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048화 (1,049/1,419)

EP.1048 1049. 교접 화해.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옮겨지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마치 싫은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이내 선우는 무거운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위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재경각이라고 쓰여져있는 현판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하아.."

그 현판을 마주한 선우는 크나큰 한숨을 내쉬었다.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임이 생긴 까닭이었다.

당진설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재경각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막상 재경각 앞에 도착하고보니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민망한데.'

민망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전권을 당서윤에게 일임하고

내정따윈 나몰라라하며 한량처럼

놀아재꼈던 자신이었다.

혹시라도 서류작업을 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선수를 쳤던 것이다.

그런 자신이 이제와서

내정에 간섭하는 것 자체가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남들 박터지게 일할 때

놀아재낀 자신에게 무슨 자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안가긴 좀 그런데.'

그렇다고 안갈 수도 없었다.

이미 당진설과 굳게 약속을 끝마친 까닭이었다.

사수 변경을 강제할 순 없겠지만

언질 정도는 해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딥 스로팅이라는

어마어마한 봉사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베겟머리 송사의 위력인 건가.'

선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베겟머리 송사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지 말이다.

한 이불을 덮은 채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격렬한 봉사를 받은 이상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들어가자...말이라도 꺼내보는 거야...안되면 뭐, 어쩔 수 없지.'

이내 선우는 결심을 굳혔다.

재경각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말이다.

덥석

이내 선우는 손을 뻗어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힘을 주어 밀어내려고 하였다.

".............."

하지만 여전히 생각만하고

실행치는 못하였다.

민망함과 더불어 뻘쭘함이 그의 발걸음을 다시금 붙잡아버린 까닭이었다.

'지금 당장 들어갈까?....아니면 좀더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

선우는 속으로 격렬한 내적갈등을 하기 시작하였다.

들어갈지 말지 여부를

속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것이다.

그렇게 한창 고민에 빠져들고 있는 그때였다.

"안들어가고 뭐해?"

뒤편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익

그 소리에 놀란 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귀여운 인상을 가진 절세가인

요랑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뭐야? 언제 왔어?!"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그녀의 접근을 인지조차 못하였다.

대체 언제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말인가

"방금 왔는데?"

".......기척이 안느껴졌는데?"

기척따윈 전혀 감지 되지 않았다.

어찌 자신의 예민한 기감을 뚫어내고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단는 말인가

"거미로 둔갑해서 기척을 감지하진 못했을 거야."

"둔갑을 했다고?"

"응, 요즘 요력妖力이 강해져서 그런지, 이런저런 요술妖術이 가능해졌거든."

요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왜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크기라면

손톱만한 크기의 거미일 게 분명하였다.

출근하는데 뭣하러

그런 작은 거미로 둔갑하며 출근을 한다는 말인가

"그냥 출근하면 심심하거든."

요랑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거미로 둔갑하면

그간 인간의 시야로 바라보던

세상이 거대하게 느껴진다.

무료한 출근 시간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니면 많이 늦어지지 않아?"

거미가 된다면

덩치가 작아질 것이고

덩치가 작아진다면 이동속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뭐 어때, 내가 대빵인데."

요랑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출근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긴 하지만

재경각의 우두머리인 자신이었다.

지각을 하든

조퇴를 하든

결석을 하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부조리 아니야?."

선우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부조리도 이런 부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직급에 맞는 특혜를 가지고 있는 거지."

요랑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니꼬우면 각주를 하면 되는 일이다.

자신은 얼마든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그것보다 재경각에는 왠 일이야? 서류 작업이라고 시킬까봐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누면서."

이내 요랑은 궁금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평소엔 재경각에

얼씬조차 안하는 선우였다.

그런 그가 별안간 재경각을 방문하니

의아함이 들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오줌도 안누는 건 너무 과장이다."

선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과장은 무슨, 내가 그렇게 놀러오라고 조르고 애교부려도 한 번을 방문한 적 없으면서."

요랑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근무 중 선우와 놀고 싶어

몇 번이고 그를 꾀여내려고 하였던 그녀였다.

지루한 근무지만

사랑하는 선우와 함께한다면

버티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게 꾀여낼 때마다 단호히 거절의 의사를 밝힌 선우였다.

아무리 조르고 애교를 부려도 말이다.

"뭐.....이런 저런 할 말이 있기도 해서."

"이런 저런 할 말?"

요랑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무엇이냐는듯한 눈초리였다.

".....일단 들어가자.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 눈초리에 찔린 선우는 재경각쪽으로 손짓을 하였다.

어서 들어가자는듯이 말이다.

"여기서 해도 되는데?"

"아니야, 일단 들어가자. 차도 마시고 오랜만에 밀렸던 얘기도 하고."

"밀린 얘기가 있어? 우리 사흘 전에 만났는데?"

요랑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한창 수련중이라 바쁘긴 하지만

부인들과의 순차적인 오입질만큼은 누구보다

열성적인 선우였다.

사흘 전에도 이미 한 차례 격전을 치르고 난 뒤인 것이다.

그런데 대체 밀린 이야기가 어디있다는 말인가

"...........그런 게 있어...자자..들어가자구."

덥석

선우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요랑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잡아끌기 시작하였다.

왠지 말을 섞으면 섞을 수록

말리는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흐으음.."

요랑은 그런 선우를 이끌림에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선우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

털썩

집무실로 들어온 요랑은 그대로 집무실 책상에 앉아버렸다.

"너도 앉아."

그리고는 뒤따라온 선우를 돌아보며 입을 떼었다.

"어디를?"

주위에 의자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앉으라는 말인가

"여기 내 무릎에."

톡 톡 톡

이내 요랑은 매끈한 허벅지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됐어, 서있을게."

선우는 손사래치며 거절하였다.

그녀와 아옹다옹하며

애정 어린 장난을 이어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그보단 당진설의 베겟머리 송사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양안해도 되는데?"

"그래도 사양할게."

".....치잇."

요랑은 혀를 찼다.

이왕 온김에

이런 저런 장난을 치며 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 그녀였다.

그런데 매정하게 거부당하니

괜스레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안아주지도 않을 거면 왜 온거야?"

요랑은 도끼눈을 흘기며 말을 내뱉었다.

거리를 두는 걸 보니

애정을 나누기 위해 온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한 것이다.

"그냥......요즘....뭐 별 일 없나 싶어서."

"별 일은 무슨, 재경각 돌아가는 게 똑같지, 뭐."

언제나 똑같은 재경각 생활이었다.

별다른 특별할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정말 없어?"

"없어."

"그래도 생각해봐......뭔가 있을 거 아니야? 가령 당진설의...처우라던가."

선우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에 대한 화두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한

방편이었다.

"아아...왜 왔나 했더니 당진설이 충돌질했구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요랑은 알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안간 선우가 재경각을 방문한 이유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걔가 뭐래? 내가 괴롭힌대? 아니면 이복딸이 사수로 있어서 버티기 힘들대? 그래서 사수를 좀 바꿔달래?"

요랑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당진설이 충돌질한 내용에 대해서 말이다.

무슨 말을 했을 지는 뻔하긴 하였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듣고 싶었다.

그 간교한 혓바닥을 어떻게 놀렸는지 말이다.

".............."

그 물음에 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인 까닭이었다.

"더 할 말 없나보네."

그 모습에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아무래도 용건은 자신의 어림짐작하며 내뱉었던

뻔한 말이 전부인듯 하였다.

이렇게 말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전부인듯 보였다.

"선우는 정치 같은 건 못하겠다."

"뭐?"

"무슨 화두를 그렇게 티나게 드러내? 너무 노골적이잖아?"

요랑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언질이라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닌 척 은근한 어투로

원하는 바를 은근슬쩍 내비치는 게 아니던가

그런데 선우는 그런 걸 못하였다.

노골적이고 너무나 티나게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긁적

선우는 뒷머리를 가볍게 긁적였다.

나름 은근한 어투로 말했건만

이렇게 티가 날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하아...네 말이 맞아. 재경각에는 당진설때문에 왔어. 요랑."

이내 선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당진설의 처우를 좀더 개선해줬으면 해."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응. 내 용건은 그것 뿐이야."

"지금 처우가 뭐가 나쁜데?"

요랑은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야근에 특근까지 두둑히 챙겨서 꼬박꼬박 월봉나오고 연차나 반차 쓸 때 눈치도 안주고 일만 잘하면 정시 퇴근에 명절마다 상으로 주는 급여가 따로 있고 각종 건강검진에 경조사비까지 챙겨주는데, 대체 무슨 처우를 더 좋게 만들라는 거야?"

당진설에 대한 처우는 무척이나 좋았다.

아니 애초에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죄인의 신분이 아닌

재경각의 신입 각원으로서 대우를 받으며

온갖 혜택을 전부 누리는데

어찌 좋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요랑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처우를 더 좋게 만들어야하는 지 말이다.

"말나온 김에 말하는 건데 , 애초에 당진설은 불만을 가지면 안되는 위치야, 처음부터 예비 각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떡하니 신입 각원으로 임명되는 특헤를 받은 주제에 대체 무슨 불만이 있다는 거야?"

요랑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본디 재경각에 들어오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예비 각원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과정에서 기초적인 직무 교육을

끝마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진설은 그런 과정을 완전히 건너뛰어버렸다.

어마어마한 특혜를 받고

떡하니 신입각원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불만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

요랑의 속사와 같은 말에 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따지고보면

요랑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당장 목을 쳐버린다해도 할 말이 없는 죄인인, 당진설의 입장에선

지금의 대우도 차고넘칠 정도의 특혜였기 때문이다.

"....다른 건 불만이 없대, 하지만 그 사수 문제가.."

하지만 이내 선우는 결심한듯한 표정을 짓고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남자가 칼을 뽑으면 무라도 썰라고 하지 않던가

재경각에 도착한 이상

결심한 바를 내비쳐야하는 것이다.

"사수? 이화영?"

"그래, 이화영, 아무래도 이복딸을 당진설의 사수로 선임하는 건 여러모로 경우가 아니잖아?"

"바로 윗기수가 사수로 임명되는 건 재경각의 규칙이야."

"그렇긴한데....좀더 융통성을 발휘해서 윗윗기수라도.."

"윗윗기수는 친딸인 이현경인데?"

"........그럼 윗윗윗기수를.."

"안돼."

요랑은 단호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조직에는 각자의 역활과 업무가 배정되기 마련이야, 당진설 한 명 배려하자고 윗윗윗기수까지 빼다쓰는 건, 터무니 없는 특혜야, 조직의 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

요랑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타협따위는 전혀 없는 모습으로 말이다.

"............"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요랑의 태도가 너무나 완고하였기 때문이다.

'어쩐다.....'

선우는 고민에 빠졌다.

너무나 정론을 말하는 요랑이었다.

반박조차 못할 정도의 정론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어질 것 같진 않았다.

'그냥 돌아가자니...진설이가 불쌍한데..'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가기도 뭐하였다.

딥 스로팅까지 감수하며

봉사해준 당진설에 대한 미안함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어떻게..나는...어떻게..'

선우의 고심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내 할 말은 전부 끝났어."

선우는 말이 없자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축객령을 내렸다.

당진설에 관한 이야기를 이대로 끝내자는 의도였다.

".....난 아직 남아있어. 요랑."

이내 생각을 끝마친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무슨 말을 하든 사수 변경은 없을 거야."

요랑은 딱 잘라 선을 그어버렸다.

무슨 말을 하든 허용치 않겠다고 말이다.

"사수 변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뭔데?"

"두 사람을 사이좋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려는 거지."

선우는 은근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을 사이좋게 만드는 방법?"

요랑은 꽤나 흥미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온 까닭이었다.

"응, 네가 도와주면 가능할 것도 같아."

"어떻게 하게?"

"혹시 교접 화해라고 들어봤어?"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교접 화해?"

그 말을 들은 요랑은 별빛과도 같은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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