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1 1032. 화나게 하다.
"정말.....안되는건가요?"
주소양은 원로들을 바라보며 확인하듯 되물었다.
정녕 수용할 수 없는 것인지 말이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물음에 원로들은 격렬히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듯이 말이다.
".........정말...원로님들은...인정사정도 없으시군요.."
주소양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인정사정이 없어서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걸 시도하려하니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세진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금강석이 무엇이란 말인가
중원에서 가장 단단하고 값비싼 광물이 아니던가
그런 광물로 석상을 세우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리 만무하였다.
"이 원로의 말이 맞습니다. 맹주,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동상이라니....그런 걸 만들었다간 맹이 파산이 나고 말 것입니다..."
주소양을 친손녀처럼 여기는 계상득이였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못하였다.
그녀가 원하는대로 이행했다간
기껏 세운 의천맹이 그대로 파산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니..어쩔 수 없군요."
주소양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후대에게 남편의 위대함을 그대로 전하는 일은 무리인듯 싶었다.
현실적인 제약이 이렇게 크니 말이다.
".....그럼 아쉬운대로 금으로 된 금상을......"
""안됩니다!""
이번에도 두 원로는 한마음 한뜻으로 반발을 하였다.
"아니, 어째서 안된다는 건가요?"
주소양은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나름 타협하고 타협한 끝에 내뱉은 제안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곧바로 반대를 표한다는 말인가
"높이만 이장이 넘는 크기입니다! 그런 걸 전부 금으로 만든다면 어마어마한 재정적인 부담을 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냥 동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동으로 하시지요!"
"청동은 너무 평범해요. 의기를 떨친 초대맹주의 위대함을 선보이려면 적어도 휘황찬란한 금상 정도는 세워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소양은 꽤나 확고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금강석과 달리 금상은 실현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금강석과 달리 무른 재질이기에 조각가를 구하기도 수월할테고
살짝 무리를 한다면 재료를 수급 못할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금은 너무 비싼 재료입니다! 파산은 아니더라도 몇 달은 벽곡단만 먹고 생활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하지만 두 원로들은 그런 주소양의 제안을 거듭 반대하였다.
파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재정적인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의천맹 혼자 감수하기엔 너무나 부담되는 금액인 것이다.
"저도 이번만큼은 양보 못해요."
주소양은 불허하겠다는듯한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이내 주소양과 두 원로들 사이에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면사로 얼굴 전체를 가린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
하오문주, 하수련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주소양에게 물음을 던졌다.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한 까닭이었다.
"도금을 하기로 했어요.."
주소양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래도 원로님들이 맹주의 의견을 어느정도 수용해주셨네요? 도금 비용도 만만치 않을텐데."
하수련은 재밌다는듯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 장이나 되는 거대한 동상에 도금이라니
금상을 만드는 것보단 적을 지는 몰라도
만만치 않을 비용이 들게 분명한 일이었다.
그걸 수락해준 걸 보면 그들 또한 주소양의 억지를 어느정도 수용해준듯 했다.
"하지만 전 그정도로는 마음에 차지 않아요."
주소양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금상을 세우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쌓인듯한 모습이었다.
"선우님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지거늘....어찌 금상조차 세우지 못하게 한다는 말인가요?"
"원로님들 눈에는 선전용으로 쓰기엔 과하다싶을 정도의 예산 책정처럼 느껴졌나보죠."
선전을 위해 금상을 세우는 건 상당한 낭비였다.
재정적으로 볼 때는 무리한 판단인 것이다.
"하오문주, 전혀 과하지 않아요. 오히려 금조차 선우님의 고귀함을 표현하기엔 모자란 감이 넘치는 재료라고 볼 수 있죠."
주소양은 여전히 납득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장선우라는 존재는 신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고귀한 존재를 표현하는데
금조차 가당치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왜 도금으로 타협보신 거죠? 좀더 밀어부치셨으면.....원로님들이 마지 못해 허락해줬을 것 같은데?"
하수련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금조차 마뜩치 않게 보는 주소양이
도금으로 타협본 것 자체가 의아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계 원로가.....간곡히 부탁하는터라....도저히 억지를 부릴 수 없었어요."
자신을 친딸처럼 아끼는
계 원로가 맹렬히 반대한 일이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부칠 수는 없던 것이다.
"계 원로라면....그 남만야수궁에 쳐들어갔다....남만에서 조난 당해 아사직전에서 구조받으신 분 아닌가요?"
하수련은 기억난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계 원로에 대해...알고 계신건가요?"
주소양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모를 리가 있나요. 의천맹 전체에 파다한 소문을"
하수련은 차분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목이 잘린 사절단의 복수를 위해
남만으로 쳐들어갔다
조난당해 아사 직전 구조된 조사단의 이야기는
의천맹 내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일화였다.
그런 일화를
정보의 요람이라고 불리우는
하오문에서 모를 리 만무하였다.
"입 단속을 한다고 했는데..."
주소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끝을 흐렸다.
계 원로의 체면을 생각해 엄중한 입단속을 명한 그녀였다.
친아비처럼 따르던 후견인인
계상득의 치부가 드러나는 걸 원치 않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입단속의 효력이 그리 크지 않은듯 하였다.
외부인인 하오문주조차 계상득에 관한 일화를 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 것치곤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요? 아마 저잣거리에도 퍼져나갔을 걸요?"
"후우.......계 원로가 또 노발대발하시겠네요."
주소양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치부를 발설한 놈을 찾겠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계상득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였기 때문이었다.
"혹여....하오문주께서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주소양은 무척이나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어떤 도움을 말이죠?""
하수련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계 원로에 대한 소문이 익살스럽게 퍼져나가는 걸 방지해주셨으면 해요.....아무래도 계 원로께선 수뇌부의 신분인지라......위상이 우스꽝스럽게 깎아져내리는 건 마뜩치가 않네요."
주소양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계상득은 엄연히 의천맹의 수뇌부이다.
그런 그의 위상이 깎아져내린다면
의천맹 위상 또한 마찬가지로
같이 깎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그 말을 들은 하수련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소문을 덮는 것따윈
최고의 정보기관인 하오문의 입장에선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무척이나 손쉬운 일이었다.
그리 어려울 게 없는 것이다.
"도와주시는 건가요?"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화색을 띈 채 되물었다.
"이틀 내로 계 원로님과 관련된 소문을 완전히 종식시켜도록 할게요."
하수련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고마워요, 하오문주."
주소양은 맑은 미소를 지었다.
탁
스으윽
그리고 탁자 위에 금원보를 하나 올려놓더니
하수련쪽으로 그대로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선수금이예요. 소문이 종식된다면 잔금은 두 배로 치르도록 할게요."
주소양은 아낌없이 사비를 털었다.
아버지처럼 아끼는 계상득의 명예와
사랑하는 선우가 맡기고 간 의천맹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그리 아까운 돈이 아니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죄송하지만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맹주."
스으으윽
그때 하수련이 금원보를 다시금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이 코앞을 향해서 말이다.
"액수가 너무 적나요?"
그 모습에 주소양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액수가 너무 적어
하수련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든 까닭이었다.
"아니요, 액수는 차고 넘쳐요. 다만 맹주께서 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거에요."
"어째서죠?"
"........맹주께서도 아시지 않으신가요?......제가 피치못할 사연으로 군왕 전하 밑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걸."
"아, 그 내기에서 져서 노예 계약을 한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주소양는 생각났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네에....맞아요...그거요."
하수련은 축 처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새삼 스스로 신세가 꽤나 애처롭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꽃다운 나이에 노예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선우님께서...사천으로 떠나시기 전 신신당부하셨어요....맹주를 자신 대하듯 하라고, 어떤 일을 하든 웬만하면 협조하라고 말이에요."
하수련은 선우에게 전해들었던 말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전해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돈을 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저 편히 원하는 바를 말씀하시면 그대로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수련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떠나는 순간조차 자신을 위하는 그의 따스한 배려심에 감동을 받은 까닭이었다.
"하오문주."
이내 어느정도 감정을 가라앉힌 주소양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에, 말씀하세요."
"정녕....선우님께서...저를 본인 대하듯 대하라고 말씀하셨나요?"
"네에, 그리 말씀하셨어요."
하수련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염치없는 부탁을 더 드려도 될까요?"
"말씀만하세요. 무엇이든 가능한 일이라면 전부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수련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주소양은 말끝을 흐리며 뜸들이기 시작하였다.
말하기 곤란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하수련은 그런 주소양을 얌전히 기다려주었다.
그녀가 뒷말을 잇기를 말이다.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에?"
순간 하수련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별안간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역시 도금으로는 안될 것 같아요.....선우님의 위대함은...완벽한 금상이 아니면...표현할 수 없어요."
주소양은 별빛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과 알맞은 근육이 가득 들어차 있는 단단한 신체, 천하제일을 논하는 초월적인 무공실력, 게다가 아녀자를 배려하는 따스한 배려심까지.....이런 완벽한 남자를....통짜 금이 아니라면 대체..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주소양은 광기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맹의 재정으로 어렵다면...제 사비를 털어서라도..해야겠어요....그러니..돈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나중에 꼭 갚도록 할게요...네에? "
주소양은 광기 가득한 눈빛으로 하수련은 바라보며 애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금상을 세울 생각이 가득 들어 차 있는듯 보였다.
"나가는 문은 뒤로 돌아 오른 편에 있어요. 맹주."
하수련은 그런 주소양을 바라보며 즉각적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표한 것이다.
"가능한 일은 전부 들어주신다면서요!"
주소양은 곧바로 항의를 하였다.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니까 그렇죠! 금상 재건비를 왜 하오문에서 뜯어내요!?"
"나중에 갚을게요!"
"그걸 어떻게 믿어요! 돈을 빌리고 싶으면 담보를 가져오세요!"
이내 두 여인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격렬하게 말이다.
***********
스르륵
운설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우우우우우웅
그다음 내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청량하기 그지없는 내력이
그녀 주위에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맹렬한 기세로 말이다.
휘이이이이이이익
그렇게 얼마나 휘몰아쳤을까
뚝
어느순간 기운들이 그녀의 몸속으로
모조리 빨려들어가더니
그대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는 것처럼 말이다.
스르륵
이내 운설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심유한 그녀의 눈빛이 빛을 발하였다.
그 심유한 눈빛 속에는
현기와 선기가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운기조식이 끝났나보군요."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운설은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그러자 시원스러운 인상의 남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 운설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끼는 후배의 귀환이 퍽이나 반가웠던 까닭이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운설 부인."
하지만 이어지는 선우의 말에 운설은 표정을 딱딱히 굳히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혹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후배님...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네요."
"요랑이한테 다 들었습니다. 연우한테 엄마 소리를 들었다면서요?"
시원스러운 인상의 남자, 선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연우에게 엄마면 제 부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운설 부인이지요."
선우는 낄낄 거리며 마누라 취급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꽤나 재밌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후배님께선......못본 새 버릇이 많이 없어진 것 같네요."
스으으으윽
운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고작 하루정도 못본 것 뿐인데 말이죠."
스르르릉
그리고는 곧바로 검을 뽑아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은 채로 말이다.
"아니면 칸을 잡았다고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을 가지게 된 걸까요?"
운설은 검세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언제고 달려들 수 있도록 말이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도록 하죠. 남자 손 한 번 못잡아본 처녀를 유부녀 취급하다니..."
운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아주 못됐어요."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내 그녀의 주위에서 어마어마한 기운들이 내뿜어지더니 그대로 연무장 전체를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공간을 압축해버릴듯이 말이다.
'.......이거...좆된 거 아니야?'
그 기운에 노출된 선우는 생각하였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