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그 소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평무사 석일은 은근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그 소문?"
그 물음에 그의 동기, 황적이 의아한듯 물음을 던졌다.
"그 있지 않은가? 맹주님과 관련된 소문말일세."
석일은 목소리를 슬며시 낮추며 입을 떼었다.
"맹주님과 관련된 소문?"
그러자 황적은 여전히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무슨 소문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가 아주 소식이 깜깜한 친구일세, 맹내 파다한 소문을 어찌 혼자서만 모른단 말인가?!"
석일은 혀를 가벼이 차며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제라도 알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맹내에 파다하다는 소문이 대체 무엇인가?"
황적은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은 채 응수하였다.
소식은 깜깜할지 몰라도 대처만큼은 능글맞기 그지없는 인간이였다.
"알았네, 내 특별히 알려주지."
두리번 두리번
말을 마친 석일은 주위를 잠시 두리번거리며 인적을 살폈다.
"맹주님께서 회임을 하셨다고 하더군."
그리고 속삭이듯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뭐라!? 맹주가 회임을!?""
그 말을 들은 황적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놀라운 소문의 진상에 경악을 금치 못한 까닭이었다.
의천맹주가 회임을 하였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쉬잇! 쉬잇! 소리 낮추게! 누가 듣겠네!"
석일은 다급히 그를 만류하기 시작하였다.
다들 쉬쉬거리는 소문인터라
대놓고 입밖에 낼 경우
경을 치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체...그게 무슨 소리인가? 맹주께서 회임을 하셨다니?"
황적은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그에게 다시금 되물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이건 맹주를 모시는 시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맹주의 배가 눈에 띄게 볼록해졌다고 하더군. 마치 임신을 한 것처럼 말이야."
"배가 볼록해진거야, 살이 쩌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않은가? 겨우 그런 것가지고 임신이라고 단정짓는 건 너무 억측이지 않은가?"
"답답한 소리 하기는! 맹주가 어떤 존재인지 잊어버린 겐가! 맹주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반선, 그자체란 말일세! 그런 존재가 어찌 살이 쩌, 배가 볼록해진다는 말인가!"
그 말을 들은 석일은 답답하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맹주인 주소양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반선이었다.
체내 노폐물따위는 숨쉬듯 태워버릴 수 있는 지고한 경지에 도달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정말로?"
그 말을 들은 황적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임신외에는 볼록해진 배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느낀 까닭이었다.
"정말이고 말고, 시녀들에게 전해듣기로는 입덧까지 한다고 들었네. 이정도면 빼도박도 못할 근거지."
석일은 확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아비는? 그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비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황적은 다급히 그에게 되물었다.
아이의 아비에 대한 궁금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임신이라는 건 여자 혼자서할 수 있는 게 아니였다.
마땅한 짝과 결합하여 정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황적은 궁금하였다.
위대한 의천맹주에게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
결합의 과정을 겪은 행운의 주인공이 말이다.
"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네만,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군왕 전하를 꼽고 있네."
"군왕 전하를!?"
그 말을 들은 황적의 눈이 다시금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군왕에 대한 언급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이재원의 목을 베어버리기 전부터 맹주와 군왕 전하께서 은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알다마다, 그 협력을 통해 이재원을 함정에 빠뜨리고 무림 최고 단일세력인 천무맹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았는가?"
황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두 사람의 영웅적 행보는 이미 무림 전역에 소문이 나있었다.
소식이 깜깜한 황적조차 알 정도로 말이다.
"그때 정분이 나서, 연인이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을 하고 있네."
"말도 안되는 소리."
그 말을 들은 황적은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아니, 왜 말이 안된다는 말인가?"
"맹주의 나이가 몇인줄 아는겐가? 무려 마흔이 넘었네. 군왕 전하와는 거의 이모뻘에 가깝다는 말일세. 그런데 어찌 두 사람이 정분이 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지. 아암"
황적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군왕과 맹주의 나이차이는 이모뻘 혹은 어미뻘이라고 칭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하였다.
그런데 어찌 두 사람사이에 정분이 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사람 참, 고루하기 그지없구만, 사랑 앞에 나이가 무에 중요하다는 말인가? 서로에게 끌리는 느낌이 중요하지. 게다가 맹주께서는 그 나이대로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지 않은가? 난 충분히 가능성있다고 생각하네."
"그 끌리는 느낌이라는 것도 나이차가 그 정도로 나면 시들하기 마련일세, 게다가 육체가 젊었다고 해도 정신 연령이 차이가 나지 않은가?"
황적은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손만 뻗으면 젊고 예쁜 여자를 누릴 수 있는 이가 바로 군왕 전하일세. 아무리 예쁘다지만 사십 먹은 미망인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너무 박하게 말하는군."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뿐일세. 군왕 전하가 훨씬 더 아까운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니 말이야."
황적은 당연하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난 네놈과 생각이 다른데?"
그때 그의 귓가에 늙그수레한 음성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
화들짝 놀란 황적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술에 취한듯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는 대장로, 계상득의 모습을
"다시 말해보거라, 누가 더 아깝다고?"
계상득은 치밀어오른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채 조용히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
오싹
그리고 그 음성은 황적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의 소름을 전해주었다.
압축된 분노가 그대로 전해진 까닭이었다.
"왜 말이 없느냐? 말해보라니까? 이새끼야?"
"죄송합니다...소인이....실언을."
"그러니까 무슨 실언을 했냐고 묻지 않았느냐? 어서 대답하라. 대답치 않으면 크게 경을 칠 것이다."
"그러니까.....맹주에 비해 군왕 전하께서..더 아깝다는..."
"이 망종같은 새끼야! 네놈이 감히 맹주를 평가해!?"
황적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였다.
분노가 터져버린 계상득이 말허리를 그대로 잘라버린 까닭이었다.
"히이익! 죄송합니다!"
넙죽
황적은 넙죽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두려움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덥석
"그리고 평가한 것도 모자라, 맹주가 부족하다? 네놈이 정녕 내 손에 죽고 싶은게로구나!"
계상듯은 엎드려있던 황적의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끝날 것 같으면 법은 왜 있고 포졸은 왜 있겠느냐! 노오옴!"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맹주가 부족치 않다! 군왕의 베필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분이란 말이다! 그런데 뭐? 나이가 들어 부족하다고!? 부족하다고!? 이새끼야!"
흔들 흔들 흔들 흔들
"네놈은 맹주가 얼마나 완벽한 여인인지 모른단 말이더냐! 흑단처럼 윤기나는 머릿결! 힘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눈동자! 명검을 세운듯한 날카로운 콧날! 홍시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입술! 날카로운 턱선! 숨풍숨풍 아이를 낳기 최적화되어있는 커다란 엉덩이에! 쌍둥이를 낳아도 문제없는 거대한 젖무덤까지! 여인으로서 이보다 완벽한 존재가 대체 어디있다는 말이더냐! 이새끼야!"
계상득은 멱살을 쥐고 흔들며 속사포처럼 주소양의 우월함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그의 머릿속에 새겨넣어주겠다는듯이
"끄르르르르륵."
하지만 아쉽게도 황적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였다.
머리가 쉴새없이 흔들리며 그대로 게거품을 물며 기절을 해버린 까닭이었다.
"대장로...진정...진정해주십시오..이 친구 이미 기절했습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석일이 계상득을 만류하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 더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뭐? 기절했어?"
그 만류에 정신이 든 계상득은 시선을 돌렸다.
과연 그의 말대로 기절한 황적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안되지 안돼."
덥석
우우우우우웅
황계상은 한쪽 손으로 황적의 맥문을 붙잡고 진기를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커어억!"
그러자 곧이어 황적의 눈이 번쩍 뜨여지기 시작하였다.
완전히 깨어나버린 것이다.
"맹주의 위대함이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질 때까지 멋대로 기절하는건 허락치 않겠다."
계상득은 광기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으으으..으으.."
덜 덜 덜 덜
그 광기에 압도된 황적은 그저 전신을 벌벌 떨며 쉴새없이 듣고 또 듣고 또 들을 수밖에 없었다.
광기로 가득한 계상득의 맹목적인 찬양을
더불어 옆에 있던 석일 또한 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동기와 함께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찬양이 끝맺음을 지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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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전
"맹내에 맹주에 대한 소문이 가득합니다."
장로, 이세진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런가요?"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공식적인 발표가 있어야할듯 싶습니다. 점점 소문이 악화되어 맹주께서 창관을 드나든 건 아닌가라는 악질적인 소문까지 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 평소 행실이 그리 보였나보군요. 그런 악질적인 소문이 나는 걸 보면 말이에요."
"아무래도 혼전임신인터라...시선이 여러모로 곱지 않은듯합니다."
이세진은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후우...어쩔 수 없죠. 이또한 제가 벌인 일이니..충분히 감내할 수밖에."
주소양은 어쩔 수 없다는듯 말을 이었다.
"내일 공식적으로 임신에 대한 발표를 하겠어요. 자리를 마련해주세요."
그리고 결심 어린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어쩌긴요, 사실대로 말해야죠. 임신했다고 말이에요."
"아이의 아비에 대해선 어찌 설명할 생각이십니까?"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에요. "
"군왕 전하께서 함께하는 발표가 아니라면 여러모로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주소양 혼자서 아비를 밝힌다면
여러모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배가 이렇게 산만하게 불렀는데
정작 아비인 군왕은 어디갔느냐
군왕이 인정한 자식이 맞느냐
사실은 버림받은 건 아니냐는등
악질적인 소문이 돌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아이를 아비없는 자식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주소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내일 공식적인 발표를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장로."
"네에, 그럼 쉽시오."
이세진은 허리 숙여 예를 다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큰 결심을 마친 주소양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쓰담 쓰담 쓰담
곧이어 방 안에 홀로 남은 주소양은 배를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애정 가득한 손길로 말이다.
"이제는 숨길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거늘...우리 아가의 소중한 아비가 많이 늦는구나."
주소양은 부드러이 미소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원망해선 안된단다. 우리 아가를 싫어해서 늦게 오는 게 아니라, 마땅한 일을 하고 있기에 늦는 것이니."
그리고 되뇌이듯 말을 내뱉었다.
아이에게 하고 있는 말이였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이었다.
산달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야속한 주인님이지만
그를 원망해선 안된다고
분명 늦을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주소양은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뇌이며 차오르는 서운함을 다독이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그에게 서운하지 않도록
주르르륵
하지만 그런 다독임에도
차오르는 서운함을 전부 지우는덴 무리가 있는듯 하였다.
오른쪽 눈에서 습기가 차오르더니 그대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하다...왜..습기가..차는 거지?...뭐가 들어갔나?"
주르르륵
이번에는 반대쪽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눈물샘이 그대로 터져버린 것이다.
"...울면 안되는데...흐윽....우리..아가도 슬퍼할텐데."
주소양은 애써 진정시켜보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한 번 북받친 감정이 도저히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흐으윽...미안해...아가..너무 미안해.......엄마가..하루만..울게....마음이 울적해서...그래도...아비는 원망해선...안된단다...이건 아빠 때문이 아니야...엄마 마음이 연약해서 우는 거니까."
주소양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선우를 원망치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야속하고 속상함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였다.
세상 전부와 바꿔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렇기에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곁에 없는 순간조차 말이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공간의 비틀림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습격!?'
그 비틀림을 감지한 주소양은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고 검을 움켜쥔 채 시선을 돌렸다.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챙그랑
하지만 이내 그녀는 검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비틀림의 근원 가운데
너무나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메운 까닭이었다.
시원스러운 인상의 얼굴
오밀조밀하게 꽉 들어찬 근육들
미소 짓고 있는 입매까지
모든 게 익숙하였다.
아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밤 꿈에도 그리던 낭군의 모습이였으니
"소양, 울었어?"
그녀의 낭군,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흐아아아아앙...주인님."
그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주소양은 그대로 달려들었다.
와락
"주인님...나의 주인님.....내 주인님."
그리고 양팔을 벌려 그대로 꼭 껴안아버렸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토닥 토닥 토닥 토닥
선우는 그런 주소양의 등을 부드러이 토닥여주었다.
그녀가 완전히 진정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