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앙
"제기랄!"
커다란 책상이 울림과 동시에 욕지거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면양시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복리 증진 및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면양시 최대 이익집단
면양 향우회
총회장 우광의 분노 어린 일갈이었다.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곧이어 우광은 앞쪽에 시립해있는 거한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말이다.
"내가 분명 수도 이전을 백지화시키라고 말했을 텐데!"
우광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일찌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도 이전을 백지화시키라는
명을 내렸던 우광이었다.
면양시 전체를 주름잡는 향우회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고 말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번복은 커녕 관청 소유의 땅과 건물마저 헐값으로 내놓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면목 없습니다...회장님."
그러자 거한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무척이나 송구하다는듯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면목 없다는 개소리 말고! 이유를 말해! 왜 백지화가 안되는 거야! 왜!"
".......아무래도 윗선에서 단단히 마음을 먹은듯합니다...아무리 용을 써도 도저히 흔들리지 않더군요."
민중들을 쏘삭이는 건 물론
사람까지 써가며 수많은 탄원서를 제출해도
관청 앞에서 시위를 해도
은근 슬쩍 뇌물을 찔러보아도 소용없었다.
번복따윈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넋놓고 가만히 있자는 게더냐? 아앙? 이대로 우리 자랑스러운 고향, 면양시를 도태된 패배자들의 도시로 만들자 이 말이더냐!?"
"그..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지화시켜야 할 거 아니야! 관청 앞에서 드러눕든! 단발을 하든! 분신 자살을 하든! 뭐든 해서 강철과 같은 애향심을 보여줘야할 거 아니야!"
이런 일은 극단적이면
극단적일 수록 효과를 발하기 마련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참혹한 꼴을 내보이게 된다면
민심을 걱정한 관청에서도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될테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단가? 네놈들이 꾸물거리는 동안 관청쪽에선 소유하고 있는 땅과 건물을 헐값에 내놓았다! 수도를 옮길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광은 마음에 들지 않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이대로 우리 고향을 잃을 셈이더냐!"
"아닙니다!"
"아니면 새꺄! 당장 관청에 가서 드러눕든 탄원서에 깔려죽게 만들든 뭐든 하란 말이야!"
"알..알겠습니다!"
거한은 언성을 높이며 큰 소리로 답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총회장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말이다.
쾅
곧이어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향우회 총회장 우광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멍청한 새끼들!"
홀로 남은 우광은 이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거한들의 행태에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시간은 유한하거늘
어찌 저리도 여유를 부리며
멍청하게 군다는 말인가
멍청한 놈들이 성실하지 않은 것만큼
꼴불견도 없었다.
'우석, 저 자식은 청년회장이라는 놈이.'
무엇 보다 한심한 건
거한들의 대장이자 청년회장인
우석이었다.
다른 놈들이 멍청하면
제놈이라도 야무져야하거늘
어찌 같은 수준으로 논다는 말인가
'청년회장 자리엔 좀더 야무진 놈을 앉혔어야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청년회장이라는 감투까지 씌워주며
나름의 특혜를 주었건만
아무래도 그게 조직 입장에선 독이 된듯 하였다.
저렇게 제 할 일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번에 하는 걸 봐서 잘라버리든 가 해야겠어.'
이내 우광은 굳은 결심을 하였다.
앞으로 우석이 행보에 따라 청년회장이라는 감투를 씌울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무능력한 인간은
아무리 아들이라도 용서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다짐을 하던 그 순간이었다.
똑 똑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게 누군가?"
그 소리에 우광은 짐짓 위엄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녀, 계향이옵니다."
면양 향우회의 사무보조
계향이었다.
"크흠..그래 무슨 일이더냐?"
우광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내뱉었다.
"회에 지역 조합장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지역 조합장이?"
우광은 의아한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어디있느냐?"
"일단 접객실에 뫼셔두었습니다."
"잘했다. 내 접객실로 곧 간다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계향은 공손한 어투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빠르게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지역 조합장, 그 너구리 같은 인간이 별안간 무슨 일이지?'
그녀가 자리를 비우자 우광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통보조차 없이
별안간 찾아온 지역 조합장에 대한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모르겠군.'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마땅한 이유가 유추되진 않았다.
기별없이 찾아올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였고 말이다.
'일단 만나봐야겠군.'
스르륵
곧이어 우광은 몸을 일으켜세우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접객실을 향해서 말이다.
*********
끼이이익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우광이 접객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하, 어서오게, 형제여."
그러자 접객실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호걸이 너스레를 떨며 그를 반기기 시작하였다.
면양시 지역 조합장
홍학철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자네 형제였지? 지역 조합장?"
"하하하하,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랐으면 그게 곧 형제가 아니겠는가?"
홍학철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랑 기준이 다르군, 난 피를 나눠야 비로소 형제 취급을 하니 말이야."
물론은 우광은 그런 홍학철의 호탕함을 받아줄 생각따윈 없었다.
지역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사이에
무슨 형제란 말인가
"참으로 까다로운 조건이구만. 그런 조건만 내세운다면 향우회는 도태될 걸세. 나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지. 흠흠."
그 까칠함이 민망했던 것일까
홍학철은 가벼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그를 가여이 타박하였다.
"흥, 근본도 없는 놈들로 머릿수를 채우는 지역 조합처럼 운영할 바엔 차라리 도태되고 말지."
"근본이 없다니!"
홍학철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어디 틀린 말 했나? 요즘 외지인도 받아주고 있다며? 지역 조합이라는 이름이 아깝구만."
"모두 면양으로 이사를 온 자들일세. 한 가족이지 외지인이 아니란 말일세!"
"흥, 몸을 옮겼다고 어디 고향이 바뀔 것 같나? 근본없어. 근본이."
우광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내뱉었다.
"참으로 말을 심하게 하는구만, 향우회장."
"맞는 말을 했을 뿐일세."
"되었네, 용건이나 꺼내겠네, 더 말 섞어봤자. 머리만 아플테니."
"간만에 생각이 일치하는군, 그래, 왜 왔는가? 우리가 다짜고짜 만날 정도로 친하진 않을텐데 말이야."
우광은 의혹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 이쪽에서도 바라던 바였다.
저 능구렁이와 더 말섞기 싫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으니
"면양 향우회에 공식적인 협력을 요구하러왔네."
그 물음에 홍학철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웃음기를 완전히 지워버린 채 말이다.
"협력을? 지역 조합이? 향우회에?"
우광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향우회와 지역조합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래야 섞일 수 없는 집단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전혀 없던 까닭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협력을 요구하다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황이 상황이지 않는가? 이럴 때 협력하지 언제 협력하겠나? 같은 향우끼리 말이야."
홍학철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도 이전때문이군."
"맞네, 자네도 이번 사안에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말이야."
"흥, 향우회의 힘만으로 충분하네. 지역 조합의 협력따윈 필요없다는 말일세."
우광은 콧방귀를 뀌며 말을 내뱉었다.
"너무 허세부리지말게, 향우회 측에서도 지금껏 별소득 없었다는 걸 잘알고 있으니."
홍학철은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건 지역 조합도 마찬가지일텐데?"
"그러니 힘을 합치자는 것일세. 하나보단 둘이 머리를 맞대는 게 나을테니."
홍학철은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향우회와 지역조합이 힘을 합친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말인가?"
"달라지고 말고, 세가 커진다면 관부쪽에서도 우리 의견을 마냥 무시하진 못할 걸세. 게다가 향우회와 지역 조합에서 돈 받아처먹은 관리가 수두룩하다는 걸 자네도 잘알지 않은가? 두 세력이 힘을 합치면 그깟 수도 이전따윈 얼마든지 백지화할 수 있을 걸세."
홍학철은 확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머릿수가 많아지면
지금보다 좀더 체계적이고
좀더 과격한 반발과 항의가 가능하였다.
그전보다 더욱더 효과적으로 반대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흐음......."
그 제안에 우광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과연 지역 조합장 홍학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머릿수가 우세진다면
여론 조작을 비롯한
각종 방해공작이 더욱더 수월해지는 건
자명한 사실이기도 하였고
지금껏 양 조직에서 기름칠을 해둔 고위 관리들 인맥까지 동원한다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너구리같은 인간과 손잡는 게 영 마뜩치 않는데......'
걸리는 건 오직 하나였다.
하필 잡아도 지역 조합장인 홍학철과 손을 잡아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의심과 꿍꿍이 차고 넘칠정도로 많으며
속이 음흉하기 짝이 없는 그와 선뜻 손잡는 게 무척이나 꺼려지는 것이다.
'어떻게 한다.'
고민이 깊어졌다.
자존심을 살짝 포기하고 손을 잡는 지
아니면 자존심대로 밀고 나가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하였을까
".....마땅한 계획이라도 있는 건가?"
이내 우광은 은근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계획이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있고 말고."
그 물음에 홍학철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꼬장꼬장한 우광이 자신과 협력하려한다는 걸 인지한 까닭이었다.
"그럼 어디 말해보게, 협력 여부는 그 후에 결정하지."
일단 지껄여보게 할 참이었다.
자신이 만족할 만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지 말이다.
"일단 탄원서를 제출토록 하지.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말이야."
홍학철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협력하고 한다는 일이 고작 탄원서를 보내는 일인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뭔가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실상 까고보니 고작 탄원서 투하라니
"차라리 탄원서로 관청을 주저앉게 만들자고 하지 그러나?"
우광은 한껏 비꼬며 말을 내뱉었다.
"탄원서를 산더미처럼 보내 관청을 주저앉게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지만....그보다 좋은 방법을 알고있지."
홍학철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좋은 방법?"
"탄원서를 향우회와 지역 조합이 각 각 줄을 대고 있는 친왕 전하께 보내는 걸세."
순간 우광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홍학철의 말에 당혹스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군왕의 결정일세. 그걸 거두려면 그만한 직위를 가진 이를 끌어들여야하지 않겠나?"
"군왕의 영토에서 일어난 일에 친왕을 끌어들이자는 말인가?"
"말하자면 그렇지."
"미쳤군."
사천을 엄연히
군왕의 영토였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다른 왕을 끌어들이다니
어찌 미쳤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이지."
"군왕이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럼 이대로 면양을 패배자들의 도시로 만들 셈인가?"
"......그건..아니지만.."
"친왕들을 끌어들인다면 군왕도 승복할 수밖에 없을 걸세. 황실을 구한 영웅이긴 하지만 품계로 따진다면 친왕에 비해 끗발이 밀리는 건 사실이니까."
"..........흐음.."
우광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홍학철이 제시한 방법이
너무나 극단적인지라
한층 고민이 된 까닭이었다.
'잘못하다간 조직이 결단날 수도 있다.'
처신을 잘못했다간
조직이 완전히 결단이 날 수도 있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창 고민하던 차
"실망이군, 자네의 애향심이 이리도 하찮았다니.."
홍학철이 실망 그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같잖은 도발말게,"
"도발이 아니라 사실이지 않나? 조직이 결단 날까 두려워 결단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니...1대 향우회장이신 자네 조부께서 이 광경을 저승에서 보신다면 땅을 치며 통곡을 할 걸세."
"말 함부로 하지 마라. 홍학철."
우광은 잔뜩 성난 표정을 지은 채 으르렁 거리기 시작하였다.
"내 같잖은 도발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면 사내다운 결정을 하게. 어줍잖은 계산하지 말고."
홍학철은 뜨겁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우광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
우광은 그런 홍학철의 눈빛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좋아, 하지."
그리고 이내 결심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탁월한 선택이야."
그 말을 들은 홍학철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두 거물들을 협력 관게를 구축하게 되었고
그날 면양시의 하늘에선
두 개의 전서구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힘찬 날개짓을 펄럭이며 길을 떠나게 되었다.
꽤나 두터운 전서를 발목에 묶은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