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8 1109. 승선포정사와 대면하다.
쿵
커다란 굉음과 함께 승선포정사 정철의 머리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혀버렸다.
"승선포정사 정철! 군왕 전하를 뵙습니다!"
더불어 우렁찬 목소리가 내빈실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뭐야?...머리를 왜 처박아?'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짜고짜 머리를 처박는 승선포정사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승선포정사가 누구란 말인가
승선포정사사라고 불리우는
성내 최고의 통치 기관의 수장이자
종2품에 해당하는 고위 관리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다짜고짜 머리를 처박은 채
자신을 맞이하다니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사천의 승선포정사정도 되는 이라면 필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듯 높을터인데...어찌 이리 저자세를.'
강성한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일 수록
그 위세가 남다르기 마련이었다.
사천성정도 되는 세력을 아우르고 통치하고 있는 승선포정사라면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승선포정사가 머리를 처박고 저자세를 취하였다.
어찌 의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창 선우가 의아함을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신 승성포정사 정철! 감히 군왕 전하의 무거운 발걸음을 떼게 만들었습니다! 미욱한 소신을 벌하여주옵소서!"
정철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내 직접 그대를 찾아온 것이니 개의치 마시오. 승선포정사."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해와 같은 전하의 은덕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쿵 쿵 쿵
정철은 몇 번이고 머리를 처박기 시작하였다.
진짜로 감격했다는듯이 말이다.
'아니, 이 아저씨, 리액션이 왜 이렇게 과해!?'
선우는 더욱더 당황하였다.
감사 표시조차 과한 정철의 행동이
심히 부담스러운 까닭이었다.
"그만."
이내 선우는 위엄 어린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뚝
그러자 머리를 처박던 정철의 행동이 귀신같이 멈춰서게 되었다.
"고개를 들게, 승선포정사."
선우는 그런 정철을 바라보며 담담히 명을 내렸다.
스으으윽
그러자 이마에 핏물을 철철 흘리고 있는 정철의 얼굴이 그대로 내보여지기 시작하였다.
'쯔읍...역시 피가났구만.'
그 모습에 선우는 가벼이 혀를 찼다.
과하게 머리를 박는다하더니
이마 거죽이 찢겨진듯 하였다.
"난 과례를 좋아하지 않네. 전장이 아닌 곳에서 핏물을 보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지."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정철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선우는 그런 정철을 바라보더니
이내 품 속에 있던 손수건 꺼내들었다.
"닦게."
툭
그리고는 엎드려있는 정철 앞에 그대로 던져주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정철은 다시금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고 바닥에 놓여진 손수건을 쥐고
핏물이 흐르는 이마를 연신 닦아내기 시작하였다.
위대하신 군왕 전하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그래, 나를 데리러왔다고?"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되자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정철은 읍하듯 허리를 숙이며 우렁차게 답을 하였다.
"기별을 넣었으면 직접 갔을터인데...이리 직접 찾아오다니...."
"어찌 신하된 입장에서 건방지게 기별을 넣어 전하의 발걸음을 종용한다는 말입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어찌 한낱 관리따위가
위대한 군왕 전하에게
기별로 오라가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중원의 지배자인
황제가 아니고서야
이뤄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난 딱히 상관없네만."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듯 말을 내뱉었다.
자신 하나 모시고자
승선포정사 정도되는
고위 관리가 직접 데리러오는 건 번거로웠고
심히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기별을 받고
직접 발걸음을 옮기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한 일이리라
"그럴 순 없습니다! 천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전하께 명을 내릴 순 없습니다! 종용할 수도 없고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지엄한 국법에 의해 규정된 황실의 근간이기도 합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정철은 단호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알았네...알았어.."
선우는 졌다는듯 손사래를 쳤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당한 고집이 느껴졌다.
말꼬리를 잡고 잇는 것보단 대충 수긍하고 넘기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리라
"뜻을 헤아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하."
정철은 다시금 허리를 깊게 숙이기 시작하였다.
만난 지
일각조차 되지 않았건만
허리를 몇 번이나 숙였는 지
셀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발걸음을 하게 만들어 미안하네."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하된 입장에서 주군을 모시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말입니다!"
정철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난 참으로 복을 받았군, 이리도 충성스러운 부하를 두었으니 말이야."
"그리 생각해주시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래, 내가 없는 사이 별탈은 없었는가?"
"전하의 하해로운 은혜 덕택에 별탈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뭘한 게 있다고."
선우는 손사래를 쳤다.
그간 한 거라곤
수련과 교접밖에 없던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뭘한 게 있다고
하해로운 은혜라는 표현을 쓴다는 말인가
"한 게 없다뇨!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정철은 곧바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위기에 봉착했던 사천을 구한 군왕 전하께서 어찌 한 게 없다는 말씀입니까!?"
정철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열변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응?"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순간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정철의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내가 사천을 구했다고?"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새외에서 쳐들어온 흉악스러운 야만인들과 흉악스러운 마교의 광신도들로부터 사천의 백성들을 구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그렇습니다!"
정철은 확신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한층 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에 심각한 오류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구했는데?'
그렇다.
자신은 사천을 구한 적이 없었다.
상황을 파악하고
사천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된 까닭이었다.
자신들의 사랑하는 부인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 자신이 사천을 구했다는
당치 않는 소리를 내뱉는단 말인가
"승선포정사."
"말씀하십시오! 전하!"
"무언가 착각이 있는듯 하군."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난 사천을 구하지 않았네만...."
"이미 사천의 온백성이 전하의 위업을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태여 감추실 필요 없습니다!"
정철은 뜨거운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진짜 안구했다니까?"
"사천 북부에 쳐들어온 마교의 강시들! 동부를 짓밟고 유린하던 흑갑철기병! 서부에서 쳐들어온 광적인 사이비 종교 집단, 서장의 악마혈궁! 남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남만의 야수들까지! 모두 군왕 전하의 힘으로 물리쳤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부정한다해서 명백한 사실이 없는 일이 되진 않지요."
"....이보게, 승선포정사, 진실로 난 한 게없네, 사천에 외적들과 맞선 건 내가 아닌 무림인들이란 말일세."
"그 무림인들 모두가 군왕 전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위기에 봉착한 사천을 구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
마누라들과 처가인 당가였다.
집도 절도 없는 선우로선
누구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나서게 된 뒷 배경에 군왕 전하의 입김이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소신은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분명 적재적소의 인재를 각 문에 파견시켜 사천 전체를 지켜낸 거겠지요...그런 전하께서 어찌 공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철은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선우는
동시다발적으로 쳐들어오는 외적들을
황실의 도움없이
막아낸 용맹스러운 군주이자
수 많은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명장이였다.
그런 그를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왕 전하는 사천의 위대한 영웅입니다......사천의 모든 백성들이 전하의 위대함을 기리기리 칭송하며 후대에 알리게 될 것입니다!"
정철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끊임없이 부정한다고 해도
정철의 귀에는 결코 닿지 않을 것이란 걸.
그는 마치 거짓된 신을 섬기는
광신도와도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든 들어먹을 상태가 아닌 것이다.
'저러니...다짜고짜 머리를 박았지.'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콧대 높은 승선포정사가
다짜고짜 저자세를 취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자신을 영웅시하며 숭배에 가까운 찬양을 하고 있었다.
광신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한 믿음을 지닌 채 말이다.
동경해마지 않는
위대한 군주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는데
어찌 저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한 게 없다는 말은 넣어두셨으면 합니다. 누구보다 사천을 위해 노력하였음을 사천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으니!"
정철은 용광로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알겠네. 내 그리하지."
그리고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이내 수긍을 하였다.
확고한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전하!"
정철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승선포정사. 물어볼게 있네."
"하명하십시오! 전하."
"왕실로 곧바로 가야하는 겐가?"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아뢰옵기 황공하나오나... 즉위식을 비롯한 각종 연례 행사들과 왕실의 내정 업무등 여러모로 밀린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입니다...더 이상 지체했다간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정철은 송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사천을 다스리는 군왕으로서
선우의 역할은
사천의 모든 것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일들이 쌓일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그 한계에 다다라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더 미루게된다면
분명 훗날 큰 낭패를 겪게 될게 뻔한 것이다.
"....더 이상은 무리로군."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엥간하면 당가에 좀더 붙어있고 싶었건만
아무래도 더 이상은 무리인듯 하였다.
자신을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찬양하는 정철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걸 보면 말이다.
"혹여 걸리시는 것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정철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걸린다면 걸린다고 할 수 있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왕실로 돌아가게 되면
당가에 머물고 있는 여인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몇 몇은 자신을 따라올 수도 있겠지만
당서윤과 요랑을 비롯한 몇 몇 여인들은 당가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는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사랑하는 여인들이 갈라지게 된다는 사실이
"혹여 걸리는 게 무엇인지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 정철, 전하의 마음을 응어리지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해소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정철은 열화와 같은 의욕을 내보이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마음은 고마우나 의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
선우는 가벼이 손을 내저어 거절을 하였다.
의욕이 앞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다.
"의욕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하를 위해서라면 왕실은 재력과 권력, 무력까지 전부 동원할 수 있습니다!"
정철은 언성을 높이며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재력과 권력, 무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세상에 그것들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도 곰곰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과연 정녕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지 말입니다."
정철은 일말의 의심조차없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 눈빛에는 확고한 신념이 어려있었다.
".............."
그 말을 들은 선우는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과연 무력과 재력, 권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지에 말이다.
'......해결할 수 없어.'
그리고 이내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무력과 재력, 권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결론을 말이다.
무력을 쓰든 권력을 쓰든 재력을 쓰든
기본 골자는
외압을 이용한 강제였다.
그런 야만스러운 방식을
사랑하는 여인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해결이 안되는 지 말입니다."
"외압을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대로 강제하고 싶진 않네."
"...흐으음...외압을 이용한 강제를 원치 않는다라.."
정철은 잠시 생각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소신이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
"혹여 그 문제라는 게 성도에 머물러있으면 해결되는 문제이옵니까?"
"그렇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성도에 머물러있으면
여인들과 생이별을 할 일이 없었다.
자연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과연 그렇군요."
정철은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왕실을 성도로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
".....응?"
순간 선우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정철의 말을
순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성도를 수도로 삼으시는 겁니다!"
정철은 열망 어린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수도를 옮긴다니?
그게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