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우우우우웅
선기와 내기가 전신에 활력을 끊임없이 활성화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
퉁퉁 부어올랐던 붓기가 가라앉았고
시퍼런 멍들로 가득 차 있는 피부가 새살처럼 변하였으며
산산조각나 버렸던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넝마와 같은 신체가 점차 수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프지 않아.'
고통이 씻은듯 사라져버렸다
완전한 회복을 이뤄낸 것이다.
'이제 이곳을 빠져나간다.'
곧바로 의지를 발현을 하였다.
자신을 옥죄고있는 모든 것들을
일제히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리 의지를 발현해도
이렇다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어째서?'
선우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큰 깨달음을 얻었고
종국에는 조화경에 다다라
자연 그 자체가 된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찌 자연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일단 건곤대나이로......'
영문을 모르겠으나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일단 건곤대나이를 통해 빠져나가야할듯 싶었다.
흐름을 읽고 내력을 통해 그대로 역전시켜버렸다.
자신의 몸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든 힘의 흐름들을
하지만 이번에도 그 어떤 유의미한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수많은 흐름들이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대체...이게..'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자연검의 묘리로도
건곤대나이로도
흐름을 따르게 할 수 없었다.
마치 모든 깨달음이 봉쇄된 것처럼
'....어째서?'
의문이 들었다.
선기와 내기의 금제는 기억과 감정을 되찾음과 동시에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 지금껏 익혔던 깨달음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단 말인가
'.....스승님께서 무슨 조치를 취한 게 아닐까'
음양마의 개입이라는
가정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런 비현실적인 일을 행할 수 있는 존재는 스승인 음양마외엔 없을테니.
'......어째서? 기억과 감정을 모두 되찾았는데?'
의혹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무無의 세계에서
초월로 인해
잊혀졌던 기억과 감정을
모두 되찾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찌 아직도 이런 금제를 가하고 있다는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풀이로 그런 건...아니겠지?'
감정이 지워지고
꽤나 시건방지게 굴었던 자신이었다.
분풀이를 당한다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아니, 스승님께서 그럴 리 없다. 분명 무슨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엇나가는 제자를 위해
무리하게 현신하여
손수 무의 세계로 보내
인간의 마음을 되찾아준
고마운 스승님이다.
그런 음양마가 한낱 분풀이로
자신을 처박아두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슨 의도로 날 처박았을까?'
고심해보았다.
과연 음양마가 어떤 의도로
자신의 깨달음을 봉인하였는 지
'.아직..깨달아야할 게 남아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지?...뭘 더 깨달아야하는 거지?'
구궁하고 또 구궁해보았다.
음양마가 자신에게 전하고자하는 깨달음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어렵구나..어려워.'
생각이 깊어질 수록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간 평생토록 땅속에 처박혀있을 것 같았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땅에 처박기 전 스승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지? '
선우는 복잡한 생각들을 전부 지워내었다.
그리고 음양마가 내뱉었던 말을 차근차근 떠올리기 시작하였다.
'일단 크게 꾸짖었지. 질서를 만들고 거대한 흐름이 될 놈이 왜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대로 따르려고 드느냐고.'
혼날만한 일이긴 하였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또다른 자연을 만들겠다는 놈이
별안간 순리에 순응하여 등선하려고 드니 말이다.
'그리고 말씀하셨지.....스스로 하늘의 율법에 얽매이려 드느냐고...스스로 율법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양마가 말한 하늘의 율법이란
기준치 이상의 깨달음을 얻었을 때
선계에 올라야하는 세상의 순리를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율법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순리를 거스를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선우는 눈을 빛내기 시작하였다.
아귀가 하나둘씩 맞춰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승님께서는 내 스스로 질서가 만들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해답을 찾았다.
'난 질서를 만든다!'
선우는 스스로 되뇌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그의 몸주위에 어마어마한 선기가 요동쳤다.
더불어 그의 몸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자연과 동화되는 것처럼
'......날 옭아매려고 드는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늘의 율법이 옭아매려고 든다는 사실을
세상의 순리가 자신을 강제로 등선시켜려든다는 사실을
'좆까, 등선안해.'
선우는 의지를 발현하였다.
이내 옅어졌던 몸이 다시금 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선기가 더욱더 괴랄하게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듯
그리고 그의 몸을 다시금 투명하게 만들었다.
'....거절한다.'
하늘의 율법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전신을 옭아매는 거대한 선기들은
자신을 그리 쉽사리 놓아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등선시키기 위해
강제하고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셀 수도 없이 몸이 옅어지고 선명해지기를 반복하였다.
등선을 거부하는 선우와
어떻데든 강제로 등선시키려는 하늘의 율법 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지루한 힘겨루기가 이어졌을까
'난 오직 나만의 질서를 따른다!'
선우는 의지를 강하게 발현하였다.
'세상 그 무엇도 나를 강제할 수 없다!'
발현된 의지가 전신를 휘감고 있는 선기를 옭아매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새로운 질서를 따르라!'
콰아아아아아아앙
순간 선우의 몸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선우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모든 것들을
모조리 해방시켜버린 것이다.
번쩍
그와 함께 감겨있던 선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아둔한 놈, 너무 늦었지 않느냐?"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음양마의 모습과
"선우님!"
물기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주소양의 모습을
"다녀왔습니다."
선우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스스로 하나의 질서가 되었음을
실감한 까닭이었다.
*******
와락
선우가 몸을 일으켜세우자
주소양이 와락 품에 안겼다.
"정말...정말...다행이에요..저는..선우님이..이대로..죽는 줄...흐윽..으윽...이대로..영영..못 보는 줄..알고...흐윽 흐윽."
그리고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를 다시봤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며
참았던 눈물이 그대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안해, 소양, 내가 너무 늦었지?"
토닥 토닥 토닥
선우는 그런 주소양의 등을 가벼이 토닥이며 위로하기 시작하였다.
애정을 듬뿍 담은 채로 말이다.
"아니예요..오신 것만으로도....이렇게 다시 돌아오신 것 만으로도 전 기뻐요..너무 기뻐요.."
주소양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슴 속에 벅차오른 감정이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는듯한 모습이었다.
"미안해...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절대 혼자 두지않을 게...다시는 너와 이 아이를 두고 떠나간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게.....정말..미안해...."
꼬오오옥
이내 선우는 품속에 주소양을 있는 힘껏 껴안은 채 말을 이었다.
감정을 잃었다지만
남편과 아비가 된 입장으로서
그녀와 자식을 버리고 간다는
끔찍한 말을 내뱉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말에
상처받았을 주소양을 생각하니
끝을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가슴이 차오르는듯 하였다.
어찌 그런 끔찍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다는 말인가
"괜찮아요...전 괜찮아요...말만 그렇게 하셨잖아요. 정말 저와 아이를 버리지 않으셨잖아요? 그럼 됐어요....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죄책감갖지 말아주세요."
주소양은 눈물 범벅이된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비수처럼 날카롭기 그지없었던 말에
상처입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결국 선우는 떠나지 않았으니
결과론적으로만 본다면 그리 감정 상할 일이 아닌 것이다.
"고마워...고마워....그리 사랑해. 소양."
"저도 사랑해요...선우님...세상 그 누구보다."
두 사람의 뜨거운 포옹은 길게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적당히 하거라."
음양마가 제지하기 전까지
"앗."
"아."
순간 서로 부둥켜안고있던 선우와 주소양의 벼락처럼 떼어지기 시작하였다.
음양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은 까닭이었다.
"네놈들 눈에는 본노가 보이지 않는 것이더냐?"
음양마는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하였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선배님."
선우와 주소양은 민망한듯 얼굴을 붉히며 사과하였다.
"마음에도 없는 말은 되었다."
음양마는 퉁명스럽게 답한뒤 말을 이었다.
"그보다 아둔한 제자야, 질서를 이룩하였느냐?"
그리고 선우쪽으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
"전부 스승님 덕분입니다."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긍정을 표한 것이다.
"훌륭하다."
음양마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만약 스승님이 없으셨다면 이런 깨달음을 얻진 못하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지, 네놈때문에 소멸까지 감수하고 현신하였으니 말이야."
신선이란 본디
그 존재만으로도
현세의 균형을 깨뜨리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몇 번이고 멋대로 현신한다면
순리에 따라 소멸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신겁니까?"
"왜? 걱정되더냐?"
"세상 천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스승님입니다. 어찌 걱정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우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크흐흐흐...못본새 혓바닥에 꿀이 발려졌구나."
그 말에 음양마는 재밌다는듯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걱정하지말거라, 이번까지는 어떻게든 무마가 될터이니."
"정말이십니까?"
"설마 하늘같은 스승을 믿지 못하는 것이더냐?"
"그럴 리가요."
선우는 손사래치며 부정하였다.
"그럼 믿어라, 아둔한 제자야, 이번까지는 괜찮다. 네놈을 순리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미운털이 박히긴 하겠지만 구태여 소멸시키진 않을 것이다."
음양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음은 없느니라."
그리고 눈을 빛냈다.
".....만약 또다시 현신을 한다면 본노는 필연적으로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런."
"그러니 앞으로는 본노와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니라."
"................"
선우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더이상 음양마와 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울적한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도 안심이되는구나. 지금의 네놈이라면 노부가 구태여 나설 일이 생기지 않을테니 말이야. 지금 네놈을 마주한다면 천마 녀석도 상당히 애먹게 될 것이다. 끌끌"
음양마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간 진심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선우는 천천히 허리 숙였다.
감사를 가득 담아 최대의 예우를 표한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고
그가 있었기에
무공을 익힐 수 있었으며
그가 있었기에
강해질 수 있었다.
하염없이 고맙고 너무 감사하였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위대한 스승님
음양마가 말이다.
"낯간지럽게, 인사는."
음양마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휘익
그리고 한치의 미련도없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앞으로는 현신할 일 없게 잘 처신하거라."
스르르르륵
그리고 그의 몸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하였다.
다시금 선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주르르륵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선우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음양마가 남긴 마지막 전언이
심금을 울린 까닭이었다.
현신할 일 없게 잘 처신하라는 말은
다시 말하자면
마땅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고 현신하여
자신을 돕게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였다.
언제고 제자가 위기에 빠진다면
소멸을 각오하고 현신하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런 스승의 사랑에
어찌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심금이 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시는 현신할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스승님.'
선우는 옅어지는 음양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굳게 다짐하였다.
절대 그가 현신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훗날 선계에서 그와 마주하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