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10 1111. 이실직고하다.
"흐으음.."
깊은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탁 탁 탁 탁
더불어 앞발을 정신없이 동동 구르기 시작하였다.
누가봐도 불안에 떠는듯 모양새였다.
그렇게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
질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두드릴듯한 기세로 말이다.
뚝
하지만 기세와 달리 문이 두드려지는 일은 없었다.
뻗어진 주먹이 문 앞에 그대로 멈춰서버린 까닭이었다.
'.......하아.....'
선우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을 두드리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저 가벼이 힘만 주면 되는 것을
마음 속에 작은 망설임이
손의 힘을 느슨하게 만들다못해
그대로 빼버린 것이다.
문조차 두드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분명 별말 없을 거야....그저 자애롭게 웃어주겠지...그녀는..그런 여자니까.'
문을 두드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해서
무언가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음으로 반겨주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자애롭게 미소 지어줄테니까 말이다.
'...차라리 욕이라도 했으면 좋을 것을...'
차라리 욕을 하고 매도하고
비난을 하였다면
이렇게까지 고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속시원하게 욕을 얻어먹고
이리저리 빌면 될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리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들을
가슴만큼이나 넓다란 마음으로
이해해주는 착해빠진 여인이었으니
'.......들어가기 참으로 힘들구나.'
힘들었다.
그 착해빠진 여인에게
또 다시 몹쓸말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미안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대로 돌아갈 수도
서성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와 제대로 마주하고
몹쓸 말을 해야한다.
그게 그녀와 자신의 약속이였으니.
꿀꺽
마른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똑 똑 똑 똑
그리고 주먹을 들어올려
문을 천천히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균일한 박자와 속도로 말이다.
"들어오세요."
그러자 옥구슬이 굴러가는듯 맑고 청명한 울림이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덥석
곧이어 선우는 문고리를 쥔 채 그대로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끼이이이익
그러자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문틈사이로 한 명의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고귀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아리따운 여인.
"어서와요, 선우."
옥령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선우를 반겼다.
"누군지 묻지도 않고 이렇게 막 들어오라고 해도 되는거야?"
"이미 선우인지 알았는걸요? 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이고 있었잖아요?"
옥령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문을 두드리기 전부터
선우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던 차였다.
구태여 누군지 물을 필요는 없던 것이다.
"나름 기척을 줄인다고 줄였는데.....그새 들켰나보네.."
선우는 민망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형잠영술까지 사용해
기척을 최대한 줄여놨건만
아무래도 쓸모없는 일이였던듯 하였다.
이렇게 빼도박도 못하게 들키는 걸 보면 말이다.
"무형잠영술을 쓰시면 흐름이 미묘하게 뒤틀려지거든요. 인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
옥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형잠영술은 완벽에 가까운 은신술이였지만
그녀 정도되는 고수가 감지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묘하게 뒤틀리는 흐름을 인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좀더 보강해야겠네....흐름까지 완벽하게 숨을 수 있도록 말이야."
무형잠영술은 완벽에 가깝긴 하였지만
무결하진 않은듯 하였다.
이리 간단히 간파당하는 걸 보면 말이다.
좀더 보강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굳이 그러실 필요있나요? 흐름을 볼 수 있는 이는 중원 전체를 뒤져봐도 얼마 되지 않을텐데......기껏해야 선우의 여인들 뿐일걸요?"
만물의 흐름을 느끼고 볼 수 있다는 건
몸이 자연체에 가까워졌다는 걸 의미하였다.
현경 중에서도 중경에 가까운 성취를 이른 이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중원 전체를 놓고본다해도
그 경지에 도달한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세 본다쳐도
대다수가 선우의 여인들뿐이리라
"그래서 보강하려는거야."
선우는 즉각적으로 답을 하였다.
다른 사람보다
마누라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선우였다.
자신만의 사생활을 위해서라면
필수적으로 보강할 필요가 있으리라
"숨기고 싶은 게 많으신가봐요?"
"원래 비밀은 남자를 더욱더 남자답게 만들어주는 법이거든."
선우는 태연스레 어디서 들어본 대사를 각색해 들려주었다.
"누가 한 말인가요?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내가 지어냈어."
선우는 당당히 말을 내뱉었다.
"후후훗..가끔 보면 선우는 엉뚱한 구석이 넘치는 것 같아요."
"그게 또 매력 아니겠어?"
선우는 뻔뻔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후훗.....딱히 부정하진 않을 게요."
그 뻔뻔함이 귀엽게 느껴졌던 것일까
옥령이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긍정을 표하였다.
가벼운 농을 기점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화기애애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마치 이제 막 혼인한 신혼부부와 같은 화기애애한 기류가 말이다.
"그것보다 선우, 제 처소에는 무슨 일로 오신건가요?"
옥령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한창 수련관에
들어가있을 선우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이유가
심히 궁금한 까닭이었다.
"보고싶어서..왔다고 하면...안믿겠지?"
"아니요, 믿어요.."
옥령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답을 하였다.
"..문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이던 놈이 그런 말을 하는데 믿겠다고?"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문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이던 게
전부 들킨 상황이었다.
뭔가 껄끄러운 일로 찾아왔다는 걸
들키고만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설득력없는 말을 믿겠다니
어찌 당혹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우가 제게 거짓말을 할 리 없잖아요?"
옥령은 확신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너무 사람을 믿는 거 아니야? 너 그러다 사기당해."
"사람이 아니라 선우를 믿는 거예요. 그리고 선우에게 당하는 사기라면 웃으며 당해줄 수도 있답니다."
옥령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성녀야..'
그 말을 들으니
그녀의 등뒤에 눈부신 후광이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성녀처럼 말이다.
".......사실 용건이 있어서 왔어..."
이내 선우는 순순히 바른대로 실토를 하였다.
무언가 용건이 있어 찾아왔음을
"그런가요? 용건이 무엇인데요?"
옥령은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껄끄러울 거야."
선우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옥령에게 하려는 말은
그녀 입장에선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러니 걱정이 되었다.
괜스레 신경쓰이게 만들고 상처를 주게 될까봐 말이다.
"괜찮아요. 말해주세요."
옥령은 자애로운 모습으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
하지만 선우는 쉽사리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옥령의 자애로운 모습을 마주하니
한층 더 가슴이 쿡쿡 찔려온 까닭이었다.
"흐음...말하기 어려우신가보네요."
".....살짝 그렇네."
"그럼 제가 대신 말해드릴까요?"
"응?"
순간 선우는 벙진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운설 소저 때문에 오신 거 맞으시죠?"
"....!?"
선우의 눈이 화등잔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설마 그녀 입에서 운설이 언급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반응을 보니까 다행이 맞는 것 같네요."
옥령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깜짝 놀란 선우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알고 있었어?"
"알다마다요."
"어떻게?"
"이틀 전 요랑님이 찾아와 슬쩍 언질을 줬거든요."
"요랑이가?!"
선우는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네에, 요랑님이요."
옥령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틀 전 별안간 찾아온
요랑은 말하였다.
조만간 운설이 선우의 여인이 될 것 같다고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해두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유추할 수 있었다.
선우가 밖에서 서성이며
들어오길 망설였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서윤 소저에게도 미리 말해놨을 거예요. 저 다음으로 서윤 소저에게 간다고 했으니까요."
서윤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선우는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설마하니 당서윤에게까지
이 사실을 전달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별말 없었는데."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당서윤이라면
일단 자신을 소환해 진상규명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여자를 늘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여자를 늘리냐는 타박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틀간 별말이 없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게 아닐까요? 운설 소저라면 선우의 여자가 되는 일에 말이에요."
"........요랑이 참 앙큼한 일을 벌였네."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새 이것저것 많은 일을 벌여놓은 요랑의 행동이 무척이나 기가막힌 까닭이었다.
운설의 감정을 충동질한 건 물론이고
설마하니 옥령과 당서윤까지 미리 포섭해둘 줄이야.
"아마 칭찬 받으려고 그런 걸거예요. 재경각주가 되고 어리광이 줄어들긴 했지만 선우 앞에선 언제나 칭찬받고 싶은 아이로 돌아가는 분이니까요."
옥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칭찬받고 싶은 아이가 벌인 일이라고 하기엔...너무 크지 않아?"
단순히 칭찬받고 싶은 아이가
벌인 일이라고 하기엔
스케일이 커도
너무 컸다.
어찌 현경의 고수를 충동질해
손수 남편에게 바친단 말인가
"워낙 똑똑하시잖아요."
옥령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옥령은 화 안나? 어찌보면 운설을 끌어들인 건 요랑이잖아?"
"그건 틀렸어요. 운설 소저는 선우라는 남자를 스스로 선택했을 뿐이에요. 요랑님은 그저 방향성을 제대로 짚어준 것에 불과해요.."
옥령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이 없다면 애초에 요랑님에게 고민조차 상담하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럼 운설을 연인으로 받아들이는 건?"
"선우의 여성관에 대한 이야기는 옛적에 끝나지 않았나요? 미리 말씀만해주신다면......여자가 늘어나도 전과 다름없는 사랑을 주신다면.....상관치 않겠다구요."
옥령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 두 가지 조건만 지켜진다면 여인이 몇 명이 늘어나든 상관없어요."
옥령은 꽤나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여인이 늘어나는 걸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연인이 자신만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걸 잘아는 옥령이었다.
누구보다 우월한 씨앗가지고 있는 선우에게
여자가 꼬이는 걸 막을 방도따윈
존재치 않은 까닭이었다.
수 많은 씨를 뿌리는 건 수컷의 본능이고
우월한 씨앗을 간직하는 건 암컷의 본능이었다.
그런 본능적인 일을 어찌 자신의 욕심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타협하기로 한 것이다
허락을 구하는 형식으로 새로운 여인에게 자신의 권위를 세워주기를
여인이 늘어나도 그전과 다를 바없는 뜨겁게 사랑해주기를 말이다.
".....넌 너무 착해...옥령."
선우는 감동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착한 게 아니예여. 저 나름의 실속을 챙기고 있답니다."
옥령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결국 그 실속을 챙기는 것도 나에 대한 이해심을 바탕으로 챙기고 있는 거잖아요."
그녀의 실속은
여인을 늘려도 상관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실속이었다.
자신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한 거예요. 선우, 가장 사랑하는 낭군을 어찌 이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옥령은 우아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와락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선우는 참지못하고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의 전신에 피어오르는
극도의 사랑스러움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옥령...미안해....고마워...그리고..사랑해."
선우는 그녀를 품 안에 꼬옥 안은 채 말을 이었다.
"저도 사랑해요...선우."
옥령은 그런 선우의 품에 파고든 채 말을 이었다.
선우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포옹을 이어갔을까
스르르륵
이내 선우가 서서히 손을 풀기 시작하였다.
'아..'
그러자 옥령은 속으로 아쉬운 탄식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짧은 포옹에 살짝 아쉬움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느낄 찰나
덥석
갑자기 선우가 손을 뻗어 옥령의 등과 다리를 붙잡았다.
부웅
그리고 힘을 주어
그대로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아이를 안는 것처럼 말이다.
"...선..우?"
옥령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선우를 바라보았다.
별안간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너무 사랑스러워...도저히 못견딜 것 같아...옥령."
선우는 애정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옥령을 바라보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게..무슨...?"
"내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확인시켜줄게."
선우는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쪽 구석에 있는 침상을 향해서 말이다.
화아아악
그러자 옥령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선우의 저돌적인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