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81 1082. 작업에 들어가다.
"어때? 이정도 조건이면 꽤나 수용할 만한 것 같은데?"
당진설은 뱀과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모용란을 바라보며 물었다.
꽤나 양보해줬다는 듯이 말이다.
"..............."
그 물음에 모용란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그저 침묵을 하였다.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조건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속박을 푸는 것은 물론
딸의 결백마저 증명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용란은 쉽사리
수락을 하지 못하였다.
당진설에 대한 불신감이
결정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뜸들이지 말고 어서 결정하라구, 란,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어디 있겠어? 응?"
그녀가 말이 없자 당진설은 연신 재촉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민하는 것조차 아깝다는듯이 말이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이내 모용란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신뢰라고는 일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후후훗, 생각보다 신뢰가 더 없는 모양이네."
당진설은 재밌다는듯 웃음을 흘렸다.
경계심 그득한 모용란의 반응이
꽤나 유쾌하게 느껴진듯한 모습이었다.
"곧이 곧대로 믿기엔 넌 너무 악독한 년이거든."
"후후후후, 하긴 내가 꽤나 악독하긴 하지."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하였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 속는 셈치고 믿어보는 게 어때? 어차피 내 말이 거짓이든 사실이든 제압 당한 입장에선 손해볼 건 없잖아?"
당진설은 뱀과 같은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인든
자신이 손해볼건 없었다.
얌전히 처분만 기다리는 것보단
뭐라도 해보는 게 나은 선택일테니.
".......좋아....대화하지."
이내 모용란은 결심한듯 천천히 입을 떼었다.
"탁월한 선택이야."
"대신....날 속이는 거라면...결단코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그래, 얼마든지 그렇게 하렴."
당진설은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일단 자리부터 옮기지."
그리고 곧이어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환하지만 어딘간 거북한
그런 꺼림칙한 미소를 말이다.
*************
쪼르르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액체가
서서히 따라지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꽤나 맑은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백호은침이군."
그 향을 맡은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과연 안목이 없진 않네."
당진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맞아, 복건성의 백호은침이야. 아주 귀한 녀석이지."
"헛 돈을 썼군."
스으윽
모용란은 찻잔을 그대로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찻잔에 입을 대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안 마시려고?"
"생각 없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어때? 너도 알텐데? 제철이 아닌 시기에 백호은침이 얼마나 비싼지 말이야."
백호은침은 백차들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칭할 수 있는 귀하디 귀한 차였다.
그런 차를 제철도 아닌 시기에
구한다는 건
꽤나 돈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비싸도 목숨보다 귀하진 않은 법이지."
모용란은 코웃음을 치며 입을 떼었다.
백호은침이 얼마나 비싼지는
잘알고 있다.
아마 구하기 위해
시세보다 상당한 웃돈을 얹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실 생각이 들진 않았다.
저 악독한 당진설에
찻잔에 무언가를 탔을 지도 모를 일이니 마리다.
"또 무의미한 의심을 하는구나, 란."
당진설은 그런 모용란은 한심한듯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내가 널 어떻게 할 생각이였다면 팔다리가 묶여있을 때 하지 않았겠니?"
"혹시 모르지. 날 안심하게 만들고 미약이나 고독 같은 걸 먹일지도."
모용란의 눈빛에는 불신으로 가득 들어 차 있었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란. 그러니까 내게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한 거란다."
"그건..방심한 것 뿐이야! 다시 붙는다면 결과는 다를거야!"
"아니 다시 붙는다해도 결과는 같을 거야. 정靜에 치우진 검을 익힌 주제에 정작 당사자는 머릿속은 잡념투성이라니...그런 검이 강할 리 없잖아?"
모용란이 익힌
은하검은 정靜에 치우쳐져있는 검술이었다.
파괴적이고 위력적이기보단
세밀하고 정확하며
틈새포착에 특화된 검술인 것이다.
그런 검술에 저런 잡념은 쥐약이었다.
제대로된 위력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잘 알지, 잘아니까 널 제압하고 이렇게 얌전히 자리에 앉힌 게 아니겠어?"
당진설은 히죽거리며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부들 부들 부들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모용란은
말없이 그저 전신을 부들거릴 뿐이었다.
반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항거할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어쩜 맞는 말만 저리도 얄밉게 한다는 말인가
"훗."
그 모습에 당진설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반박조차 못할 정도로 짓밟아버린 게
꽤나 흡족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말고 용건이나 말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용란은 눈살을 찌푸린 채 곧바로 화제를 전환하였다.
더 말을 이어봤자
불리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맞아, 너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란."
당진설은 그런 그녀를 귀엽다는듯이 바라보며 수긍을 하였다.
좀더 속을 긁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넘어가주기로 하였다.
본제로 넘어가기도 전
힘을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으니 말이다.
"란, 넌 앞으로 어떻게 살 생각이지?"
"......다짜고짜 그게 무슨 소리지?"
모용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맥락없는 그녀의 말에 짜증이 치민 것이다.
"말그대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묻는거야, 설마 아무 생각도 없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있지...사람 무시하지마."
"그렇다면 말해줄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인지."
".....내가 왜 그런 걸 네게 공유해야하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진척되지 않아. 란."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돈을 모을거야."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돈을?"
"그래, 돈을 모아서 모용가를 재건할 거야.....그리고 재건한 모용가를 다시 명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거야."
모용란은 눈을 빛내며 입을 떼었다.
"포부가 꽤 크네. 가문의 재건이라니 말야."
"명가의 후손으로서 가문을 일으켜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야."
"투철한 사명감이네, 모용가의 선조들도 분명 저승에서 감복하고 있을 거야 "
당진설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사명감만으로는 불가능한 꿈이야. 란."
"뭐라고!?"
모용란은 곧바로 반발하며 언성을 높였다.
초를 치는 당진설의 말에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가문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돈이 얼만지는 알고 그런 속편한 말을 하는거야? 너와 이화영, 모용계가 평생을 아끼고 아껴도 절대 못 모을 돈이 필요하다고."
당진설은 차갑기 그지없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세월이 흐른다면 모용계의 새싹들 또한 함께 돈을 모을 수 있어!"
"핏덩이 같은 녀석들이 모아받자 얼마나 모으겠어?"
모용가의 새싹들은 연령대가 어려도 한참 어린 이들이었다.
합심해서 모아봤자 푼돈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함부로 말하지마...단기간내에 힘들더라...몇 년이고 몇 십년이고 꾸준히 모으고 모으다보면...언젠가는 재건 비용을 마련할 수 있어."
"그럼 평생 돈만 모으다 죽겠다는 소리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한 채?"
"불가피한 선택이야."
모용란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가문의 재건이라는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
자신 뿐 아니라 모두가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것이다.
"글쎄, 네 생각처럼 될 것 같진 않은데."
당진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모용란은 짜증 어린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초를 치는 그녀의 말에
짜증이 치민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안일한 방법으로는 재건이 힘들다는 말이야."
당진설은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안일하다니!"
모용란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세가원들이 모두 너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잖니? 평생 돈만 바치는 인생을 강요당하다니.....차라리 재건의 꿈을 포기할 것 같은데?"
"모용가의 새싹들을 얕보지마! 그렇게 의지가 빈약한 아이들이 아니야!"
"그 아이들을 얕봐서 하는 말이 아니란다, 란,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리 생각할 것이라고 말할 뿐이지."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야, 그런 본성을 억누른 채 착취를 하려고 든다면 누구나 반발하지 않겠어?"
"그게 바로 얕본다는 거야! 명가의 후예들에게 범인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하다니!"
"명가의 후예라고 다를 건 없을껄?"
"뭐야!"
"한창 꽃 피울 나이에 몰락한 가문을 위해 노예처럼 한 평생을 일만 하다 죽어야한다니......너무 불합리하잖아? 아마 그 아이들도 머리가 굵어지면 나와 다를 바 없이 생각할 걸?"
"그렇지 않아!"
"애초에 혈족들끼리 뭉치고 세가를 구성한 것 자체가 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야. 그런데 이익은 없고 불이익만이 가득하다? 대체 누가 그런 세가를 구성하려고 들겠어?"
당진설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야!"
모용란은 그런 당진설의 말에 곧바로 반발하였다.
물론 그전보다는 꽤나 힘이 빠진듯한 목소리였다.
"애써 부정할 필요 없어, 란, 너도 어느정도 납득하고 있잖아?"
"그렇지...않아."
"그럼 물어나보자, 란, 너는 모용가의 새싹들이 전부 너처럼 재건을 위해 기쁨 마음으로 인생을 희생할 거라고 생각해?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물론이야."
모용란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정말?...진심으로?"
당진설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
그런 집요한 물음에 모용란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사실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용가의 새싹들이
자신과 같은 사명감에 불탈 것이라는 확신을 말이다.
이제 예닐곱 먹은 아이들의
미래를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왜 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는지...이제 알겠어?"
그 모습에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
모용란은 답하지 못하였다.
여기서 그녀의 말에 수긍하였다간
가문을 재건하고자하는
모든 의지가 그대로 꺾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수긍할 수 없어...수긍해선...안돼..'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당진설의 말을
애써 부정하고 또 부정하며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였다.
모용가의 아이들이 그럴 리 없다며
모두가 자신과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한 번 심어진 불안의 씨앗은
그런 긍정적인 생각조차 뒤틀리게 만들었다.
만약 당진설의 말처럼 된다면 어쩌지? 라는
일말의 불안감이 끊임없이 솟구친 까닭이었다.
씨익
당진설은 그런 모용란을 바라보며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불안감에 떠는 표정이 꽤나 보기좋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어린 양같구나, 란.'
흡사 언제고 늑대에게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불안에 떠는 어린 양 같았다.
"불안에 떠는구나, 란."
".........."
"내 말처럼 이뤄질까 두려운 거야? 응?
".........닥쳐."
"모두가 가문의 재건따위는 외면할까 두려운 거야? 응?"
"......닥쳐."
"안타까워, 너무 안타까워, 고귀하신 귀부인께서 이런 불안감을 느껴야한다니 말야."
"당장 그 입을 다물지 않으면 그대로 찢어버리겠어."
모용란은 흉흉한 기세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비록 내공은 금제당했지만 그 기백만큼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정말? 다물었으면 좋겠어?"
"......당장 다물어."
"그래? 아쉽네, 모용가의 재건을 성공시킬 수 있는 비책에 대해 말해주려고 했는데 말야."
번뜩
순간 모용란의 눈이 희번뜩 뜨여졌다.
그리고 뚫어지듯 당진설을 쏘아보기 시작였다.
마치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묻듯이 말이다.
"그.말...사실이야?"
"사실이고 말고, 내가 언제 없는 말 지어낸 적 있니?"
당진설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모용란의 동공이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사실이라는 그녀의 말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어때? 입, 다물었으면 좋겠어?"
당진설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정녕 요 입을 다물기를 바라냐는듯이 말이다.
"............."
모용란은 곧바로 답하지 못하였다.
이제와서 아니라고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서 말해봐. 내가 다물었으면 좋겠어? 응? 응?"
당진설은 그런 그녀에게 재촉하듯 되묻기 시작하였다.
어사 답하라는 듯이
"............아니.."
그 재촉에 모용란은 개미 기어가는듯한 작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름의 용기를 낸 것이다.
"뭐라고 안들리는데~"
당진설은 그 나름의 용기를 짓밟았다.
귀에 손바닥을 댄 채
과장된 동작으로 굴복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물지..않았으면..좋겠어."
그리고 모용란은 결국 자존심을
꺾어버렸다.
고고한 자존심보단
가문의 재건을 택한 것이다.
"이제야 잘들리네."
당진설은 흡족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굴복이 꽤나 만족스러운듯한 모습이었다.
".......잘 들었으면...이제 말해줘, 가문을 재건할 수 있는 비책이 대체 뭐지?"
모용란은 다급한 어조로 당진설에게 되물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워
다급함이 앞선 것이다.
"말해주기 전에 물을 게 있어. 란."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재건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자신이 있는거야?"
"당연한 말이야. 재건을 위해서라면 뭐든 뭐든 할 수 있어!"
"그래?...그렇단 말이지."
당진설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 대답이 꽤나 마음에 든듯한 모습이었다.
"재건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야."
그리고 곧이어 그녀는 산뜻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권력자의 힘을 빌리면 돼."
"권력자?"
"그래, 한낱 무림세가 따위는 입김 하나로 일으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우월한 권력자의 힘을 빌리면 해결될 일이지."
"그런 권력자가 대체 모용가를 무슨 이유로 도와준다는 거야!"
"이유가 없다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어?"
"뭐라고?"
"아까 말했었지? 재건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당진설은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설..설마?"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모용란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자신이 상상하는 그것이 맞냐는듯한 모습이었다.
끄덕
그 물음에 당진설은 가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상상 그대로가 맞다는 의사표시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
이내 방 안에는 모용란의 비명과 같은 고함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