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성 일대를 주름잡는 무림문파
정철문
"하아아압!"
"흐아아압!"
그곳에서 커다란 기합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기합이 부족하다! 기합이! 그딴 기세로 잔학한 마귀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더냐!"
근육이 옹골차게 들어차있는 커다란 중년인, 정철문주 거왕은 마음에 들지 않다는듯 고함을 내질렀다.
제자들의 기합이 마뜩치 않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다시! 태산을 무너뜨릴듯한 기세를 담아 정권지르기!"
"하아아아압!"
"하아아아압!"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체를 탈의한 수많은 장정들이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말이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대정철문의 제자가 이리도 기합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거왕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제자들의 기세가 여전히 맥아리 없다고 느낀 까닭이었다.
"주목하라! 내 너희들에게 친히 기합의 힘을 보여줄터이니!"
휘익
저벅 저벅 저벅
말을 마친 거왕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무장 옆쪽에 위치한 커다란 벽 앞에 걸음을 멈춰세웠다.
"돌중의 왕, 화강암으로 만든 석벽이다. 진력을 담지 않는다면 절정의 고수조차 부수기 요원한 단단함을 지니고 있지."
걸음을 멈춰선 거왕은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합氣合이 있다면 이딴 돌무더기따윈 그저 단순한 내지르기만으로도 부술 수 있다!"
거왕은 양다리를 앞뒤로 뻗었다.
그다음 왼손날을 벽쪽을 향해 비스듬히 세우고 오른 주먹을 장전시켰다.
정철문의 기본세라고 불리우는
태산붕괴太山崩壞였다.
"크하아아아아압!!!!!!"
곧이어 커다란 기합성이 울려퍼졌다.
부우우우웅
쇄에에에에에엑
더불어 파공성과 함께 주먹이 내질러지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벽을 부숴버릴듯한 기세로
멈칫
하지만 주먹은 벽에 닿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멈춰선 것이다.
"후우우우."
벽을 멈춰세운 거왕은 가벼이 숨을 내쉰 뒤 주먹을 거둬들였다.
마치 제 할일을 끝냈다는듯이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을 부순다해놓고
중간에 멈추는 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렇게 한창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화강암으로 이뤄진 거대한 석벽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더니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와르르르르
쿠쿠쿠쿠쿵
이내 화강함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석벽이 그대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였다.
땅을 울리는 커다란 굉음성을 내면서 말이다.
".............?!"
그 모습을 본 정철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동그랗게 뜨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일어난 이변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닿지도 않았거늘
어찌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게 바로 기합의 힘이니라! 기합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게 없느니라! 알았느냐"
정철문주 거왕은 몇 번이고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감명을 받은 제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우렁차게 답을 하였다.
"좋다! 이제 감사의 정권지르기! 만 번을 실시한다!"
"하아아아아아압!"
이내 수련장에는 제자들의 화끈한 열기가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였다.
****************
"후우."
제자들의 지도를 끝마친 거왕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수련장을 빠져나왔다.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이제 성취를 결정짓는 건 온전히 제자들의 몫이리라
"수고하셨습니다. 문주."
그때 중년의 문사가 수건 한 장을 건네며 입을 떼었다.
"수고랄게 어디있겠는가? 그저 문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지."
거왕은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다음 업무는 무엇인가? 총관"
"장로님들과 문내회의가 잡혀있습니다."
총관 조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또 돈 아끼라는 잔소리만 늘어놓겠구만."
거왕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뻔히 예상되었다.
회의할 때 장로들이 하는 말은 항상 같았으니.
"아무래도 타문파에 비해 제자들 수련비가 워낙 많이 소진되는터이니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못할 바는 아닙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소리! 본디 무력은 재력에서 나오는 법!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그 성취는 남달라진다는 말일세! 그런데 어찌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돈을 아낀다는 말인가!"
거왕은 완강한 태도로 언성을 높였다.
돈에 관해선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아무리 그래도 장로들의 월봉을 깎는 건.."
"흥, 밥만 축내는 늙은이들 경질시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거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제놈들도 문파 지원으로 성취를 이룩하고 장로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으면 어찌 젊은 이들의 올라설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말인가?"
거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말을 이었다.
"젊은 이들은 문파의 미래니라. 나이만 들어찬 놈들의 착취대상이 아니라!"
"........예산을 깎을 생각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무렴. 오히려 장로들의 월봉을 깎아버리겠느니라."
"후우....오늘도 문내 회의가 한바탕 뒤집어지겠습니다."
"크하하하, 새삼스럽게 뭘 그러는가? 문내 회의는 매번 전쟁터이거늘."
거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매번 있는 일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다.
"그도 그렇긴 하군요."
틀린 말이 아니였다.
매번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로 치열하였으니
그렇게 한바탕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타타타탁
타타타탁
어디선가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문주님! 문주님! 문주님!"
더불어 다급한 음성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 음성에 거왕과 조규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고 있는 정철문의 문지기 일평의 모습을
"너는 일평이 아니더냐? 문을 지키고 있어야할 놈이 여기는 어쩐 일이더냐?"
거왕은 의아한듯 되물었다.
문지기가 자리에서 벗어나
어찌 자신을 찾아온다는 말인가
"꼭 문주님께 전해...드릴..하아...하아..말이 있어..이리 오게되었습니다..하아."
"전해줄 말?"
"하아.......거혜님께서...하아..문을 방문하셨습니다."
"거혜? 참철문으로 시집간 내 여동생 거혜말인가?"
거왕은 화색을 띈 채 말을 내뱉었다.
거혜라면 동맹 문파인 참철문에 시집 간 하나뿐인 여동생이 아니던가
별안간 그녀가 방문을 하였다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락도 없었거늘, 어찌 이리 갑자기....일단 귀빈실을 내어주거라...아니 그 아이가 썼던 방을 내어주는 게 맞겠군. 그게 편할테니....이제 막 세살 된 조카를 낳았다고 하던데...같이 왔는지 모르겠구나.허허허..회의가 끝나는대로 바로 가겠다고 전해..."
"문주."
일평은 문주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일개 제자로서 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였지만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당장 가보셔야합니다."
"당장가다니? 아무리그래도 문내 회의는 끝마치고.."
"시간이...없습니다. 문주."
일평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
그 말을 들은 거왕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벌컥
"혜아! 혜아! 혜아!"
거왕은 의각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여동생의 이름을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맹주."
그러자 의각주 한평이 침중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혜아는 어디있는가!"
"..안쪽에 있습니다."
한평은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혜아아!"
벌컥
거왕은 안쪽에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한눈에 봐도 상태가 심상치 않은 중년부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거왕의 친동생이자
동맹 문파인 참철문의 안주인 거혜였다.
"혜아! 오라비가 왔다! 혜아! 눈을 뜨거라!"
거왕은 여동생을 가벼이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오라...버니?...정말 오라버니가..맞는건가요?"
거혜는 힘겹게 눈을 뜨며 입을 떼었다.
"맞다..네 오라비가 맞단 말이다!"
"....전 또 꿈인줄..알았어요....다행이예요..오라버니를 만나서."
"대체..대체..이게 어떻게 된 것이더냐? 대체 네가 어쩌다 이런 꼴을?
참철문은 정철문과 함께 청해성을 양분하고 있는 대문파였다.
그곳의 안주인인 거혜가 어찌 만신창이가 된 채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습격이..있었어요."
"습격!?"
"네에....알 수 없는 세력들이 .갑자기..마을을..덮쳐들었고..사람들을..학살하였고..아이들을..납치해갔어요오.."
"뭐라!? 참철문주가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본 것이더냐!"
"부군께서...제자들과 함께 나서긴 하였지만..역부족..이였어요.."
"참철문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말이더냐?"
거왕은 눈을 부릅뜨며 되물었다.
".....전 미리 피신한터라...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다른 이들은...전부.."
거혜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그럴 수가.."
거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철문이 멸문을 당하였다니.
"오라버니....그들은..마교무리가 분명해요."
"마교 무리라고?"
"그들은 어른들은 전부 죽이고 아이들만 살려 포대자루에 넣고 납치하고 있어요...분명...인신공양을 하려는 게 분명해요..."
동남동녀만을 살려 데려간다면
단 한가지 경우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바로 인신공양
아이들을 바쳐 알 수 없는 의식을 치를 요량인 것이다.
".....명아도...납치가 되었어요...부디...그 아이를.....구해...주세요."
"오라비만 믿거라! 내 꼭 구해주겠다!"
"감사해요....오라버니."
거혜는 안심한듯 미소 지었다.
"...그래도 오라버니를..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추우우욱
곧이어 거혜의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생의 불꽃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이다.
"혜아 정신차리거라! 혜아! 혜아! 혜아아아!"
곧이어 거왕의 비명성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제자들을 이끌고 십만대산으로 향할 것이오."
거왕은 선언하듯 말을 내뱉었다.
"섣불리 움직여선 안됩니다!!"
"맞습니다! 저희와 비슷한 전력인 참철문조차 맥을 추지 못하고 당하였습니다! 저희도 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혜님의 죽음에 감정이 고조된 것은 이해하나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합니다! 문주!"
그러자 장로들이 반발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때야말로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자는 말이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저 단독행동하기보단
황실이나 의천맹에 도움을 청해 함께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기각하겠소."
거왕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문주!""
장로들은 일제히 반발하였다.
"지금 이순간에도 청해성의 수많은 이들이 학살당하고 아이들은 납치당하여 알지도 못하는 곳에 끌려가고 있소. 그런데 어찌 협을 숭상하는 협객으로서 이를 좌시할 수 있겠소?"
거왕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동맹 문파를 통해 알아보니
피해를 입은 곳은 참철문뿐 아니였다.
일대 수많은 문파들이
마교 무리에게 잔혹하게 유린당한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되 정철문 나름대로 힘써 피해는 최소화해야한다고 생각하오. 협을 숭상하는 협객으로서 청해성을 사랑하는 백성으로서 말이오."
".........하지만 그럼 문파에 피해가.."
"문파란 곧 신념을 관철하는 것. 신념이 꺾이면 문파의 근간은 흔들리기 마련이기 때문이지. 만약 이익을 위해 협을 버린다면 정철문은 신념도 뭣도 없는 파락호집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오."
거왕은 짐짓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
"..............."
그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의천맹과 황실에 이 사실을 알려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정철문은 그들의 원조가 오기전까지 십만대산 주변에서 각개격파하며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오. 반론은 허락치 않겠소."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로들은 고개 숙여 명을 받들었다.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
.
.
.
그날 거왕은 전력을 구성하여 십만대산으로 향하였고
정철문에서는 두 마리의 전서응이 각각 북경과 남창으로 향하게 되었다.
각각 황실과 의천맹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
남창에 위치한 의천맹
"까꿍 까꿍"
선우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내보이기를 반복하기 시작하였다.
"꺄아아아"
"꺄아아아아!"
그러자 두 쌍둥이는 재밌다는듯 꺄르륵거리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아비의 모습이 심히 신기하게 느껴진듯 하였다.
"우리 강아지들이 그렇게 좋아요? 아비 얼굴이 사라지는 게 그리도 좋아요?"
선우는 헤벌쭉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흡족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무슨 아기가 어쩜 이리 귀여울 수 있다는 말인가
'신도시 아줌마들이 왜 그렇게 별스타랑 페이스책에 사진을 올리는지 이해가 되네.'
아이가 생기니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애엄마들이 SNS에 아이 사진으로 도배하는 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생겼으니
공유하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예쁘다고
이렇게 귀엽다고
'나도 현대였으면 사진찍어서 별스타에 페이스책에 뉴튜버까지 다올렸을텐데...아쉽네.'
선우는 이 극상의 귀여움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진한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만약 이 귀여움이 전세계에 공유된다면
세상에는 전쟁따윈 전부 없어지고
평화가 사라지리라
그렇게 팔불출스러운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타타타타탁
타타타타탁
다급한 걸음걸이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소양이네..'
여유롭게 밥먹고 오라고 했거늘
그새를 못참은듯 싶었다.
벌컥
곧이어 벌컥하고 문이 열리고 애엄마 주소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유롭게 먹고 오라니까. 뭘 그리 빠르게..."
선우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여유 없는 그녀에게 나름의 조언을 할 요량이었다.
"큰일났어요. 선우님."
주소양은 그런 선우의 말허리를 끊으며 입을 뗴었다.
"마교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히 말해봐."
순간 선우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없이 진지한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