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19화 (1,120/1,419)

광서성

"으럇!으럇!"

"어기어차! 어기어차!"

수십 명의 인부들이 각기 다른 구호에 맞춰 두터운 밧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하였다.

온몸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날 정도로

밧줄을 강하게 옥죈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힘을 주었을까

쑤우우우욱

곧이어 밧줄에 연결된 커다란 조형물이 바로 세워지며 위용넘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질끈 동여맨 영웅건

날카롭게 표현된 준미

커다란 흑요석이 박혀진 양안

베일듯 오똑한 콧날

선 굵은 턱선

화려한 무복

그리고 오른 손에 굳게 쥐여져있는 커다란 검까지

영웅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려지는 위용넘치는 모습의 동상이었다.

"드디어 세워졌다!"

"와아아아아아~!! 영웅의 현신이다!"

"와아아아!"

동상이 세워지자 인부들은 물론 주위에 구경을 하고 있던 광서성의 백성들까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영웅상 설립이라는 대사건을 축하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멋지구나."

한 편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동상을 바라보던 광서성의 도지휘사,백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위용 넘치게 우뚝 솟은 동상을 마주하니

그간의 노고가 그대로 보상받는듯한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하하하, 멋질 수밖에요, 기념비적인 동상이라며 도지휘사께서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옆에있던 도지휘동지, 고택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내뱉었다.

첫 동상만큼은 그 어떤 동상과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없이 만들겠다며 벼르고 벼르던 도지휘사였다.

코끝 각도가 마음에 들지 않다며 갈아엎고

눈썹이 준미하지 않다면 갈아엎고

턱선이 마음에 들지 않다며 갚아엎으며

몇 날 며칠이고 장인들을 쪼아대고 쪼아댔던 것이다.

그정도 심혈을 기울였거늘

어찌 동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장인들과 인부들이 이뤄낸 것을."

백광은 손사래치며 말을 내뱉었다.

"그 장인들과 인부을 닦달한 장본인이 바로 도지휘사 어르신입니다."

"그리 말하니 뭔가 악덕한 고용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구만."

백광은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냥 악덕하진 않았습니다, 돈은 제대로 챙겨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돈 챙겨준 것 외엔 무척이나 악덕했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만."

"......솔직히 좋은 고용주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도지휘동지 고택은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피고용인입장에선

완벽주의자만큼 고달픈 고용주도 없는 법이었다.

마음에 들 때까지 같은 업무를 몇 번이고 반복시키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뭘 그리 악덕했다고?"

백광은 억울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다소 완벽을 추구하긴 하였지만

악덕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모질게 군 것 같진 않았다.

대체 무슨 근거로 자신을 악덕한 고용주로 몬다는 말인가

"코끝 각도가 마음에 안든다고 한바탕 갈아엎지 않으셨습니까?"

"본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영웅의 코끝은 그리 낮지 않았네!"

"코끝 각도 수정때문에 동상 전체를 갈아엎었습니다. 어르신."

다 만들어놓고

동상을 세우기직전

코끝 수정을 요구했던 도지휘사였다.

결국 동상 전체를 완전히 갈아엎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게다가 그다음엔 팔다리가 짧다며 또다시 동상 전체를 갈아엎게 하셨습니다."

도지휘동지, 고택은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꽤나 악덕했던 백광의 요구들을 말이다.

"그럼 불완전한 영웅을 내보이자는 말인가?"

백광은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기념비적인 첫 동상 건립이었다.

이왕이면 완벽한 모습을 내보여야하는 게 아닌가

어느정도 시행착오와 재건립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였다.

"도안 작성시...수정 사안을 요청해주셨으면..좀더 상황적으로 괜찮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상 건축되고나니 이상한 걸 낸들 어쩌겠나?"

백광은 어쩔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도안과 실물이 다른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였다.

이건 엄연히 석공의 잘못이 아닌가

"어쨌든 충분히 평판이 나빠질 정도의 변덕을 내보이신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받아들이시지요. 도지휘사 어르신."

"쯧."

도지휘사 백광은 가벼이 혀를 쳤다.

단호하게 말하는 고택의 말을 들으니

빼도박도 못한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어쨌든 난 만족하네, 비록 내 평판은 깎여나갔지만 이렇게 멋진 결과물이 완성되지 않았는가?"

백광은 양손을 뻗어 검을 늘어뜨린 위대한 영웅의 동상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과적으론 꽤나 만족스러운 성과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뻘쭘한가 보네.'

그 모습에 고택은 가벼이 웃음을 지었다.

백광의 말돌리는 모양새가 꽤나 우습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이래저래

까탈을 부린 게

꽤나 뻘쭘한듯 하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곧이어 고택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상사의 뻘쭘함을 받아넘기는 것이야말로

눈치 빠른 부하의 몫인 법.

그는 노련한 부하였다.

"어떤가? 도지휘동지, 전하께서 동상을 보신다면 충분히 기뻐하실 것 같은가?"

"기뻐하다마다요. 분명 도지휘사와 백성들의 노력을 크게 치하하실 것입니다."

도지휘동지, 고택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후후후,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구만."

백광은 기쁜듯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노력을 알아주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는 법

치하한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이 차올랐다.

"그나저나 도지휘사 어르신, 동상을 건립한다고 상당한 예산을 빼내썼는데...괜찮은 겁니까?"

그러자 짐짓 고택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동상이 건립된 것도 좋고

질적으로 상당히 잘 뽑힌 것도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상당한 예산이 들어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동상 건립에 성의 예산을 상당수 끌어다 쓴 까닭이었다.

"괜찮네, 이미 주군께 허락받은 일이 아니던가?"

백광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동상 건립에 관해선

이미 광서성 최고 실권자인

명친왕의 허락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구태여 눈치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예상보다 예산이 더욱더 많이 들어가지 않았습니까?....이 사실을 알게되신다면 분명 불호령을 내릴 게..."

"괜찮네, 괜찮아, 불호령 한 번 맞으면 되는 거 아닌가?"

백광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너무 대범하신 거 아니십니까?"

"대놓고 뭐라고 못할 걸 잘 알기 때문이지, 생각해보게나, 친왕 전하를 대신하여 광서성을 구한 군왕 전하의 동상일세. 그걸 세우는데 돈 좀 썼다고 대놓고 뭐라 하겠는가? 그냥 눈치 좀 주고 끝내겠지."

광서성에 괴인이 학살을 자행하던 날.

광서성을 영토로 삼고 있는

실질적인 지배자

명친왕은 무엇도 하지 못하였다.

백성도 지키지도

학살을 자행하던 괴인을 쫓아내지도

못한 채

그저 왕실에서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던 중

군왕의 예기치 못한 도움을 받게 되었고

광서성 전체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

감히 갚는 것조차 힘든 어마어마한 은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은혜를 받은 상황에서

동상 건립에 들어간 예산을 가지고 딴지를 걸거나 이런 저런 말을 한다면

영 면이 서지 않게 될 것이다.

광서성을 구한 영웅을 기리는 게 그리 아깝냐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백광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예산을 펑펑 쓰긴 하였지만

어떠한 제재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간 친왕 전하의 눈밖에 날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

도지휘동지, 고택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친왕입장에선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할 게 분명하였다.

광서성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군주보다

다른 왕을 더욱더 높게 섬기다니 말이다.

"하하하하하, 그럼 내 은퇴와 자네의 승진이 빨라지겠구만."

그 말을 들은 백광은 재밌다는듯 너털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눈밖에 나는 것따윈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모습이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너무 걱정말게, 친왕 전하께서 약간 소심하시긴 하지만 고작 이런 일로 신하를 내칠 분은 아니니 말이야."

백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명친왕은 쪼잔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태생자체가 썩어빠진 폭군이나 암군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왕이었다.

예산을 마구잡이로 쓴 자신을 원망할 지언정

내치거나 쉽사리 거리를 두는 옹졸한 왕은 아닌 것이다.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고작 이런 일로

눈밖에 날 일따윈 결코 없을 테니

"전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시군요."

도지휘동지, 고택은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내 평생을 모신 주군이 아닌가? 이정도 믿음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세."

백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참으로 멋진 군신 관계입니다. 어르신."

"하하하하하, 멋진 신하 덕이 아니겠는가?"

도지휘사, 백광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자화자찬하기 시작하였다.

칭찬에 상당히 약한 모양새였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있을 때였다.

"도지휘사 어르신! 도지휘사 어르신!"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백광의 귓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휘익

한참 웃던 백광과 고택을 그 다급한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뜀박질을 하며 달려오고 있는 도지휘첨사, 황패의 모습을

"도지휘첨사?"

그 모습을 본 백광은 의아한듯 입을 떼었다.

"하아...하아..여기 계셨군요...어르신."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도지휘첨사, 황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급히 뛰어오는 겐가?"

그 모습에 백광은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다급히 뛰어온 그의 의중이 심히 궁금한 까닭이었다.

"....면양시에서....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면양시? 면양시면 사천에 있는 곳을 말하는 겐가?"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별안간 왠 전서구가 날아온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전하께 올리는 상소가 날아온듯합니다."

"상소가 말인가?"

도지휘사 백광의 의문이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사천성 내부에 있는 면양시에서

광서성의 명친왕에게 올릴 상소가 날아오다니?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상소를 가져왔는가?"

"여기있습니다."

백광의 물음에 도지휘첨사 황패는 기다렸다는듯 품 안에서 돌돌 말린 전서 두루마리를 꺼내들어 건네주었다.

덥석

백광은 그가 건낸 두루마리를 곧바로 받아들었다.

그다음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명친왕에게 직접 올린다는

상소의 표식을 말이다.

"확실히 상소문이군."

"그렇습니다."

"내용은 확인하였는가?"

"도지휘사 어르신께 가장 먼저 보여야할 것 같아.....보이는 즉시 들고왔습니다."

"좋은 판단일세, 도지휘첨사."

백광은 가벼이 황패를 치하였다.

촤르르르륵

그리고 둘둘 말려있는 전서를 그대로 펼치기 시작하였다.

내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어디 보자...면양 향우회에서 보내온 상소군.....내용은...."

그리고는 천천히 눈으로 전서 속 내용을 샅샅히 훑기 시작하였다.

광서성의 명친왕에게

구태여 상소를 올린 저의를 판단하기 위해

그렇게 얼마나 읽어내려갔을까

부들 부들 부들 부들

곧이어 백광은 전서를 쥔 양팔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감히.....감히....감히.."

으득 으득 으드득

더불어 연신 이를 갈며 눈에 핏대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분노가 전신에 휘감겨져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르신?"

"....괜..괜찮으신겁니까?"

그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도지휘동지, 고택과 도지휘첨사, 황패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도지휘동지, 도지휘첨사."

도지휘사, 백광은 싸늘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신 고택!"

"신 황패!"

그러자 고택과 황패는 득달같이 답을 하였다.

알 수 없는 싸늘함에 군기가 바짝 들어간 까닭이었다.

"별동대를 짠다."

"별동대를...말씀입니까?!"

"그게..무슨..?"

"무력적으로 가장 강하고 은밀한 이들로 추리도록.."

백광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어...그.....어떤 이유인지.."

고택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반역이다."

백광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네에에!?"

"예에!?"

그 말을 들은 고택과 황패의 눈이 화등잔만한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경악을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아주 몹쓸 역도들이 존재하는구나. 내 그 역도를 쓸어버려. 나라의 본本을 바로 세우리라."

곧이어 백광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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