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성이 방 안 가득히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작열독에 중독된 육부의 수장, 왕흘이 내지르는 비명성이었다.
'아파아아...너무 아파아아아!!'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르는 불개미들이 자근거리며 갉아먹는듯한 착각일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고온으로 달구어진 수만 개의 바늘로 쉴새없이 찔러대는듯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도저히 비명을 내지르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아아아아아악!!!! 살려주십시오!!!! 전하!!!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아아아아악!!....용서를..아아아아악!!!! 부디 자비를!!!"
왕흘은 육부의 수장으로서 체면과 자존심따윈 저 멀리 내던진 채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부디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죽음보다 끔찍한 고통 앞에 굴복하여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여도
고통은 전혀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되고 또 배가 되었다.
마치 고통의 한계를 시험해보듯이
"아아아아아아악!!!!!!!!!!!!"
왕흘의 비명성은 더욱더 처절해지기 시작하였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고통이 지속되었을까
"끄르르르륵.."
왕흘은 눈을 까뒤집은 채 게거품을 물기 시작하였다.
쉬이이이이이
더불어 가랑이 부분이 축축해지기 시작하였다.
극도의 고통으로 인해 괄약근이 풀어지며 그대로실금을 해버린 것이다.
'이정도면 충분하겠군.'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어 왕흘에 단전 위에 올렸다.
스으으으으윽
그리고 몸 속에 있는 작열독기를 그대로 빨아들이기 시작하였다.
한줌의 기운도 남김없이 모조리 말이다.
"아....하아....하아...하아.."
그러자 고통받던 왕흘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끝없이 밀려드는 끔찍한 고통에 호흡을 제대로 고를 여유조차 없던 까닭이었다.
"어때? 정신이 번쩍들어?"
선우는 그런 왕흘은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하아...흐어어어...허어어어..흐어어어."
하지만 그 물음에 왕흘에게 대답할 여유따윈 없었다.
아무리 몰아쉬도 호흡이 진정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말이 없는 걸 보니까, 아직 정신이 없나보네.."
선우는 붉게 물들여진 손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휘둘러버리겠다는듯이
"끄어어어어어....듭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전하!"
그 모습에 왕흘은 강제로 호흡을 중단시킨 채 고함을 내질렀다.
저 끔찍한 작열독기가 다시금 침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무리 안해도 되는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왕흘은 고개를 다급히 내저으며 언성을 높였다.
"괜찮다니 다행이네."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떼었다.
"그럼 이제 이거에 대해 면밀한 면담을 나눠볼까?"
팔락 팔락
선우는 왕흘의 눈앞에서 연판장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연판장에 이름을 쓴 이유가 뭐야? 네 입장에선 나와 경화 군주와의 혼인을 반대할 이유는 딱히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차가운 눈빛을 반짝인 채 말이다.
"..그게...그러니까."
그 물음에 왕흘은 쉬이 답하지 못하였다.
반대한 이유 자체는 무척이나 간단하였다.
황권약화.
저 군왕과 경화 군주의 파혼을 계기로
대신들의 권력을 한층 더 강화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쉬이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런 같잖은 이유로 혼인을 파기하려고 들었다는 걸 알면
다시금 작열독에 고통받을 지도 모를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머리 굴리지 말고, 제대로 말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왕흘"
선우는 붉게 물들어있는 오른 손을 가만히 응시한 채 입을 떼었다.
'히익!'
그리고 그 행동은 왕흘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붉게 물든 오른손을 마주한 순간
작열독으로인해 각인된 수많은 고통의 기억들이 전신을 스쳐지나간 까닭이었다.
"황권을 약화하고 대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함이였습니다! 전하!"
곧이어 왕흘은 속내를 그대로 내비쳤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선우의 눈빛이 한층 더 싸늘해지기 시작하였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듣게되니 분노가 한층 더 심화된 것이다.
쿵
순간 왕흘은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소관이 잠시 눈이 멀어 감히 전하를 능멸하려고 들었나이다!"
모든 게 탄로난 이상
죄를 시인하고 싹싹 비는 것외는 방법이 없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죽을 죄를 짓긴 했지. 감히 나와 경화 군주를 갈라놓으려고 했으니까 말이야."
선우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네놈의 알량한 권력욕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분노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죽여주십시옵소서!"
"죽을 생각도 없는 새끼가, 말은"
선우는 불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살고 싶어
누구보다 비굴하게 빌었던 놈이
이제와서 죽여달라고 하니
대체 누가 믿겠는가
"아닙니다! 죽이신다고 하신다면! 저는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
"진짜 죽여주랴?"
선우는 살기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
그러자 왕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표명하기 위해
죽여달라는 말을 입에 담긴 했지만
진심으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 없는 거 봐라, 이 속보이는 새끼."
그 모습에 선우는 실소를 내뱉었다.
빨라도 너무 빠른 그의 태세전환에 실소가 터져나온 까닭이었다.
"쫄지마, 새꺄, 나도 죽일 생각까진 없으니까."
연판장을 쓴 놈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제놈들의 권력을 위해 담합하여
자신과 경화 군주를 파혼을 시키려고 했던 건 괘씸하긴 하였지만
목을 베어 참수시킬 정도로 극심한 사안은 아닌 까닭이었다.
애초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도 하였고 말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왕흘은 감격어린 표정을 지은 채 격하게 감사를 표하기 시작하였다.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니
격한 감격과 안도감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선우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든 채 입을 떼었다.
"무엇이든! 그 어떤 조건이든 수용토록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용서만 해주신다면! 천금만금을 내놓고! 견마지로를 다하여 전하를 보필하겠나이다!"
왕흘은 우렁차게 답을 하며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좋아, 그럼 일단 내 조건부터 말하도록 하지.."
선우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다음 천천히 자신의 계획을 무척이나 세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왕흘은 눈을 반짝이며 선우의 말에 경청하였다.
한 자라도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가능하겠어?"
말을 끝마친 선우는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자신의 조건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물론입니다! 가능하고 말구요! 전하의 말이라면 뭐든 가능합니다!"
왕흘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뭐든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아주 협조적이군, 왕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법도 한데 말이야."
그 협조적인 모습에 선우를 감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한 배를 탄 동료조차 망설임없이 배반하는 그의 모습에 절로 감탄이 새어나온 까닭이었다.
"양심의 가책이라뇨? 황실의 법도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 아닙니까? 신하된 도리로서 마땅히 따라야지요. 암."
왕흘에게 양심의 가책따윈 없었다.
그저 목숨을 연명하고 싶은 욕심과
제 나름의 합리화만이 있을 뿐
"넌 오래 살거다. 왕흘."
그 뻔뻔함에 감탄한 선우는 한 마디 내뱉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왕흘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감사를 표하였다.
명백히 비꼬는 말이었지만
그는 그마저도 감격할 따름이었다.
저런 말을 내뱉었다는 건
최소 군왕이 직접 자신의 목을 베는 일은 없다는 뜻일테니
"그래, 그럼 이제 하던 거 마저해라. 왕흘."
"......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여기 말고 돌 곳이 많거든."
스르르륵
곧이어 선우의 신형이 귀신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후우우우우우."
그가 사라지자 왕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승 문턱까지 밟고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공 개새끼들...이런 위험한 일에 나를 끌어들여?'
그는 속이 부글거림을 느꼈다.
삼공의 새치 혀에 놀아나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게거품을 물고 똥오줌을 지려버렸다고 생각하니
절로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은 나보다 비참한 꼴을 당할 것이다.'
삼공은 연판장을 작성하고 대신들을 선동한 장본인들이었다.
황제와 기싸움을 위해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자신들과는 그 죄질의 무거움이 남달랐다.
'어디 한 번 개같이 당해보거라.'
그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자신들을 선동한 삼공이
더욱더 비참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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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전武英殿
황제가 정무를 보거나 대신들이 접견하는 장소.
그곳에 수많은 대신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서열에 맞게 줄지어 이동을 하면서 말이다.
이내 커다란 대전 안에
대신들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하였다.
대신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그들은 얌전히 기다렸다.
자금성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용포를 입은 풍채 좋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위엄있고 당당하게
털썩
그리고 곧 상석에 있는 옥좌에 자리를 잡았다.
"내각 회의를 시작하지."
옥좌를 차지한 사내, 정문제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자 무영전 안이 일제히 들썩이기 시작하였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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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에서 전마 오백 필을 보내왔사옵니다! 아무래도 제국과의 전쟁을 피하고자하는 수작일듯 하옵니다."
"복건성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비정상적으로 낮습니다. 아무래도 횡령이 있는듯 합니다. 당장 감사를 보내 조사에 들어가야합니다."
"바다건 너 포도아葡萄牙에서 정식적인 무역을 요청하였습니다. 제국의 비단과 특산품을 맞바꾸자고 하였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선 아편이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대대적인 아편조직 소탕에 앞서야할듯 합니다."
내각 회의에서는 다양한 사안들이 오고가기 시작하였다.
모두 정문제의 결재가 필요한 중요하기 그지없는 사안들이었다.
"화친 선물로 들여온 전마 오백필은 모조리 굶겨죽이도록 하라! 제 마음대로 침범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화친이라니? 어불성설이로다!"
"당장 감사를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만약 나랏돈을 빼먹는 도둑놈들이 있다니! 경질시켜 본을 바로 세우도록 하라!"
"포도아葡萄牙의 특산품은 까맣게 탄콩가루가 아니던가? 그딴 걸 어디다 쓰려고? 좀더 좋은 조건의 물품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무역을 허락할 수 없다 일러두도록 하라."
"아편은 본디 노동의욕을 상실시키고 백성을 피폐하게 만드는 마귀가 아니던가? 그런 것들을 유통시키는 무리가 있다니! 모조리 잡아들여 목을 쳐버리도록 하라!"
정문제는 성심성의껏 답을 하며 회의에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회의가 이어졌을까
"그럼 이제 마지막 의제를 듣도록 하겠다."
이내 정문제는 한쪽에 있는 태자태부 견희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러자 견희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신 태자태부 견희! 폐하께 인사올립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인 채 말을 내뱉었다.
"그래, 태자태부, 어디 자네가 건의할 의제를 말하도록 하라."
정문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스르르륵
그 말에 견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우기 시작하였다.
"제가 건의 드릴 내용은 경화군주님의 혼인과 관련된 이야기이옵니다!"
"경화의 혼인과?"
"그렇습니다! 최근 경화군주님으로부터 조만간 혼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정보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오랫동안 연모하였던 군왕 전하라는 사실까지 말입니다."
견희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이지?"
정문제는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되물었다.
군왕의 경화군주의 짝으로서
품계상 문제가 전혀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게 건의할 거리가 된다는 말인가
"두 분은 혼인을 해선 안됩니다."
견희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뭐라?"
"군왕 전하는 경화군주의 베필로서 부족하신 분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정문제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는 수많은 업적을 세운 위대한 영웅이자 훌륭한 군주이다! 그런 그가 어찌 경화의 베필로서 부족하다는 말인가!"
"군왕 전하가 훌륭하신 분인 건 맞지만 그와 별개로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점을 재고 해주셨으면 합니다."
견희는 공손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모든 게 완벽한 군왕이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말인가!"
정문제는 잔뜩 흥분한 채 언성을 높였다.
이해가 안되었다.
모든 게 완벽한 손녀 사윗감이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말인가
"군왕 전하께선 정통성이 부족하신 분입니다, 황족도 귀족도 아닌 평민으로서 군주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지요. 그런 분을 황실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면 황실의 근간을 흔들리게 될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내가 그를 군왕으로 임명한 순간부터 신분의 격차는 무의미해졌다. 그런데 어찌 정통성을 주장하며 그를 부족하다 업신여기는가!"
정문제는 분노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손녀사위를 모욕하는 견희의 언사에 분노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군왕 전하는 근본조차 알 수 없는 핏줄을 타고나셨습니다. 오랑캐의 핏줄일지 이민족의 핏줄일지,그 누구도 알 수 없지요. 전하께서는 오랑캐의 핏줄일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핏줄과 황실의 고귀한 핏줄과 섞이길 바라시는 것입니까?"
"오랑캐의 핏줄이라니 비약이 심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일도 아닙니다."
견희는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황실의 고귀한 핏줄을 지키기 위해선 일말의 가능성조차 배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황실의 정통성을 위해 혼인 파기 시켜주시옵소서!"
견희는 깊게 허리를 숙인 채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기각한다."
"폐하! 황실을 위함이옵니다!"
"그대 혼자만의 비약이 아니던가? 어찌 그런 말을 들어줄 수 있는가?"
"저만의 비약이 아니옵니다!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대신들은 황실의 근간이 흔들리길 원치 않습니다."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가?"
"물론이옵니다!"
견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좋다, 그렇다면 그대를 제외한 다른 대신들의 의견을 묻도록 하겠다."
정문제는 시선을 뒤쪽으로 향하여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태자태부의 주장에 찬동하는 대신들을 앞으로 걸어나오도록 하라."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끝났군.'
그리고 그 발걸음 소리를 들은 견희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대신들의 의견을 물은 이상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이미 황족을 제외한 모든 대신들을 포섭해놓은 상태였다.
다수를 손에 넣은 이상
우유부단한 황제를 구워삶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는것과 다를바 없으리라
'혼인은 파기된다!'
그의 눈빛이 야망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고개를 들라, 태자태부."
그때 정문제가 견희에게 명을 내렸다.
스으으윽
그 말을 들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들어올려 정문제를 마주하였다.
"주위를 둘러 직접 확인토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폐하"
두리번
그 말을 들은 견희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며시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홀로 외로이 서있는 태자태사 이곽의 모습을
'아니?'
휘익
순간 당황한 견희는 이번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태자태보 황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단 두사람.'
자신에게 찬동한 이가
이곽과 황기
단 두사람밖에 없던 것이다.
'대체 이게...'
이해할 수 없었다.
뜻을 같이하기로 했던
수많은 대신들은 어디가고
저 둘만 앞으로 걸어나온다는 말인가
'.....설마!?'
순간 불길한 생각이
뇌리에 스쳐지나가기 시작하였다.
상상조차하기 싫은
끔찍하고 불길한 생각이 말이다.
견희는 시선을 뒤쪽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재선과 왕흘의 모습을
'배신!?'
그리고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황실의 2인자인
한재선과
육부의 수장인
왕흘이
자신을 동시에 배반하였다는 사실을
'개만도 못한 새끼들이이이이!!!!!'
견희는 속으로 격렬한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