의 보존상태가 훌륭하였다.
교인들의 존경심을 이끌기 위해
일부러 미라로 만들어 썩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체라면 분명 훌륭한 천강시가 될 것이다.
'......아니...아무리 그래도..'
절레 절레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역대 마교를 이끌었던 교주들의 시체를 훼손하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하지만 불경이라는 말은 위대한 천마외엔 의미 없는 게 아닐까? 위대한 지배자가 살아있는 과거의 흔적따위가 의미가 있는 걸까?'
내면에서 심각한 내적갈등이 일어났다.
조사전 시체에 대한 미련과 천마의 공백기동안 마교를 이끌었던 역대 교주들에 대한 존중이 충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하였을까
"........가자구나."
이내 마뇌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어디를..?
광섭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시체가 있는 곳으로."
".....시체라면 설마 천강시를 만들 시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시마의 제자는 눈을 부릅뜬 채 되물었다.
설마하니 시체가 나올 구녕이 남아있을 줄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마뇌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돌린 채 그대로 걸음을 떼기 시작할 뿐
광섭은 의문을 느끼면서도 그런 마뇌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기 시작하였다.
호기심과 기대를 잔뜩 품은 채 말이다.
********
"이곳이다."
뚝
마뇌는 걸음을 멈춰선 채 입을 떼었다.
"....이곳은...조사전이 아닙니까!?"
광섭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마뇌가 걸음을 멈춰선 곳은 조사전이었다.
천마의 공백기간 동안
마교를 훌륭히 이끌었던 교주들의 시체가 안치되어있는 곳 말이다.
"맞다, 이곳은 조사전이지."
마뇌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설..설마?!"
그리고 그 모습에 광섭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마뇌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됩니다! 어찌 그런 짓을!"
곧이어 광섭은 언성을 높이며 반대를 표하였다.
그는 역대 교주들을 이용해 천강시를 만들게 할 심산인 것이다.
그간 마교를 훌륭히 이끌었던 교주들에 대한 존중따윈 내팽겨쳐버린 채 말이다.
어찌 반대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왜 안되는다는 말이더냐? 생전의 고강한 무공, 외상 하나없이 깨끗하게 보존된 시체 상태까지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거늘!"
마뇌는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여기있는 분들은 모두 신교를 이끌었던 교주들입니다! 어찌 그런 분들께 이런 불경스러운 짓을..."
"쯧쯧, 네가 크나큰 착각을 하고있구나. 광섭."
마뇌는 한심하다는듯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불경이라는 말은 오로지 위대한 천마에게만 허락된 말이니라, 그 외엔 불경스러운 일도 따윈 존재치 않다는 말이다."
마뇌는 광기 어린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리고 그 광기로 가득 찬 눈빛을 마주한 광섭은 어떠한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눈빛에 완전히 압도를 당한 것이다.
"이들은 그저 직위가 높았던 교인일 뿐이다. 지금껏 이렇게 모셔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예우일테지. 게다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육신이 아니던가? 그런 몸뚱이를 교를 위해 쓰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아마 조사전에 모셔져있는 교주들도 내세에서 크게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마뇌에게 결단을 굽힐 생각따윈 없었다.
위대한 천마의 권능을 몸소 겪은 그에게 있어
역대 교주들 따윈
한낱 교인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
천마를 위해서라면
그 시체조차 모욕당해도 상관 없는 것이다.
"조사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천강시로 만들어라. 육신을 금강불괴로 만들고 생전의 무공을 그대로 재현시키고 죽음조차 불사하는 괴물을 만들란 말이다!"
마뇌는 흉흉하기 그지없는 기세를 피어올려며 고함을 내질렀다.
"...........알겠습니다."
광섭은 허리 숙여 답을 하였다.
반박해봤자
그의 결정이 번복되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려진 명에 그대로 순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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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우리 귀여운 연우, 다시 한 번 말해보려무나, 내가 누구라고?"
옥령은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되물었다.
"엄마! 엄마! 옥령 엄마!"
그러자 연우는 작달막한 팔을 꼬물거리며 답을 하였다.
"그래, 그래 , 우리 연우는 이리도 총명하구나."
옥령은 그런 연우를 사랑스럽다는듯 바라보더니 그대로 안아들었다.
눈앞에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연우야 나는! 나는! 나는!"
그러자 옆에 있던 요랑이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그녀 또한 엄마 소리를 듣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요랑! 요랑! 엄마!"
연우는 요랑의 이름을 연신 내뱉었다.
"헤헤헤! 맞아! 난 요랑이야!"
그 말을 들은 요랑은 웃음을 지었다.
엄마라는 울림이 꽤나 기분 좋게 다가온 탓이었다.
"운설 엄마!"
그때 연우가 손가락을 쭉 폈다.
그리고 요랑의 옆에 웃음 짓고 있던 운설을 가리키기 시작하였다.
"...나...는...묻지 않았는데.."
운설은 민망한듯 얼굴을 붉혔다.
괜스레 지목당하니 부끄러움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하지만 반박치는 못하였다.
선우의 여인이 된 이상
항렬상 연우의 어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연우는 언어발달이 무척이나 빠르네요. 벌써부터 발음이 이리 정확하다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운가려는 감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발음이 또래에 비해 훨씬 더 명확히 들린 까닭이었다.
"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월한 핏줄이 어딜 가는 건 아니니까요."
북궁연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세상에 자식 칭찬을 싫어하는 어미가 어디있겠는가
절로 기분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언어 발달도 발달인데 연우는 외모도 범상치 않네요.저 보세요, 벌써부터 귀티가 저렇게 좌르르 흐르는 걸.."
옆에 있던 강하윤은 감탄 어린 눈빛으로 연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커다랗고 올망졸망하고 두눈
떡처럼 말랑한 양볼
눈처럼 새하얀 피부까지
연우는 객관적으로 봐도 무척이나 귀여웠다.
뿐만 아니라 명문세가의 자제와 같은 귀티가 좔좔 흐르기까지 하였다.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외모를 타고난 것이다.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간 명문가의 자제들을 많이 봐왔지만 연우처럼 귀티가 나는 아이는 못봤던 것 같네요."
강하윤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강 부인께선 참으로 보는 안목이 뛰어나신듯합니다. 이리도 연우의 본질을 잘 파악하시다니!"
북궁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연우에 대한 칭찬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듣고 또 듣고 계속 듣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놓치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연우는 귀티만 나는 게 아닙니다. 몸의 비율 또한 여타 중원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황금 비율을 타고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팔다리가 길죽길죽하여 무공을 익혔을 때도 훨씬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게다가 체질 자체도 음기가 많은터라 천음빙백신공을 익히기 아주 적합한......"
북궁연은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연우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평소 수다가 많은 성격은 아니였지만
연우에 대한 자랑이 시작되자 끊임없이 말을 내뱉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인들은 그런 북궁연을 이해한다는듯 바라보며 꽤나 즐겁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자식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 까닭이었다.
이내 방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 메워졌다.
끼이이이익
그때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열린 문틈 사이로 두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가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사천제일미로 이름 높은 당가의 보옥
독서시 당서윤과
방 안에 있는 모든 여인들의 정인이자
천하제일검으로 이름높은 중원의 영웅
군왕 장선우의 등장이었다.
"서윤 엄마! 아빠!"
연우는 해맑게 웃음 지으며 그들을 반겨주었다.
두 사람은 그런 연우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지은 채 가벼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금부터 긴급 가족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당서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연우와의 회포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좀더 중요한 안건이 남아있던 까닭이었다.
"안건은 마교 토벌에 관한 건입니다."
그녀의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선우를 비롯한 여인들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해지기 시작하였다.
올 것이 왔음을 인지한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