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0 1101. 수치심을 극복할 방법.
"승..승선포정사!?"
정철의 말을 듣는 순간 당기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충격적인 발언에 경악스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승선포정사가 어떤 직책이란 말인가
약칭 포정사라고 불리우며
한 성의 민정, 재정과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기관.
승선포정사사의 우두머리이자 정 3품의 품계를 가지고 있는 최고위 관리가 아니던가
그런 최고위 관리가 어찌 호위조차 대동치 않고 홀로 당가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그저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맞네, 내가 바로 사천성의 승선포정사 정철일세."
정철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대인을 뵙습니다!"
곧이어 당기는 다급히 허리를 숙였다.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말이다.
승선포정사라는 이름은
일개 수문위사로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다.
절로 공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그리 예를 차릴 필요는 없네...지금은 엄연히 방문객의 신분이 아닌가?"
승선포정사 정철은 손사래를 치며 입을 떼었다.
"하..하지만."
"누가 되었든 예외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신념을 지키게나."
정철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당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럼 어떤가? 내 말을 전해줄 수 있겠는가? 혹여 따로 신청서를 작성해야한다면 작성하겠네. "
정철은 정중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그리 하실 필요없습니다. 바로 연통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규정에 어긋나지 않은가?
"전혀 문제없습니다!"
당기는 곧바로 답을 하였다.
거절할 이유조차 없는 부탁이었다.
승선포정사가 주군을 만나겠다는 것을
어찌 거절한다는 말인가
"고마우이, 그럼 잘부탁하겠네."
정철은 흡족스러운듯 말을 내뱉었다
당기의 친절함이 꽤나 마음에 든듯한 모습이었다.
꾸벅
당기는 그런 정철을 바라보며 가벼이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걸음 옮기기 시작하였다.
사천의 왕
선우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
"헤헤헤헤.."
요랑은 붉디 붉은 전병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이게 노심이 만든 신상 전병이라 이거지?'
사천 성도부 최고의 장인 노심이 새롭게 선보인 신상 전병이자 자극적이면서도 중독적인 맛을 선사한다는 미지의 전병.
웃돈까지 얹어 어렵사리 구한 이 녀석을 맛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 빨간 전병이 장안의 화제라니...'
생김새만 보면 꽤나 수상쩍게 생긴 놈이었다.
밀가루가 튀겨진 누런 빛깔의 전병과는 달리 핏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붉디 붉은 선홍색의 빛깔을 띄고 있었으니 말이다.
'평을 들어보면 매우면서 맛있다고 했지?'
노심의 신작 전병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공통적으로 말하였다.
자극적일 정도로 맵지만 그 이상으로 맛있는 전병이라고
혀가 따가울 정도로 맵지만 손이 자꾸만 가는 중독성을 띄고 있다고
그렇기에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매움과 맛있음
이 상반된 것들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단 먹어보자...판단은 먹어보고 하는거야.'
요랑은 눈을 빛내며 생각을 접었다.
관찰만하고 생각만 해봤자 맛을 알 수 없었다.
직접 먹어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곧이어 요랑은 고운 입술을 천천히 벌리기 시작하였다.
오독 오독 오독 오독 오독
그리고 고운 입술과 이빨이 쉴새없이 교차하며
붉디 붉은 전병을 잘게 잘게 분쇄시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말이다.
사아아아아아
'으음!?'
그러자 알싸하면서 매콤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기 시작하였다.
꽤나 대담하면서 자극적인 향이었다.
'싫지 않아.'
하지만 그리 싫지 않았다.
아니 불호를 따진다면 호에 가까운 맛이었다.
매콤하지만 알 수 없는 중독적인 맛이 입맛을 더욱더 당기게 만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알싸한 향을 즐기며 몇 번이나 씹어댔을까
꿀꺽
이내 완전히 분쇄가 된 전병을 목구녕에 그대로 넘겨버렸다.
그러자 입 안 가득 채워져있던 알싸함과 매콤한 향이 일시에 사라지며 시원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흐으으.."
그 시원스러운 느낌에 감탄이 절로 터져나왔다.
맛의 절묘한 균형이 혓바닥과 기분을 절로 춤추게 만든 까닭이었다..
'신상 전병이라길래....별기대 안했는데...이런 적절한 맛배합이라니..'
씹기 전만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소문은 흐레 과장되기 마련이었고
요랑 그 자신 또한 직접 경험한 것 외엔
그리 신뢰치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이번 신상 전병은 소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소문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심의 신상 전병이
그녀의 까다로운 취향에
완전히 부합한 까닭이었다.
'이건 대박날거야! 분명 전병계의 유행을 주도하게 될거라구!'
그녀는 확신하였다.
노심의 신상 전병이
기존의 고루했던 전병계를 뒤엎을 새로운 유행의 선도주자가 될 것임을
'노심 상단에 투자해야겠어.'
누구나 원할만한 완벽한 상품이었다.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단 남은 것만 먹고 바로 노심한테 가자.'
요랑은 책상 위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서너개 정도 남아있는 붉은 전병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히죽
요랑은 히죽거리며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충분하진 않지만
심심한 입맛에 채워줄 정도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전병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던 그 순간이었다.
똑 똑 똑 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멈칫
요랑은 곧바로 손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문밖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무슨 일이야?"
곧이어 요랑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잠시 의논할 게 있어서요."
"....급한 일이야?"
"네에, 제겐 꽤나 급한 일이에요."
"........알았어, 들어와."
요랑은 어쩔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자신만의 맛보기 시간을 빼앗기고 싶진 않았지만
친우의 곤란함을 못 본척 할 수는 없었다.
끼이이익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틈사이로 청정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려지는 아름다운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어서와, 운설."
요랑은 아름다운 여인, 운설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었다.
"오랜만에 뵈어요, 요랑님."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화답을 하였다.
"그러게, 요즘 못본 지 좀 됐지?"
선우와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간 뒤
얼굴 볼 날이 많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다.
행동 반경이 완전히 상반된 까닭이었다.
"그렇죠, 거의 장 대협과 수련만 이어갔으니까요."
"어때? 선우는 자연검을 익혔어?"
요랑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자연검을 가르치겠다는 일념하에
수련관에 처박혀지내던 두 사람이었다.
어느정도 소기의 성취를 이뤘는지 궁금하였다.
"한 반절 정도는 따라온 것 같아요."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 생각보다 성취가 빠르네....반절의 성취라니."
요랑은 놀랍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검은 신선만이 닿을 수 있는 지고의 검이라고 들었다.
그런 걸 반절이나 소화하다니
가르친 운설이나 소화시킨 선우나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어느정도 묘리를 익히고 있는 터라...가르침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제 자연검이 불완전하기도 했구요."
선우는 자연검의 묘리를 어느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만물의 흐름과 융화되어 그대로 비틀어버리는 건곤대나이가 자연검과 무척이나 흡사한 까닭이었다.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거야, 고작 두달만에 이뤄낸 거잖아."
"그리 말하니 괜스레 부끄럽네요."
운설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띄워주는 말을 들으니 괜스레 부끄러움이 들었다.
"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온거야? 원래라면 지금쯤 선우랑 수련관에 들어가 있을 시간 아니야?"
곧이어 요랑은 자연스레 화제를 전환해 용건을 물었다.
그녀가 수련마저 미루고 자신을 방문한 이유가 심히 궁금한 까닭이었다.
"..........사실 그에 수련에 관해 요랑과 의논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수련에 관해서?"
요랑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지로만 따진다면 자신보다 한참이나 위에 서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수련에 관해 의논 드릴 게 있다니?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혹시 차 한잔 내주실 수 있나요?..."
운설은 민망한듯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
"그래, 그렇게하자."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뭔진 모르지만 일단 차로 심신을 풀어준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앉아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운설."
요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찻주전자를 가지러 가는 것이다.
운설은 탁자에 앉은 채 얌전히 기다렸다.
요랑이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
"하하하하하하하하!."
요랑은 유쾌하게 웃었다.
어찌나 유쾌하게 웃는 지 방 전체가 들썩일 정도였다.
"웃지마세요....요랑....전 심각하다구요."
요랑의 유쾌한 반응에 운설은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
고심 끝에 자신 나름의 심각한 이야기를 했건만
어찌 이리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단 말인가
"미안...하하.미안...하하하..근데 너무 웃겨서.."
요랑은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 사과를 하였다.
"....대체 어떤 부분이 웃기다는거죠!?"
"아니,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하는 말치곤 너무 사안이 가벼워서."
"저한텐 안가벼워요! 심각하다구요!"
운설은 발끈하였다.
남자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처녀가 가슴을 내보였다.
어찌 사안이 가볍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슴인 걸? 아랫도리도 아니고 가슴이잖아?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런 민감한 사안을 요랑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영물인 그녀가 인간의 수치심을 제대로 이해할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었다.
"닳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예요..이건 기분 문제라구요."
"그러니까 운설의 알맞게 부풀어오른 젖가슴이 그대로 내보여져서 부끄럽다 이거지?"
"쉬잇 쉬잇! 누가 듣겠어요!"
운설은 손가락을 치켜든 채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듣긴 누가 들어, 우리 밖에 없는데."
요랑은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부끄러워하는 운설의 반응이 꽤나 귀엽게 보인 까닭이었다.
"어쨌든 전 심각해요! 좀더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하하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노력해볼게."
요랑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혀 진지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영물이 인간의 수치심을 알 리 없잖아?"
요랑은 당당히 말을 내뱉었다.
".....그건 그렇지만."
저리 당당하니 나오니 막상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상담 상대를 잘골랐어야지, 이런 상담은 옥령이나 서윤이가 더 적합했을 껄?"
자신과 달리 뼛속까지 중원의 여인인 옥령과 당서윤이었다.
이런 여인의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두 사람과 상담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였을 것이다.
"......괜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요."
"분란? 선우가 혼날까봐?"
"......네에...피치못할 사고긴 하지만...만약 이 사실을 말하면 두 사람이 화낼지도 모를 것 같아서.."
"나는 되고?"
"요랑이야, 어떤 분인지 잘아니까...이런 일로 화내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 두 사람도 그리 속이 좁진 않은데...."
"그래도 괜스레 한 소리 듣게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운설은 착하네."
요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선우를 배려해주는 그녀의 고운 마음씨가
꽤나 흡족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친한 친우가
사랑하는 남편을 이리 배려하는 데
어찌 흡족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지금 문제는 장 대협 얼굴을 똑바로 못보겠다는 거예요!"
운설은 다급한 어조로 언성을 높였다.
"부끄러워서?"
"완전 부끄러워서요! 얼굴 보면 심장이 쿵쿵 거리고 몸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운설은 솔직한 속내를 그대로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그건 그냥 좋아하는 거 아니야?"
"좋아하긴요! 부끄러워하는 거지!"
"상태만 보면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은 반응인데?"
요랑은 실실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과격한 반응의 운설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래서 선우가 나를 갈궜던 것인가?'
더불어 새삼스러운 깨달음마저 얻게 되었다.
"전혀 아니에요!"
"아님 아닌 거지, 되게 정색하네, 수상하게."
"자꾸 몰아가시면...저 갈거예요. 요랑."
운설은 꽤나 억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헤헤, 미안, 운설, 장난 안칠게."
요랑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장난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였지만
그녀를 화나게 만들고 싶진 않은 까닭이었다,.
"어쨌든 도움이 필요해요...요랑님의 명석한 두뇌로 제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세요...어떻게하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장대협과 마주할 수 있을까요?"
운설은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흐음....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방도라.."
그 물음에 요랑은 짐짓 고민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지하게 고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운설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얌전히 기다렸다.
해답이 내뱉어지기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리고 곧이어 요랑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게 무엇인가요!? 네에? 말씀해주세요!"
운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었다.
떠올린 방법이 무엇인지 말이다.
"대신 각오를 해야해. 뭐든 하겠다는 각오를."
요랑의 눈빛이 더욱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뭐든 할 수 있어요. 이 수치심과 부끄러움만 없앨 수 있다면!"
운설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뭐든 할 수 있었다.
별안간 찾아온
인생 최대의 고민만 없앨 수 있다면 말이다.
"좋아, 그럼 말해줄게. 운설. 부끄러움을 없이 선우와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요랑은 뜸들이기 시작하였다.
"방법은!"
그리고 운설은 다급히 되물어
어서 말해달라는듯한 어투였다.
"네가 선우의 여자가 되면 돼."
요랑은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때? 간단하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운설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별안간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