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가의 재경각주다."
요랑은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우소희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당...당가!?"
그 말을 들은 우소희는 눈빛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사천당가
청성과 아미를 포함한
사천연합의 실질적인 수장이자
사천 뿐 아니라 중원 전체에 크나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명실상부 무림 최고의 권력집단.
그런 곳에 재경각주라니
경악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거짓말! 어찌 재경각주가..이런 곳에...줄을..."
우소희는 곧바로 부정을 하였다.
당가의 재경각주라면
금옥조를 따로 불러
옷을 지으라는 명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였다.
소형 상단 수준의 재력과 사천 최고의 재봉사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천에 적을 두고 있는 한
당가의 권력자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막대한 권력을 쥔 재경각주가 다른 귀부인들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고 포목점이 열리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왜 줄서 있으면 안돼?"
"당신이 진정 재경각주라면 금옥조를 따로 불러낼 정도의 권력을 갖추고 있을 터! 그런데 어찌 줄을 서서 직접 기다린다는 말인가요!"
"천박하잖아."
요랑은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뭐..뭐라구요?!"
"권력이 있다고 모두가 기회를 독점하는 건 너무 천박하지 않아?"
요랑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이익!"
으드득
그러자 우소희가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요랑의 말이
어쩜 그리 천박한 생각을 하냐는듯한 질타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입 바른 거짓말이야!"
우소희는 발악하듯 언성을 높였다.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있는 권력을 쓰는 게 천박하다니?
저건 못배워먹고 권력없는
서민들의 열등감에서 나온 궤변이었다.
있는 걸 쓰는 게 어찌 나쁘다는 말인가
"우습네."
그녀의 격렬한 부정에 요랑은 코웃음을 치며 입을 떼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심점은 이해하지만 좀더 생각을 해보는 게 어때? 성도에서 당가를 사칭할 정신병자가 있을 것 같아? 당가가 코앞에 있는데?"
성도는 당가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감히 당가를 사칭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덜 덜 덜 덜
요랑의 말을 들은 우소희는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던 까닭이었다
"..........그..그렇다면..정말로?"
이내 우소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직접 당가로 가서 확인해볼래?"
그 모습에 요랑은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아..아니에요...재경각주....믿어요."
"그래? 그럼 이제 알 수 있겠네. 네가 지금 누구에게 시비를 걸었는지 말이야."
"죄송해요.....재경각주..전 재경각주의 지인이라고는 전혀..생각지 못했어요..만약 알았다면 무례를 저지르지 않았을 거예요...용서..해주세요."
우소희는 무척이나 비굴한 표정을 지은 채 용서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요랑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백화상단이 사천 삼대상단이라고 꼽히긴 하지만
사천연합과 당가 상단에 비하면
그 규모가 조족지혈에 불과하였다.
처리하기 귀찮거나
이익률이 낮아 도태된 업무들을
주로 도맡는 백화상단이
중원 전체를 아우르는 두 상단에 비할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게다가 당가는 상단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였다.
무림세가로서 무력과 명성 그리고 황실과의 튼튼한 인맥까지
가히 최고의 권력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 당가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인
재경각주의 지인에게 시비를 걸고
언성을 높이며 폭언하고 폭행까지 하려고 하였다.
두려움이 물밀듯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번 일을 빌미로
당가에서 백화상단에 등을 돌리게 된다면
일감은 끊기게 되는 건 물론
사천에 발조차 디딜 수 없을 정도로
패망하게 될 게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
요랑은 싸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내 친구가 아니였다면 그딴 천박한 갑질이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말실수를 했어요.....잘못했어요.."
우소희는 꼿꼿히 솟아있던 허리를 연신 굽히며 사과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비굴한 모양새였지만
우소희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백화 상단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놓여져있는 데
이딴 허리를 구부리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간사하네. 제 스스로 잘난 줄 알때는 누구보다 오만하고 무례했으면서 말이야."
요랑은 간사하기 그지없는 우소희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렸다.
권력의 노예와 같은 그녀의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진 않은 까닭이었다.
"난 너 같은 인간을 잘 알아. 지금은 비록 큰 권력 앞에선 굴복하겠지만 내가 사라진다면 여전히 같잖은 권력을 휘두르면서 살겠지."
요랑은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세상사를 겪으며
이런 인간은 넘치도록 만나본 그녀였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우소희의 사과가 그저 잠시 굴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반성따윈 전혀 하고 있지않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그 권력 거두어가도록 하지. 다시는 그딴 같잖은 짓을 하지 않도록 말이야."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백화상단이
꽤나 규모가 큰 대형 상단이긴 하지만
권력을 거둬가는 건 자신의 재량으로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자신의 한마디면
당가와 연계된 수많은 세가들과 상단들이
백화상단과 거래를 끊어버릴테니 말이다.
그녀가 가진 권력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대형상단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정리해버릴 정도의 커다란 힘을 말이다
털썩
곧이어 우소희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백화상단의 대부인으로서 넘치는 권력을 유영하던 귀부인의 행동이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일이였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권력을 잃을 공포감이
무릎을 꿇는 수치심을 압도한 까닭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만 해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부탁드립니다."
우소희는 간절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빌고 또 빌었다.
"싫은데?"
하지만 요랑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저런 인성을 가진 여자가
권력을 유지해봤자
다른 이들에게 피해만 줄 뿐이라는 생각이 든까닭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그러자 무릎을 꿇었던 우소희가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기 시작하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잘못했어요! 재경각주님! 제발 살려주세요! 평생 쥐죽은듯이 살도록 할게요! 부디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뭐든 뭐든 할게요! 머리를 박으라면 박겠어요! 달궈진 불판에 머리를 박으라고 하셔도 그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권력을 거둬가지 말아주세요!"
우소희는 서럽게 울며 빌고 또 빌었다.
어떻게든 요랑의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싫어."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아요. 제가 죽일 년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제 남편과 자식들, 백화상단에 적을 두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까지 싸잡아 벌을 받는 건 너무 무리한 처사예요! 분명 굶어죽는 자가 생길 거에요....부디 그들을 봐서라도 저를 용서해주세요...재경각주님."
'이것봐라? 인질을 잡네?'
요랑은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소희의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인 까닭이었다.
그녀는 죄없는 식솔들을 내세워
동정과 자비를 요구하고 있었다.
용서를 구하는 과정조차 비열하기 그지없는 여자인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네. 너때문에 죄없는 이들까지 고통 받을 수는 없으니까."
이내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연좌제라는 건 무척이나 끔찍한 일이었다.
잠시 관련되어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죄를 함께 지게되니 말이다.
"그..그렇다면!"
요랑의 말을 들은 우소희는 반색을 하며 말을 내뱉었다.
잘하면 용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냥 너만 고통 받자."
하지만 요랑이 내뱉은 말은 그녀의 희망을 산산히 조각내어버렸다.
"네에?"
우소희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자신만 고통받자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백화상단주에게 서신을 쓸거야. 너와 이혼하고 완전히 연을 끊지 않으면 상단을 완전히 박살내버릴거라고 말이야."
요랑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만약 그런 제안을 한다면 백화 상단주가 어떤 선택을 할까? 너와 함께 패망을 할까? 아니면 너를 내칠까? 궁금하지 않아?"
요랑은 장난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제발...제발..용서해주세요...제가 잘못했어요.."
우소희는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였다.
만약 그런 선택지가 놓여진다면
남편은 주저없이 자신을 내치고 말 것이다.
그는 무척이나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남자였으니
자신때문에 패망이라는 손해를 감수하진 않을 게 뻔한 것이다.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지. 그게 어른이니까"
요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용서따윈 전혀 없다는듯한 모습이었다.
"안돼요! 그럴 수는 없어요!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쿵
우소희는 바닥에 머리를 찧은 채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간 숨쉬듯 갑질을 하며 막대한 권력을 휘둘러오며 살아온 그녀였다.
권력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목숨을 잃는 게 나은 선택이리라
"안 죽여, 평생 오늘을 후회하면서 비참하게 살아가."
물론 요랑은 그녀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따윈 추호도 없었다.
목숨을 거두는 것보단
비참히 살아가는 게 더 큰 벌이 될테니
"제발 제발 제발!"
우소희는 요랑의 치맛자락을 붙잡은 채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흙과 눈물, 콧물이 범벅이된 추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한 채로 말이다.
"싫어,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톡
요랑은 가벼이 손을 뻗어 그녀의 뒷목을 후려쳤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쾌속하기 그지없는 속도로 말이다.
풀썩
그러자 추하게 애원하던 우소희가 바닥에 고꾸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이다.
"야, 너 일행이지?"
요랑은 우소희의 옆에 있던 강설연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아...예에..."
강설연은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자신까지 엮어 해코지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데려가."
요랑은 눈짓으로 기절한 우소희를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네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설연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언성을 높이며 답을 하였다.
질 질 질
그리고 바닥에 고꾸라진 우소희를 질질 끌며 데려가기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요랑의 눈앞에서 사라지기 위해서 말이다.
이내 그녀들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맨 앞줄에는 요랑과 운설 그리고 옥령만이 남게 되었다.
"옷사러왔다. 이상한 애를 다보겠네. 고작 옷 사는데 갑질을 하고 난리야?"
요랑은 비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러게요. 너무 막무가내라서 깜짝 놀랐어요."
운설은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막무가내인 우소희의 행태에 깜짝 놀란 까닭이었다.
"권력에 취한 소인배들은 뒤없이 행동하기 마련이지요. 그런 행동이 제 목을 조여오는 행동임을 모른 체 말이에요."
옥령은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우린 그런 소인배는 되지 말자."
요랑은 선언하듯 말을 내뱉었다.
"전 권력이 없는 걸요?"
"선우의 부인이되면 권력이 생겨. 왕이잖아."
"...그 아직 부인은..아닌데.."
운설은 얼굴을 붉힌 채 입을 떼었다.
부인이라는 말에 괜스레 부끄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래서 오늘 부인으로 만들기 위해 포목점에 온 게 아닌가요?"
옥령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맞아 맞아! 오늘 예쁜 옷 입고 부인이 되는 거야."
요랑은 해맑게 웃으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였다.
운설을 놀려먹는 데 은근 죽이 잘맞는 두사람이였다.
"우우우.."
운설을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화기애애한 농지거리를 내뱉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이익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포목점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타박 타박
그리고 곱게 차려입은 귀부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사천 최고의 재봉사이자
금가 포목점의 주인, 금옥조의 등장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저희 금가포목점의 흥행은 오직 여러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 덕분입니다. 앞으로 실망시키지 않는 금가포목점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옥조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기 시작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금가 포목점을 기다려준 고마운 손님들을 향해서 말이다.
"그럼 이제 금가 포목점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시간이 되기를 빌겠습니다."
끼이이이이이익
이내 금옥조는 포목점의 문을 완전히 개방되었다.
"와아아! 들어가자!"
"좋은 옷이 있으면 좋겠는데."
"전 그저 골라주시는 것만 입을 게요."
문이 열리자 요랑과 운설 그리고 옥령은 포목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 무척이나 여유롭게 옷을 고를 수 있었다.
한바탕 사단이 난 것을 본 귀부인들이 그녀들이 나올 때까지 금가 포목점에 얼씬조차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세 여인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구매를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