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69화 (1,170/1,419)

커다란 대전 중앙

황제의 옥좌에 비견되는 화려한 옥좌 위

냉혹한 인상의 남자가 턱을 괴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권태로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파르르르

고정되어있던 그의 몸이 잘게 떨렸다.

더불어 권태로웠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음양마아아!! 음양마아아아!!!!!!"

곧이어 분노로 가득한 고성이 대전 안을 가득 메웠다.

"네놈은 끝까지 나를 방해하는구나아아아!!!!!"

쿠우우우우웅

그 고성에 맞춰 대전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당장에라도 무너져내릴듯한 기세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괴악스러운 고성을 내질렀을까

"마뇌! 마뇌!"

남자는 대전 밖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벌컥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교제일지.

마뇌魔腦가 문을 열어젖히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위대한 천마天魔의 미천한 시종, 마뇌가 부름에 응하였습니다!"

넙죽

그리고 넙죽 엎드리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위대한 마魔의 종주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당장 의식을 준비하라!"

"의식이라 하시면.."

"성전聖戰을 위한 순교 의식을 말이다!"

천마는 언성을 높였다.

무미건조한 평소와는 달리 감정적으로 상당히 고조되어있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알..알겠습니다...당장 준비토록하겠습니다."

마뇌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천마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선

당장에라도 제물을 준비해야할듯 싶었다.

"순교 인원은 삼천이다!"

"삼천!?!"

순간 마뇌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천마가 제시한 인원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많은 까닭이었다.

"일주야내로 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토록 하라!"

"무..무리입니다!"

마뇌는 다급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삼천에 해당하는 제물이라니

무리였다.

어찌 그 많은 수를 단 일주일만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날 거역하겠다는 말이더냐!"

천마는 마뇌를 향해 살발하기 그지없는 눈을 부라리기 시작하였다.

그 눈빛 속에는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기세가 가득 담겨져있었다.

"거역하다니 제 어찌 그런 불경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그저 소신이 무능하여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마뇌는 창백한 표정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천마의 진득한 살기에 끔찍한 공포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고작 삼천이다. 그정도 제물도 준비할 여건이 안된다는 말이더냐!?"

천마는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상상이상의 무능함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것이다.

"아무래도 제물의 요건이 극히 까다로운 지라..."

마뇌는 송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제물의 요건은

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순결을 간직한 남녀였다.

그런 이들은 별안간 삼천이나 준비하는 건 무척이나 고단한 일이었다.

"대체 조건이 뭐가 까다롭다는 말인가!"

천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 언성을 높였다.

순결을 간직한 남녀 삼천정도야

십만대산 근처에 있는 촌락들만

털어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

그런데 대체 뭐가 까다롭다는 말인가

"아쉽게도 시대가 변하였습니다. 천마시여."

그 말에 마뇌는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과거엔 순결을 지키는 게 당연시되며 자랑처럼 여겼지만 현재 순결은 조롱거리고 전락하고 말았나이다."

"순결이 조롱거리로 전락하였다?"

"그렇습니다. 순결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가 되어버렸지요."

마뇌는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게다가 전력 또한 상당수가 궤멸한 터라 제물을 수집하는 과정도 상당히 지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몇 차례의 중원 침공과

음양마의 깽판으로 인해

마교의 전력이 크게 감소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일히 마을을 돌며 제물들을 납치하는 일도

상당한 시일이 걸리리라.

"순교 인원을 좀더 줄여주시면..시일내에...어떻게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원을 줄일 수는 없다."

천마는 단호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대신 기간을 늘려주지. 석달이다."

천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석달은..너무 짧습니다....천마시여."

석달이라면 달에 천명에 달하는 동남동녀를 확보하라는 소리가 아니던가

무리였다

그 많은 인원을 어찌 확보하라는 말인가

"내게 어디까지 양보하게 할 셈인가?"

천마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 또한 양보하고 양보한 기한이었다.

어찌 양보를 강요한다는 말인가

"하지만...황실과 중원 무림의 감시를 피해 몰래 일을 치르려면.."

마뇌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납치를 반복하다보면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었다.

계획이 완전히 들통나게 되는 것이다.

"몰래 일을 치를 필요 없다."

천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에?"

순간 마뇌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들켜도 상관없으니 기간만 맞추라는 소리다."

"하지만 만약 그리했다간.."

마뇌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황실도 중원무림도 모두 적이 아닌가? 구태여 눈치를 볼 필요가 있겠느냐?"

천마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떼었다.

이미 마교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들의 적대따위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다.

"명분이 서게되면 토벌대가 구성될지도 모릅니다."

마뇌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마교 토벌

이재원의 실각과 함께

유야무야 무산되어버린 계획

만약 삼천의 민초들을 납치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게 된다면

토벌 계획이 다시금 실현될지도 몰랐다.

"상관없다. 삼천에 다다르는 순교자들의 정혈을 전부 흡수한다면 만물이 덤벼든다해도 본좌가 패배할 일따윈 없을터이니."

천마는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삼천에 다다르는 제물들의 정혈을 온전히 흡수만 할 수 있다면

천군만마가 들이닥친다해도

두려움이 없었다.

신조차 초월하게 될터이니.

"하지만...아무리 그래도...."

마뇌는 여전히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본좌를 의심하는 것인가!"

천마는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찌푸린 채 고함을 내질렀다.

더불어 어마어마한 살의가 대전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였다.

털썩

"크으으윽!"

마뇌는 신음성을 흘리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온몸을 미칠듯이 짓누르는 끈적하고 진득한 중압감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닥치고 본좌의 명을 따르도록 하라! 만약 또다시 토를 단다면 네놈을 가장 먼저 흡수하겠다!"

"......알겠습니다.....천마시여...곧바로 준비토록 하겠습니다...그러니 부디 이 살기를..거둬주십시오..으윽.. "

마뇌은 사색이 된 얼굴로 애원하였다.

이대로 가다간 숨이 막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천마는 그런 마뇌를 노려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파앗

그러자 이내 대전 안을 가득 채워져있던 살의가 일순간 해소되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허어억..허억...어억..허어억."

중압감에서 해방된 마뇌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짓누르는 중압감에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한 까닭이었다.

"다시는 본좌를 의심치 말도록 하라."

천마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였다.

"알겠습니다. 결코 의심치 않겠습니다!"

마뇌는 강제로 숨을 고른 채 대뜸 답하였다.

다시는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나가라. 더는 네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구나."

천마는 짜증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장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뇌는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천마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천마는 그런 마뇌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화악

짜증이 가득 서려있던 그의 눈빛에

감정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바뀌었고

기괴하게 일그러져있던

표정이 권태롭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평소와 다를 바없는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하앗........감정이라니."

이내 권태로운 표정의 천마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인간의 감정을 발산한 스스로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극마 탈마를 넘어

마선魔仙에 다다른 자신이

현신한 음양마에게 분노하였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뇌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짜증을 내며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다니

이처럼 우스운 일이 어디겠는가

"네놈의 영향인 것인가? 이재원."

천마는 심장쪽을 내려다보며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대충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몸속으로 흡수된 이재원의 영향일 것이다.

초월자인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만한 존재는

세상의 순리에 벗어난 그 밖에 없을테니

"네놈도 어지간히도 끈질기구나. 이쯤이면 소멸될 법도 하거늘. 이렇게 잔재들로 본좌에게 영향을 끼치다니 말이야."

참으로 끈질기기 그지없는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소멸하기보단 동화되어

끝까지 영향을 끼치는 걸 보면 말이다.

"마음같아선 그 잔재들조차 완전히 소멸시키고 싶지만 내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음양마의 제자놈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이상, 네놈의 하찮은 힘이라도 빌려야할 할판이니 말이야."

천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잔해를 소멸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유예시키기로 하였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자연 그 자체가 된

음양마의 제자.

장선우를 상대하기 위해선

그와 마찬가지로 순리를 벗어난 존재.

이재원의 힘이 필요할터이니.

"내 복수는 확실히 해주지, 대신 얌전히 있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천마는 타이르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들끓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혀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그의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그래, 그래 착하구나."

천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

장흠촌

청해성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촌락

"얼쑤!"

"얼쑤!"

마을 중앙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올해 농사를 기원하는 축제가 열린 것이다.

"천지신명이여! 부디 올해 농사는 풍년을 이루게 하소서!"

그때 정중앙에 있던 촌장이 술잔을 들어올린 채 고함을 내질렀다.

""하소서!""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뒤어이 복창을 하였다.

그리고 다함께 어울리며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나이지긋한 이들은 한손에 술병을 들어올린 채 괴성을 내지르며 노래를 하였고

마을 처녀총각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마음에 드는 이성쪽으로 걸어가 몸을 부벼대었다.

아이들은 넘쳐나는 축제음식을 집어먹으며 배부른 행복을 느꼈고

동네 똥개들은 바닥에 흘려진 음식들을 주워먹으며 꼬리를 쉴새없이 흔들었다.

마을에 있는 모두가 행복한 축제의 현장이었다.

그렇게 축제가 한창 진행되던 그때

쇄에에에에엑

어디선가 바람을 꿰뚫는 파공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팍 팍 팍 팍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리고 무언가 꽂히는 소리와 함께 비명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뭐..뭐야!?"

그 비명소리에 놀란 촌장은 다급히 움직임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머리통과 가슴팍에 화살이 꽂혀있는 마을 젊은 이들의 시신을

"어...어찌!?"

순간 촌장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쇄에에에에엑

팍 팍 팍

"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때 다시금 화살이 날아들었고

춤을 추던 젊은 여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자지러지게 되었다.

그대로 절명한 것이다.

"습격이다! 다들 도망쳐라!"

그 모습에 사태를 파악한 촌장은 다급히 언성을 높였다.

"습..습격!"

"도망쳐! 다들 도망쳐!"

"혜아야! 어서 어미를 따라오거라!"

"만일아! 어딨니! 만일아!"

축제 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수백의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대피하려고 하니 어마어마한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쇄애애애애액

쇄애애애애액

그런 혼란 속에서도 화살을 끊임없이 날아들었고

수많은 이들이 핏물을 흩뿌린 채 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축제를 벌이던 대다수 마을사람들은 싸늘한 주검이 바닥에 자리하게 되었다.

"흐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앙!"

"엄마아아아!"

"아빠아아아!"

"아아아아아!"

곳곳에 울부짖는 어린 아이들만을 남겨둔 채로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때 울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복면을 쓴 이들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준비해온 포대자루에 아이들을 강제로 욱여넣기 시작하였다.

마치 짐을 싸는 것처럼 말이다.

"흐아아아앙!"

"싫어요! 안들어갈래요!"

아이는 울부짖으며 저항했지만 성인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고 포대자루에 강제로 처박히게 되었다.

"몇 명이지?"

우두머리로 보이는 복면인 중 하나가 입을 떼었다.

"총합 서른 둘입니다."

"많지는 않군."

"......아무래도 촌이다보니 아이가 귀한듯합니다."

"다음은 좀더 번화가쪽으로 가도록하지."

"방향을 그리 잡도록 하겠습니다."

복면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출발하기 전 교에 전서구를 보내도록 하라."

우두머리 복면인은 명을 내렸다.

"서른 두명의 순교자를 확보하였다고."

복면인은 싸늘한 눈빛을 빛내기 시작하였다.

서른 두명의 순교자가 확보되었다.

이제 남은 건

이천구백육십팔명의

순교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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