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44화 (1,145/1,419)

털썩

한 남자가 경대 앞쪽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시선을 내려 동경에 슬며시 얼굴을 비추었다.

그러자 말끔하게 생긴 미남이

시야에 또렷히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후우.'

상태를 확인한 남자는 가벼이 심호흡을 하였다.

그다음 경대 위에 있는 화장품을 하나둘씩 들어올리며 치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연인을 만나러가는 여염집 처자처럼 말이다.

탁 탁 탁 탁

먼저 얼굴에 오이즙을 곱게 펴바르기 시작하였다.

세안 후 미처 씻어내지 못한 미세먼지와 잔여물들을 닦아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곱게 빻은 진주가루로 얼굴을 칠하였다.

피부에 백옥과도 같은 윤기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쓰윽 쓰윽

그다음 빻은 숯으로 눈썹을 진하게 그렸다.

남자다움을 한층 더 강조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마지막으로 석류와 기름, 노른자를 섞은 붉은 연지를 새끼 손가락 끝에 묻혔다.

쓰으으윽

그리고 입술을 가벼이 가로질렀다.

너무 진하지도

너무 옅지도 않을 정도의 세기로

그렇게 얼마나 치장을 이어갔을까

남자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거울을 비춰보았다.

씨이익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평소보다 잘먹은 화장 덕택에

본판보다 몇 배는 잘생겨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정도라면 그 도도한 경화군주도 눈길을 주지 않고는 못배기리라.'

미소가 한층 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평범한 미남에서

절세 미남으로 변모해버렸다.

제 아무리 콧대 높고 도도한 경화군주라지만 눈길을 주지 않고는 못배기리라

잘생김에 끌리는 건

여인으로서의 본능이 다를 바 없으니.

'..경화군주를 유혹하여.....반드시 부마도위에 오르고 마리라!'

치장을 끝마친 남자, 무의장군 이규는 눈을 반짝였다.

그 눈빛에는 야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부마도위에 오르고 말겠다는

거대한 야망이 말이다.

**********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치장을 끝마친 이규는 곧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업무 보고를 핑계로

이 잘생긴 얼굴을 경화군주에게 내보이기 위해서였다.

잘생기고 나발이고

일단 마주쳐야 접점이 생길테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어이, 남창, 어디가는가?"

귓가에 조롱기 가득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휘익

이규는 그 조롱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와락

그리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황철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말조심하지. 황철군."

이규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자 황철군은 실실 웃으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뭐라!"

"네놈 꼴을 보거라, 경화군주를 유혹하겠다고 거시기 달린 사내가 계집처럼 분칠을 하며 치장을 하다니? 몸을 파는 남창이 아니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황철군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비루한 몰골처럼 유행에 뒤떨어져도 한참이나 뒤떨어졌군. 요즘 같은 시대에는 남자도 꾸며야하는 시대일세. 특히 자네처럼 혐오감이 드는 박살난 면상이라면 더더욱 말일세."

"이 잘생긴 얼굴이 박살났다니...아무래도 눈이 삐었나보군. 가까운 의원을 찾아가는 게 어떤가?"

"제대로 보고 있네. 새카맣게 그을린 피부에 참지 못하고 터트린 여드름 흉터, 너무 굵어 부담스러운 검미까지 박살났다는 말외에 자네를 형용할 수 있는 말이 어디있겠는가?"

"노옴! 난 구릿빛 피부로 건강미를 뽐내기 위해 일부러 살을 그을린 것이다!"

"흥, 특정 취향 공략에는 성공적일지 몰라도, 우아하신 경화군주의 눈에는 곤륜노와 다를 바 없을 것처럼 보일걸세. 혹여 아랫도리도 곤륜노와 닮았는가? 그렇다면 희망이 조금 있을 지도 모르겠구만."

이규는 더욱더 신랄하게 그를 비난하며 모욕을 주기 시작하였다.

"지금 말 다했느냐!"

그 모욕적인 언사에 황철군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발끈하는 걸 보면 아랫도리는 평범한 것 같군, 실로 가련하군. 황철군."

이규는 실실 거리며 비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버린 것이다.

"이해할 수 없구나, 어찌 현명하신 태자태보 어르신께서 네놈과 같은 유사 곤륜노를 경화군주의 베필로 생각하였는 지 말이야...과연 나이를 못 속이는 건가."

"지금 태자태보 어르신을 모욕하는 것인가!"

황철군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할아버지까지 들먹이는 그의 언사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아, 들었는가? 미안하군, 혼잣말을 한다는 게...."

"가만두지 않겠다!"

황철군은 돌덩이 같은 주먹을 들어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 두렵진 않군."

그 모습에 이규는 코웃음을 쳤다.

본디는 짖는 개는 물지 않는 법.

위협적으로 소리를 내지르긴 하지만

저 주먹을 내지르진 못할 것이다.

무식한 놈이긴 하나 사리분별 못할 놈은 아니였으니

그렇게 두 사람은 당장에라도 충돌할듯 살벌한 시선을 교환하기 시작하였다.

"그쯤하지."

그때 담담한 목소리가 대치하고 있는 그들귓가로 파고들었다.

휘익

휘익

이규와 황철군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기품이 느껴지는 한 명의 사내의 모습을

"관여치 마라, 견정. 이건 나와 이규의 일이다."

황철군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맞다, 난 오늘 이 곤륜노와 담판을 지어야겠다. 넌 빠져라. 견정"

이규 또한 황철군과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그의 난입이 마뜩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둘다 부마도위 자리를 포기하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는가?"

"뭣이?"

"뭣?"

"무관 간의 무력충돌은 징역을 살 정도로 무거운 죄이다. 그런 무거운 죄를 짓고 부마도위가 될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지."

견정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넘어가주지. 이규."

".........너야말로 운 좋은 줄 알거라. 황철군."

그러자 서로 죽일듯 노려보던 이규와 황철군이 눈을 내리깔기 시작하였다.

견정의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 까닭이었다.

"부마도위가 되고 싶긴 되고 싶나보군."

성질을 죽이는 두 남자의 모습이 재밌게 느껴진 것일까

견정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건 네놈도 우리와 마찬가지아닌가?"

그 여유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일까

이규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뭐, 그렇긴 하지."

견정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마도위라는 야망을 품고 있는 자였으니.

"그런데 어찌 그리 홀로 여유를 부리며 고결한 척을 하는가? 결국 서로 물어뜯고 짓밟고 도태시켜야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을텐데 말이야. 겉으로는 고결한 척 하지만 네놈도 우리랑 다를 바 없는 놈이다. 견정"

이규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결국 경쟁 관계였다.

깨끗하기보단

추악스러운 더러움이 더욱더 어울리는 것이다.

"무언가 착각하는 것 같군, 난 네놈들과 전혀 다르다."

"뭐가 다르다는거지?"

"난 스스로를 의심한 적이 없거든."

"뭐라?"

"자네들이 왜 그렇게 조급하고 분노하며 짜증이 나고 여유가 없는지 아는가? 그건 자네들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렇네. 선택 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네들을 그렇게 추하게 만드는 거지."

견정은 담담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치 확정을 짓는 것처럼 말이다.

"네놈은 불안감이 없다는 건가?"

이규는 믿기 어렵다는듯 그에게 되물었다.

"스스로 믿음이 확고하거늘 어찌 불안할 수 있겠는가?"

견정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부마도위에 오르는 건 나다."

견정은 확신 어린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네놈들처럼 스스로도 못믿는 겁쟁이들이 아닌."

"개같은..자식이.."

"으으윽..."

그 말을 들은 이규와 황철군은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치욕스러움과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어라 반박치는 못하였다.

스스로도 못믿는다는 말이

무척이나 뼈아프게 다가온 까닭이었다.

"잘새겨두도록 하거라. 이 패배자 같은 놈들아."

견정은 그 모습을 보며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승자의 여유를 한껏 내보이면서 말이다.

***************

"지....지금 뭐라...말씀하셨습니까!? 실례가 안된다면 다시금..말씀해주시겠습니까?"

견정은 멍청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도저히 믿을 수없는 말이

귓가에 파고든 까닭이었다.

'아닐거야..내가 잘못 들은 걸거야.'

그는 속으로 부정하고 또 부정하였다.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이 잘못들은 게 분명하다며

"다시 말하려니...쑥스럽구나."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얼굴을 슬며시 붉힌 채 입을 떼었다.

뭔가 재차 말하려니

부끄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부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내 기꺼이 그대의 청을 들어주도록 하겠다."

능소화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갑작스럽겠지만 본녀가 혼인을 치르게 되었다. 세상에 다시 없을 소중한 낭군을 만난 덕택이지."

능소화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누구보다 소중한 남자와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게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행복감이 치솟아오른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견정은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님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발 아니길 바랬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게 된 것이다.

"처음 듣는 일입니다! 낭군이라뇨!"

그때 잠자코 있던 이규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닭쫓던 개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생각에 분노가 차오른 것이다.

"맞습니다..혼인이라니...전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황철군 또한 동조하듯 말을 내뱉었다.

"처음 들을 수 밖에, 아직 외부에는 극비인 사항이니."

능소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처음 듣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 사실에 대해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영광으로 알도록 하라. 직속부하들 중 이 사실에 대해 알게 된건 그대들뿐이니."

능소화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함자가 어떻게 됩니까?"

그때 넋이 나가있던 견정이 신색을 회복한 채 그녀에게 물었다.

"남편분의 함자가 말입니다."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채 말이다.

그는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부마도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파혼시키고 말겠어!'

그렇기에 강제적으로 파혼시킬 심산이었다.

천지분간도 못하고

경화군주를 노린

천둥벌거숭이같은 놈에게

주제파악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였다.

그의 뒤에는 사람 한 명쯤은 가뿐히 매장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세력이 뒷받침되어있으니

"정신이 없어 본녀의 반쪽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구나."

그 물음에 능소화는 깨달았다는듯 입을 떼었다.

혼인 사실만 밝혔을 뿐

남편의 정체에 대한 사실을 쏙 빼버렸다는 걸 인지한 까닭이었다.

"본녀의 반쪽은....."

능소화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견정뿐 아니라 이규, 황철군의 시선까지

능소화의 입에 모아지기 시작하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 또한 견정의 생각과 같았다.

별안간 등장한 천둥벌거숭이에게 경화군주를 빼앗길 생각이 추호도 없던 것이다.

그를 압박하여

강제로 파혼을 하게 만드리라

"장, 선자 우자를 쓴다."

능소화는 사랑하는 남편의 함자를 입에 담았다.

"장...선자..우자.."

"....장....선...우.?"

"설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남자의 눈빛이 쉼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뇌리에 각인되어있는

선명한 이름의 등장에 경악스러움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이가 맞다."

능소화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녀의 반쪽은 역도의 무리를 처단하고 몽고의 왕, 칸의 목을 베어버렸으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혼란케하는 마교로부터 백성들을 구한 구국의 영웅."

능소화는 자부심 가득한 어투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남편을 수식하는 말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군왕이니라."

곧이어 능소하는 확정짓듯 말을 내뱉었다.

'......아아...개같은..'

'....시발...'

'.......망할..'

그 대답에 들은 견정을 비롯한 이규와 황철군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하였다.

차원이 다른

현격한 격의 차이에

크나큰 절망을 느낀 까닭이었다.

설마하니 혼인 상대가

태자태사, 태자태부 ,태자태보

삼공三公의 가문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욱더 강대한 힘을 지닌

황실 최고의 권력자였다니

어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건 반칙이잖아!'

견정은 격하게 울부짖었다.

반칙이나 다름없는

세상의 불합리함에

크나큰 절망을 느끼면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