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50 1051. 허락을 구하다.
"말해."
날카로운 눈매와 고집스러운 입매를 가지고 있는 절세가인,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갑작스럽게 집무실에 쳐들어온
불청객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뭘?"
집무실에 예고없이 쳐들어온 장본인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여기 온 용건."
"아니, 사랑하는 연인을 보러오는 이유가 어딨어? 보고 싶으니까 오는 거지."
"거짓말."
당서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에헤에...진짜야."
선우는 너스레를 떨며 말을 내뱉었다.
"선우."
당서윤은 그런 선우를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불렀다.
"응?"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됐지?"
"......햇수로 따지면....흐음.....삼년 정도 됐지?"
선우는 손가락을 세보며 말을 이었다.
삼년 정도였다.
당서윤과 만난 기간을 세어본다면 말이다.
"그래, 삼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하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였다.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한다면 한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살아온 삶을 생각한다면 꽤나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 시간동안 너라는 남자를 직접 겪었던 나야. 그런 내가 네 속을 모르겠어?"
당서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와 첫만남을 가진
옥령을 제외한다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선우의 속을 모를 리 만무하였다.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 빙빙 돌려말하지 말고"
당서윤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겠다는듯이 말이다.
움찔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전신이 관통되는듯한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 물부터 마시고.."
선우는 탁자 위에 올려져있는 물통에 손을 뻗기 시작하였다.
막상 용건을 말하려니
왠지 모를 갈증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덥석
하지만 그 뜻은 이룰 수 없었다.
당서윤이 물통을 그대로 가로채버린 까닭이었다.
"안돼."
물통을 손에 쥔 당서윤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왜?"
"누가 그러더라고, 자백 직전의 용의자는 반드시 목이 말라 물에 손을 댄다고, 그리고 그때 물을 주게되면 물과 함께 말도 삼켜버린다고 말이야."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난 자백 직전 용의자가 아닌데?"
"나한텐 용의자야, 죄를 자백해야할 용의자."
당서윤은 단호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러니까 어서 자백해, 무슨 꿍꿍이야?"
"......사실은.."
그녀의 추궁에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으로부터 전해듣게 된
이화영과의 불화.
당진설 한 사람을 위한
특혜를 줄 순 없다며
사수 변경을 거절한 요랑의 단호한 결단.
그리고 모든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해낸 한 가지 획기적인 묘수까지
전부 말이다.
"............."
당서윤은 그런 선우의 설명을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얌전히 들어주었다.
어떠한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설명이 이어졌을까
"......그래서 찾아오게 된거야."
이내 선우는 길고 긴 설명을 끝마칠 수 있었다.
".................."
그리고 선우아 말을 끝마치자 장내에는
조용한 침묵이 자리잡게 되었다.
선우와 당서윤
두 사람 모두 입을 꾹 다물어버린 까닭이었다.
흘깃
선우는 슬며시 시선을 올려 당서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무슨 반응을 보일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선을 올린 순간
볼 수 있었다.
경멸로 가득 차 있는 녹색의 눈빛을 말이다.
움찔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독이 오를대로 오른 독사를 마주한듯한
위화감이 전신을 휘어감은 까닭이었다.
"....저어..서윤아."
선우는 조심스레 입을 때며 그녀를 불렀다.
"화났어?"
"그럼 즐거울까?"
선우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사랑하는 부군이
또다시 다른 여자를 품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그러니까...미안."
"뭐가 미안한데?"
".....전반적으로....여러모로...많이?"
"구체적으로 뭐가 미안한데?"
당서윤은 차갑기 그지없는 어조로 입을 떼었다.
"다른 여자를...또 꼬신다고 해서.."
"그걸 아는 인간이 그런 말을 해?"
그녀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지기 시작하였다.
파르르르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하였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한기가 파고들 까닭이었다.
본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던가
그 격언이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말 몇 마디만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얼음장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화해 시키려는 의도 자체는 좋아, 죗값을 치를 때까지 부려야하는 입장이니까. 이왕이면 협조적으로 굴리는 편이 더 능률이 오를 테니까."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의도만 놓고본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두 사람을 화해시킴으로서
불화의 씨앗을 완전히 없앨 수 있었고
재경각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뭐? 함께 교접함으로서 친목과 화해를 도모해? 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문제는 해결방안이었다.
의도만 놓고본다면 훌륭하지만
그 해결방안을 놓고본다면 무척이나 문제가 많은 것이다.
'하아...교접 화해라니.'
당서윤은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터져나온 까닭이었다.
교접을 통해 친목과 화해를 도모하다니
아니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말도 안되는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미친년이지. 이런 미친놈이 뭐가 좋다고.'
당서윤은 생각하였다.
자신이 미친 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미친놈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똑같이 미쳐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게 나름 성공 사례가 있는 존재하는 검증된 방안.."
"무슨 성공 사례?"
당서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되물었다.
대체 무슨 성공 사례가 있냐는듯한 눈빛이었다.
"원래 소화랑 연이도 사이가 되게 나빴거든? 그런데 내가 두 사람과 함께 교접하다보니까..........도구의 발달로 인간은 종족의 정점에 서게 됐는데...........알몸을 공유함으로서.........서로의 약함을 인정하고........결국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가 될 수 있는 거지!"
선우는 요랑에게 말해주었던 장황한 설명을 내뱉었다.
섹스를 정당화하기 위한
나름의 논리가 들어간 근거를 말이다.
"헛소리하고 있네. 요랑님도 그딴 말 같지 않은 소리로 꾀여냈지?"
당서윤은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요랑과 달리 그녀에게는 선우의 확대 해석과 논리의 비약이 전혀 먹혀들지 않은 것이다.
".......요랑한테....말하긴 했는데...걔는 납득하던데?"
"납득은 무슨, 그냥 네 말이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준 거겠지."
요랑은 천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월등한 지능을 가진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선우의 얕은 수를
눈치채지 못할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납득한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준 것이다.
선우를 믿는 마음에 말이다.
"...........그런 건가.."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깨달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듣고보니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자신의 제안을 수락하긴 하였지만
그건 납득하였다기보단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 것이다.
괜스레 머쓱함이 들었다.
".........바보."
당서윤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보같은 남자를 어찌해야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윤아....네가 싫으면 하지 않도록 할게..."
"재경각의 평화를 위해선 화해시켜야한다며?"
"화해가 중요하긴 하지만 널 슬프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진 않아."
선우는 진한 애정을 어린 눈빛으로 당서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미 슬퍼졌거든?"
당서윤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이미 마음이 상할대로 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니
이게 또 무슨 말같지 않은 소리란 말인가
"됐어, 나 신경쓰지말고 하고 싶은대로 해."
이내 당서윤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니야, 다른 방도를 찾도록 할게."
선우는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제대로 화가 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니, 진짜로 해봐. 허락해줄테니까."
당서윤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진짜로?"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그녀가 진짜 허락해줄 지는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진짜로."
당서윤은 확고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괜찮아?"
"아니 안괜찮아."
당서윤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었다.
낭군이 다른 여자와 자는 일이
괜찮을 리 만무하였다.
"그럼....왜 허락한 거야?"
선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납득하지 못한 그녀가
교접 화해를 허락해준 저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넘어가주려고."
"......왜에?"
"일 저지르기 전에 미리 허락부터 맡으러 온 게 기특해서."
".....고작 그런 이유로?"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허락을 내릴 줄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너한텐 고작이겠지만 나한텐 무척이나 커."
당서윤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처럼 미리 허락을 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
지금껏 선우는 사후통보만을 해왔었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나서는
뒷수습하듯 통보를 해왔던 것이다.
능소화나 북궁연 때도 그랬고
강하윤, 황보유연, 팽가련, 모용란, 이기연, 이소란 등
이재원의 부인과 딸들과 거사를 치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상의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선우가 미리 양해를 구해왔다는 것 자체가
당서윤에게는 무척이나 기특하게 느껴졌다.
저 말도 안되는 요구를 용인해줄 만큼 말이다.
"내가 그간 네게 화를 냈던 건 여자를 늘린다는 사실때문이 아니야. 한 마디 상의조차 없이 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통보하듯 말했기 때문이지."
당서윤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네가 그럴 때마다 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나를 만만히 봤으면 그렇게 일을 저지르고 통보하듯 내뱉을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받을 상처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하고 말야."
당서윤은 그간 느꼈던 서운함을 그대로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
당서윤의 말을 들은 선우는 어떠한 말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간 그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 같아도 싫었을 것 같다.
모든 일을 저지르고
통보하듯 뻔뻔스럽게 말을 내뱉는다면 말이다.
그런 사실을 인지하였기에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입술을 한층 더 무겁게 만든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괜찮아....여자를 늘리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미리 말하고 허락을 맡으러 왔으니까."
"서윤아......미안해."
선우는 그런 당서윤을 바라보며 사과를 하였다.
그간 철없이 굴며
그녀의 속을 사정없이 긁어대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고마움을 표하였다.
철없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던
그녀의 자애로움과 성숙함에 말이다.
"알면 잘해."
휙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도도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딱히 사과를 들으려고 내뱉은 말이 아니였다.
그런데 사과와 고마움을 표하니
괜스레 낯간지러운 감정이 들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민망함을 느끼는 당서윤의 모습이
퍽이나 귀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스으으으윽
선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가더니
이내 양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마치 소중한 것을 감싸듯이 말이다.
"사랑해."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살며시 속삭였다.
마음 속에 우러나는 진심을 말이다.
"..........됐거든?"
당서윤은 새침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선우의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부둥켜안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귀여워.'
선우는 그런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보더니
이내 더욱더 소중히 안아주었다.
감사와 고마움을 담아서 말이다.
그리고 당서윤은 그런 선우의 품에 안긴 채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 싫지 않은 기색을 보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