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6 1037. 우리 내기할까?
꽤나 고급스럽게 꾸며진 침상
그 위에 한 명의 귀부인이 얌전히 앉아있었다.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자리를 지켰을까
"하아아아아.."
이내 귀부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근심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한숨이었다.
"어찌하여...어찌하여.."
수심 가득한 귀부인,당진설은 탄식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재경각으로 출근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재경각이 어디란 말인가
자신의 머리통을 아낌없이 후려쳤던
괴팍스럽고 야만스러운 여자.
요랑이 재경각주로 있는 곳이 아니던가
그런 곳에 배정되었는데
어찌 끔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지...얼굴 맞대기 진짜 싫은데..'
당진설은 한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재경각주와 얼굴을 맞대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여자를
어찌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안 갈 수는 없어.'
그렇다고 이대로 뻐팅길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무려 하늘같은 주인님의 이름을 빌린 명령이었다.
미천한 암퇘지주제에
주인님의 고귀하고 거룩한 명령을 어찌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아...나는..대체..어떻게..해야...'
당진설은 극심한 내적 갈등을 하기 시작하였다.
재경각주를 마주하기 싫다는 거부감과
위대하고 거룩하신 주인님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는 본능적인 각인 사이에
극심한 갈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당진설은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하였을까
꽈악
이내 당진설은 눈을 빛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치 결심을 마친듯 말이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한쪽 구석퉁이에 마련된 경대를 향해서 말이다.
톡 톡 톡 톡
그다음 곧바로 화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정성을 들여서 말이다.
보습성분이 가득한 세안제를 얼굴에 펴바른 뒤
새하얀 분으로 얼굴 전체를 건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디음 뾰족한 흑연으로 눈썹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더욱다 진하게 말이다.
그다음 붉디 붉은 고운 연지를 입술에 칠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거울 속에는 표독스러운 눈매가 인상적인 귀부인의 모습이 비춰지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이 화장을 완전히 끝마친 것이다.
'어차피 주인님의 명을 거절할 순 없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
당진설은 거울을 보며 눈을 빛내기 시작하였다.
당서윤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위임받은 이상 그녀의 명은 곧 위대한 주인님의 명과 다를 바 없었다.
재경각에 출근하라는 명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진설은 더욱더 표독스럽게 화장을 하였다.
피할 수 없으니 당당히 맞설 요량인 것이다.
'같잖은 잔머리를 굴리다니..'
이내 화장을 마친 당진설은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하였다.
잔머리를 굴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당서윤에 대한 적의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어디 네 뜻대로 될지, 두고보자구.'
당진설의 눈빛이 더욱더 표독스럽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녹빛의 고운 비단옷을 차려입은 귀부인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도도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하였을까
뚝
이내 귀부인은 커다란 전각 앞에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시선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전각 중앙쪽에 재경각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꿀꺽
그 모습을 본 귀부인, 당진설은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포부도 당당하게 재경각 코앞까지 오긴 하였지만
막상 들어가려고 하니 일말의 망설임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이 앞에.....그 괴악스러운 여자.'
바로 인생 최초로 머리통을 후려친 여자, 재경각주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수장으로 있는 곳에
제 발로 들어가려고 하니 도저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것이다.
'정신차리자..할 수 있어..할 수 있다고.'
당진설은 속으로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하였다.
할 수 있다는 자신을 심어주면서 말이다.
'재경각주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상, 마냥 괴악하게 굴진 않을 거야, 명분이 없다면 나를 건들 수 없다고!'
그 전에 머리통을 후려맞은 건
전부 나름의 명분이 있던 까닭이었다.
최초로 얻어맞은 건
재경각에 쳐들어가 행패를 부린 죄를 물어 맞게 되었고
두 번째는 도주를 차단하기 위해 얻어맞게 되었다.
야만스럽긴 하지만 모두 적법한 명분이 있을 때만 자신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던 것이다.
그러니 당진설은 스스로 다독일 수 있었다.
야만스러운 재경각주지만
적법한 명분이 없는 이상
자신을 건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들어가자...들어가는 거야.'
덥석
이내 결심을 마친 당진설은 문고리를 그대로 붙잡았다.
하지만 차마 밀어내진 못하였다.
결심을 굳히긴 하였지만
역시나 일말의 망설임이 그녀를 가로막은 까닭이었다.
"야."
그런 그녀의 귓가에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움찔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당진설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나는듯한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설..설마.'
당진설은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뒤편으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고개를 뒤쪽으로 돌린 순간
당진설은 볼 수 있었다.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절세가인의 모습을 말이다.
"대...대체..언제?"
그 모습을 확인한 당진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 네가 처 안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절세가인, 요랑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입을 떼었다.
"들어갈거면 가고, 안갈거면 말지, 왜 그렇게 서성여? 뒤에 있는 사람 생각 안해? 너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너 인성 문제있어?"
요랑은 휘몰아치듯 쉴새없이 잔소리를 내뱉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잔소리에 당진설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요랑의 잔소리가 쏟아질 수록
그녀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죄..죄송해요"
이내 당진설은 다급한 어조로 사과를 하였다.
이대로 있다간 그녀에 대한 공포감에 오줌을 지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죄송하면 재경각 생활 끝나? 그런거야?"
"아..아니에요."
"아닌데, 왜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말로 대충 떼우고 싶은 거야?"
"아..아니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쓰여있구만."
요랑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부르르르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당진설은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눈빛을 마주한 순간
알 수 없는 오한이 전신에 그대로 휘감아버린 까닭이었다.
"너 내가 주시하고 있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요랑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경고를 하였다.
무척이나 날선 목소리로 말이다.
"알..알겠어요."
당진설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알겠으면 나와, 들어가게."
요랑은 가볍게 손을 뻗어 당진설을 옆으로 밀쳐버렸다.
끼이이익
그다음 재경각의 문을 열고 안쪽으로 그대로 들어가버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당진설 또한 슬며시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포부도 당당하게 걷던 때와는 상반되는 조신한 걸음걸이로 말이다.
***********
털썩
"그럼 어디 업무 처리능력부터 봐볼까?"
이내 집무실 의자에 앉은 요랑은 뒤따라온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업무..처리 능력이요?"
"업무를 맡기기 전에 쓸만한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봐야하지 않겠어? 수준에 맞는 일을 주려면 말이야."
요랑은 차가운 어조로 입을 떼었다.
"............"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능력에 따른 분업은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진 말고, 진짜 기초적인 문제만 낼테니까 말야."
요랑은 긴장 가득한 당진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귀엽다는듯이 말이다.
뿌드득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당진설은 이를 갈았다.
명백한 약자를 바라보는듯한 요랑의 미소가
그녀의 높다란 자존심을 그대로 긁어버린 까닭이었다.
"받아."
팔락
요랑은 그러거나 말거나 대충 종이 한 장을 집어든 뒤 당진설을 향해 던졌다.
덥석
당진설은 날아드는 종이를 덥석 붙잡았다.
"..이건?"
"예비 각원이 들어오면 풀라고 내준 기초 계산식들이야. 풀어보고 답지에 기입해서 제출토록 해."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시선을 내려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과연 그녀말대로 기초적인 계산식이 쓰여져있었다.
"어렵진 않을 거야, 네 딸도 수월히 풀어냈던 거니까."
".......경아가요?"
"응, 꽤 똑똑하더라, 처음 풀었을 때 정답률이 구할이 넘었으니까."
"..........."
"설마 엄마가 돼서 딸만도 못한 성취를 보이진 않곘지?"
요랑은 빙글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꼭 그렇게 딸과 비교해야겠어요?"
당진설은 기분 나쁜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딸을 이용하여 자존심을 건드는
요랑의 화법에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왜? 자신없어?
요랑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경아의 정답률이 구할이라고 했나요?"
"정확히 말하자면 구할 오푼정도여, 기초 계산식에서 실수를 했거든."
"그렇다면 전 모두 맞추도록 하죠."
당진설은 독기 어린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스윽 스윽 스윽
그리고는 한쪽에 구비된 책상에 앉아 거침없이 답을 기입하기 시작하였다.
"기대해볼게."
그리고 요랑은 재밌다는듯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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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있어요."
당진설은 꽤나 빠른 시간 안에 답안을 작성하였다.
그리고는 그대로 요랑에게 건네주었다.
검산조차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꽤 빠르네?"
요랑은 감탄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감탄을 한 것이다.
"제겐 기초나 다름없는 계산식들 뿐이더군요. 이런 계산식에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자신감이 넘치네, 검산도 안한 것 같은데 말야"
"검산따윈 무의미해요. 어차피 다 맞았을테니까."
당진설은 자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당당히 말하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검산을 해보는 게 어때? 그렇게 자신했는데 틀리면 꼴이 우습잖아?"
"제가 틀릴 리 만무하잖아요?"
당진설의 대답은 확고하였다.
"틀렸을 것 같은데?"
"재경각주께서 저를 겪어보지 못해, 얕잡아 보는 것 같은데, 이래봬도 사천제일의 재녀로 불리던 몸이예요. 이런 제가 실수따위를 할 리 만무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럼 우리 내기할까?"
요랑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내기요?"
"내가 보기엔 천 개 중 하나쯤은 틀렸을 것 같거든."
"그럴리가요."
"그러니까 내기를 하자고, 좀더 짜릿한 채점이 될 수 있도록 말야."
"......뭘 걸 생각이시죠?"
"무관심."
요랑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이 기초 계산식을 전부 맞췄다면 네게 무관심하도록 하지.""
".......제게 일체 간섭치 않겠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말야."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
당진설의 눈빛에 이채가 띄었다.
꽤나 구미가 당기는 조건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가장 껄끄러운 여자의 간섭을 합법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니
어찌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저는 뭘 걸어야하죠?"
당진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별건 아니고."
요랑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딱 한 대만 맞자."
그리고는 앙증맞은 주먹을 들어올렸다.
순간 당진설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과거 머리통을 후려맞은 공포감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어디를?"
당진설은 떨리는 어조로 되물었다.
"당연히 머리통이지."
요랑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의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으로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통을 맞는 것과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 사이에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저울질 하였을까
".........정말 이 문제를 다 맞추면 간섭치 않는 건가요?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재경각 내부에만 짱 박혀있으면 일체 간섭치 않을 게,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요랑은 그녀의 물음에 확언을 하였다.
"......좋아요...하겠어요!"
그 확언을 들은 당진설은 곧바로 내기에 응하였다.
잠깐의 고통과 평생의 자유라니
저울질조차 아까운 선택지였다.
"시원해서 좋네."
요랑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다음 곧바로 시선을 내려 계산식을 훑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리고 당진설은 그런 요랑을 긴장 어린 시선으로 뚫어져라바라보았다.
제발 모두 맞추었기를 빌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훑었을까
"흐음...과연 자신할 만하네."
이내 그녀는 감탄을 내뱉었다.
자신할 만큼 정답률이 상당하였기 때문이었다.
화악
그리고 그 감탄에 당진설의 표정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내기의 승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근데 하나 틀렸네."
서걱
요랑은 촉이 달린 빨간 색 필기구로
그대로 내리그어버렸다.
"뭐라구요!? 말도 안돼요!"
당진설은 즉각적으로 반발을 하였다.
검산을 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기초적인 계산식이었다.
그런 계산식에서 실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직접 확인해보던가."
요랑은 계산식이 적힌 종이를 곧바로 건네었다.
덥석
그리고 그 종이를 받아든 당진설은 빠르게 훑기 시작하였다.
요랑이 표시한 문제를 말이다.
"............이..이럴수가."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완전히 틀려버린 자신의 계산식을 말이다.
"보니까 千자랑 十자를 착각한 것 같더라, "
요랑은 그녀의 실수를 꼬집어서 지적해주었다.
빨리 풀다보니 숫자를 잘못 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아아아아...아아.."
실수를 인지한 당진설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평생의 자유가 완전히 날아갔음 인지한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미리 검산 좀 해보라고 말야."
요랑은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처음부터...알고 계셨던 건가요?"
당진설은 의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럴리가."
물론 거짓말이다.
곁눈질로 시험지를 훑어본 요랑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오답을 썼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냥 운좋게 맞은 거지."
요랑은 시치미를 뚝 떼었다.
아무것도 몰랐다는듯이 말이다.
"............"
요랑의 시치미에 당진설은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되는 조건에
내기를 건 사실에 의심이 가긴 하였지만
물증따윈 없는 상황이었다.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자아, 그럼 내기를 수행해볼까?"
그녀가 말이 없자 요랑은 히죽거리며 주먹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겉보기엔 앙증맞아 보이지만
흉악스러운 괴력이 담겨있는 주먹이 말이다.
그리고 그 주먹을 마주한 당진설의 낯빛이 더할나위없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잠..잠깐만요! 재경각주...저희 일단..대화를.."
빠아악
콰아아아아앙
당진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찰진 타격음과 함께 그대로 몸이 날아가
벽에 처박혀버린 까닭이었다.
"다음부터는 검산 잘하렴."
요랑은 벽에 처벅힌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이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첫 기선제압은 성공적으로 끝난듯 싶었다.
첫 출근부터 합법적으로 머리통을 후려쳐버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