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096화 (1,097/1,419)

EP.1096 1097. 고육지책

재경각 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집무실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한 명의 아리따운 여인이 주판을 튕기며 거침없이 붓을 놀리기 시작하였다.

문서에 여러 숫자를 기입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창 붓을 놀리고 있을 때였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굳게 닫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한창 붓을 놀리고 있던 여인이 곧바로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선을 올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쌍심지를 켠 채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끼이이이익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열린 문틈 사이로

한 명의 귀부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귀부인이 말이다.

"늦었군요."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붓을 놓았던

아리따운 여인, 이화영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미안, 늦잠을 자서 말이야."

아름다운 귀부인, 당진설은 태연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죄책감따윈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늦은 것 치곤 너무 당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죄책감조차 없는 그녀의 태도가 거슬린 것일까

이화영은 눈살을 더욱더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이미 늦은 걸 어쩌겠니?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당진설은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늦잠을 자버렸고

지각을 해버렸다.

이제와서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늦었다면 적어도 반성정도는 해야하지 않나요?"

"분명 미안하다고 했을 텐데? 혹시 젊은 나이에 기억력이라고 감퇴된 거니? 안타까워라."

당진설은 불쌍하다는듯한 시선으로 이화영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사과하는 태도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거예요. 혹시 예의범절이라는 걸 안배워처먹은 건가요?"

이화영은 짜증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쏘아붙이기 시작하였다.

"대체 뭘 어떻게 사과하길 원하는 지 모르겠구나, 머리라도 처박길 바라는 거니?"

당진설 또한 고운 아미를 찌푸린 채 말을 내뱉었다.

못 배워처먹은 년이라는

이화영의 말에 상당한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네에, 처박으세요. 그정도면 진정성이 좀 보일 것 같네요."

이화영은 옳다구나하며 냉큼을 답을 하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

"왜 말이 안돼요!"

"고작 지각한 걸로 머리를 처박으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될 것도 없죠! 하루도 빠짐없이 지각하신 분이 진정성을 보일려면 그정도 성의는 보여야하는 거 아닌가요?"

"거절하마! 네가 그런 성의를 보일 필요성을 못 느끼겠구나!"

당진설은 언성을 높이며 대뜸 거절을 하였다.

머리를 처박으라니

어찌 저런 막돼먹을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음대로 하세요! 저도 상습 지각 건에 대해선 요랑님께 보고드리면 그만이니까!"

이화영 또한 마찬가지로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 고자질하겠다고 나를 협박하는 거니?"

당진설은 안면을 와락 구긴 채 입을 떼었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무서워하는 여자

요랑이 언급되니 벌써부터 불편함이 절로 치솟은 까닭이었다.

갑자기 가만히 있는 재경각주는 왜 끌어들인단 말인가

"찔리는 게 많으신가봐요? 단순 보고를 협박으로 알아듣는 걸 보니 말이에요."

그 모습에 이화영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요랑을 불편해하는 당진설의 모습이

꽤나 재밌어보이는듯한 모습이었다.

"일을 그렇게 키워봤자, 너한테도 좋을 게 없을텐데?"

자신은 엄연히 이화영의 직속부하였다.

그런 자신의 잘못을 저른다면

직속상관인 이화영 또한 면책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상관없어요, 당신만 엿먹일 수 있다면 말이에요."

이화영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말따윈

때려죽어도 안듣는 당진설이었다.

그런 그녀를 제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함께 똥물을 뒤집어쓰리라

".......너 정말 이럴거야?"

그녀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네에. 그럴 건데요?"

"후회할텐데?"

당진설의 눈빛이 한층 더 싸늘해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북풍한설처럼 말이다.

"후회는 당신이 하겠죠."

그럼에도 이화영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눈빛으로 당진설과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노려보았을까

"후우....영아....난 정말 모르겠구나."

이내 당진설은 가벼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뭘 믿고 그리 주제넘게 구는 지 말이야. "

"부하직원을 혼내는 일에 뭘 믿을 게 있어야하나요?"

이화영은 코웃음치며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믿을 게 있어야지. 재경각에선 네가 윗선일 지 모르지만 노예들 중에선 넌 이제 갓 들어온 신입 노예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당진설은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재경각 내에선 이화영의 서열이 윗줄일지 모르지만

노예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녀는 이제 막 들어온 신입 노예에 불과하였다.

선임 노예인 자신 앞에선

숨쉬는 것 하나

물마시는 것 하나

조심하며 설설기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사실을 망각한 채

이리도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말인가

"설마 노예들 간에는 기수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노예 서열은 기수제였다.

일찍 노예화가 될 수록

더 높은 서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잘 알고 있어요. 그에 관해선 주인님께서 친절히 설명해주셨으니까요."

이화영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노예 서열이 굴복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잘 알고 있는 것치곤 너무 건방진 것 같은데?"

당진설은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건방지면 안될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주인님이 친히 정해주신 서열제를 따르지 않겠다는 거야?"

"그럴 리가요. 제가 거룩하신 주인님을 거역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요?"

"지금 내게 항명을 하는 것 자체가 주인님을 거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란다. 상위 서열인 내게 하위 서열인 네가 대들고 시건방지게 구는 것 자체가 말이야."

당진설은 한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이화영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노예들의 서열제는 주인님이 친히 정하신 제도였다.

그 서열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주인님을 거역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인 것이다.

"후후후훗."

그 때 갑자기 이화영을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우습다는듯이 말이다.

"뭐가 우습지?"

그 모습에 당진설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기 시작하였다.

넓은 아량을 가진 선임으로서

어리숙하고 멍청한 초임 노예에게

피가 되고 살이되는 조언을 해주고 있건만

어찌 이를 보이며 웃음을 흘릴 수 있다는 말인가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죄송해요, 안웃으려고 했는데....하시는 말씀이 너무 우스워서요."

"그러니까 대체 뭐가 우습다는 거지?"

"혼자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화영은 악의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 부인께서 기수 열외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뭐라!?"

순간 당진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경악스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기수열외라니!?

그게 별안간 무슨 소리란 말인가

"역시 모르셨나보네요."

이화영은 예상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돼! 내가 기수열외라니!"

당진설은 즉각적으로 반발을 하였다.

기수열외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자신이 어찌 기수열외를 당한단 말인가

"멋대로 행동한 것에 대한 처벌이라고 하더군요."

"뭐라고?!"

"주인님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어머니를 꾀어 저를 강제적으로 바치게 만들었잖아요? 그렇게 멋대로 행동했으면서 어떠한 제재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그건 전부 주인님을 위해.!"

모든 건 주인님을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하는 마음에

행한 행동인 것이다.

"의도가 좋았다고 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건 아니예요. 당부인."

이화영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주인님께서 그러셨어요. 자긴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당부인께서는 감히 주제넘게 주인님을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드셨죠."

의도가 어떻든

당진설이 선우를 제 멋대로 주무르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에 따라 처벌을 맞는 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그런!"

당진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주제넘게 행동한 짓은 엄연한 사실이였기 때문이었다.

"당부인께서 기수열외가 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랍니다...아니 오히려 관대한 처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내쳐도 할 말 없는 짓을 저지르셨으니까요."

이화영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제 아시겠나요? 왜 기수열외가 되신건지?"

으드득

당진설은 이를 으드득 갈기 시작하였다.

"반응을 보니 납득하신 것 같네요."

그 모습에 이화영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분해죽겠다는듯한 당진설의 모습이

꽤나 통쾌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납득하셨으면 이제 바닥에 머리를 박고 빌어보세요.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제발 재경각주께 보고치 말아달라고 말이에요.."

이화영은 실실 거리며 그녀를 조롱하기 시작하였다.

".......못한다."

"뭐라구요?"

"못한다고 말했다. 내 아무리 상황이 여의치 않다해도 네년에게 굴복할 성싶더냐?"

당진설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이화영은 핏덩이와 같은 애새끼였다.

그런 그녀에게 굴복한다는 건

결코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인 것이다.

"재경각주께 보고해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어디 원대로 마음껏하려무나, 내 머리통이 터지는 한이 있어도 덜떨어진 네게 사과할 일은 없을터이니."

"덜 떨어졌다니! 지금 말 다하신건가요?"

"상대적으로 덜떨어진 건 사실이잖니? 네 어미인 모용란처럼 말이야."

당진설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를 거론하다니!"

이화영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언성을 높였다

곧이어 집무실에는 두 여인들의 고성이 오고가기 시작하였다.

격렬한 말싸움이 벌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 싸움이네."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

"냅둡시다. 저러다 말겠지."

그리고 그 소리에 재경각원들은 골치아프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요즘 잘지낸다싶더니

얼마 못가 또다시 싸움박질이었다.

너무 익숙해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미쳤어! 당신!?"

"미친 건 너지! "

콰아아앙 콰아아앙

우지끈 으드드득

콰지지직 콰드드득

쨍그랑

곧이어 문 안쪽에서 집기구가 부숴지는 소리와 거대한 고성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야아아..이걸 말려야하는 거 아니야?"

"빨리 각주님 불러! 저러다 초상 치르겠어!"

"각주님! 각주님!"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재경각원들은 다급히 재경각주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 초상을 치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결국 두 여인들의 싸움은 요랑이 도착한 후에야 끝을 볼 수 있었다.

도착한 요랑이 그녀들의 온몸을 고루 후두려 팬 덕택이었다.

그리고 후두려 맞은 여파로 전신이 골절된 두 여인은 며칠동안 의각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후로는 자연히 다툼이 없어지게 되었다.

또 다시 싸운다면 그때는 전신 타박상이 아닌 그대로 사망시켜주겠다는 요랑의 살벌한 협박이 그녀들의 다툼을 완전히 해소시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재경각은 다시금 평화를 맛보게되었다.

요랑의 강경한 철권통치에 의해서 말이다.

*******

따아악

"아아아악!"

선우는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상당한 격통이 머리를 통해 그대로 전해진 까닭이었다.

"머리가 비었네요. 후배님."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선배님."

선우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천천히 입을 떼었다.

"말씀하세요."

"혹시...화나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전 평소랑 다를 바가 없는데요?"

운설은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것치곤 목검에 실린 경력이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한데요?"

선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착각이 아닐까요?"

"착각이 아닙니다."

선우는 단호히 말을 내뱉었다.

이미 도검불침에 다다른 신체였다.

웬만한 쇠붙이조차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 신체에 고통을 준다는 건

상당한 경력이 실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긴장조차 없기 마련이죠, 상시 긴장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일 뿐이에요. 후배님."

선우의 단호한 태도에 운설을 말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어쩔 수 없다는듯이 말이다.

"......그런 거군요."

그 말에 선우는 납득한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네에, 그러니 온전히 검을 받으시면 돼요. 모두 후배님을 위한 일이니까."

운설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쉴새없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평소보다 무거운 경력을 담아

평소와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쾌속하고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말이다.

따악 따악 따악 따악 따악

"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목검이 쉴새없이 쇄도하였고 선우는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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