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좋구나, 그대의 품에 이렇게 안길 수 있다니...."
선우의 품속에 안긴 능소화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품속에서 느껴지는 선우의 따스한 체온이 그녀에게 크나큰 행복감을 선사한 까닭이었다.
좋았다.
너무 좋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정도였다.
"못보던새 어린애가 다됐네...이렇게 어리광이나 부리고 말이야."
선우는 그런 능소화를 장난스레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쓰담 쓰담 쓰담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애정을 듬뿍 담은 채로 말이다.
"전부 그대 때문이다....그대가 본녀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았는가? 이건 그에 따른 부작용이니라. 그러니 달게 받도록 하라."
능소화는 선우의 넓다란 가슴에 뺨을 기댄 채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면 어쩔 수 없네. 달게 받을 수밖에."
"훌륭한 판단이다. 나의 반쪽이여."
씨익
그런 선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능소화의 행복한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럼 사양치 않고 어리광을 부리겠느니라."
꼬물 꼬물 꼬물
이내 능소화는 꼬물거리며 선우의 품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낭군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밀착하고 말겠다는듯이
꼬오오옥
그리고 선우는 품속으로 파고드는 능소화를 부드러이 감싸주었다.
그녀가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보다 어떻게 된 것인가? 나의 반쪽이여."
이별의 설움을 어느정도 달랜 능소화는 문뜩 궁금하다는듯 선우에게 물음을 던졌다.
"뭐가?"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대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그런데 어찌 이렇게 귀신처럼 홀연히 나타날 수 있는 것인가?"
현경
그것도 중경에 해당하는
지고한 경지에 다다른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어떠한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어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형잠영술일거란 생각은 안하네?"
선우는 의외라는듯한 어조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무형잠영술이였다면 본녀가 그대의 기척을 놓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비록 무형잠영술이 최상위 은신술이라고는 하지만
만물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 능소화 앞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은신을 하는 순간
직감적으로 이질적인 흐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무형잠영술이 사용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하긴 그렇긴 하겠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중경에 다다른 그녀라면
이질적인 흐름을 잡아내는 것 따윈
무척이나 손쉬운 일일테니
"그럼 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능소화의 의문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당가에서 재밌는 재주를 배웠거든."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그다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운설로부터 전수받은 축지縮地에 관하여 말이다.
"축지縮地라 함은 오직 신선만이 쓸 수 있는 선술이 아니던가? 어찌 그런 초월의 술법을 그대가 쓸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설명을 들은 능소화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축지를 배웠다는 선우의 말에
경악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선술은 엄연히 선기를 다룰 수 있는 신선들에게만 허락된 초월의 술법들이었다.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는 무슨 수를 써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축지를 익혔다는 말인가
"상경에 다다르게 되면 흉내정도는 낼 수 있다고 하더라고, 진짜 신선들만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말야."
"그대는 상경에 다다른 것인가?"
"맞아."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운설과의 대련을 통해 상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신선이 되기 직전에
경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반쪽이여...그대는 실로 대단하기 그지없구나...어찌 그 짧은 새 상경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감탄 어린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였다.
현경 중경과 상경
언뜻 보면 한 단계의 차이로 보이지만
그 간극은
화경과 현경 사이의 간극마저 초월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짧은 새
간극을 초월하여 상경에 다다르게 되다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대단한 게 아니야. 그저 가르침을 전해준 사람이 훌륭한 덕택이지."
선우는 손사래치며 겸양을 떨었다.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운설의 덕택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은 아직도 중경에 머무른 채 빌빌대고 있었으리라
"겸손할 필요 없도다. 훌륭한 가르침이 뒷받침되긴 하였지만 그 가르침을 온전히 소화하는 건 그대의 몫이 아닌가?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능소화는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하니까..괜스레 쑥스럽네."
긁적 긁적
쑥스러움을 느낀 선우는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하였다.
"반쪽이여....그대는 무림사에서도 손꼽히는 이들만이 다다랐던 지고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난 그런 그대가 너무나 자랑스럽도다."
능소화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가 기쁘다면 나도 기뻐."
선우는 마주보며 입을 떼었다.
쑥스럽긴 하였지만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리 싫지 않는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이 아이도 분명 무림사의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대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이내 능소화는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가벼이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선우의 미소가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부인과 자식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고 생각하니
가장으로서의 행복감이 절로 차오른 것이다.
"아...."
그때 잠자코 있던 능소화가 탄성을 내뱉었다.
"반쪽이여....어서..어서..배에 손을 대보거라."
"배를?"
"태동이 느껴진다...우리 아이가 발길질을 하고 있느니라.."
그 말을 들은 선우는 곧바로 손을 뻗어 능소화의 볼록 튀어나온 배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꿀렁 꿀렁 꿀렁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뱃속에서 느껴지는 격한 태동을
"......이게...우리 아이의..태동."
그 태동을 느낀 선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핏줄을 이은 자식의 첫 태동에 크나큰 감격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맞도다.....우리 아이의 태동이니라."
능소화는 마찬가지로 벅찬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태동이 무척 활발해."
"씩씩한 성격을 지닌듯 하다. 우리 아이는 분명 무공에도 재능이 있을 것이다....어쩌면 아비의 뒤를 이어 천하제일검이 될지도 모르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아...여기 있다고...나를 알아봐달라고."
"우월한 핏줄을 이었으니...그정도 지각능력을 갖추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
"......너무 좋아."
곧이어 선우는 태동이 느껴지는 곳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그다음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존재를 맹렬히 호소하고
태아의 움직임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씨익
능소화는 그런 선우를 흐뭇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온전히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뱃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 씩씩한 아이의 활발한 움직임에 말이다.
*************
똑 똑 똑
누군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인가?"
그러자 방 안에 있던 근엄한 인상의 노인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규아입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밖에서 젊은 남자의 음색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들어오거라."
끼이이이익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열린 문틈 사이로
곱상한 인상을 가진 무관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무위장군 이규가 태자태사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간 별고는 없으셨는지요?"
무위장군 이규는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를 건네었다.
"무탈하였다. 너야말로 그간 잘지냈더냐?"
"저 또한 무탈하였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인사치레는 이만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태자태사, 이곽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왜 네놈을 불렀는지 짐작하겠느냐?"
"임무에 관한 현황 보고를 위함이라고 사료됩니다."
"정확하다. 그래, 그럼 어디 보고듣도록 하지. 그간 경화군주를 꾀어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석에서 만날 정도의 친분을 쌓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접점을 만들기는 한 것이더냐?
"............"
이규는 차마 답하지 못하였다.
무엇 하나 이뤄놓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놈! 아무 일도 없으면 어쩌자는 것이더냐! 네놈의 임무가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이더냐?"
그리고 곧바로 호통을 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짜증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일을 벌리라고 보내놨더니
정말 무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짜증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경화군주와 접점을 만들어 그녀를 유혹했어야지! 어찌 아무 일도 없이 무탈하게만 지낸다는 말이더냐!"
태자태사 이곽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경화군주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가문의 후손들 중 가장 잘생긴 저놈을
연줄과 뒷돈을 써가며 무위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어떻게든 그녀를 꾀어내어 황족의 사돈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뤄놓은 게 없다니?
분노가 차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화군주께서 워낙 구설수에 관한 방비가 철저하신터라...외간 남자와 접점 자체를 만드시지 않습니다."
이규는 나름의 변명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네놈을 보낸 게 아니더냐! 지식도 지혜도 없는 대신 번지르르한 면상과 계집 후리는 기술만 잔뜩 갖고 있는 네놈을 말이야!"
그런 이규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경화군주의 그런 성향을 파악하고서
보낸 이가 바로 눈앞에 이규였다.
철벽따윈 가뿐히 넘어서 그녀를 유혹했어야하는 것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태자태부나 태자태보쪽 가문에서 온 이들의 방해공작이 들어오기 하였고..."
"그런 변명따위를 듣자고 네놈을 부른 게 아니다!"
이곽은 잔뜩 찌푸린 채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은 듣고 싶은 건 성공이였지
변명 가득한 실패담따위가 아니였다.
더는 듣기가 싫은 것이다.
"어려워도 접점을 만들어라! 어떻게든 유혹해라! 가문을 위해 네놈의 비루한 몸을 전부 바치라는 말이다!"
이곽은 눈을 희번득하게 부라리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을 하든 말든 내 알바가 아니다. 그저 결과만을 갖고 오라는 말이다!"
".............."
"내가 왜 네놈과 같은 모지리를 무의장군의 자리에 앉혔는지 잘 상기해야할 것이다. 만약 결과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그 자리 또한 보전치 못하리라."
이곽은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문의 축출 또한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자신이 아는 이곽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보는 인간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가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분명 혹독한 대가를 맛보게하리라
"단 두달을 주겠다. 이규."
이곽은 양손가락을 곧게 편 채 입을 떼었다.
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이번에도 결과가 시원치 않다면 넌 끝이다. 알겠느냐?"
이곽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그 물음에 이규는 우렁차게 답을 하였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담은 채 말이다.
"알겠으면 이제 가보거라, 한시가 급하지 않느냐?"
이곽은 곧바로 축객령을 내렸다.
한시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리 하겠습니다. 태자태사 어르신."
꾸벅
이규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곽은 그런 이규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그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쯔즛, 황실의 외척이 되는 게 어찌 이리 힘들다는 말인가?"
이내 그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이곽은 연신 혀를 차기 시작하였다.
황실의 외척 가문이 되는 게
상상이상으로 힘들다고 느껴진 까닭이었다.
'내 삼십 년만 젊었어도..저런 놈에게 이런 중대사를 맡기지 않았을텐데.'
이곽은 속으로 한탄을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만 젊었어도
저런 열등한 놈에게 중대사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삼심대 중반정도만 되었어도
경화군주따윈 얼마든지 꼬실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나온 한탄이었다.
'아쉽구나...아쉬워...나라면 한달 안에 끝장을 봤을텐데..'
그렇게 이곽은 경화군주가 알았다면 크게 노할 망상을 하며 연신 한탄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