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4 1105. 저...후배님을 좋아해요.
'어째서...어째서...이런 일이..'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선우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키게 된 건지 말이다.
'설마 요랑님이?'
별안간 의심이 들었다.
요랑에 선우에게 무언가 말한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하지만 이내 운설은 피어오른 의심을 부정하였다.
요랑이 겉으로는 장난기 가득하고 철없어보이긴 하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똑똑한 여자였다.
관계를 악화시킬 비밀 같은 걸 함부로 발설할 만한 위인 아닌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저 말의 저의가 무엇이지?....은근한 호감을 품고 있다는 걸...알고있다는 말인가?...아니면...그냥 떠보는 말인가?...'
수많은 의혹들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유영하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직면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릿속이 팽팽히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시치미 떼자...무슨 저의를 가지고 있는 지 모르는 상황이야..섣불리 판단하고 설레발 칠 수 없어.'
그리고 이내 그녀는 빠르게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현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결론을 말이다.
"..무슨 말을 하는 지...도통 의미를 모르겠네요...후배님에 대한 제 마음이라뇨?..그게 무슨 소리죠?"
곧이어 운설은 일단 시치미를 떼었다.
전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끝까지 시치미 떼시는 군요."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운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선배님의 심경조차 눈치채지 못할 반푼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선우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그런 게 아니라.."
운설은 당혹스러운듯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강하게 나오는 선우의 태도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근 세 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그 어떤 누구보다 선배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보냈던 저입니다. 그런 제가 선배님의 심경 변화조차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세 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하루 아홉 시진을
운설과 함께 보냈던 자신이였다.
밥먹는 시간
부인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들을 운설에게만 쏟아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이
운설의 심경 변화조차 눈치채지 못할 리 없지 않겠는가
".....반푼이로 보다니...그렇지 않아요."
운설은 부정하였다.
선우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후배였다.
그런 그를 반푼이로 보다니
말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리 속내를 숨기시는 것입니까? 어찌 솔직히 드러내지 않고 숨기기 급급한 것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그건......"
운설은 뒷말을 잇지 못하였다.
뭐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 진심을 다해 선배님에게 다가가는 건만 어찌 선배님은 진심을 다하지 않는 겁니까?"
선우는 뜨겁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큰 결례를 했구나.'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운설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큰 결례를 범했다는 사실을
진심을 다해 전력을 부딪혀온 선우였다.
그런 그의 진심을 무시한 채
간을 보며 회피하기 급급했던 것이다.
'....부끄럽구나...부끄러워.'
부끄러웠다.
비겁하고 얄팍하기 그지없는 스스로에 대해
언제부터 이리도 비겁하고 얄팍한 인간으로 전락해버렸다는 말인가
"죄송해요...후배님."
곧이어 운설은 선우에게 사과를 하였다.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선배님의 진심을...속에 감추고 있는 진심을 듣고 싶습니다."
선우는 열화와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제..진심은...제...진심은.."
운설을 말을 잇지 못하였다.
속에 품고 있는 진심을
그대로 쏟아내도 되는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려워.'
두려웠다.
속에 품고 있는 진심을 그대로 내뱉는 게
무서웠다.
전과 같은 사이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될까봐
"서운합니다. 선배님."
그러자 선우는 서운한 티를 팍 팍 내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제게는....진실된 속내를 말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제 진심따윈 무시해도 좋다고 여기는 것입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그런 게 아니예요."
운설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연신 부정하였다.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찌 진심을 내뱉지 않는 것입니까? 어찌 저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 겁니까?"
"...제가 후배님을 힘들게 한 건가요?"
"네에, 힘듭니다. 너무 힘들어요. 요근래 제 머릿속은 온통 선배님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선우는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운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온통 제 생각뿐.."
운설을 얼굴에 살며시 홍조가 어리기 시작하였다.
대담하기 그지없는 직설적인 언행에 알 수 없는 울렁거림과 열기가 피어오른 까닭이었다.
"선배님의 말씀, 눈빛, 행동들이 제 머릿속에 끊임없이 재생되며 절 신경쓰이게 만듭니다....어찌 힘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우는 슬픈듯한 표정을 지은 채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죄송해요...후배님...신경쓰이게 만들어서."
"사과를 받고자하는 게 아닙니다. 전 그저 선배님의 진심을 알고 싶은 것 뿐입니다."
선우는 고개를 가벼이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꼭꼭 숨겨두었던 운설의 진심을 듣고 싶은 것이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더는 확연히 달라진 선배님을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선우는 뜨겁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운설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말해주십시오. 선배님.... 선배님이 그 가슴 속 깊이 꼭꼭 감추고 있는 응어리들을...저에 대한 진심을!"
선우는 언성을 높이며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운설의 진심을 듣기 위해서 말이다.
"........죄송해요..후배님..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운설은 그 진심에 답해줄 수 없었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말할 수 없는 겁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말할 수 없는지
어째서 진심을 내보일 수 없는 지
"....드러내봤자...좋을 것 없는 마음이예요...모두를 위해선 그저 모른 척..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는 게...가장 좋아요."
선우와 다시금 마주한 이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연모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확실한 호감을 품고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연모의 감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호감을 말이다.
그렇기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간
도저히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넘겨야했다.
그저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어째서 그게 모두를 위한 방법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가 후배님을 무척이나 아끼기 때문이에요."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를 아끼기 때문이라구요?"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저의를 알 수 없었다.
아끼기에 진심을 말해줄 수 없다니
"제겐 후배님이 무척 소중해요,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대화하는 게 즐겁고 하루하루 가르침을 소화해내는 후배님을 보며 호승심이 느끼고 스스로 분발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답니다...그러니 말할 수 없는 거에요...제 진심은 이런 소중한 후배님과 관계를 완전히 틀어지게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양날검과 같았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 경우
상대방과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고 만다.
자신 스스로 베여질 위험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운설은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 베이기 싫었기에
지금의 어색한 관계조차
완전히 틀어지게 될까봐 말이다.
"그래서 끝까지 숨기겠다는 겁니까?"
"예에...끝까지 숨긴다면 적어도 후배님과 관계가 틀어질 일은 없을테니까요."
"선배님이 이리 겁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잃고 싶지 않은 인연이니까요."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겁쟁이라고 불려도 할 말 없없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덜컥 겁을 집어먹을 만큼
자신에게 선우는 소중한 사람이였으니 말이다.
"잃고 싶지 않다면 더더욱 진심으로 마주해야합니다. 선배님."
선우는 차분한 가라앉은 눈빛으로 운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두렵다고 회피하고 외면한다면 결국 훗날엔 후회밖에 남지않을테니까요."
"..............."
그 말을 들은 운설은 그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회피와 외면의 끝은
결국 후회뿐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그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저벅 저벅
선우는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곧이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운설을 향해서 말이다.
저벅 저벅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일정한 보폭을 유지한 채 말이다.
뚝
이내 선우의 걸음이
운설의 코앞에서 멈춰서게 되었다.
스윽
운설의 코앞에서 멈춰선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떨구어져있는 운설의 작은 턱을 붙잡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떨구어진 운설의 고개를 서서히 올려졌다.
그리고 맑은 눈물이 고여있는 운설의 눈망울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제가 아는 선배님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우신 분이니까요."
선우는 맑은 그녀의 눈망울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후배님...전 두려워요..제 진심이 모든 걸 망치게 될까봐..후배님을..전처럼 볼 수 없게 될까봐."
운설은 서글픈 표정을 지은 채 두려운 속내를 그대로 내뱉기 시작하였다.
"단언컨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선우는 확신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선배님의 진심이 어떻든....선배님을 대하는 제 태도는 언제나 변함이 없을테니까요...."
"........정말 그래주실 건가요?"
"정말이고 말고요."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원하신다면 저 별에 맹세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장난스레 미소를 지은 채 창문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직 별은 안떴어요."
"그럼 저 저무는 해를 두고 약조하지요."
"후후후후훗....말은 정말 청산유수네요."
글썽이던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농을 섞어가며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선우의 배려가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러니...좋아지지.'
그녀는 생각하였다.
이런 작은 배려가 끊임없이 반복되니
자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후배님께서 그리 확언을 하시니...저도 어쩔 수 없네요...말씀드리도록 할게요...제가 후배님께 품고 있는.제 진실된 마음을 말이에요."
곧이어 운설은 청명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확신 어린 말을 들으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에 대한 신뢰가
그녀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꼭꼭 숨겨둔 진심을 토로할 용기를 말이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선배님"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신뢰하는 운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한 번만 말할테니까..잘들어야해요..아셨죠?"
운설은 잘익은 홍시처럼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
결심하긴 하였지만 막상 말로 내뱉으려니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물밀듯 치솟은 까닭이었다.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선배님."
선우는 태연히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진심을 듣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하였다.
더도 덜도 필요 없는 것이다.
".......후우우...이걸 뭘 어디서부터 말해야할 지 모르겠지만...일단 말해볼게요...저...그러니까...후배님에게 약간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이내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특별한 감정이라기보단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라고 생각했어요....평생 꼭꼭 감춰두었던 속살을 후배님에게 내보여...쪽팔리고 창피함을 느끼고 있는 거라고..시간이 지나면 어련히 알아서 무덤해질 거라고...그리 생각했어요....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어요...아무리 시간이 지나도...가슴의 울렁거림이 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꽈아악
운설은 작은 손으로 풍만한 가슴을 움켜잡으며 말을 이었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어요....며칠이면 무덤덤해질 줄 알았던 가슴의 울렁거림 몇 주가 지나도 도저히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까요......아니 오히려 더욱더 심해지는듯 했어요...."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요랑님께서 말씀하시더라구요, 단순히 속살을 내보인 사실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후배님에게 내보였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더 부끄럽고 신경쓰이고 가슴이 울렁이는 게 만든다고, 만약 후배님이 아니였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을 거라고 말이에요."
곧이어 운설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전 그 말에 부정하지 못했어요.....만약 속살을 내비친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테니까요."
요랑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선우가 아닌 다른 이가
검으로 옷을 찢겨버렸다면
수치심을 느끼기전 그자를 칭찬했을 것이다.
한 방을 먹인 게 대단하다면서
오직 선우이기에 수치스럽고 부끄러우며
창피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부정치 못한 순간, 전 알 수 있었어요...제가 후배님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호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의심을 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후배님을 마주한 순간 그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운설의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저...후배님을 좋아해요...어쩌면...연모로 발전할지도 모를 만큼........"
곧이어 그녀는 용기있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차마 내뱉지 못했건 진실된 마음을
'.......에?'
그리고 그녀의 진심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진심에
당황스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난데없이 사랑고백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후배님은....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때 운설이 청명하기 그지없는 눈망울이 선우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대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여인으로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가슴을 내보인 게 쪽팔리다고 말하려던 게 아니였어?'
이내 선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
단단히 착각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