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67화 (1,168/1,419)

'끄으으윽으으윽...으으윽...으으윽.'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였다.

전신을 휘감은 극심한 고통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든 까닭이었다.

끔찍하게 아팠다.

너무 아파

이대로 정신줄을 그대로 놔버리고만 싶었다.

전신을 휘감은 이 끔찍한 고통으로 해방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개같은 늙은이..'

으드드득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만약 이 상태에서 정신줄을 놔버린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잠재되어있는 본능이 그리 경고하고 있었다.

'가만두지 않겠어.!...이 빌어처먹을 노괴새끼...'

더 이상 스승으로서의 존중과 예우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적에 대한 복수심만을 간직할 뿐

'..일단 회복해야한다...'

지금 필요한 건 회복이었다.

만약 이런 중상을 내버려두었다간

등선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활성화하라.'

곧바로 의지를 발현하였다.

선기와 내기를 끌어올려

신체회복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아니?!'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내기와 선기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활성화하라! 활성화하라!'

다시금 의지를 발현하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강하게 의지를 발현해도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대체...이게..'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어찌 충만하게 차있던 내기와 선기가

꿈쩍도 않은 채 잠들어있다는 말인가

어찌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음양마....내 몸에 무슨 짓을 했구나...'

이내 선우는 유추할 수 있었다.

자신을 땅 속으로 처박아버린 장본인.

음양마가 모종의 금제를 걸어두었음을

'요악스러운 노괴가....'

으드드득

이가 절로 갈렸다.

하나뿐인 제자에게

끔찍한 중상을 입힌 주제에

회복조차 못하게 금제까지 걸어두다니

어찌 이런 추악스럽고 잔인한 짓을 한다는 말인가

'크으윽.....끄으으윽...으으윽..으으윽.."

그때 고통이 더욱더 배가 되기 시작하였다.

전신을 조이듯 압박하는 커다란 흙의 압력에

상태가 더욱더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는 죽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무슨 수를 내지 않는다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젠장...끄아아아악! 젠장!..젠장!!!!!!'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흙 속에 고정되어

커져가는 고통만을 느낄 뿐.

그렇게 얼마나 고통이 지속되었을까

'........추워.'

선우는 추위를 느꼈다.

흙 속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은 까닭이었다.

'....답답해.'

답답함이 느껴졌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리도 보잘 것 없었던가.'

곧이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생사경 혹은 조화경이라고 불리우는 신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건만

음양마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하여

종국에는 흙속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어찌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감당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건만

선계의 신선에 비하면

이리도 보잘것없고 초라하니 말이다.

'젠장할! 젠장할! 젠장할!!!'

분하였다.

너무 분해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체감하면서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더이상 추위나 압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감無感의 영역

즉 무無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구나.'

모든 감각이 소실된 선우는 인지할 수 있었다.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이대로 의식을 잃는다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죽을 순 없다.'

물론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에겐 음양마에 대한 복수와 등선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정신을 꽈악 붙잡았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독하기 그지없는 수마睡魔가 전신을 휘감은 채 끊임없이 유혹하였다.

어서 자라고

이대로 모든 걸 놓아버리라고

그리한다면

끔찍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아....아아...'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하였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내밀어지는 달콤한 유혹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이대로 눈 감아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 물음을 던져보았다.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한 삶이 아니였느냐고

'이정도면 후회없는 삶을 산게 아닐까'

매달 나가는 집세와 생활비에 부모님의 용돈까지 매일매일 돈걱정만 하며 살아가던 자신이

이제는 노른자땅 위에 대궐 같은 집을 얻게 되었고 넘칠 정도의 금은보화를 거머쥐게 되었다.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기계 부품과 같은 삶을 살던 자신이

천하제일검이라 불리우며 무림을 구한 영웅이자 위대한 군주로서 추앙받게 되었다.

평범한 주제에 콧대만 더럽게 높은 여자들과 호구같은 연애만 하던 자신이

자신만 바라봐주는 경국지색의 여인들을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까지 보게 되었다.

소설을 좋아하고 읽는 것외엔 이렇다할 취미도, 특출난 재능도 없던 자신이

노력 끝에 무공의 정점에 이르게 되었고

종국에는 인간조차 초월하여 신선지경이라고 불리우는 조화경에 도달하게 되었다.

부, 명예, 권력, 여인, 자아실현까지

무엇하나 이루지 못한 것이 없었다.

'모든 걸 이뤄냈어...그러니까..죽어도 후회는 없을 거야.'

후회없을 것이다.

행복의 정점에 도달했거늘

대체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그래 놓아주자....이대로.....자연의 한 조각이 되자..'

후회없는 삶을 살았고

미련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이대로 자연의 한조각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그렇게 선우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붙들고 있던 정신줄을 서서히 놓기 시작하였다.

기억이 하나둘씩 잊혀지기 시작하였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별안간 무협지 속으로 들어왔던 황당한 기억도

장삼에게 빙의하여 누명을 뒤집어 쓰고 천무맹에게 쫒겼던 다급한 기억도

비동에서 절세신공인 음양조화신공을 익혔던 기억도

옥령을 속이고 보신을 취하려고 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음양마를 만나 정식 제자로서 인정받았던 기억도

당가에서 운가려와 당서윤을 처음 만났던 기억도

고독관에서 독마를 죽이고 요랑을 거둬들였던 기억도

벗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인과 처음 만났던 기억도

무無의 세계로 들어가 건곤대나이를 익혔던 기억도

북해에서 능소화와 북궁연을 만나 사랑하게 된 기억도

태허일기공을 통해 현경에 올랐던 기억도

복수를 위해 팽가련을 조교 시켰던 기억도

당서윤과 요랑의 처음을 가져갔던 기억도

복수를 명분으로 이재원의 부인들을 강제로 조교시켰던 기억도

철천지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이재원을 비참하게 죽였던 기억도

공훈을 인정받아 군왕으로서의 직위를 받게되었던 기억도

북궁연과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연우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기억도

운설을 처음 만나 검을 익히고 졸지에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도

처음 예복을 입고 주현영과 정식으로 혼인하게 되었던 기억도

그녀의 출산을 곁에서 직접 지켜보며 자식을 직접 안아보았던 기억까지

모든 인생들이 모조리 잊혀지기 시작하였다.

단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기억 속 완전한 공백이 되버렸다.

무엇 하나 없는 백지와 다름없는 상태가 되버린 것이다.

스르르륵

선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미약하기 그지없는 정신이 완전히 끊겨지기를

.

.

.

.

.

.

하지만 죽음을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끊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모든 미련을 내버렸다.

죽음의 과정을 전부 끝마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정신이 끊어지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실낱같은 정신줄을 끝까지 움켜쥐고 있다는 말인가

'.....미련이 남아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어쩌면 미련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하고

미처 지우지 못한 기억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하고

궁구하고 또 궁구하였다.

남아있는 미련이 무엇일까

어떤 기억의 잔해가 자신의 죽음을 가로막고 있는지.

[선우야.....세상 누구보다도...사랑해..]

그때 머릿속에서 옥령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검황 양태산으로부터 중상을 입었을 때 읊조렸던 말이었다.

[친한 척 하지마. 내 도움은 네 녀석이 독정을 얻을 때가지만이야.]

뒤이어 당서윤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일시적인 동맹을 체결하였을 때 읊조렸던 말이.

[저를 좋아하시나요?]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었던 사랑을 확인받고자했을 때 운가려의 목소리가.

[하아...하아...선..우야...나..약속 지..켰어.]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위해 용봉들에게 맥없이 당했던 요랑의 목소리가

[내 비록 계집이긴 하나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북풍대를 쓸어버리는 조건으로 피상득을 건네주겠다고 약속했던 능소화의 목소리가.

[나한테 씨를 주지 않을래?]

자신을 종마보듯 쳐다보며 씨앗을 달라하던 북궁연의 목소리가

[네! 맞아요! 저는 암퇘지에요! 자지만 보면 미치는 암퇘지요!]

여중제일인으로서 자존심따윈 모두 내던지고 암퇘지 선언을 했던 주소양의 목소리가

[어머니는 부정한 여자예요!]

광기로 가득 찬 주소양에 의해 산제물처럼 바쳐진 이예설의 목소리가

[나이 먹은 아줌마도 착각할 수 있답니다..]

스스로 매력없다 여기던 강하윤이 내뱉었던 겸손 가득한 목소리가.

[저....후배님을 좋아해요]

등선조차 포기한 채 직접적인 마음을 표현해온 연인이자 은인, 운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잊혀진 줄 알았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기억의 잔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식되었던 기억들을 하나둘씩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없어져! 없어지라고! 난 미련따윈 없어!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 초월자란 말이다!'

선우는 발악하듯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기억과 함께 간질거리는 느낌이 물밀듯 치솟은 까닭이었다.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초월자로서는 하등 가치없는 감정의 잔해라는 걸

그렇기에 맹렬히 부정하고 기억들을 지워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인간을 초월한 신선으로서 끝을 맺기 위해

'아바아아아!'

그때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연우의 활기찬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아...'

순간 선우는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간질거림이 물밀듯 치솟아오른 까닭이었다.

'꺄아아아!'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사랑스러운 딸, 선영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웃음소리가 기폭제가 되었다.

죽음을 결심하고 지워냈던

모든 기억들이

백지가 된 머릿속에 일순간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방대한 기억의 파도에 선우는 비명성을 내질렀다

모든 기억들과 감정들이

한순간에 쏟아지니

머릿속이 과부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백치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기억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댔을까

주르르륵

선우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비로소 기억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소중한 이들에 대한 기억들을

절대 죽어서는 안될 삶의 미련들을

'......난 죽을 수 없어.'

소중한 부인들과 평생을 즐겁게 살아가며 삶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

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뿌듯함과 씁쓸함을 느끼며 중년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

토끼같은 손주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며 노년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

소중한 이들과 인생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이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러니 죽을 수 없었다.

자신은 욕심이 아주 많았으니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생각따윈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살아야겠어!'

선우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의지를 발현하였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꿈쩍도 않던 선기와 내기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그의 전신을 그대로 휘감았다.

그리고 전신에 스며들어 신체를 활성화하고 회복력을 극대화시켰다.

그러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부풀어올랐던 혹이 가라앉았고

찢겨져나간 살점 메워졌으며

부러졌던 뼈가 붙기 시작하였다.

활성화된 회복이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선우는 신체에 일어나는 기적을 느끼며

회복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살고자하는 생生의 의지를 잔뜩 불태운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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