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7 1038. 축지縮地를 배우다.
커다란 연무장
정중앙
한명의 여인이 오롯히 서있었다.
무척이나 고고한 모습으로 말이다.
통 통 통
이내 여인은 제자리에서 가벼이 통통 뛰기 시작하였다.
마치 탄력적인 공이 바닥에 튕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파앗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연무장 정중앙에 있던 그녀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파앗
그리고 이내 연무장 끝자락에서 벽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공간을 접어 이동한 것처럼 말이다.
"어때요? 잘 봤어요? 후배님."
공간을 이동한 여인, 운설은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한쪽 구석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배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허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선우는 이내 헛웃음을 내뱉었다.
신기神技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놀라운 광경에 헛웃음이 절로 차오른 까닭이었다.
어찌 말도 안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잘못봤나요? 다시 보여줄까요?"
선우가 말이 없자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혹시라도 제대로 보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든 까닭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요."
선우는 고개를 가벼이 내저었다.
구태여 다시 볼 필요는 없었다.
공간을 접어 이동하는 신기를
온전히 두 눈에 담아낸 까닭이었다.
"그래서 감상은 어떤가요?"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방금 보여주신 수법은....신법이...아니지요?"
"어머, 우리 후배님은 눈썰미가 좋네요. 이렇게 단박에 구분하는 걸 보니 말이에요."
운설은 해맑은 미소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수법을 구분하는 선우의 눈썰미에 기특함을 느낀 까닭이었다.
"내공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신법이 아니라는 걸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본디 신법이라는 건
단전에 있는 내력을 통해 전신을 가벼이 만든 뒤
용천혈에 내력을 집중시킨 뒤
그대로 발출하는 걸 기본한다.
내력 없이는 신법이라는 수법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운설이 보여준 신기神技가
신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특수한 수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기특할 수가.......우리 후배님은 추리력도 어마어마하네요."
운설은 해맑게 웃었다.
쓰담 쓰담 쓰담
그리고 손을 뻗어 선우의 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마치 기특한 동생을 쓰다듬듯이 말이다.
"................."
선우는 그 손길을 구태여 피하지 않았다.
매번 쓰다듬는 입장에서
되려 쓰다듬어지니 묘한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어색하지만 그리 싫지는 않은 묘한 기분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머리가 쓰다듬어졌을까
이내 운설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손을 떼었다.
만족스러울 만큼 머리를 쓰다듬은듯 하였다.
".....대체 무슨 수법을 쓰신 것입니까?"
그녀가 손을 떼어내자 선우는 곧바로 의문을 표하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력조차 사용치 않고
공간을 이동한 신묘한 수법을 말이다.
"그저 땅을 접었을 뿐이에요.."
"네에?"
"땅을 접어 걸음을 옮겼답니다."
운설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축지縮地를 사용하셨다는 말씀입니까?"
"맞아요."
운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을 표하였다.
".....그런..말도 안되는..."
선우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입을 떼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축지縮地가 무엇이란 말인가
공간을 접어
먼거리를 단순히 좁혀버리는
전설적인 도술이 아니던가
그 전설적인 도술을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어찌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선배님...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비유적인 표현을 하신 겁니까?"
신행법神行法을 익힌 이들은
그 속도가 극에 다다를 경우
축지縮地라고 칭하는 경우가 더러있었다.
그 빠르기가 축지縮地와 다를바 없다는
비유를 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요."
운설은 곧바로 부정을 하였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진정한 축지縮地임을 시인한 것이다.
".........혹여 선배님은 생사경生死境에 다다르게 되신 겁니까?"
선우는 의혹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공간을 접는다는 개념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을 완전히 뛰어넘어
초월자가 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기에 물었다.
혹여 그녀가 생과 사를 초월하여 우주만물의 법칙을 한눈에 꿰뚫어버리는 신선의 경지.
생사경生死境에 다다른 게 아니냐고 말이다.
"제가 생사경에 다다랐다면 진즉에 등선하지 않았겠어요?"
운설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축지를 구현하신 겁니까? 어떻게 땅을 접을 수 있는 겁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인간의 몸으로 축지를 구현시킨 원리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리는 간단해요."
운설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심상心象과 선기仙氣를 이용하면 된답니다."
"심상心象과 선기仙氣를요?"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심상을 통해 고유영역을 구축하고 선기를 통해 구축된 영역을 접어버리는 거예요. 그다음 접어버린 영역에 발을 내딛으면 완전한 축지縮地를 구현할 수 있죠."
운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축지縮地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마치 별것 아니라는듯이 말이다.
".................."
그리고는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여전히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원리를 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축지縮地의 원리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르쳐줄까요?"
운설은 그런 선우를 귀엽다는듯이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정말입니까!?"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축지縮地라는 건
오직 신선이 구현할 수 있는 초월의 기술이었다
그런 귀하디 귀한 기술을 이렇게 선뜻 가르쳐주겠다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배님이 원한다면요."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꼭 한 번 배워보고 싶습니다."
선우는 간곡히 청하였다.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 찬 선우였다.
명백한 상위 기술을 가르쳐주겠다는 걸
마다할 리 없는 것이다.
"좋아요."
운설은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뻗어 선우의 눈가를 그대로 덮어버렸다.
"선..선배님?"
선우는 당혹스러운 어투로 입을 떼었다.
갑작스레 눈을 가려버린 그녀의 행동이 당혹스러운 까닭이었다.
"자아, 눈을 감아봐요."
그때 운설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스르르륵
선우는 더는 토달지 않고 그녀가 말한대로 눈을 감았다.
"뭐가 보이나요?"
"어둠 외엔.....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캄캄한 어둠 뿐이었다.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요? 그럼 그 검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볼까요?"
"네에?"
"후배님은 눈이 가려지긴 전 연무장의 전경을 기억하시나요?"
"기억합니다."
"그럼 눈앞에 펼쳐진 어둠 속에 그 연무장의 전경全景을 그려보시겠어요?"
"전경全景을 그리라구요?"
"네에, 새하얀 선으로 돌조각 하나, 먼지 한올까지 기억나는대로 전부 그려보세요."
".........알겠습니다."
생뚱맞은 요구이긴 하였지만 선우는 이내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하나하나 세세히 그려넣기 시작하였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연무장의 전경을 말이다.
눈앞에 펼쳐졌던
연무장의 반듯한 대리석들
그 위에 그어져있는 수많은 생채기들
연무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석벽
석벽에 곳곳에 달린 채 연무장을 비추는 전등까지 전부 말이다.
이내 눈앞에 새하얀 선들로 이루어진 연무장의 전경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전부 그렸습니다...선배님."
"잘했어요, 후배님. 그럼 이제 색을 채워넣을까요?"
"색을요?"
"네에, 새하얀 선들 속에 기억나는 색들을 채색해보세요. 하나하나 세세하게요."
"......알겠습니다."
선우는 그녀의 말대로 새하얀 선으로 그려진 심상 속의 연무장에 색을 채워넣기 시작하였다.
대리석에는 회색을
전등에는 적색과 황색을
하나하나 섬세히 색을 채워넣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눈앞에는 눈을 떴을 때와 다름없는 전경이 그대로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눈을 감은 채
연무장을 완전히 구현시킨 것이다.
"......되었습니다. 선배님."
"자아, 그럼 이제 선기仙氣를 통해 그 공간을 반절로 접어버리는 거예요."
"......제겐 선기仙氣가 없습니다...."
선우는 당혹스러운 어투로 입을 떼었다.
선기라 함은
신선만이 다룰 수 있다고 전해지는
선계의 기운이 아니던가
그런 기운을 인간인 자신이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건 걱정안해도 돼요, 부족한 건 제가 전부 채워줄테니."
스르르르르륵
말을 마친 운설은 눈가를 덮은 손을 통해 신묘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그대로 전하기 시작하였다.
"아.."
그리고 그 기운을 받아들인 선우는 탄성을 내뱉었다.
운설은 부드러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신묘한 기운에 전신을 그대로 휘감은 까닭이었다.
"어떤가요? 후배님, 선기仙氣가 느껴지시나요?"
".......전신을 감싼.....묘한 기운이..선기라면...느껴집니다..확실하게 말입니다."
"역시 후배님도 하늘에 닿아있었군요.."
선우의 대답에 운설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기仙氣라는 건
느끼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미약하게나마 하늘에 닿아있는 이만이
선기仙氣를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자아, 그럼 이제 전신을 휘감은 그 신묘한 기운을 이용해 심상 속에 연무장을 반절로 접어보세요."
"..............."
선우는 그녀가 명한대로 신묘한 기운을 움직이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신묘한 기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전신을 휘감은 채로 가만히 자리를 지킬 뿐인 것이다.
"선배님..선기仙氣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래요. 좀더 집중을 하다보면 후배님의 의지를 서서히 따르게 될 거예요."
운설은 선우를 독려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선기를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다.
"제가 가능한 일이라면 후배님도 충분히 가능할 거에요. 그러니 의심치 말고 스스로를 믿으세요. 후배님은 할 수 있어요."
운설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선우를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스스로 의심치 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의지를 단단히 다졌다.
지금껏 빈틈없는 가르침을 내려준 운설이었다.
그런 그녀가 거짓을 말할 리 없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그의 의지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스으으으으윽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을 휘감고 있던 신묘한 기운이
의지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더니
이내 연무장이 구현된 심상心象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휘감아라.'
선우는 의지를 발현하였다.
그러자 심상 속에 구현된 연무장을
선기가 그대로 휘어감았다.
한치의 틈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말이다.
'접는다.'
의지가 발현되었다.
그러자 휘감았던 선기가
심상 속 연무장을 반절로 완전히 접어버렸다.
마치 종이를 접듯이 말이다.
스으으윽
선우는 본능적으로 발을 뻗었다.
툭
그리고 그 접어진 땅 위를 가벼이 내딛었다.
파앗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촉이 온몸을 꿰뚫기 시작하였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촉이 말이다.
번쩍
그 이질적인 감촉에 깜짝 놀란 선우는 황급히 눈을 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눈을 감았을 때와 전혀 달라진 전경을 말이다.
'벽?'
눈앞에 벽이 펼쳐져있었다.
연무장 끝자락에 위치해있던 단단한 석벽이 말이다.
'설마?!'
휘익
이내 선우는 재빨리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웃고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
곤륜검성, 운설의 모습을 말이다.
"선..선배님...이건..설마?"
선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방금 감각, 절대 잊지말아요."
운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선우를 축하해주었다.
"그게 바로 축지縮地니까."
그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선우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축지縮地를 단번에 성공시켰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