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53화 (1,154/1,419)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쓰담 쓰담 쓰담 쓰담

그리고 남산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정성스레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애정 가득한 손길로 말이다.

"그리도 좋은가? 어찌 만날 때마다 이리도 정성스레 쓰다듬는단 말인가?"

주현영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좋지, 너무 좋지, 사랑하는 우리 아기가 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데."

선우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배가 불러온다는 건

뱃속의 아이가 그만큼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소중한 사랑의 결실이

이리도 큰 문제없이 무탈히 자라나는데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기를 직접 보면 아주 업고 다니겠구나."

주현영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팔불출과 같은 그의 모습이 유난스러우면서도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진짜 업고 다니려고, 우리 아기, 기어다니다 무릎이라도 까지면 안되잖아?"

"참으로 팔불출이로다."

"원래 아비는 다 팔불출이야. 제 자식 안이쁜 아비가 어디있겠어?"

"내 보기엔 그대가 유난한 것 같도다."

"어쩔 수 없어. 뱃속에 있을 떄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직접 보면 어떻게 참겠어?"

선우는 장난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쓰담 쓰담 쓰담 쓰담

그리고 다시금 주현영의 배를 부드러이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세상을 다가진듯한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니 쓰다듬었을까

"그나저나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을 듯하구나."

이내 주현영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뭐를?"

"혼례 말이다."

주현영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출산이 얼마남지 않았도다. 더 이상 늦췄다간 혼전출산을 하고 말 것이다."

"하긴, 미룰 만큼 미룬 상황이니까."

선우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혼인을 한계까지 미룬 상황이었다.

더 이상 미뤘다간

혼인 전 출산을 하고마리라

"그럼 폐하께 날짜를 받으러갈까?"

"쉽지 않을 것이다. 중대사인만큼 날짜를 신중히 고르시고 있을터이니."

황족의 혼례는 예로부터 황실의 중대사 중 하나였다.

"그래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잖아? 폐하께서도 적당히 타협하실 거야. 황실 입장에서도 황족의 혼전 출산을 반기진 않을테니까."

선우는 자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산달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음달이라도 혼례를 치르지 않는다면 황실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난감해지리라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긴 하도다."

주현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나만 믿고 기다리고 있어. 좋은 날로 받아올테니까."

선우는 가슴을 팡팡 치며 말을 이었다.

"알겠도다. 그대를 믿겠도다."

주현영은 신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정인을 믿지 않으면 대체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는 분명 좋은 날짜를 가져올 것이다.

혼례에 딱 알맞는 길일을 말이다.

*******

"오월 칠일일세."

"네에?"

순간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제국의 황제이자

위대한 지배자인 정문제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말이다.

"하하하하하, 자네는 젊었거늘, 가는 귀가 먹은듯 하군."

정문제는 유쾌한듯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위대한 영웅의 허술한 모습이 꽤나 호감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내 다시 말해주지, 자네와 경화의 혼례는 오월 칠일일세."

"......오월..칠일 말씀입니까?"

선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날짜가 정해져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래, 날짜로 따진다면 이주 뒤가 되겠구만."

정문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반응이 영 신통치 않군, 혹여 날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흐음...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약간 타협하는 게 어떤가? 오월 칠일보다 좋은 길일은 없다네. 아니면 며칠 정도는 조율할 수 있네. 물론 혼례를 오월중에 올린다는 전제하에 말일세."

정문제는 고심 어린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심썼다는듯이 말을 내뱉었다.

나름의 타협을 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부정을 표하였다.

애초에 혼례 날짜를 결정 짓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이미 혼례 날짜가 정해졌단다.

어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어찌 그런 표정을 짓는가? 군왕이여."

"그 심히 당혹스러운 까닭입니다. 폐하."

"연유를 물어도 되겠는가?

"사실 제가 오늘 폐하를 찾아온 이유는 혼례 날짜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경화 군주의 배가 날로 불러오는터라. 더는 혼례를 미룰 수 없다고 여긴 까닭이지요. 그런데 별안간 폐하께서 혼례 날짜가 정해놓았다고 하시니 심히 당혹스러웠사옵니다."

"하하하하하, 듣고보니 당혹스러울 만도 하겠구만, 별안간 혼례 날짜를 듣게 되었으니 말이야."

정문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선우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더구나 황족의 혼례와 같은 중대사는 상당히 까다롭게 정한다고 들었던터라...여러모로 오랜시간 상의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황족의 혼인과 같은 중대사는 년월일은 물론 시간까지 까다롭게 정하는 게 보통이니 말이야."

"그럼 어찌하여 저희들의 혼례는 이리 단기간에 결정지어진 것입니까?"

"단기간이 아닐세."

정문제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자네와 경화의 혼례 날짜는 나와 태자 그리고 대신들이 몇 달을 고심하여 정한 길일일세."

정문제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몇 달이라고 하면..?"

"정확히는 경화의 임신을 알게되었을 때 부터였네."

"그리 이르게 말입니까?"

선우는 경악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팔개월 전부터 혼례 날짜를 고심하였다니

전혀 예상치 일이었다.

"소중한 손녀딸을 혼전 출산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정문제는 당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철두철미하시군요."

"자네와 경화의 혼례는 황실의 중대사가 아니던가? 이정도 철두철미함은 필수덕목이지."

정문제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날짜는 마음에 드는가?"

"마음듭니다. 폐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해도 되네, 내 언제든 바꿔줄 용의가 있으니."

"진심으로 마음에 듭니다. 본디 5월의 혼례는 축복받는 법이니까요."

"자네가 마음에 들어하니 참으로 다행이로군. 내 반발할까 적잖아 걱정했었다네."

정문제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제 어찌 폐하를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요."

선우는 공손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혼례 날짜도 정해졌으니 자네와 경화는 더이상 신경쓰지말고 푹 쉬도록 하게. 모든 준비는 황실에서 끝마칠터이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선우는 허리를 깊게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혼례에 필요한 수많은 복잡한 절차를 모조리 처리해준다고 하니

실로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이제 경화에게 가보도록 하게. 자네가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터이니"

곧이어 정문제는 축객령을 내렸다.

서로 죽고 못사는 두 연인을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선우는 정문제의 명을 받들었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없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주현영의 태교를 돕기 위해

정문제는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

자금성 내에서도

가장 넓은 광장을 보유하고 있는 태화전

그곳에 수많은 황족들과 고위관리들이 속속히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제후로 임명된 수많은 왕들

고위 관료들의 우두머리이자 실질적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제국의 이인자 한재선

중앙 정치 행정기구인 육부의 수장인 상서 왕흘.

상서 왕흘을 보좌하는 육부의 부 수장

좌시랑과 우시랑

중앙정부의 감찰기관

도찰원의 우두머리인

좌도어사와 우도어사.

한림원의 수장인 한림학사.

제국의 군권을 쥐고 있는 좌도독과 우도독.

교육기관을 총괄하는 국자금의 총장인 제주까지

하늘을 나는 새조차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높은 권력을 쥔 이들이

앞에서부터 차례로 자리를 차지한 채 가만히 서있기 시작하였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끼이이이익

태화전의 문이 열리고

휘황찬란한 용포를 입은 제국의 절대자.

정문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짐이 가장 아끼는 손녀딸이자 황궁제일인으로서 황실과 제국을 수호하는 대장군, 경화군주와 제국을 위협에서 구해낸 구국의 영웅, 군왕의 혼례가 있는 경사스러운 날이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찬찬히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새롭게 연을 맺을 두 남녀를 축복해주도록 하라."

곧이어 정문제의 위엄 어린 목소리가 태화전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자아, 신랑은 입장토록 하라! "

정문제는 큰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황궁 악사들이 경쾌한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그 연주에 맞춰 저 멀리서 한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군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묵빛의 곤복을 입은 시원스러운 인상의 남자

선우는 저 멀리서부터 태화전쪽으로서 위풍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씨익

움찔 움찔 움찔

그러자 황제와 대신들의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하였다.

정문제는 손녀사위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흡족스러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결국 저 멋들어진 사내가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고

사랑하는 손녀딸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느낀 까닭이었다.

그와 반대로 대신들은 온몸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가 그에게 작열독으로 지져진터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과 경외감이 절로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선우는 황제와 대신들의 상반된 반응을 즐기며 여유로이 걸음을 옮겼다.

황제의 코앞에 닿을 때까지

"신부는 입장토록하라!"

선우가 코앞에서 멈춰서자

정문제는 이내 큰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러자 저 멀리서 한 명의 여인이 수많은 시녀들의 보조를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금관과 비녀들

새하얀 피부과 붉은 입술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얼굴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물씬 드는 붉은 계열의 품이 넓은 예복

황실의 대장군이자

황실제일인

더불어 황제의 손녀로서 군주의 자리에 위치한 여인.

경화군주, 주현영의 등장이었다.

그녀는 경쾌한 악사들의 연주와 대신들의 박수와 환호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는 선우와 마찬가지로 정문제 코앞에 멈춰섰다.

부끄러운듯 얼굴을 숙인 채 말이다.

"고개를 들거라. 경화여."

정문제는 그런 경화군주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스으윽

그러자 경화군주는 서서히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초월의 미美가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경화여."

정문제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손녀딸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미소였다.

"감사합니다. 폐하."

경화군주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하였다.

"군왕이여."

"하명하십시오."

"그대 또한 무척이나 멋지구나."

"과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오늘 이 멋지고 아름다운 선남선녀가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이는 하늘에서 점지한 운명이며....다시는 없을 행운이기도 하고....관용과 여유를 두고...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곧이어 정문제는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하였다.

형식적인 혼례의 인사치레였다.

인삿말로 시작하여

신랑과 신부의 약력부터

그들의 만남까지

간략히 간소화하여

모두에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연설이 이어졌을까

"그럼 먼저 신랑에게 묻겠다."

곧이어 주례사를 끝마친 정문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대는 군주 주현영을 아내로 맞이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선우는 있는 힘껏 우렁차게 맹세를 하였다.

그러자 태화전 광장 전체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럼 이번엔 신부에게 묻겠다!"

정문제는 이번에는 주현영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대는 군왕 장선우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주현영 또한 지지않겠다는듯 내력까지 담아 큰소리로 맹세를 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그녀의 맹세가 광장 전체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좋다! 이로서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은 서로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하여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화복한 가정을 이루기로 황실의 모든 이들 앞에서 엄숙히 서약하였다!"

정문제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와아아아아아아!"

짝 짝 짝 짝 짝 짝

"와아아아아아!"

정문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의 혼례를 축하하는 축복의 울림이었다.

그 축복의 울림에

선우와 주현영은 서로를 마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비로서 부부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문제는 그런 그들을 그저 흐뭇히 바라보았다.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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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21년 5월 7일

군왕 장선우와 군주 주현영은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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