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놈의 새끼들! 내 지금 별동대를 끌고가서 그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백광은 잔뜩 흥분한 채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한 번 끓어오른 분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듯한 모습이었다.
꿀꺽
꿀꺽
그리고 그 모습을 마주한 도지휘동지 고택과 도지휘첨사 황패는 마른 침을 절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분노로 가득한 도지휘사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뭣들하고 있는가! 어서 별동대를 구성하지 않고!"
그들이 멍 때린 채 침만 꼴깍 삼키고있자
백광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는 부하들의 어벙함에 분노가 더해진 까닭이었다.
"저어...도지휘사 어르신....외람되지만...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고함에 정신을 바짝 차린 고택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뭔가!"
"혹여 역도들이 있는 곳이 사천의 면양시인겁니까?"
고택은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어 그에게 물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충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저 역도의 정체가
상소를 올린 당사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면양 향우회라는 악질적인 놈들이지!"
도지휘사 백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을 하였다.
"그렇다면 별동대 소집은 곤란합니다..도지휘사 어르신."
고택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곤란하다니! 지금 항명하겠다는 겐가!"
"그게 아니오라.."
"그게 아니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백광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그에게 되물었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광서성의 군대가 사천성에 일에 함부로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사천성은 엄연히 사천의 군대가 주둔하고
군왕이 다스리는 하나의 영토였다.
그런 곳에 광서성의 별동대를 보낸다는 건
외교적으로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나 다름이 없는 행동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영토를 다스리는 왕들 간의 불화를 낳을 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만히 있자는 말인가!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역도의 무리들이 저리 설치는 것을!"
백광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역도의 무리가 외세를 끌어들여
반란을 모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찌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친왕 전하의 허락을 맡아야하는 일입니다."
고택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영토와 영토가 얽힌 복잡한 문제였다.
일개 도지휘사의 독단으로 일을 진행하기엔
사안이 커도 너무 컸다.
여러모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최고 권력자의 승인이 필요한 것이다.
"........흐음....."
그 말을 들은 백광은 침음성을 흘리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과연 명친왕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여줄지에 대해 고심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거절할 것 같은데..'
명친왕은 소심한 원리원칙주의자였다.
그 성격에
별동대를 구성하여
면양 향우회의 역도들을 잡아들이는 일을
허락할 것 같진 않았다.
면양은 엄연히 사천성에 소속된
다른 왕의 영토였으니 말이다.
".......전하 몰래 일을 진행하면...안되겠지?"
"사안이 너무 큽니다. 독단적으로 일을 벌였다간 책임자 여럿의 목이 날아갈겁니다."
고택은 상당히 고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독단으로 처리하기엔 사안이 너무 컸다.
만약 멋대로 일을 진행시켰다간
도지휘사인 백광은 물론
도지휘동지인 자신과 도지휘첨사 황패
그리고 별동대까지
여럿의 목이 날아갈 게 뻔하였다.
".......목이 날아간다라.."
백광은 침음성을 흘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였다.
원리원칙주의자인
명친왕 입장에선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사안을
멋대로 처리하는 부하들이
좋게 보일 리 없을테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군."
곧이어 백광은 결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전하를 뵈어야겠어."
그리고 이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주군이자
광서성을 다스리는 지배자
명친왕이 머무르고 있는 궁궐을 향해서 말이다.
고택과 황패는 그런 백광의 뒤를
천천히 따르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
어전 중앙
심약한 인상의 중년인이 옥좌 중앙에 앉은 채 커다란 전서를 서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꿀꺽
그리고 광서성의 도지휘사 백광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채 얌전히 기다렸다.
중년인이 전서를 모두 읽어내려가기를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과연, 도지휘사말대로 면양향우회라는 자들이 주제를 넘어도 한참을 넘었구나. 설마하니 짐을 끌어들여 군왕과 직접적으로 마찰시킬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심약한 인상의 중년인, 명친왕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면양 향우회의 뻔하디 뻔한 속내가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제놈들 입맛에 맞게 왕을 멋대로 휘두를 생각을 하다니
어찌 이리 불경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놈들의 이익을 위해 광서성과 사천성을 직접적으로 마찰시킬 생각을 하다니! 이는 역모에 가까운 짓이옵니다! 그놈들을 직접 잡아들여 나라의 본을 바로 세워야합니다!"
백광은 옳다구나 동의를 하며 언성을 높이며 성토하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그 시건방지고 주제 모르는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야한다고 말이다.
"전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그럼 당장에라도 별동대를 조직하여 면양 향우회, 그 역적놈들을 모조리 잡아 목을 쳐버리겠습니다!"
사실 이미 별동대를 추려놓은 상태였다.
명친왕의 허락 한마디면 모든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다.
"명을 내리지 않는다."
그때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백광의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단호한 거절을 들은 백광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듯이 말이다.
"전..전하!?..어찌 그 역적들을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말입니까!?"
백광은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분명 면양 향우회의 행태에 분노를 하였거늘
어찌 별동대 소집을 명하지 않는단 말인가
"면양 향우회가 주제넘는 역도 무리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사천성에 소속된 자들이 아니던가? 그들을 어찌 광서성의 군대가 직접 잡아들인다는 말인가? 이는 엄연히 권한 밖의 일이다."
명친왕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면양 향우회가
사천성에 소속된 이상
이는 엄연히 광서성 권한 밖의 일이었다.
함부로 간섭할 수도
간섭해서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전하는 이는 사천성만의 일이 아니옵니다! 친왕 전하를 끌여들여 마찰을 일으키려고했을 때부터 이미 광서성과도 충분히 관여가 된 일이옵니다."
"그렇다한들 함부로 나설 순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군왕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를 일이니."
명친왕의 태도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도지휘사의 말 중 틀린 말은 없었다.
자신을 끌여들여 제 입맛대로 휘두려고 한 이상 광서성과도 마냥 관계 없다고 할수도 없었다.
일개 토착세력 주제에 감히 왕을 기만하려고 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선뜻 나설 수는 없었다.
혹여라도 멋대로 군사를 투입했다가
군왕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 역도 무리를 직접 잡아 바친다면 오히려 좋아하실겁니다!"
"입장을 바꿔보게. 도지휘사. 만약 사천의 군대가 광서성에서 멋대로 설친다면 자네 입장은 어떻겠는가?"
명친왕은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리 좋진 않을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리고 군왕 또한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천의 도지휘사에게 귀띔이라고 주도록 하게. 우리 역할은 그거면 충분하네. 그 이상은 주제를 넘는 일이야."
명친왕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곤란한데..'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백광은 상당한 곤란함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전혀 없는듯 느껴진 까닭이었다.
어떻게든 군왕에게 은혜를 갚고 싶은 백광의 입장에선 곤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하. 다시 한 번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재고라? 짐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겐가?"
"....이번 일은 놓쳐선 안될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라.....자세히 말해보게. 도지휘사."
"전하께서도 아시다피시 광서성은 군왕 전하께 크나큰 은혜를 입은 상황입니다. 만약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대응한다면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백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리 된다면 사천성과의 관계 또한 더욱더 돈독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은혜를 받은 입장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입장이 될테니까요."
"은혜를 갚아 동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라..."
명친왕은 고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침음성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설득력있는 백광의 말에
머릿속으로 저울을 재보기 시작한 것이다.
'쇄기를 박아야한다.'
그가 고민하자 백광은 눈을 빛냈다.
자신의 말이 어느정도 먹혀들어간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군왕 전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무인이자 평민의 신분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뿐만아니라 민심은 물론 폐하의 총애까지 한몸에 받고 있는 몸이지요. 그런 군왕 전하와 돈독한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어느정도 위험부담은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감당할 만한 위험부담이라고 생각하는가?"
"애초에 별동대의 의도 자체가 사천과 광서를 이간질하려는 역도 무리를 잡아들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직접 잡아바치며 비위를 맞춘다면 크게 기분나빠하진 않을 것입니다."
"흐으음...확실히 의도 자체는 그리 나쁘진 않긴하지."
"그리 이런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군왕 전하와는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입니다. 제가 직접 나서 별동대를 지휘한 후 역적 무리들을 바친다면 크게 문제 삼진 않을 것입니다."
백광은 눈을 빛내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기절한 군왕을 직접 보필하며
안면을 튼 백광이었다.
직접 나서 상황을 설명한다면
마냥 기분 나빠하진 않을 것이다.
'겸사겸사 동상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더불어 직접 건립한 동상에 대해 담소까지 나눈다면
분명 크게 기뻐하리라
"도지휘사."
명친왕은 그런 백광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말씀하십시오! 전하."
"자신 있는가? 자칫 잘못하다간 사천성과 상당한 불화가 생길 수도 있네."
"맡겨만 주신다면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백광은 쩌렁쩌렁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감을 목소리로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좋다. 내 그대를 믿기로 하지."
그리고 이내 명친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가장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한
믿음직한 부하가 저리 자신있게 말한다.
어찌 군주된 입장에서
그 자신에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는건.."
백광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명친왕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도지휘사 백광은 들어라!"
곧이어 명친왕의 위엄 어린 목소리가 어전 전체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면양 향우회라는 역도의 무리가 짐은 물론 사천의 왕조차 농락하며 제 입맛대로 휘두르려는 우를 범하였다. 이는 엄연히 나라의 본本이 흔들리는 일이며 크게 본다면 역모에 해당하는 일이다. 어찌 왕이 된 입장에서 역도의 무리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명친왕은 싸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당장 별동대를 소집하여 역도의 무리들을 잡아들이고 제놈들의 주제를 알게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털썩
그 말을 들은 백광은 곧바로 무릎을 꿇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무척이나 호쾌스럽게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명친왕은 흡족스러운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대를 믿겠다. 백광."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뒷말을 덧붙였다.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전하!"
백광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하였다.
흔쾌히 자신의 제안을 수락해준
소심한 주군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이다.
.
.
.
.
그날 광서성에선
도지휘사 백광을 비롯한
별동대가 길을 나서게 되었다.
최악 역도의 무리
면양 향우회가 있는
사천의 면양을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