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40 1041. 지독한 악몽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온사방에 박수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의 재경각 입각을 축하하는 박수소리가 말이다.
"그만."
잠자코 박수소리를 듣고 있던 요랑은 이내 가벼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뚝
그러자 재경각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던 박수소리가 귀신같이 끊겨버렸다.
어마어마한 장악력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인사도 끝마친 것 같으니 다들 가서 일봐. 부각주랑 당진설은 집무실로 따라오고."
요랑은 각원들을 둘러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이내 각원들을 이구동성으로 일제히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직무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휘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랑은 곧바로 몸을 돌려 집무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당감과 당진설은 그런 요랑의 뒤를 따라 집무실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끼이이이익
쿵
이내 집무실 문이 닫히고 세 사람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털썩
집무실로 들어온 요랑은 곧바로 책상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온 당감과 당진설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귀찮음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왜 둘만 따로 불렀는지 알겠어?"
"당부인의 처우에 관하여 하실 말씀이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당감은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당감이 꽤 예리하네?"
요랑은 흡족스럽다는듯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부인의 처우에 관해선 어떠한 설명도 받지 못하였으니까요."
당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진설이 신입 각원이라는 소개를 받긴 하였지만
어떤 일을 맡겨하는 지
각 내에 대우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명석한 재경각주가 그런 중요한 사안을 잊어먹었을 리는 없을테니
자신과 당진설을 따로 불러낸 순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당진설의 처우에 관하여 무언가 말해주리라는 것을 말이다.
"맞아, 당진설의 처우에 대해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헷깔릴 수도 있을테니까....확실히 짚고 넘어가려고 불렀어."
요랑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처음 재경각의 부각주를 맡을 때만 해도
어리버리한 감이 없지 않아 있던 당감이었다.
현장직에서 내근직으로 전환되면서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과정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당감이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여유롭게 예측하는 경지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어찌 흡족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까놓고 말할게."
요랑은 차분한 눈빛으로 당감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쟤한테 특별대우 같은 거 해줄 필요는 없어. 신분, 혈족, 나이 같은 자잘하는 건 전부 차치하고 현재 직급에 맞는 대우를 해주길 바래."
".....당부인께....신입 각원에 걸맞는 대우를 하라는 말씀입니까?"
"맞아, 딱 신입 각원 수준의 대우와 배려, 그이상의 것은 필요 없어."
요랑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당부인께선.."
당감은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진설은 엄연히 당가의 직계 혈족이다.
그런 그녀를 각원수준 맞게 대하라는 건
어찌보면 모욕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없이 우월한 직계혈족이
방계에 불과한 이들에게 명령을 받으며
부려지다니
어찌 모욕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각주, 저희가 언제부터 신입 각원에게 부인이라는 경칭을 썼지?"
요랑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하오나 당진설 신입 각원은 가주의 여동생이십니다...그런 분께 신입각원과 같은 대우를 한다는 건...너무나..."
"재경각에 들어온 이상, 그녀는 그저 한 명의 신입일 뿐이야. 핏줄이나 신분 같은 쓸데없는 건 전혀 중요치 않아."
요랑은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부각주, 언제부터 그렇게 내 말에 토를 달았지?"
요랑은 싸늘한 눈빛으로 부각주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당감을 입을 꾹 다물었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요랑의 눈빛에 완전히 압도가 된 까닭이었다.
"재경각에선 내가 곧 왕이고 내 말은 곧 법이야. 네게 법을 거역할 권리따위를 준 적은 없는데?"
요랑의 목소리가 한층 더 싸늘해지기 시작하였다.
"...시..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싸늘한 목소리에 당감은 곧바로 사죄를 하였다.
자신이 주제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재경각은 직급에 따른 상명하복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어떠한 불합리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상사의 명이라면 군말없이 이행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어기고
그녀의 말에 불복하며 토를 달아버렸다.
어찌 주제를 넘었다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진설은 신입 각원이야. 만약 무언가 편의를 봐준다면 누가되었든 처벌을 면치 못할 거야. 알았어?"
요랑은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치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당감은 언성을 높이며 곧바로 답을 하였다.
그 대답에 요랑은 가벼이 고개를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옆으로 살짝 돌려 조용히 시립하고 있는 당진설을 싸늘히 노려보았다.
움찔
그 눈빛을 마주한 당진설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요랑의 눈빛을 마주하니
본능에 각인된 두려움과 공포감이 절로 치솟은 까닭이었다.
"당진설."
"말...말씀하세요."
"너도 처신 잘해야 할거야. 만약 방금 전처럼 다른 각원들에게 말같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주제넘게 상전 노릇을 하려고 든다면........"
요랑은 말을 끝까지 잇지 않았다.
그저 앙증맞은 오른 주먹을 천천히 들어올릴 뿐.
주제를 넘는다면 아낌없이 폭력을 가하겠다는 협박이었다.
"말 안해도 알지?"
이내 요랑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끄덕 끄덕 끄덕 끄덕
그 미소를 마주한 당진설은
맹렬한 기세로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하였다.
두려움과 공포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좋아, 그럼 둘대 대충 알아들은 것 같으니까. 이만 나가봐. 부각주는 업무 인계해주고 당진설은 시키는대로 군말이 없이하도록."
휘익 휘익
요랑은 가벼이 손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마치 파리를 내쫓듯이 말이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당감과 당진설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가벼이 목례를 한 뒤
그대로 집무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뒤조차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이다.
'초장에 기를 완전히 죽여놓긴 했는데.....앞으로는 어떻게 되려나...'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요랑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폭력과 권위를 통해
당진설의 기를 강제로 눌러버리긴 하였지만
당진설의 독심 어린 성정을 봤을 땐
이대로 얌전히 굴복할 것 같진 않았다.
무언가 꿍꿍이를 꾸밀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당분간 심심하지 않겠네.'
히죽
요랑은 히죽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당분간은 심심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
재경각 구석퉁이 위치한
작은 집무실.
"이곳이 당 각원에게 배정 된 책상입니다."
당감은 집무실 한쪽 구석퉁이에 마련된 낡은 책상을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이 낡은 책상이....말인가요?"
그 책상을 본 당진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살짝만 앉아도 부숴질 것 같은데요?"
"좋은 원목으로 만들어 생각하는 것처럼 연약하지 않습니다...."
당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좋은 원목으로 만들어도 이정도로 낡으면 바스라지기 마련이에요."
당진설은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책상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불평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신입 각원은 각에서 가장 오래된 책상을 배정받는 게 각의 법도이니."
"..........이러니까......신입들이..다 도망가지."
당진설은 작게 궁시렁거렸다.
어째서 신입이 오는 족족 도망가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첫 출근부터
이렇게 대우가 개같은데
어찌 붙어있을 수 있겠는가
"당 각원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사수로 배정된 각원 밑에서 각종 잡무와 잔심부름을 하며 업무를 배우는 것이지요."
".........잡무와...잔심부름이라...."
당진설은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신입이라면 잡무와 잔심부름을 하며
일을 배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영 마뜩치가 않았다.
제갈주경과 더불어 무림의 재녀라고 불리우던 명석한 두뇌를 썩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신입 각원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녀의 마뜩치 않은 표정을 살핀 당감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떼었다.
"저도 알아요."
당진설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니
말이 곱게 나올 리 만무하였다.
"그것보다 제 사수는 누구죠?"
이내 당진설은 사수에 관해 묻기 시작하였다.
이런 조직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사수를 만나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한 기초를 쌓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어떤 사수를 만나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특급 각원이 될지
폐급 각원이 될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궁금하였다.
자신의 사수가 될 이의 정체가 말이다.
"당신도 잘아는 사람입니다.."
당감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가..잘.아는 사람?"
당진설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영특한 그녀지만
머릿속에 방계 혈족따위를
기억해두진 않는다.
쓸데없는 공간 낭비라고 여겨
용건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이 잘아는 방계 혈족이라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들어오십시오."
그때 당감이 슬며시 방문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떼었다.
끼이이이익
그러자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 명의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 막 약관이 되었을 것 같은 풋풋한 매력을 풍기는 아리따운 여인이 말이다.
"너...너는?!"
그 여인을 마주한 당진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당혹스러움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저 아이가 어찌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말인가
"반가워요, 당 어머니."
풋풋한 매력을 풍기는 아리따운 여인, 이화영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건네었다.
자신의 배다른 엄마
당진설을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인사를 받은 당진설의 표정이 거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착시가 아닌 현실임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어..어째서..네가..여기에..?"
당진설은 알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이화영은 재수없는 모용란의 소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찌 당가에 있고
어찌 이곳 재경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어째서긴요, 이곳에 근무하니까 여기 있죠."
이화영은 그런 당진설을 재밌다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 당 어머니의 사수기도 하구요."
이화영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네가...내..사수라고? 내가 일을 배워야 할 사람?!"
당진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네에, 그게 바로 저예요. 당 어머니."
이화영은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떼었다.
휘익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당감을 노려보았다.
저 말이 사실이냐는듯한 물음이 담긴 눈빛으로 말이다.
끄덕
그 눈빛에 당감은 가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물음에 긍정을 한 것이다.
부들 부들
순간 당진설의 얼굴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이복딸
그것도 재수없는 모용란의 소생인 이화영 밑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모욕감이 전신을 휘감은 까닭이었다.
어찌 모욕을 해도 이렇게 대놓고 할수 있다는 말인가
"절 사수로 만난 건 행운일 거예요, 어머니, 제가 이래봬도 누구 가르치는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거든요."
이화영은 꽤나 거만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벌써부터 사수노릇을 톡톡히 하기 시작한 것이다.
와락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안면을 와락 구겨버렸다.
거만하기 그지없는 이화영의 태도에
짜증과 분노가 절로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어쩜 저리 재수없는게 제 어미랑 똑 닮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 일단 가볍게 수준부터 알아볼까요? 어머니가 온다고 해서 여러가지 기초 계산식을 준비해뒀어요. 나이가 나이인지라.....머리가 많이 굳었겠지만..충분히 푸실 수 있을 만한 난이도로 준비해왔으니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이화영은 품속에서 두터운 서류 더미 하나를 꺼내들며 말을 내뱉었다.
마치 인심썼다는듯한 어투로 말이다.
'이건...악몽이야..'
그 거만한 말을 들은 당진설은 생각하였다.
이건 악몽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것도 어서 깨어나야할
지독한 악몽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