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086화 (1,087/1,419)

EP.1086 1087. 배신의 엄마.

의식을 차린 순간

알 수 없는 향이 콧끝을 스쳐가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맡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나른해지며 힘이 빠지는

기묘한 향이 말이다.

더불어 전신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마치 거대한 쇳덩이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거워.'

무거웠다.

전신은 물론

눈꺼풀까지 말이다.

'나른해.'

나른하였다.

일어나려는 의지조차 점점 깎여질 정도로 말이다.

'일어나야하는데...'

정신을 말똥하였다.

언제고 일어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몸이 거부하였다.

나른함과 무거움이

그녀의 기상에 대한 의지를 전력으로 가로막는 것이다.

'대체...어떻게 된거지...몸이..왜..이렇게..'

의구심이 들었다.

정신마저 갉아먹는 무거움과 나른함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좀처럼 유추할 수는 없었다.

기억나는 건 피로가 몰려와

어미인 모용란의 품 속에서

잠이 들었다는 기억 뿐

그외에는 어떠한 것도 떠올려지지 않는 것이다.

'대체...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당혹스러웠다.

무언가 일어났다는 건 알겠지만

그 정체를 도무지 알아챌 수 없는 까닭이었다.

두런 두런 두런

그때 어디선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들리진 않았지만

적어도 근처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천근만근

무겁기 그지없는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위해

최대한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부디 의각에 데려달라고 말이다.

스르르륵

그렇게 간절한 의지를 담아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어머, 벌써 일어났네?"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여인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우기 시작하였다.

"당..당신은.."

순간 이화영의 눈빛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만나고 싶지도 않고

만나서는 안될 여인.

당진설이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타고난 내성이 나쁘지 않은듯 하네, 과연 명가의 후예라는 건가."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깬 이화영이었다.

아무래도 타고난 내성이

깨어날 시간을 앞당겨준듯 하였다.

"내..내성이라니!?..설마..당신..내게...."

"아아아, 몽혼향을 맡게 했단다, 무림 고수라도 즉각적으로 잠들게 해주는 아주 편리한 향이지."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역시 무슨 꿍꿍이가 품고있었구나! 당진설!"

그 말에 이화영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의문이 들긴 하였다.

악독하기로 유명한

당진설과 이현경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순순히 죄를 자백하며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의문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역시 무언가

꿍꿍이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안심시키고 해코지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꿍꿍이라.....뭐, 틀린 말이 아니긴하지."

당진설은 딱히 부정을 하진 않았다.

그리 틀린 말이 아니라 느낀 까닭이었다.

"악독한 년! 나를 납치해 무슨 끔찍한 짓을 벌일 셈이지!?"

"끔찍한 일이라니..말이 심하네, 비록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내가 딸에게 그런짓을 할 리 없지 않니?"

"난 당신의 딸이 아니야! 말조심해!"

"슬프네, 이리도 어미의 진심을 몰라주다니 말이야."

당진설은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대꾸를 하였다.

놀리는듯한 느낌이 무척이나 강한 얄미운 모습이었다.

"같잖은 연기 집어치워. 악독한 년."

이화영은 살의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난 가겠어!"

그리고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하였다.

일단은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하지만 일으켜세울 수 없었다.

무언가 팔목과 발목을 고정된 채

전혀 움직이지 않은 까닭이었다.

"!?"

깜짝 놀란 이화영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팔목과 발목을 구속하고 있는

두터운 족쇄를 말이다.

"이딴 걸로 날 구속할 수 있을 것 같아!?"

이화영은 곧바로 내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족쇄를 그대로 끊어버릴 심산이었다.

파아앗

"아니!?"

하지만 곧이어 그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운기운행을 해도

내력이 뭉치긴 커녕

그대로 흩어져버린 까닭이었다.

"금제도 안해뒀을까봐?"

당진설은 사악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이이이익!"

철컥 철컬 철컥 철컥

그 미소를 마주한 이화영은 이를 악물며

이리저리 팔다리를 격렬히 들썩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족쇄를 끊어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끊길 기미따윈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소용없단다.. 한철을 섞어만든 족쇄거든."

당진설은 그런 이화영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소량이긴 하지만

한철을 섞어만든 족쇄였다.

내력이 마음껏 운용할 수 있다해도

끊어낼 수 있을 지 없을 지

장담조차할 수 없는 소재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족쇄를

맨몸으로 뜯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풀어! 풀란 말이야!"

이화영은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단다."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계획을 위해선 네가 좀더 잠들있어야 하거든."

당진설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반시진은 더 잠들어있어야할 이화영이었다.

이대로 깨어나기엔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인 것이다.

"잠들었다 깨어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란다. 그때쯤이면 이 어미의 큰 뜻을 알게 되겠지."

"웃기지마아아아!"

이화영은 그런 당진설을 바라보며 즉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짓을 하면 재경각주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분명 널 죽일거야. 그 잘난 머리통을 잘익은 수박처럼 터트려버릴 거라고!"

재경각주는 제 사람을 무척이나 아끼는 이였다.

당진설에게

자신이 납치당한 것을 알게된다면

필시 당장에라도 달려와

그녀의 머리통을 그대로 터트려버릴 것이다.

"확실히 재경각주는 무섭긴 하지. 그녀라면 내 머리를 사정없이 부숴버릴 수도 있을테니까."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수긍을 하였다.

확실히 재경각주는 무서웠다.

재경각 내에서

남의 눈치 안보고 자신을 제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들키지 않는다면 내 머리가 터져나갈 일도 없겠지."

"아니, 재경각주께선 알아차리실 거야, 내가 갑작스럽게 출근하지 않는다면....어머니께서 내 실종 사실을 알리게된다면...널 범인으로 유추할 수 있을 테니까!"

이화영은 당진설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숨기려한다해도

결국 진상이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사라진 것을 알게된다면

부하를 끔찍히 아끼는 재경각주와

누구보다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 말이다.

"네 실종 사실은 알려지지 않게 될거야. 왜냐면 너는 지금 휴가계를 제출한 상태거든."

당진설은 히죽거리며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내가 잡혀있는데 누가 휴가계를 제출한다는 말이지!?"

휴가계를 제출할 수 있는 건

오직 본인뿐이었다.

본인이 아니라면

휴가계가 그대로 반려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꼼짝없이

대체 어찌 휴가계를 제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본인 대신 가족이 휴가계를 제출할 수 있다는 조항은 까먹었나봐?"

"그건 오직 직계 혈족에 한하여 허락되는 조항일텐데? 당신은 해당사항이 없어."

허용되는 건

핏줄로 연결된 직계 혈족뿐이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당진설이 아무리 용써도

휴가계를 제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맞아, 난 해당사항이 없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으니까."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네 어미라면 다르지."

"뭐..뭐라고?!"

순간 이화영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네 어미가 제출하는 휴가계라면 충분한 효력이 발휘된다 말했단다. 아가."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어머니가..그런 일을..하실 리 없잖아!"

이화영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어머니가 그런 일을 벌일 리 없었다.

어찌 당진설의 계획에 협조를 한다는 말인가

"믿기 어려운가보구나."

당진설은 가벼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소매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럼 눈 크게 뜨고 직접 확인해보려무나,"

이회영이 더욱더 잘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승인..!?"

그리고 그 서류를 본

이화영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승인이라는 큼지막한 도장 자국이

시야를 가득히 메웠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어미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당진설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놀란 모습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말도 안돼.....어째서..어째서..어머니가..저 휴가계를..어째서..당진설의 뜻대로.."

이해가 안되었다.

어째서 어머니가 휴가계를 제출한 것인지

어째서 어머니가 당진설의 뜻대로 움직여준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후후후훗, 믿기 어려운 눈치로구나."

당진설은 재밌다는듯 웃음을 지었다.

"당신...당신이..어머니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이화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무슨 짓이라니? 의도를 모르겠구나."

당진설은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시치미떼지마! 어머니를 조종해 휴가계를 제출하게 만든 거잖아! 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무슨 협박을 한거야!"

"협박이 아니란다, 영아, 휴가계를 제출한 건 모용란의 자발적인 행동이였으니 말이야."

"거짓말!!"

"더불어 내게 몽혼향을 맡게한것도 네 어미인 모용란이란다"

"거짓말! 모두 거짓말이야! 어머니가 내게 그런 짓을 할 리 없어!"

"이상하네, 어렴풋이 기억날텐데, 어미 품 속에서 잠들던 기억이 말이야."

".......그런 기억따윈..없어! 없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일어난 일이 없던 게 되진 않는단다. 아가."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무척이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어머니가 내게 그런 짓을 할 리 없어! 전부 네 음모라고!"

이화영은 악다구니를 쓰며 격렬히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럴 리 없다면서

모든 게 당진설의 음모가 분명하면서 말이다.

"애처롭구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네 미숙함이."

당진설은 안타까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기 시작하였다.

악을 쓰고 있는 이화영을 향해서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손대지마! 내게 손대지마!"

이화영은 전신을 격렬히 뒤흔들기 시작하였다.

족쇄로 인해 움직이진 못하였지만

격렬한 반항의 의지가 절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휘이이익

당진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이화영을

손을 휘저었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아아아......"

추우욱

그러자 악다구니를 쓰며 반항하던

이화영이 그대로 추욱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은 한숨 자두렴. 깨어난다면 진실을 마주하게 될터이니."

당진설은 추욱 늘어진 이화영은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무척이나 행복한 진실을 말이야."

그리고 미소 지었다.

무척이나 환한 미소를 말이다.

***********

연무장 앞

"제게 할 말이 있으시다구요?"

선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에 방문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네에, 장 대협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아한 귀부인, 모용란은 공손한 어투로 입을 떼었다.

꽤나 정중한 모습이었다.

"무슨 말을 말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리를 옮기지요."

"자리를요?"

"네에......혹여 어려우신건가요?"

모용란은 애처로운듯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어투에는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처연함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아닙니다...뭐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요."

그 처연함을 정면으로 마주한

차마 그녀의 제안을

선우는 거절치 못하였다.

왠지 거절을 하면

저 처연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감사해요. 장 대협."

모용란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처연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선우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조용히 이야기할 곳을 미리 알아보았답니다."

곧이어 모용란은 그대로 몸을 돌린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천박할 정도로 탐스러운 엉덩이를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선우는 그런 모용란을 따라

마찬가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천박하게 흔들리는 둔부를

흡족스럽게 감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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