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079화 (1,080/1,419)

EP.1079 1080. 모용란, 분노하다.

재경각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작은 집무실 안

탁 탁 탁 탁 탁

붓 자루가 책상을 쉴새없이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박자를 타듯이

일정한 규칙을 두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두드렸을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화영."

잠자코 있던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연신 붓 자루로 책상을 두드리던 이화영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아니요...아무 일도 없어요."

그 물음에 이화영은 두드리던 붓 자루를 움켜쥔 채 입을 떼었다.

"그래? 그런 것 치곤 책상을 너무 두드리던데? 마치 초조한 사람처럼 말이야."

당진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버릇일 뿐이에요....초조한 일따윈 없어요."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당진설은 구태여 말꼬리를 잡지 않은 채 그대로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본업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말이다.

'....어째서 저렇게 순순한 건지?'

그 모습을 본 이화영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말꼬리 하나 잡지 않고

쉽사리 수긍하고 넘어가는

당진설의 태도에 의구심이 든 까닭이었다.

당진설이 누구란 말인가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사소한 꼬투리라도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악독한 여자가 아니던가

그런 여자가 저리도 쉽게 수긍하고 넘어가다니?

의구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요며칠동안

일관적으로 고분고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당진설이었다.

전처럼 대들거나 하극상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길래

저리도 고분고분하게 군다는 말인가.

'........신경쓰여.'

자연스레 신경이 쓰이고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적의를 내뿜는 적보단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 적의를 감추는 적이

훨씬 더 무서운 법이니 말이다

'갱생을 했나?'

곧이어 이화영은 고개를 좌우로 가벼이 내저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자의식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확고한 여자가 바로 당진설이었다.

세상이 전부 틀렸다해도

본인이 옳다고 여긴다면

세상 눈치따윈 보지 않고

그대로 행할 여자인 것이다.

그런 여자가 갱생따위를 할 리 없는 것이다.

'숙이고 들어갈 리도 없지....저 당진설이.'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딸뻘에 불과한

핏덩이같은 계집에게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자존심이 없는 여자가 아니였으니

'대체 무슨 생각이지...무슨 꿍꿍이인거야...당진설..'

불안감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꿍꿍이를 알 수 없으니

불안감만이 중첩되기 시작한 것이다.

"혹여 할 말이라도 있니?"

그때 업무를 보던 당진설이 이화영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할 말 같은 건 없어요...제가 당신에게 할 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화영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반박을 하였다.

"그래? 난 또 계속 쳐다보길래,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당진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저 멍을 때린 것 뿐이에요...당신을 보려던 의도가 아니라구요."

이화영은 더듬거리며 변명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번에도 당진설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제 할 일을 다시금 이어할 뿐이었다.

'.........당분간 지켜봐야겠어.'

그 모습을 흘깃거리며 쳐다본 이화영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당분간 당진설을 틈틈히 지켜봐야겠다고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날 때까지 말이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지만 당신 생각대로 되진 않을 거야!'

이화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

"그후로 쭉 관찰했지만 별일이 없었다고?"

모용란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딸에게 되물었다.

"네에....혹여 업무에 관련된 일로 엿먹이려는 건 아닐까하고 몇 번이고 검토하고 살펴봤지만......전혀 문제가 없어요..오히려 완벽히 일처리를 끝내는 건 물론...일까지 찾아서 한다니까요?"

"허어...참으로 믿기 힘들구나.....그 당진설이 일까지 찾아서 한다니."

"....제게 숙이기로 마음먹은 걸까요?"

이화영은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럴지도 모르겠구나.....며칠이나 이렇게 쥐죽은듯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정말 그런걸까요?.....어머니도 아시잖아요? 당진설이 얼마나 독한 여자인지...그런 여자가.....제가 숙였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아요."

이화영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악독하기 그지없는

당진설이 자신에게 숙이고 들어온다는

사실자체에 불신감이 든 까닭이었다.

"악독하기는 하나, 지금 당진설의 위치는 죄인이자 네 바로 밑에 위치한 부사수의 신분이 아니더냐? 철저히 나눠진 계급을 감히 넘볼 수는 없던 것이겠지. 믿고 있던 재경각주도 네 편을 들어주니 말이야."

".듣고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내요......은근한 비호를 해주던 재경각주께서..이제 제 편을 들어주시니..."

이화영은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고보니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당진설을 알게 모르게 비호해주던

재경각주가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자신의 편에 서서

당진설을 호되게 혼내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수세에 몰리며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납작 엎드리는 당진설의 모습이

어느정도 납득이 되었다.

"그럼 앞으로 기어오르거나 하극상을 저지를 일이 없겠네요."

"아마 그럴 것이다. 제 년이 맞아죽고 싶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어찌 함부로 벌이겠느냐?"

모용란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적인 재경각주가

적으로 돌아선 상황이었다.

만약 그전과 같은 패악질을 부렸다간

그 조막만한 주먹에

머리통이 쉴새없이 후두려지리라

"뭔가 마음이 편해지네요.....유일한 걱정거리가 사라져버리니...헤헤헤."

"우리 딸이 기쁘다니, 이 어미도 기쁘구나."

모용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재경각주께서 별안간 왜 제 편을 들어주게 된 걸까요? 그전까지만 해도 알게모르게 당진설의 편을 들어주었는데 말이에요."

"........글쎄...자세한 건 이 어미도 모르겠구나."

모용란은 표정을 굳히며 시치미를 떼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재경각주의 심경이

갑작스레 변한 이유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귀부인으로서 품위와 품격을 잊은 채

정숙치 못한 방법을 동원하여

딸의 안위를 챙겼음을

도저히 시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미가 돼서

당가주에게 아양을 떨었다는 말을

어찌 딸에게 할 수 있겠는가

"역시 어머니도 모르셨군요."

이화영은 수긍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재경각의 각원 자신도 모를 일을

외부인인 어머니가 알 리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이유가 무엇이 중요하겠니? 현 상황이 중요하거늘......지금 상황만 생각하거라....결국 이리 좋게 좋게 흘러가지 않았느냐?"

"그것도 그렇네요. 헤헤헤."

이화영은 맑은 미소를 지은 채 답을 하였다.

어머니 말대로 중요한 건 좋게좋게 흘러가고 있는

현재 상황이었다.

내막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할거란다. 우리 딸."

"정말..그랬으면 좋겠어요. 후후훗."

모용란의 덕담에

이화영의 맑은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눈이 부실정도로 말이다.

'그래...그리 웃거라..우리 딸...더러운 일은..이 어미 혼자..맡도록하마..너는 그저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게만 살아다오.'

그리고 그 눈부신 미소를 마주한 모용란은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굳게 빌었다.

부디 딸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어떠한 고난도 겪지 않기를

말이다.

********

삶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던가

아쉽게 모용란의 간절한 바램은

며칠만에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흐윽...흐으윽....흐으윽...흑 흑.."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이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는 딸이

서러운 눈물을 보이며

자신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영아, 대체..대체...무슨 일이니?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도 서럽게 우는 것이니?"

사랑하는 딸이 울자 모용란은 재차 그녀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체 무엇이

그리도 서글픈 눈물을 내보이게 만드는지 말이다.

"흐윽....흐으윽...흐윽...흐윽...흑 흑 흑.."

하지만 모용란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저 울고 또 울며

서러움을 토해낼 뿐인 것이다.

".....딸...울지마렴..이 어미가..있단다..여기....네 앞에..이 어미가 있단다..그러니..울지마렴....누구도 널 해치지 못한단다...누구도 널 비난하지 못한단다."

꼬오옥

곧이어 모용란은 서럽게 울고 있는 이화영을 품 안에 꼬옥 안아주었다.

토닥 토닥 토닥

그리고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울음이 그쳐질 수 있도록 말이다.

"흐아아아아아앙~!"

이화영은 그런 어미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오랫동안 말이다.

토닥 토닥 토닥 토닥

그렇게 얼마나 토닥였을까

추우욱

곧이어 이화영의 몸이 추욱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새액 새액 새액 새액

더불어 고른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내뱉기 시작하였다.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모용란은 잠들어있는 딸을 안아든 뒤

그대로 침상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사랑스러운 딸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말이다.

".....계아."

그리고 서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움찔

".....말씀하시지요. 고모님."

그 서늘함에 겁을 집어먹은 모용계가 다급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말해줄 수 있겠니?"

모용란은 마치 북풍한설과 같은 한기를 내뿜으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물..물론입니다......고모님."

그 한기에 노출된 모용계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이게..어떻게 된거냐면..."

그다음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이화영이 서럽게 눈물을 흘리게 된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모용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북풍한설과 같은 차가움이 서렸고

중간에는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분노가 차올랐으며

마지막에는 죽일듯한 살의가 방 안 가득히 퍼지기 시작하였다.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겁니다."

이내 모용계는 진득히 퍼져나간

살의를 견뎌내며 간신히 설명을 마칠 수 있었다.

"한치의 거짓도 없으렷다?"

모용란은 그런 모용계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내뱉은 말이 정녕 사실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물론입니다. 고모님..제가 어느 안전이라고..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래.....네가 거짓말을 할 아이는 아니지."

모용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덥석

그다음 걸음을 옮겨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어딜 가실 심산이십니까!?"

그 모습을 본 모용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검까지 쥐고 대체 어디를 갈 심산이란 말인가

"딸이 감당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였다. 어미가 돼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모용란은 태연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그 말은?"

"수모를 갚아주러 가겠다."

"...수모를 갚다니요!? 설..설마?"

"그래."

모용란은 고개를 가벼이 주억거렸다.

"당진설, 그년은 오늘 내 손에 죽는다."

그녀의 눈빛에는 어마어마한 살의가 폭사하기 시작하였다.

진심으로 죽이고자하는

살심이 가득 담긴 모습이었다.

'진..진심이다!'

그 모습을 본 모용계는 알 수 있었다.

품격 높은 고모님께서

치욕을 당한

딸의 모습에

제대로 돌아버렸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당진설을 죽일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털썩

"고모님...일단..고정하십시오......당가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간....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모용계는 재빨리 무릎을 꿇은 채

모용란의 치맛단을 붙잡고 그녀를 말리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냅뒀다간 정말로

칼부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어미가 돼서 딸의 수모를 갚아주지 못한다면 어찌 어미라고 할 수 있겠느냐? 놓거라, 난 이 수모를 갚아주어야겠다."

"못...못놓습니다..고모님...이건..이건...너무 극단적입니다. 일단 칼을 집어넣으시고..해결하심이.."

"안 놓는다면 너부터 베겠다."

"네에?"

순간 모용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고모님 입에서 저런 과격한 말이 튀어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농담이시지요?"

"농담처럼 보이더냐?"

스르릉

모용란은 칼을 반쯤 뽑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은빛 검날이 반짝이며 모용계의 눈을 부시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꿀꺽

모용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로 베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 까닭이었다.

"셋을 세겠다...하나...둘.."

모용란은 그런 조카를 바라보며 곧바로 숫자를 세기 시작하였다.

"셋!"

스르르릉

그리고 셋을 세는 순간

칼을 완전히 빼어들기 시작하였다.

"히이익!"

그리고 그 모습에 바짝 쫄아버린 모용계는

재빨리 치맛단을 놓아버렸다.

생존에 대한 본능이

그의 손에 힘을 그대로 풀어버린 것이다.

스르르릉

저벅 저벅 저벅

모용계가 치맛단을 놓자 모용란은 곧바로 검을 집어넣고

그대로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리고 모용계는 그런 모용란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말릴 생각조차 못한 채로 말이다.

끼이이이익

이내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모용계와 기절한듯 잠든 이화영

단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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