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65 1066. 부디 허락해주겠니?
쾅 쾅 쾅
객실 내부에 망치질 소리가 쉴새없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수 십 명의 인부들이
두텁기 그지없는 합판들을 바닥과 벽에 댄채로
끊임없이 망치질을 이어간 까닭이었다.
"자아..자아 더 부지런히 하자고!"
연배가 있어보이는 중년 인부가 큰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반장, 저희 뭐 좀 먹고 합시다. 밥은 먹어야 힘을 내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한 인부가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밥조차 제대로 주지 않고
부리기만 하니 의욕이 날 리 만무하였다.
"오늘 안에 전부 끝내려면 시간이 빠듯하네. 밥은 집에 가서 먹는 걸로 하자고."
작업 반장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배고픈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쉬는 시간을 따로 가질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작업을 끝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일을 해야하는 것이다.
"떠그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밥은 줘야할 것 아닙니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오늘 안에 끝내는 조건으로 돈을 두배로 받았으니.....정 밥먹고 하고 싶으면 반절을 반납하게나."
"떠그럴, 쉬운 게 없네."
쾅 쾅
인부는 궁시렁거리며 망치질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급을 깔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망치질을 열심히 이어가던 때였다.
"크크긋, 장형, 본전도 못찾았구려."
옆에 있던 또다른 인부, 감씨가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러게 떠그럴...난 또 간식이라도 챙겨줄줄 알았더만."
한소리 들은 장씨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궁시렁거렸다.
작업반장의 단호함에 불만이 그득한 모습이었다.
"저 소금장수같은 양반이 그럴 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혹시나 싶었네."
"크크큿 혹시나가 역시나인 법이지요."
인부, 감씨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떠그럴, 아무리 그래도 밥은 줘야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작업을 오늘 안에 끝마치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으니."
"대체 뭐가 그리 급하다고 방음 시공을 하루만에 끝마치라는 조건을 단다는 말인가?"
장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 같은 아랫것들이 영민하신 당가 마나님의 속내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수밖에."
감씨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같은 아랫것들이
당가 마나님의 의도를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높은 일급에 만족하며
열심히 일할 뿐인 것이다.
"이해가 안돼...이해가."
장씨는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벌컥
그때 갑자기 닫아뒀던 문이 열렸다.
"비켜요...지나갑니다."
일단의 무리들이 大자 모양의 커다란 형틀을 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뒤어이 족쇄와 철구를 든 이들이 따라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뭐여...씨벌..'
그 모습에 장씨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음 시공을 의뢰한 객실 내부에
대역죄인을 묶을 때 쓰는
커다란 형틀
족쇄에 철구이라니
귀부인의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고문실이라도...만들 심산인가?...아니 귀부인이..어째서?'
장씨의 의혹은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객실을 고문실처럼 꾸미려는 의도를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높으신 분들 생각은 참으로 모르겠구나.'
곧이어 장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자신과 같은 아랫것의 머리로는
높으신 분들을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일이나하자.'
쾅 쾅 쾅 쾅
생각을 그만둔 장씨는 망치를 들었고
못을 박고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객실 내부에는 장씨를 비롯한 인부들의 망치소리가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였다.
***************
가주전
내부에 위치한 커다란 집무실
콰앙 콰앙 콰앙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 당서윤은 산더미처럼 쌓여진 결재서류에 거침없이 도장을 찍어대기 시작하였다
넋이 나간듯 퀭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그렇게 얼마나 도장을 찍었을까
달그락
이내 당서윤의 손이
가주의 직인이 떼어지기 시작하였다.
더는 결재할 서류가 보이지 않은 까닭이었다.
'끝..났다..'
철푸덕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당서윤은 그대로 책상에 철푸덕 엎드려버렸다.
한계까지 몰아부쳤던 체력이
그대로 방전되어버린 까닭이었다.
'잘거야.....쭉...잘거야....누가온다해도 잘거야.'
책상에 엎드린 당서윤은 굳게 다짐하였다.
이대로 그대로 잠들어버리겠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코 깨어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굳은 다짐을 한 채
꿈속으로 서서히 젖어들가던 그 때였다.
또각 또각 또각 또닥 또각
도도하기 그지없는 발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기 시작하였다.
'제발..오지마라..제발..'
그 소리를 들은 당서윤은 간절히 바라였다.
부디 저 발소리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집무실이 아니기를
똑 똑 똑 똑
하지만 그런 당서윤의 간절한 바램이
무색하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귓가에 아른거리던 발소리의 주인이
집무실을 찾아온 것이다.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다음에 오셨으면 합니다."
당서윤은 피로에 쩌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꺼지라는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아쉽게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구나. 서윤."
그러자 바깥에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뱀처럼 사이하고
요부처럼 농염하기 그지없는
익숙한 목소리가 말이다.
벌떡
당서윤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익숙하다 못해
소름마저 끼치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까닭이었다.
"........당신이 어쩐 일이죠?"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저 악독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말이다.
"어쩐 일이긴, 우리 사이에."
"우리 그리 깊은 사이였던가요?"
당서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피를 나눈 혈육만큼 깊은 사이도 없지 않겠니."
"그것도 혈육 나름이죠."
"아직도 화가 많이 났구나. 서윤. 이 언니는 참으로 슬프구나. 어쩜 이리 속좁은 아이로 자라나 버린 것이더냐?"
당진설은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같잖은 언니 행세하지 마세요. 당신은 제 목숨을 노린 그 순간부터 당신은 제 언니가 아니게 되었으니."
당서윤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 못하다니..참으로 서글픈 신세가 되었구나."
당진설은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당서윤의 날카로움따위엔
전혀 굴복치 않는 목소리였다.
당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말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 태도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죠? 절 찾아올 일따윈 없을텐데요?"
당서윤은 곧바로 용건을 꺼내었다.
용건만 듣고 곧바로 내보내버릴 심산이었다.
"서서하기엔 이야기가 길어질듯 하니....들여보내주는 건 어떠니?"
"당신과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이쪽도 불편하긴 한데, 주인님만과 관련된 일이라서 말이야.....복도에서 주인님에 대해 떠는 건 좀 아니지 않겠어?"
"..............들어와요."
당서윤은 안면을 와락 구긴 채 입을 떼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당서윤의 허락에 당진설은 들뜬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끼이이익
그리고 곧바로 집무실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표독스러운 인상을 가진 품격 높은 귀부인, 당진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처음부터 들어오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당진설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용건만 말하고 꺼져요."
당서윤은 그런 그녀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뒷말이 길다.
짜증이 치밀어오를 정도로 말이다.
"손님에게 차조차 내어주지 않는 거니? 슬프구나. 무공만 익히느라 가장 기본적인 접객 예절도 습득치 못하였다니."
당진설은 과장되게 슬픈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조롱기가 다분한 모습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그 모습을 마주한 당서윤은 참지않았다.
솨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독기를 내뿜더니
그대로 방 안에 가득히 메워버리기 시작하였다.
미세한 빈틈조차 없이 꽉꽉 말이다.
"커윽...크으윽...으으윽....쿨럭....쿨럭"
그러자 당진설은 괴로운듯 헛기침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당서윤으로부터 흘러나온 독기가
몸을 에워싸더니
그대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위험해!'
당진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스며들어오는 독기가 심상치 않음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
우우우우웅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독기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스며들어온 독기들을 해독하기 위해서 말이다.
"......크으윽...으으윽...으으극."
하지만 소용 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해독은 커녕 배출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대체...어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가 직계 혈족으로서
최상위 등급의 독 내성을 갖추고 있는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 자신조차 견뎌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독기라니?
'괴로워...으으윽...너무..괴로워..'
당진설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몸속에 침투한 독기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전해준 까닭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주제 넘지마. 당진설."
그때 당서윤의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넌 당가의 죄인임과 동시에 선우의 노예야. 그 위치를 망각하지마. 넌 그 누구하고도 동등할 수 없어."
당서윤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알..알겠어...알겠으니까...제발..이..독기..좀.."
당진설은 설설 기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독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임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좀더 공손해야지."
"살...살려주세요..."
"옳지, 이제야 좀 착해졌네."
당서윤은 가벼이 미소를 젓더니 손을 가벼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당진설을 휘감고 있던 독기들이 본 주인에게 서서히 빨려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아아아....하아...하아..."
독기가 전부 빠져나가자 당진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끔찍한 독기에 저항하느라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까닭이었다.
"하아...하아.......경지에..오른..건가?"
어느새 호흡을 고르게 만든 당진설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물었다.
"나라고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니까요."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조만간 당가에선 독후毒侯가 배출되겠구나.."
당진설은 감탄 어린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독으로 경지에 다다른 당서윤에 대한 순수한 감탄을 한 것이다.
여인의 몸으로
가주였던 독왕과 엇비슷한
경지에 다다르게 되다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치켜세워줘봤자. 나오는 건 없습니다."
당서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뭘 바라고 말한 게 아니란다. 그저 순수하게 감탄했을 뿐이지."
"됐으니까 용건이나 말하세요. 아까처럼 빙빙 돌리지말고."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연을 끊어버린 혈육에게
칭찬을 들어봤자 불편함만 가중될 뿐이였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으러 왔어."
"허락?"
당서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유아독존하는 당진설의 입에서
허락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의아함이 든 까닭이었다.
"내 원대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네 허락이 필요하거든."
당진설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별로 허락해주고 싶지 않네."
당서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뭔진 모르지만
저 당진설이 의욕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니
괜스레 들어주기 싫었다.
알 수 없는 찜찜함이 든 까닭이었다.
"일단 듣기만이라도 해주렴.....분명 너도 납득할 수 있을 거야."
당진설은 열의로 가득한 눈빛으로 당서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일단 들어는 보도록 하죠. 그 원대한 계획이 무엇이죠? 대체 무엇이길래, 제 허락이 필요하다는 거죠?"
당서윤은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축객령을 내린다고 순순히
돌아갈 것 같진 않았다.
차라리 제대로 들어보고 거절하는 게 옳은 방법이리라
"딸을 주인님께 바칠 생각이야."
그녀의 허락에 당진설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네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듯이 말이다.
"내 딸이자 네 조카인 경아를 선우님의 육노예로 만들 생각이란다."
당진설은 우매한 동생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부디 허락해주겠니?"
그녀는 무척이나 정중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그게 뭔 정신나간 소리예요!"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의 딸을 바치겠다니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