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야!"
와락
요랑은 폴짝 뛰어 선우의 품에 쏙 안겼다.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선우는 의외라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자연과 완전히 동화된 이후
기척 자체가 없어진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찌 자신을 찾아냈다는 말인가
"서윤이가 말해줬어! 내각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가주전에 머물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구나."
선우는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기척이 없어서 반신반의하긴 했는데 믿고 문을 여니까 이렇게 눈앞에 보이더라구. 헤헤헤."
요랑은 해맑은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 잘 찾아왔어, 안그래 직접 찾아가려고 했는데."
쓰담 쓰담 쓰담
선우는 요랑의 뒷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그러자 손끝에 비단결과 같은 감촉이 그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진짜로?"
요랑은 별빛 같은 눈빛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진짜고 말고.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안찾아가고 배기겠어?"
선우는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다는듯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진한 애정이 가득 담겼다.
"헤헤헤, 나 선우 좋아."
그 진한 애정을 읽어낸 요랑은 싱글벙글 웃으며 가슴팍에 머리 비비적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도 좋아. 요랑"
선우는 그런 그녀를 애정 가득한 손길로 연신 쓰다듬어주었다.
만연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쓰다듬었을까
"그보다 내각 회의는 끝난 거야?"
어느정도 애정 표현을 끝마친 선우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응! 끝나자마자 달려왔어."
끝나자마자 위치를 묻고 달려온 참이었다.
중간에 땡땡이 칠 수는 없는 노릇이였으니
"어떻게 됐는데?"
"청해에 주요 전력과 물자 그리고 의원들을 파견하기로 결정됐어. 당가 자체는 연합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기로 했고 말이야."
요랑은 회의를 통해 결정된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참전이 명확해진 이후
내각 회의에선
구체적인 참전 방식에 관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결론 짓게 되었다.
마교를 토벌할 무인들뿐 아니라
피해 입은 이들을 위한 물자와 의원을 추가적으로 차출하자고 말이다.
이왕 참전하는 거 제대로 지원하자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반대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수월하게 진행됐나보네."
선우는 의외라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본적으로 세가 수뇌부들은 대의보단 가문의 실리를 우선시하는 합리적인 이들이 다수였다.
때문에 반대에 부딪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진행된 것 같았다.
당가의 무인뿐 아니라 물자에 의원들까지 지원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도로서 본질을 건드리니까 아무도 반대 못하더라구."
"하긴 본질을 부정하는 짓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겠지."
선우는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왠지 이해할 수 있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파로서 본질을 부정한다면
사마외도나 다를 바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느 파락호와 다를 바 없는 깡패집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나서서 반대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잘해결됐다니까. 다행이네. 혹여 지원을 안하겠다고 할까봐 식겁했는데 말이야."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이 잘해결되니 기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지원 안해도 상관없지 않아?"
"상관이 왜 없어?"
"이미 전력은 충분하잖아? 의천맹에 황실에 구파연합에 사천의 병력까지."
의문이 들었다.
당문에서 지원을 거절한다해도
선우 입장에선 전혀 아쉬울 게 없었다.
토벌을 위한 전력은 이미 차고 넘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식겁했다는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전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충분하지, 지금 마교는 중원 침공 실패로 세력이 약화되어있잖아? 도움받을 수 있는 새외 세력도 대다수 전멸해버렸고 말야."
마교는 그간 수차례 중원 침공을 하며 수많은 전력을 잃게 되었다.
마교 최흉의 무력집단 악귀대
마교 최고의 궁수부대인 혈궁대
마교 최악의 마귀들로 구성된 마귀대.
마교 최강의 무력집단 흑갑철기병.
역천의 술법으로 되살아난 강시부대 등
마교 내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집단이 차례대로 무너져내린 상황인 것이다
뿐만 아니였다.
북궁연이 궁주에 자리에 오르며 북해빙궁과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고
태양신궁의 궁주인 염재炎災는 선우에게 썰려 고혼이 되어버렸다.
남만야수궁의 궁주인 수왕獸王은 가슴이 뻥뚫린 채 용용이의 위액 속에 들어가 그대로 소화되어 버렸고
악마혈궁의 궁주 혈불血佛은 운설에 의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새외세력의 도움을 받기도 요원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런 마교를 토벌하는 데
큰 전력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막말로 선우를 위시하여
현경에 다다른 부인들만 합세해도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요랑에게 마교는 그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선우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마교는 그간 침공실패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상황이였으니
"근데 내 느낌은 조금 달라."
"어떻게 다른데?"
요랑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느낌이 뭐가 다른 지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뭔가 이번 전쟁에 총력을 다하지 않으면 속절없이 밀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
"말도 안돼."
요랑은 손사래쳤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드러난 전력차가 이렇게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어찌 패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그래도 마음 한켠에서는 쉴새없이 경종을 울리고 있어. 최선을 다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이들을 잃을 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선우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병력차는 확연하였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괜한 걱정하는 거 아니야?"
"차라리 괜한 걱정이면 좋을 것 같은데...아니면 그 위험부담이 너무 크니까. 총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어."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완전히 엇나간 직감이였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럴바엔 차라리 총력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리라
"흐음...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할 말이 없지만서두."
요랑은 볼을 긁적이며 입을 떼었다.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니 괜스레 할 말이 궁색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요랑."
"나한테?"
요랑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별안간 무슨 부탁을 한다는 말인가
"이번 전쟁에 고독관 독물들의 힘을 빌리고 싶어."
선우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걔네들까지?"
요랑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설마하니 그 흉악한 독물들까지 동원할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래."
".......끌어들이는 건 어렵지 않기는 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인간과 함께하는 대규모 전쟁에는 어울리지 않는 놈들이야. 자체적으로 독기를 뿜어대는 통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중독될 수도 있거든."
독물들 그 자체는 대규모 전쟁에 최적화되있는 존재였지만
인간과 함께한다면 말이 달라졌다.
숨쉴 때마다 뿜어내는 독기에 아군마저 중독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저번에 남만야수궁과 대치할 때는 괜찮았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아미 애들이라 괜찮았어. 정순한 내공을 단련한 애들이라서 독기 저항력이 높았거든. 그런데 만약 내공이 정순하지 않거나 저항력이 낮은 애들이랑 함께하게 되면 꼼짝없이 중독당하고 말거야."
실제로 당시 서창시에 남아있던 생존자들은 해독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독물들이 숨쉬듯 내뿜었던 독기에 그대로 중독되어버린 까닭이었다.
'흐음...독이 든 성배라 이건가?'
선우는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전력으로서는 탐나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너무 컸다.
아군마저 중독시켜버리니 독기라니
"......그럼 이렇게 구파나 당가쪽에 함께 배치하도록 하자."
이내 선우는 결론짓듯 말을 내뱉었다.
정순한 내력을 지니고 있는 구파나
독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난 당가쪽에 배치하게 된다면 독기에 중독되는 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 행동 반경이 너무 제한되지 않아? 전황을 휘젓기 힘들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대로 포기하기엔 독물들의 전력이 너무 아까우니까."
듣기로 고독관의 독물들은 대규모 전쟁에 특화된 존재였다.
일반적인 검력으로는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는 두터운 가죽
웬만해선 지치지 않는 강철같은 체력
대규모 학살에 특화된 지독한 독기들
기선을 제압하는 기괴하기 짝이없는 생김새까지
전쟁에서라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을 썩히다니
어찌 그런 아까운 짓을 할 수 있겠는가
행동반경이 제한되도 어떻게든 써먹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리라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네."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리 독물들을 간절히 원하니
요랑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용용이한테 미리 말해놓을 게."
"용용이?"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응, 왕 큰 도마뱀인데, 나 다음으로 센 녀석이야. 걔한테 말해두면 다른 애들도 알아서 따르게 될거야"
요랑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독관의 왕인가보네."
선우는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랑 다음으로 센 녀석이라면
고독관에서 왕으로서 군림하는 녀석일 것이다.
"여왕일 걸? 개 암컷이거든."
"......그래?"
"응, 신랑 절찬리 모집중이라고 하더라. 혹시 흥미있어?"
요랑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사양할게, 이미 있는 부인들로 충분하니까."
선우는 손사래치며 거절을 표하였다.
"어쩌나? 용용이가 서운해하겠네."
"서운해도 어쩌겠어? 이미 죄 많은 남자인 것을."
선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맞아, 선우는 죄 많아. 그러니까 혼나야돼"
그 말에 요랑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포옥
요랑은 두 팔 벌려 다시금 선우의 품에 안겼다.
"와앙!"
그다음 선우의 목덜미를 가벼이 물었다.
잘근 잘근 잘근
이를 좌우로 움직이며
잘근잘근 씹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였다.
"간지러워..요랑...하아앗...간지라워."
"버히야 다게바다(벌이야 달게 받아)"
"자꾸 그러면 나도 물거야!"
'무허 무허바(물어! 물어봐!)
그 도발에 선우는 손을 뻗어 요랑의 손목을 붙잡았다.
덥석
그다음 곧바로 들어올려 망설임없이 입에 넣었다.
잘근 잘근 잘근
그리고 요랑과 마찬가지로 잘근잘근 씹는 시늉을 하며 간질이기 시작하였다.
"가지러어....하하핫...가지러어!(간지러워...하핫..간지러워!)"
"더 가지러어라...더 더 (더 간지러워라 더 더)"
그렇게 두 남녀는 서로를 이곳저곳을 깨물며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꽤나 오랜시간동안 말이다.
************
"악귀대, 혈궁대, 암귀대, 마귀대, 흑갑철기병, 역천대.........."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는 읊조리듯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참으로 많이도 죽었구나."
남자는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그저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그 말에 마뇌는 죽을 죄를 지은듯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송구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까닭이었다.
"네가 송구할 게 어디있겠느냐? 그들은 그저 내세로 넘어간 것 뿐이거늘."
권태로운 남자, 천마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듯이 말이다.
"하지만.....너무 많은 전력을 잃고 말았습니다...전부 제 실책입니다."
마뇌는 가시 방석에 앉은듯한 기분이었다.
언제고 정마대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요 전력을 모두 소실해버렸다.
어찌 초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자르다면 그저 채워넣으면 될뿐이지."
"하지만 시간이 부족합니다. 천마시여."
마뇌는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려 이십 여년의 준비끝에
부활시켰던 마교의 전력들이었다.
다시 새롭게 재편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라."
천마는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정녕 그리 생각하느냐?"
"........미천한 종의 미욱한 머리로는 도저히 전력을 채워넣을 방도를 깨우칠 수 없습니다. 천마시여. 부디 이 미천한 종에게 답을 주십시오."
털썩
마교제일지
마뇌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스스로의 미욱함을 한탄하며 간절히 애원하였다.
도저히 방도를 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경魔境"
천마는 그런 마뇌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마....마경魔境?!"
순간 마뇌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천마의 말에 경악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이제 충분한 답이 되었느냐? 미욱한 종이여"
천마는 공허한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