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07화 (1,108/1,419)

EP.1107 1108. 배려를 받다.

"사천의 승선포정사가?"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천의 승선포정사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난 적은 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자였다.

그런 자가  어찌 기별도 없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자가 별안간 무슨 연유로 찾아온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의아한듯 그에게 되물었다.

"전하를 직접 모시러왔다고 들었습니다!"

".....아..."

순간 선우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탄식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당기의 말을 듣는 순간

일시적으로 사고가 완전히 마비가 된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멍을 때렸을까

'....망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리게 된 선우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왕실에 대한 기억을

뒤늦게나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왕이였지..'

자신은 왕이었다.

당가가 아닌

왕실을 보금자리로 삼아

머물고 있어야할 군왕말이다.

'......황실을 떠난 지 얼마나 흘렀지?'

선우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계산해보기 시작하였다.

왕위를 수여받고

황실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는 지 말이다.

'.......반 년.'

그리고 곧이어 선우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반 년이라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왕실에 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까닭이었다.

승선포정사 직접 찾아올 만도 하였다.

민정과 내정을 담당하는 그의 입장에선

반 년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자신의 존재가 무척이나 신경쓰였을테니

'..멍청한...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야!'

나름 변명을 하자면

할 수는 있었다.

사천으로 향하는 사이

수많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었고

자연스레 왕실로 향해야한다는

계획이 뒷전으로 밀려나다못해 완전히 잊혀지게 된 것이니

'아니야..아무리 그래도 완전히 까먹어버린 건....변명조차할 수 없어.'

여러가지 사건들이 겹쳐

왕실의 입성 시기는 늦춰질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까먹고

안들어가는 건 명백한 이쪽의 실수였다.

어찌 황제로부터

봉토를 하사받은 군왕이

이리도 무책임하게 행동을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소화를 뵐 면목이 없구나.'

능소화에게 굳은 약속을 했던 선우였다.

고루한 내각 대신들조차 인정할 만큼

왕으로서 인망과 덕을 쌓아

정식으로 청혼을 하겠다고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그런데 인망과 덕을 쌓긴 커녕

노예들과 마누라만 쌓고 있었다.

능소화의 신뢰를 완전히 저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 자신이 어찌 그녀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난 정말 쓰레기야......어찌..이런..'

선우는 고개를 떨군 채 자책을 하였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자괴감에 빠져있던 그 때였다.

"전하, 승선포정사에게 무어라 전할까요?"

당기가 의문 어린 어투로 물음을 건넸다.

선우를 기다리고 있을

승선포정사에게 무어라 전해야할지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그는 지금 어디있는가?"

이내 선우는 위엄 어린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예의 바른 협객이 아닌

사천의 왕으로서 당당한 태도로 변모한 것이다.

"일단 내빈실쪽에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당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내빈실이라...알겠네...내 그리 알고 알아서 처리 하도록 하지...이만 가보게...소식 전해주어 고맙네."

선우는 고개를 가벼이 주억거리며 곧바로 축객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당기의 우렁찬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원래 근무지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전령으로서 모든 임무를 완수하였으니

이제 다시금 수문위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흐음.."

당기가 돌아가고

선우는 침음성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꽤나 고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내빈실에 있다라...'

아마 자신을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원래라면 바로 가는 게 맞는 일이지만...'

선우는 슬그머니 시선을 옆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홍조 어린 운설의 아리따운 얼굴이 시야에 가득히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난감하네.'

선우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애정을 나누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더욱더 보듬어주고

애정을 확인 시켜주지는 못할 망정

이대로 그녀를 방치한 채

자리를 비워야한다니

어찌 난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승선포정사에게..더 기다리라고 말할 수도 없고..'

이미 반년 간 자신을 기다린 승선포정사였다.

더 이상 기다리게 하는 건

군신 간의 예의는 물론

사람과 사람 간의 예의조차 아닐 정도로

무례한 짓이었다.

'어쩌지...'

선우는 고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뭘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으으윽

그때  부드럽기 그지없는 무언가가 보듬아주듯 뺨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그 감촉에 선우는 재빨리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의 뺨을 감싼 채

맑은 미소를 띄고 있는 운설의 모습을

"급한 일, 생기신 거죠?"

운설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아쉽지만..오늘은 이쯤하는 수밖에."

운설은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원치 않는다면...좀더 늦추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승선포정사에겐 미안하지만

역시 운설을 혼자내버려두는 게

더욱더 신경쓰인 까닭이었다.

"그럴 순 없죠.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운설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후배님은 절 무례한 사람으로 만드실 생각인가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면 절 끝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골빈 여자로 만들 생각인가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럼 안 갈 이유가 없네요."

운설은 헤실거리며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무례하고 골빈 여자로

만들기 싫으면

죽닥치고 가라는 속내가 담긴 미소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선우는 그녀의 배려에 감사를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애써 괜찮은 척 하는 게 아닌 지

"전 오늘 후배님의 마음을 확인한 건만으로 충분해요...솔직히 그 이상까지 진도를 뺄 줄은 몰랐던 터라..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어요....갑자기 가슴이 만져지고...치맛자락 속으로 손이 들어와서..어찌나 놀랐던지.."

운설은 부끄러운 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진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흐름이 끊긴김에

마음을 다잡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제가 너무 배려가 없던듯 하군요..."

선우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진도를 너무 급격히 뺐다고

직접적으로 타박을 들으니

괜스레 뻘쭘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알면...다음부턴...미리 말씀해주세요...당황하지 않게."

운설은 능금처럼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하면..뭐든 해도 되는 겁니까?"

선우는 짓궂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마..도요.."

그 물음에 운설은 안그대로 붉은 얼굴을 더욱더 붉히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하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마주한 선우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거절치 않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 위엄넘치고

존경스러웠던 선배가

이리도 사랑스러워지다니

참으로 인생은 모를 일이었다.

"웃..웃지마세요...왜 웃는 건가요!?"

그 웃음 소리에 당황한 운설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너무 귀여우셔서...저도 모르게.."

"놀리지마요..귀엽긴..누가 귀엽다는 건가요.."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입니다."

선우는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운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우우우우.."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운설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부끄러움이 배가 되어 얼굴을 불덩이처럼 만들어버린 까닭이었다.

멋지다

아름답다.

청정하다

우아하다와 같은 수식어엔

익숙한 그녀였지만

귀엽다는 말은 난생처음 들어본 그녀였다.

면역 없는 말에

부끄러움이 배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참으로 사랑스럽구나..'

그 귀여운 모습에

선우의 눈빛에 담긴

애정이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차고 넘칠 정도의 사랑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부끄러우신 겁니까?"

"........부끄러워요..."

"부끄러워하시는 모습도 무척이나 귀엽습니다. 선배."

"......알았으니까..제발...그만해주세요. 후배님."

운설은 다급히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저 달콤한 말을 더 들었다간

얼굴이 그대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이제 그만하지요.."

선우는 가벼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곤란한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긴 했지만

더 했다간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까지 놀려먹는 게 딱 알맞는 선이리라

"....짓궂어요. 후배님은"

운설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짖궂기 그지없는 선우의 태도에

입술이 비죽 튀어나온 것이다.

"죄송합니다...선배님 반응이 너무 귀여우셔서."

선우는 장난스레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됐어요...어서 가버리기나 하세요.."

운설은 그대로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린 채 축객령을 내렸다.

행동은 꽤나 불퉁스러웠지만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이만 가봐도 된다는 그녀만의 신호라는 것을

'참으로 배려심이 많구나.'

선우는 살갑게 미소 지었다.

하나하나 읽혀지는 운설의 배려에

마음 깊은 곳에 따스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스으으윽

이내 선우는 고개 돌린 그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앗!"

와락

그리고는 가녀린 그녀의 몸을 그대로 감싸안았다.

"....뭐하시는 거예요..후배님.."

"그냥 가기 아쉬워...잠시만 안고가려구요."

선우는 운설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승선포정사가..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러니 아주 잠시만 안고 있을 생각입니다...아주 잠시만.."

선우는 운설의 가녀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그녀의 살내음을 느끼며

강하게 옥죄기 시작하였다.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운설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선우가 마음껏 자신을 품에 안을 수 있도록

그렇게 얼마나 포옹이 이어졌을까

스르르륵

곧이어 선우의 손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아.."

그러자 운설의 입에서 아쉬운듯한 탄식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내치긴 하였지만

막상 선우의 손이 풀리니 아쉬움이 드는듯 까닭이었다.

그때 뺨에서 가벼운 접촉이 느껴졌다.

선우가 뺨에 입을 맞춘 것이다.

"그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배."

뺨에 입을 맞춘 선우는

운설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

운설은 대답 대신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듯한 모습이었다.

씨익

그 모습에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승선포정사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운설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몽롱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

저벅 저벅 저벅

바깥으로 나온 선우는 승선포정사가 기다리고 있는  내빈실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닿기 위해서 말이다.

'화 많이 났겠지?'

열심히 걸음을 옮기던 선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려 반 년이나 되는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것도 까맣게 잊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천의 내정과 민정을 담당하는 승선포정사로서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뭐라하진 않겠지만....'

물론 대놓고 뭐라 하진 못할 것이다.

승선포정사가

입김 하나로 나는 새조차 떨어뜨릴 수 있는 고위 관리긴 하였지만

군왕인 자신에 비하면

그 격의 차이가 명백하다 못해 선명할 정도였으니

'..그게 오히려 더 불편한데..'

명백히 기분 나쁜 걸 뻔히 아는데

티 내지 못하고

불만을 삼키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한다니

어찌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크게 질책이 받고

깔끔히 끝내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리라.

'일단 저자세로 나가자.'

선우는 굳게 다짐하였다.

저자세로 나가며 사과부터 하자고

잘못을 스스로 시인한다면

승선포정사가 품은

불만이 더욱더 심화되진 않으리라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굳은 다짐을 마치고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이내 선우는 내빈실에 코앞까지 닿게 되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든 사이

목적지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후우우.."

선우는 가벼이 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하였다.

승선포정사와 마주하기 전

차오른 긴장을 어느정도 해소시킨 것이다.

'....좋아..가자.'

똑 똑 똑 똑

곧이어 선우는 손을 뻗어

내빈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그러자 중후한 음성이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나를 찾았다고 들었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군왕의 신분으로

스스로 소개하는 게 우습다여긴 선우는

에둘러 스스로의 신분을 밝혔다.

벌컥

그리고 그 순간 내빈실 문이

벼락치듯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저자가 승선포정사구나.'

저자가 바로 당기가 말한 승선포정사인듯 하였다.

"자네가 바로 승선.."

선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털썩

"승선포정사 정철! 군왕 전하를 뵙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처박은 승선포정사의 재빠름에 말문이 막힌 까닭이었다.

'다짜고짜 머리를 처박는다고?'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이 왕이라지만

종2품에 승선포정사가

다짜고짜 머리를 처박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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