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85 1086. 운수 좋은 날
흔들 흔들
누군가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말이다.
"우우우웅....."
그 흔들거리는 느낌에 이화영은 그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굳은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흔들 흔들 흔들
하지만 완곡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전신을 흔드는 손길은 멈출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강하게 그녀의 몸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어서 일어나라는듯이 말이다.
"딸~ 일어나야지."
곧이어 나긋한 목소리가 이화영의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나른함과 안락함을 선사해주는
자애로운 목소리.
어머니 모용란의 목소리였다.
"우우웅...더..잘래요.."
이화영은 나른한 목소리로 잠투정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잠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이
온몸을 그대로 휘감은 채
극도의 나른함을 선사한 까닭이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더 자고 싶은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지각을 할거야."
모용란은 그런 딸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저....어제..근신처분 받았어요...오늘 구태여 출근할 필요가 없어요."
이화영은 침울한 기색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횡령 사건의 진상이
파헤쳐질 때까지
근신처분이 내려진 그녀였다.
출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근신처분은 풀렸단다. 딸."
모용란은 그런 딸을 나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번쩍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감겨있던 이화영의 눈이 번쩍 뜨여지기 시작하였다.
"..뭐..라구요!?"
그리고 이화영은 믿기 어렵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 말이 정녕 틀림없는지 말이다.
"오늘 아침 재경각에서 네 복귀 명령서 하나가 전달됐단다."
"복귀 명령서요?"
"그래."
스으윽
모용란은 소매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어
딸에게 건네주었다.
덥석
이화영은 재빨리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다음 차근 차근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아.."
그리고 이내 탄성을 내뱉었다.
과연 어머니의 말대로
명령서에는
복귀를 명하는
내용이 빼곡히 적혀져있었다.
근신이 풀린 것이다.
"이..이게..대체..어떻게.."
이화영은 믿기지 않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근신 처분이
내려진 지 하루조차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빨리 근신 처분이 풀리고
복귀 명령서가 날라올 수 있다는 말인가
"자세한 사정은 재경각에서 확인해보려무나."
그 물음에 모용란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재경각에서요?"
"그래, 그곳에 가면 알 수 있을거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이야."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리고 이화영은 그런 어미를
여전히 알 수 없다는듯이 바라보았다.
대체 자신이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저....씻으러갈게요.."
이내 이화영은 몸을 일으켜세우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무언가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하지만 순순히 말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직접 재경각으로 발걸음을 하여
진상에 대해 알아보는 게 더 나은 선택이리라
"탁월한 선택이구나."
모용란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탁자 위에 입고 갈 옷을 꺼내두었단다."
"...감사해요..어머니."
이화영은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출근 준비에 돌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모용란은 그런 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
또각 또각 또각
처소 밖으로 나온
이화영은 재경각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다급한 걸음걸이로 말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대체..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화영은 속으로 몇 번이고 질문을 던졌지만
도무지 유추해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근신이 풀리게 된 것인지 말이다.
재경각주는 분명히 말하였다.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근신 처분을 풀지 않겠다고
그리고 진상이 밝혀진이후에
정확한 징계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찌 단 하루만에 근신처분을 거두어들인다는 말인가
'설마 진상이 밝혀진 건가?...단 하루만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자료 조사만
주단위로 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하루만에 진상이 모두 밝혀진다는 말인가
'그렇다면.....그냥 묵인하고 넘어가기로 한걸까?'
이 또한 설득력이 없었다.
내규에 관해선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한 재경각주가
주관하는 일이었다.
분명 그냥 대충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당진설과 이현경이...잘못을 시인한 걸까?'
붕 붕
곧이어 이화영은 고개를 좌우로 붕붕 흔들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했던 가정 중
가장 말도 안되는 가정이었다.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주동자이자 장본인인 두 모녀가
사실을 시인하다니
세상에 두쪽나지 않는 이상
벌어질 리 없는 일인 것이다.
손해만 보는 짓을 뭣하러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뭐지...대체..왜...나를 복귀시킨 거지?'
온갖 가정들을 쥐어짜봤지만
그럴듯한 게 전혀 없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일단 재경각에 가자...가서...어떻게 된 일인지...전부 듣도록 하자.'
곧이어 이화영은 굳은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혼자 이런저런 가정을 하며 끙끙 앓아봤자 소용없는 짓이었다.
제대로 된 진상파악을 위해선 움직여야 할 때인 것이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더욱 더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
"네 혐의는 벗겨졌어. 진상이 밝혀졌거든."
요랑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진상이...밝혀졌다구요!?"
이화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확인하듯 되물었다.
도저히 믿기힘든 사실이
귓가에 파고든 까닭이었다.
혐의가 벗겨진 건 둘째치더라도
단 하루만에 진상이 밝혀지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당진설과 이현경이 순순히 자백했거든, 서류들을 은밀히 조작해 남는 돈을 만들고 네게 횡령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재경각 내 입지를 줄이기 위해서 말이야."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두..두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구요!?"
이화영은 도저히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하루만에 진상이 밝혀졌다는 것보다
더욱더 경악스러운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자신이 했던 가정 중
가장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되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응, 확실히 말했어."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어..어째서..그런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 본인들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말인가
가만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나락에 가는 건 자신이 될터인데.
"글쎄...본인들말로는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죄책감이 들었다고 하던데?"
요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여자들이요?"
이화영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 독사같은 여자들이
그런 인간다운 마음을 품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뭐, 어쨌든 걔네가 자백을 한 덕택에 네 횡령 혐의는 완전히 벗겨지게 되었어. 근신 처분 자연히 풀리게 되었고 말이야."
요랑은 정리하듯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믿기지가 않아요."
이화영은 어안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리도 쉽사리 혐의를 벗게 되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믿기지 않아도 사실이야. 현실을 받아들이렴."
요랑은 살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넌 무죄야."
왈칵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화영은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간 느꼈던 억울함과 설움이
무죄라는 말 한마디에
단숨에 녹아내려간 까닭이었다.
"그간 고생했어."
요랑은 그렁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었다.
"흐윽...흐윽...흐으으윽..요랑님...흐윽.."
그리고 그 따스한 말 한마디는
이화영의 눈물샘을 완전히 터트리고 말았다.
눈물을 철철 흘리게 만든 것이다.
"이런...내가..울렸나보네?"
요랑은 꽤나 미안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양손을 뻗어
울고 있는 이화영을 품에 안았다.
"괜찮아...이제 다 잘됐으니까...슬퍼하지마."
토닥 토닥 토닥
그리고 떨고 있는 그녀를 부드러이 토닥여주기 시작하였다.
마치 위로를 해주듯이 말이다.
"흐으윽..아니..아니에요..흐윽...슬퍼서..흐윽..우는 게 아니..예요.."
그녀의 말은 틀렸다.
지금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따위가 아니었다.
"좋아..흐윽..너무..좋아서.....흘리는 거에요..으윽...너무..잘돼서..흐윽....그게 너무 좋아서."
지금의 눈물에 섞여든 감정은
기쁨이었다.
비애의 감정따위는 터럭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도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다행이네."
그 말에 요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마음껏 눈물 흘리렴, 기쁨의 감정이 넘쳐흐를 때까지 말이야."
그리고 더욱더 부드러이 이화영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완전히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화영은 그런 요랑의 토닥임을 느끼며
울고 또 울었다.
기쁨의 감정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말이다.
********
품격 있는 한 명의 귀부인
모용란은 조용히 찻잔을 들어올려
향을 음미하기 시작하였다.
그저 찻잔을 들어올렸을 뿐이었지만
그 분위기는 무척이나 남달랐다.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가
그녀의 모습을
천재가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흐르릅
곧이어 그녀는 음미한
찻잔을 그대로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탁
그리고는 찻잔을 내려놓고
무척이나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등품의 찻향이
꽤나 마음에 든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창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들어오렴."
모용란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벌컥
그러자 문이 열리고
이제 막 약관이 되었을듯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사랑스러운 딸
이화영이었다.
"어머니!"
그녀는 꽤나 밝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영아가 왔구나."
모용란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께서 하신 거죠?"
그녀는 다짜고짜 모용란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무엇을 말이니?"
모용란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당진설과 이현경에게 자백을 하게 만든 일이요!"
이화영은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글쎄, 이 어미는 모르겠구나."
"시치미 떼지마시구요,"
이화영은 부담스러운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어미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계 오라버니한테 들었어요, 어제 어머니께서 당진설에게 직접 찾아갔다구요. 그리고 그직후 당진설과 이현경이 누명을 씌운 사실에 대해 자백을 하게 되었고 전 혐의를 벗게 되었어요!"
이화영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어미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어머니가...해결해주신 거죠?...그 사람한테 자백을 받아내신 거죠?"
"어젯밤 그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긴 했단다."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와락
그 순간 이화영이 모용란의 폭신한 품 안에
그대로 안겨들기 시작하였다.
"..영아!?"
"고마워요...정말..고마워요..어머니..정말..정말..고마워요."
품에 안긴 이화영은 연신 감사를 표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누명을 벗겨준 어머니에게 말이다.
"어머니 덕분에 누명이 벗겨지게 되었어요....의심받던 눈초리에서..벗어나게 됬어요....지금까지 쌓아왔던 신뢰를 잃지 않게 되었어요...좋아하는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게 되었어요...근신 처분이 풀리게 되었어요....정말 감사해요...정말로..정말로.."
이화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모용란이 아니였다면
자택에 구금된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슬프고 우울해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을 어머니가 구제해주었다.
자신을 위해 발벗고 나서
모든 걸 정상화시켜준 것이다.
"어머니가 제 명예를 회복시켜주었어요....어머니가 아니였다면..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을 거예요...감사해요..정말 감사해요."
이화영은 모용란의 품을 눈물로 잔뜩 적시기 시작하였다.
쏟아지는 눈물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끼린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란다."
쓰담 쓰담
모용란은 그런 딸의 뒷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가족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란다. 감사를 받을 필요도 생각도 없어요~"
"그래도 그래도 감사해요..흐윽..너무..감사해요."
"감사할 필요 없대두, 이 어미는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단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니?"
"맞아요...저도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이화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이토록 헌신해주는 어미를 위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니 감사할 필요 없단다. 가족 간에 서로 위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흐윽...흐윽...어머니.."
한층 감격한 이화영은 어미의 품 안에 더욱더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우리 딸, 응석쟁이가 다됐구나, 눈물이 이리도 많다니 말이야."
"어머니 앞에선 항상 응석쟁이로 살래요..어머니 앞에선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있을래요."
이화영은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그래, 얼마든지 그러렴, 이 어미는 항상 네 편이니까."
"저도 항상 어머니 편이에요.. 사랑해요..어머니."
"나도 사랑한단다. 우리 딸."
두 모녀는 서로를 더욱더
포근히 껴안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란다. 딸."
모용란은 품 안에 안긴 딸의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화영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을 하였다.
"그렇게 될거란다. 이 어미가 그렇게 만들터이니."
모용란은 확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어머니를 믿어요.."
순간 이화영은 몽롱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모용란의 살내음을 끊임없이 맡다보니
알 수 없는 나른함이 전신을 덮쳐든 까닭이었다.
"그리 말해주니 기쁘구나."
"...........이상해요..어머니..갑자기...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긴장이 풀린 것 같구나...한꺼번에 많은 일을 겪어서 생긴 부작용일테지."
"그런..걸까요?"
"그렇고 말고, 너무 걱정말거라. 졸리면 자면 될 일 아니더냐?"
"아아...그럼 적어도 침상에.."
"품에서 자도 된단다. 옮기는 건 이 어미가 할터이니."
"하...지만..너무..민폐를.."
"우리 딸은 깃털처럼 가벼워서 괜찮단다."
모용란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하아아...그럼..어머니...신세를..좀....."
추우욱
이화영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였다.
중간에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까닭이었다.
"잘자렴, 우리 딸."
모용란은 품안에 축 몸을 늘어뜨린 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눈을 뜨면 아주 좋은 곳에 가있을 거란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광기로 가득한 환한 미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