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55 1056. 이화영, 서럽다.
"들어보니까.....잘못한 사람이 명확하네..."
담담한 요랑의 말을 듣는 순간
이화영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존경하는 재경각주께서
저 요악스럽고 지독한 당진설에게
단죄의 철퇴를 날려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어디 한 번 호되게 혼나봐라!'
누구보다 조직의 안정을 중요시 여기는
재경각주였다.
그런 그녀 입장에선
개인주의적인 판단과 성정으로
조직의 물을 흐려버리는 저 악독한 미꾸라지를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분명 무자비한 폭력으로
당진설을 계도시키리라
그리 생각하였다.
"화영이가 잘못했네."
하지만 요랑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상반되는 반응이었다.
'응?'
당진설이 아닌 자신의 잘못임을 지적한 것이다.
"당진설에게 사과하도록 해. 지금 당장"
그 뿐만 아니었다.
사과마저 종용시켰다.
당진설이 아닌 자신에게말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다.
"어...어째서.."
이화영은 믿기 힘들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요랑의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째서긴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런거겠지."
그러자 옆에 있던 당진설이 조롱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얄밉기 그지없는 말투로 말이다.
흘깃
그 말을 들은 이화영은 매서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았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당진설은 그런 이화영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같이 마주하였다.
마치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뭐하는 거야, 누가 또 기싸움하래?"
그 모습을 본 요랑은 짜증 어린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이 아줌마가!"
"하지만 핏덩이 같은 년이!"
그러자 이화영과 당진설은 즉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서로에 대한 모욕을 듬뿍 담은 채로 말이다.
"당진설, 이화영."
요랑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흩뿌리면서 말이다
".............."
".............."
그리고 그 기운에 노출된 두 여인은 곧바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재경각주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랐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여기서 더 지껄였다간
무자비하기 그지없는 폭력에 노출되고 마리라
"지금 상사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요랑은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두 여인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니긴 하는 꼬라지 보니까 그게 아닌데."
요랑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지기 시작하였다.
"이화영. 넌 뭐하는 애야?"
이내 요랑은 이화영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수로 임명되었으면 그에 걸맞는 모범을 보여야할 거 아니야? 네가 개판이니까 신입도 개판을 치지!"
".........."
"내가 너한테 어려운 거 시켰어? 사과하라고, 네가 잘못한 것 같으니까 당진설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한 것 아니야? 그게 어려워? 어렵냐고?"
".........하..하지만.."
"또 또 말대꾸하는 것 봐, 뭔데 대체 뭐가 억울하길래, 그렇게 말대꾸하는 건데?"
요랑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어조로 이화영을 몰아세우기 시작하였다.
제대로 물어뜯고 말겠다는듯이 말이다.
피잉
그리고 그 날카롭기 그지없는 언행에
이화영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요랑은
이화영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 이후
요랑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석 각원 서넛이 사흘밤낮은 새야할
일들을
고작 한 시진 내에 끝내는 어마어마한 신속함
그리고 빠른 마감에도 불구하고
수십 번은 검토한 것과 같은 정확함
공사 구분이 확실하여
감정을 끌고 오지 않는 이성적 면모까지
각원으로서 그녀를 존경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대단한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존경하는 재경각주가
자신을 타박하기 시작하였다.
굴러들어온 돌인 당진설이 아닌
재경각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자신에게
이런 상황에서
어찌 눈물이 차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러웠다.
너무 서러워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손과 발이 바들바들 떨렸으며
당장에라도 왈컥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안돼...울면 안돼.....'
하지만 이화영은 필사적으로 감정을 제어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울면 죽도 밥도 안된다.
납득 가지 않는 부분을 제대로 말해야하는 것이다.
꽈악
이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고통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기 위함이었다.
"...재경각주님의 말에 납득할 수 없어요.."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속내를 그대로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뭐가 납득이 안된다는거지?"
요랑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한 번 지껄여보라는듯이 말이다.
"어째서...어째서 제 잘못이라는 거죠?"
자신은 대대로 내려오는 관행을
말했을 뿐이다.
공식적인 내규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누구나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칙을 말이다.
그런데 어찌 그 관행을 부정하는 당진설이 아닌
자신의 잘못이란 말인가
"좋아, 납득이 안된다면 납득시켜주지."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뗴었다.
"대체 언제부터 업무 준비 시간이란 게 내규로 제정된 거지?"
요랑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내규로...지정된 건...아닙니다.."
"그럼 왜 강요하지? 내규로 제정된 것도 아닌데."
"비록 내규로 제정된 건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으니까....신입들도 그 관행에 따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네 생각이잖아? 왜 그걸 신입한테 강요해?"
"............."
"관행이라는 게 너희들끼리 만든 규칙이잖아? 그걸 따르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 아니야?"
관행은 습관적으로 굳어진 사회적 규범이었다.
지키지 않는다면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질을 할순 있지만
강제성은 존재치 않았다
지키고 말고를 택하는 건 결국 개인의 자유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파란 신입 각원이 관행에 따르지않는다면....재경각의 기강이 해이해질 것입니다."
관행이란 결국
사회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였다.
그 질서가 어지럽혀진다면
조직의 기강이 헤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네가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게 더 문제라고 보는데?"
요랑은 비아냥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기본적으로 재경각은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한다.
직급이나 조금이라도 높다면
깍듯하게 복종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화영은
재경각 최고 권력자에게
복종하긴 커녕 반발을 드러내었다.
그런 그녀가 기강 해이를 걸고 넘어지다니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은 전도된 것이다.
"................"
요랑의 비아냥에 이화영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관행과는 달리
상명하복은
엄연히 재경각의 내규였다.
그걸 어긴 자신이 반박할 수 있는 말따위가 존재할 리 만무하였다.
"화영아, 남의 허물 지적할 시간에 너나 잘해. 네가 잘해야 신입이 보고 배우지. 네가 개판이니까 신입도 개판인거 아니야? 응?"
".............."
말이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사정없이 쑤셔진다
심장이 찢겨지는듯한 고통에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하였다.
'안돼...울지마...울면..안돼.'
하지만 눈물을 내보이진 않았다.
여기서 운다면
저 요악스러운 당진설 앞에서
체면을 구기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네가 모범이 돼야 신입이 잘 따르지. 그렇게 같잖은 걸로 꼬투리 잡고 갈궈봐야, 널 따르겠어? 오히려 반발심만 생기지."
"................"
"우리 쪽팔리게 일하진 말자, 응?"
"......알겠습니다....각주님 말씀, 깊이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이화영은 울먹임을 참고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이래저래 할 말이 많았지만
그저 순응을 할 뿐이었다.
상명하복이라는
재경각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였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네."
이화영의 순응이 마음에 든 것일까
요랑은 흡족스러운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아, 그럼 이제 당진설에게 사과를 하도록 해."
".........사과..말인가요?"
"네가 잘못한 거잖아? 그럼 그에 걸맞는 수습을 해야하지 않겠어? 아니면 아직도 납득이 안돼? 한 번 더 설명해줘?"
"..........아닙니다."
"그럼 사과해. 지금 당장."
요랑은 이화영에게 사과를 종용하였다.
당진설에게 관행을 강요한 것에 대한 사과를 말이다.
"..........."
하지만 이화영은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다.
저 요악스러운 계집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흘깃
이화영은 슬며시 당진설을 쳐다봤다.
그러자 히죽거리며 비소를 짓고 있는 당진설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으드득
이화영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속 안에서 끓는듯한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저 명백한 무시가 섞인 비웃음에
어찌 부아가 치밀어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못해..저딴 년한테...어떻게 사과를 해!'
이화영의 입이 더욱더 굳게 다물어지기 시작하였다.
저 요악스러운 모습을 마주하니
도저히 사과를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여기서 사과를 한다면
더욱더 자신을 무시하게 되리라
"왜 말이 없어? 입에 아교라도 발랐어?"
이화영이 말이 없자 요랑은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입을 떼었다.
"아니면 내 말을 또 무시하는 거야?"
"그..그런 게 아닙니다."
"근데 왜 사과하라니까, 입을 꾹 다물고 있어?"
"..............."
이화영은 차마 자존심때문에
사과하지 못한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더욱더 호된 질타를 들을 게 뻔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려운 거 부탁하는 거 아니잖아? 응? 잘못했습니다. 한 마디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그렇게 어렵냐구!"
".....아닙니다."
"아니면 사과해! 그리고 끝내! 질질 끌지말고!"
요랑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글썽
그러자 이화영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였다.
요랑의 호된 질타에
설움이 더욱더 가속된 까닭이었다.
울고 싶었다.
너무 서러워 목놓아 엉엉 울고 싶었다.
".....사과...드립니다...당부인."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은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눈물로 상황을 넘겨버리는 미숙함을
내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뭐라구? 소리가 너무 작아 잘 안들리는데?"
이화영의 사과에 당진설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귓가에 손댄 채 과장된 동작을 취하였다
좀더 크게 지껄여보라는듯이 말이다.
으드드득
이화영은 이를 강하게 갈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죄송합니다...당부인...제 잘못이에요...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화영은 그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더욱더 큰 목소리로 사과를 하였다.
사회인으로서 체면을 지킨 것이다.
"이걸 어쩐다....사과를 받아줘야하나...아니면...말아야하나.."
당진설은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상당히 조롱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너도 적당히해, 당진설."
그 모습을 본 요랑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움찔
"......재경각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당진설은 조롱기를 지운 채 말을 이었다.
좀더 조롱하고 싶었지만
요랑의 심기를 건드릴 순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특별히 용서해줄게.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렴. "
당진설은 마치 선심을 쓰는듯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부들 부들 부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화영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한 수치심과 모욕감이 전신을 휘어감은 까닭이었다.
"뭐, 이제 일단락 됐네."
그 모습에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난 이만 가볼테니까, 쓸데없이 기싸움하지말고 일해."
그리고 망설임없이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이내 집무실 안에는 당진설과 이화영만이 우두커니 남게 되었다.
".......저도 잠시 실례할게요."
곧이어 이화영이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빠른 걸음으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요악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필시 엉엉 울음을 터트리러 가는 것이리라
상상만해도 통쾌함이 물밀듯 차올랐다.
'내 뒤에는 위대한 주인님이 계신다고 이 멍청한 계집아, 어딜 까불어!'
그녀는 생각하였다.
앞으로 재경각 생활이 상당히 편해질 것이라고 말이다.
이내 당진설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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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타타탁
타타타타탁
이화영은 달리고 또 달렸다.
인적이 없는 곳
자신따위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곧이어 그녀는 당가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정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거 마교의 침공 이후
완전히 방치되어
관리 하나 되지 않은 낡은 정원에 말이다.
두리번 두리번
정원에 도달한 이화영은 좌우를 두리번거려
인적을 살폈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음을 확인한 이화영은
"흐으윽...흐그으윽...흐으윽...흐으윽..으으윽."
그대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꾹꾹 눌러뒀던 마음이
도저히 제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흐으윽...흐으으윽...흐...흐아아아아아앙~!!!!!!"
곧이어 그녀는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속에 있는 모든 한을
터트리려는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