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49화 (1,150/1,419)

'어째서...어째서..'

이해할 수 없었다.

뜻을 함께하고자 했던 모든 이들이

어찌 다들 한발짝씩 물러선 채 눈을 돌리고 있다는 말인가

어찌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는 이가 없다는 말인가

'한재선!'

승상 한재선

관료들의 우두머리이자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제국의 2인자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그는

다른 대신들과 마찬가지로

저 멀리 물러선 채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한기로 가득한 차가운 미소를

'왕흘!'

상서 왕흘

최고 실무 행정기관이라고 불리우는 육부의 수장이자

승상 다음가는 최고의 권력자

그또한 미소 짓고 있었다.

한재선과 똑닮은 차가운 미소를

'......저 새끼들이..배신을..'

으드득

그 모습을 본 견희는 강하게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들을 비롯한 모든 대신들이

배신을 하였음을

삼공을 고립시키기 위한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아무래도 삼공三公외엔 군왕의 정통성에 의문을 품는 이가 없는 것 같군. 태자태부."

그 때 잠자코 지켜보던 정문제가 싸늘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입을 떼었다.

삼공이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인지한 순간

곧바로 치고들어온 것이다.

"............."

그 말에 태자태부 견희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포섭해두었던 모든 대신들이 등을 돌린 마당에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왜 말이 없는가? 아까는 그리도 열변을 토해내더니 말이야."

그가 말이 없자 정문제는 비꼬듯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소신이...비약적인 주장을 펼친듯 하옵나이다..폐하.."

곧이어 견희는 꼬리를 말기 시작하였다.

계획이 어그러진 이상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건 만용이었다.

지금은 일단 납작 엎드려 자구책을 마련하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리라

"그대는 참으로 소신이 없군, 여론이 쏠렸다하여 이리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걸 보면 말이야."

정문제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군왕의 정통성을 맹렬히 부정하며

파혼을 종용하던 견희였다.

그런 그가 이렇듯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찌 이리도 소신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인가

"............."

견희는 얼굴을 잔뜩 붉혔다.

소신없는 소인배라는 말에

수치스러움이 물밀듯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뭐, 되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하는 법이지. 내 구태여 그대의 실수를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다."

정문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말이십니까?"

그 말에 견희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잘하면 그냥 넘어가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 까닭이었다.

"정말이고 말고, 그대의 실수는 황실의 근간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던가? 어찌 그런 충신을 질책할 수 있겠는가?"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견희는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허리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다행히 이대로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는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이제 그대들의 죄질을 따져보도록 하지."

정문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순간 견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분명 책잡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죄질을 따지다니?

"꾸짖지 않는다고 했지. 벌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지 않는가?"

정문제는 차가운 냉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같은 말이 아니였습니까!?"

견희는 황당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

었다.

명백한 말장난이었다.

"당연히 다르지. 그대는 왕을 능멸한 죄인이지 않은가? 어찌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그건...황실을 생각하는 마음에.."

"황실을 생각한다하여 왕을 능멸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건..아니지만..."

"그럼 되었구만. 더 할 말이 있는가?"

정문제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위험해..이건..위험해.'

그러자 견희의 표정이 더할나위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수십 년간 정치판에서 놀며 발달된 직감이 맹렬히 경고를 보내온 까닭이었다.

지금 이순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면

자신의 정치인생은 물론

가문까지도 온전히 보존치 못할 것이라고

"폐하! 소신이 잠시 미쳐 실언을 하였사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옵소서! "

위기감이 행동으로 전환되는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체없이 땅에 이마를 박아버린 것이다.

"용서?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잔뜩 담아놓고도 용서를 바라는가?"

"소신이 과하게 흥분하여 할 말 못할 말을 구분 못하고 그대로 내뱉어버린듯 하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옵소서!"

견희는 간절한 어조로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잘못하다간 가문자체가 풍비박산 날 수 있었다.

왕을 능멸하는 건

황실의 근간이 흔들리는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승상."

하지만 정문제는 그런 견희 말을 가뿐히 무시한 채 뒤편에 있는 한재선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폐하."

"어떤 죄를 적용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군왕 전하는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자 폐하께서 인정한 진실된 왕이옵니다. 그런 군왕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건 폐하를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생각하옵니다. 이는 역천의 뜻을 품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행동이지요."

그의 물음에 한재선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아닙니다! 역천逆天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어찌 제가 그런 뜻을 품는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견희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역천이라고 함은

하늘의 뜻에 도전한다는 소리.

즉 반역을 의미하였다.

순식간에 역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어찌 일개 신하가 왕을 천하다 모욕하며 낮잡아본다는 말입니까? 이는 황실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반역 행위이옵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상서 왕흘이 한재선의 말에 찬동하며 말을 내뱉었다.

"아닙니다! 폐하! 오해이옵니다! 저는 절대 그리 생각지 않았습니다! 반역이라니! 역천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들의 말을 듣지 마시옵소서! 전부 절 죽이기 위함 모함들이옵니다!"

견희는 필사적으로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역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삼족이 멸하고 만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 친지, 사촌들까지

모조리 떼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그렇기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가문만큼은 보존케하기 위해

"그대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 확실히 군왕은 짐이 임명한 진실된 왕, 그런 군왕을 모욕하는 건 곧 짐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정문제는 그런 견희의 말을 들어줄 생각따윈 전혀 없었다.

이미 마음속으로 어떻게 처죽일까

고심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폐하..살려주십시오..고의가 아니였습니다..그저 실수였습니다..부디 살려주십시오!...아니...살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당장 제 목을 베어도 좋습니다..그러니...역적이라는 말만큼은 거둬주십시오.....부디 가문만큼은 보존시켜주십시오... "

견희는 애절히 용서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역적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수백 년간 이어온

가문의 영광도

가문의 명성도

모조리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반역죄만큼은 철회시켜야했다.

가문만큼은 보존케하기 위해

"본디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하는 법이지. 그대는 짐이 직접 임명한 군왕의 정통성을 의심하였고 더 나아가 천하디 천한 오랑캐의 핏줄이라며 왕을 능멸하였다. 그러니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하라."

정문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그런..."

견희는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확고한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뜻을 되돌릴 없음을

"대신들은 들으라! 삼공三公은 감히 짐이 임명한 왕을 능멸하는 중죄를 저질렀다! 이는 짐의 뜻을 거스르고 더 나아가 능멸하는 역천에 가까운 행위라 판단! 삼공에게 반역죄를 물어 삼족을 멸하도록 하겠다!"

정문제는 선언하듯 고함을 내질렀다.

"폐하! 군왕 전하를 모욕한 건 견희입니다! 저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잘못이 없습니다! 모든 건 태자태부의 잘못입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태자태사 이곽과 태자태보 황기가 펄쩍 뛰며 언성을 높였다.

어찌 가만히 있던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뛴다는 말인가

"그대들도 태자태부의 의견에 동조하기에 앞으로 걸어나온 게 아니던가? 어찌 문책을 피할 생각을 하는가?"

"억울합니다! 폐하!"

"폐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이곽과 황기는 무릎을 꿇은 채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견희와 함께 반역죄로 뒤집어쓸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야하는 것이다.

"듣기 싫다! 이미 짐은 결정을 내렸다!"

정문제는 그들의 애원을 단칼에 끊어버렸다.

더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느낀 까닭이었다.

"아니되옵니다! 폐하!"

"다시 한 번 재고 해주십시오! 폐하!"

하지만 그들은 애원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뿐 아니라 가문마저 존폐될 위기에 처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빌고 또 빌기 시작한 것이다.

"게 아무도 없느냐!!"

그 징징거림에 짜증이 난 것일까

정문제는 뒤쪽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예엡!"

그러자 뒤편에 있던 궁중 경비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자들을 전부 끌어내 옥에 가두도록 하라."

정문제는 삼공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궁중 경비들은 일제히 대답하였다.

그리고 삼공의 양팔을 하나둘 붙잡기 시작하였다.

"놓아라! 아직 폐하께 할 말이 있다는 말이다!"

"놓아라! 내가 누군지 알고 힘을 쓴다는 말이더냐!"

"놓으란 말이다....이대로..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다!"

삼공은 격렬히 저항을 하였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평생 입만 나불대던 그들이

단련된 무관들을 당해낼 도리가 없던 까닭이었다.

"폐하,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부디 통촉하여주십시오!"

"재상 어르신! 재상 어르신! 부디 살려주시오!...이럴 순 없소! 이럴 순 없단 말이오!"

"상서 어르신! 상서 어르신! 무어라 말씀 좀 해주십시오! 반역죄라니! 반역죄라니!"

이내 삼공은 추한 눈물을 흩뿌리며 그대로 끌려나가버렸다.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말이다.

*********

"...........반쪽이여."

능소화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왜?"

선우는 의아한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여기있는 것들 전부 무엇인가?"

능소화는 방 안 가득 쌓여있는 금은보화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며칠새 없던 것들이 잔뜩 쌓여져있으니 의아함이 든 까닭이었다.

"알아서 갖다바치던데?"

"누가?"

"대신들이."

"대신들이 어찌 그대에게 이 많은 금은보화를 선물한다는 말인가? 딱봐도 수 백만냥은 훌쩍 넘어보이거늘."

능소화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금은보화들은 바닥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쌓여있었다.

이정도면 못해도 수백만냥은 가뿐히 넘을 정도의 거액인 것이다.

그런 거액을 어찌 선우에게 선물한다는 말인가

"위자료라고 하면서 주던데?"

"위자료? 그들이 그대에게 무언가 잘못한 것이라도 있는 것인가?"

본디 위자료라함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하기 위한 배상금이었다.

대체 어떤 잘못을 하였기에

이처럼 거액의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말인가

"말하자면 긴데.....궁금해?"

"궁금하도다!"

능소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호기심이 물밀듯 치솟은 까닭이었다.

"그럼 여기 잠깐 누워봐. 그럼 얘기해줄게"

탁 탁 탁

선우는 침상을 가벼이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이를 품고 있는 그녀에 대한 배려였다.

"꼭 누워야하는 것인가?"

"응, 꼭 누워야해."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망설임없이 걸음을 옮겼다.

털썩

"누웠도다."

이내 능소화는 망설임없이 침상 위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옛 이야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사랑스럽다는듯 바라보며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대신들로부터 위자료를 받아낸 경위에 대해서 말이다.

능소화는 그런 선우의 말에 경청하고 반응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휘황찬란한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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