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27 1028. 전부 다죽일 건데?
서거어어억
살갗에 검날이 파고드는 절삭음이 울려퍼졌다.
그러자 두텁기 그지없는 가슴에 새빨간 실선들이 그어졌다.
마치 누군가 새빨간 실을 휘감은 것처럼 말이다.
퓨수우우우우우욱
이내 새빨간 실선들 사이로 어마어마한 양의 핏물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쿠우우우우웅
곧이어 웅장함마저 느껴졌던 칸의 거체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히게 되었다.
심장까지 파고든 검에 의해 그대로 절명해버린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
그 과정을 지켜본 목마는 입을 차마 다물지 못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칸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오직 일신의 무력만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절대강자이자
재해나 다름없는 거력을 휘두르던 괴악스러운 괴물이 아니던가
그런 괴물이 어찌 저리도 허무히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온갖 기관들을 맨몸으로 버텨낸 강맹한 그의 육체가 그대로 베어졌다는 사실이
지진을 일으키던 재해와 같은 괴물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이 말이다.
'곤란해...곤란하다고!'
곤란하였다.
기껏 계획이 틀어지다못해
완전히 개박살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인질을 이용해
칸에게 기회를 만들어줄 심산이었다.
인질을 이용해 저자의 마음을 흔든다면
칸에게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어버렸다.
인질을 잡고 협박하기도 전에
칸이 몸뚱아리가 반으로 갈려
절명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제기랄...제기랄..제기랄..'
목마는 속으로 욕지거리가 쉴새없이 내뱉기 시작하였다.
어찌 해야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병들과 함께 대적을 해?'
무리였다.
저정도 수준에 다다른 절대강자에게
숫적 우위따윈 무의미하였다.
기병들과 함께 달려든다고 해도
털끝 하나라도 건들 수 있을 지 없을 지
장담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도망쳐?'
이 또한 무리였다.
공중을 자유자재로 누빈다는 전설적인 경신법.
능공허도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였다.
아무리 내달리고 또 내달려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요원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목숨을...구걸해봐?'
통할 리 만무하였다.
공동파의 수많은 도사들을
학살하였던 자신들이었다.
구걸한다고 그대로 들어줄 리 만무한 것이다.
'......나는....어떻게..해야..하지...대체..어떻게..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목마는 짧은 찰나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무사히 공동산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을 하였을까
휘이익
이내 목마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칸의 죽음에 시선을 빼앗긴 참배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데구르르르르
목마는 그들을 바라보며 데구르르 눈을 굴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듯이 말이다.
뚝
그리고 이내 참배객들 중 가장 안쪽에 있는 곳에 시선을 멈춰세웠다.
그곳에는 젖먹이 정도로 보이는 아기가 어미 품에 포옥 안겨져있었다.
히죽
그 모습을 본 목마는 히죽거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살길을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스으으윽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완전히 양단나있는 칸의 시체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겼어.'
그 처참한 모습에 선우는 고양감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저 강대한 괴물로부터
승리를 쟁취하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르르르르
이내 선우는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차오르는 승리감이 온몸을 휘감은 채 그에게 전율을 선사한 까닭이었다.
평소라면 전율을 느낄 정도까지 승리감을 느끼진 않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건곤대나이나 작열독과 같은 장기를 봉인한 채
오직 검술만으로 현경에 다다른 괴물을
말그대로 압도해버렸다.
운설을 통해 기본검식을 수련하며 기존과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선배님, 다시는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선우는 운설을 향해 깊은 사과를 하였다.
그녀의 수련 방식을 불신한 채 불평불만을 내뱉은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굳게 다짐하였다.
다시는 그녀를 의심치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한창 굳은 다짐을 다지고 있을 때였다.
"으에에에에엥~!!"
귀를 찢는듯한 울음소리가 선우의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휘이익
그 소리에 놀란 선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아기를 붙든 채 비열한 인상의 남자가 말이다.
그 모습에 선우는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다짜고짜 저게 되먹지도 않은 짓거리란 말인가
"너 뭐하냐?"
이내 선우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인질을 잡고 있습니다, 저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선우를 마주하며 입을 떼었다.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은데?"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요 조그만 인질을 붙잡고 있는 동안만큼은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목마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인질을 붙들고 있는 한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그가 제아무리 칸을 베어버린 절대고수라고는 하지만
정파의 인물인 이상
요 조그만 인질을 못본 척할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선우는 살의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가 인질로 잡혀있는데, 손을 쓸 리 없지 않습니까?"
목마는 히죽거리며 붙들고 있는 아기를 그대로 들어올렸다.
"으에에에...으에에엥...우에에에에에엥!"
그러자 아기가 더욱더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낯선 이의 손길에 몸이 이리저리 휘둘려지는 느낌에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느낀듯 하였다.
"아가아아아! 내 아가아아아!"
더불어 뒤편에서 기병들에게 붙잡힌 채 울부짖고 있는 애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서럽게 우는 자식의 모습에 애타는 감정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선우의 눈살이 더욱더 찌푸려지기 시작하였다.
저항조차 못하는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를
제 사욕을 위해
좌지우지하는 목마의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제 요구조건은 간단합니다. 저를 비롯한 몽고의 기병들이 공동산을 벗어날 때까지 위해를 가하지......."
서걱
목마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절삭음과 함께 느껴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입을 완전히 다물게 만든 까닭이었다.
툭
곧이어 무언가 떨어지는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응?"
그 소리에 불안감을 느낀 목마는 천천히 시야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너무나 익숙한 팔을 말이다.
'어...어?"
그 익숙함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목마는 시선을 천천히 오른 어깨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텅 비어있는 오른 어깨를 말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내 목마는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팔이
자신의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수 까닭이었다.
잘려버린 것이다.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쾌검에 의해서 말이다.
"긴 말 안해."
선우는 목마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당장 애 엄마한테 아기를 곱게 돌려보내.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번엔 목이 잘려질 거야."
그리고 살벌하기 그지없는 경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당장 아기를 되돌리라고 말이다.
"아.......아......아.."
목마는 창백한 낯빛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해야할 지 판단이 서지 않은 까닭이었다.
인질로 붙들고 있는 아기는 자신을 지켜줄 최후의 보호구였다.
그런 아기를 되돌리라니
그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을 쉽사리 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하지만...다음에는..목을 노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기를 계속 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인식조차 못할 속도로 쾌검을 내질러
오른 팔을 잘라버린 인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목을 자르는 것조차 수월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대체..나는 어떻게..'
목마는 쉴새없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오직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말이다.
"셋을 세겠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의 고심따위를 기다려줄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하나."
"잠..잠깐!"
"둘."
'만약 아기를 넘기면 살려주시는.."
"셋."
"넘기겠습니다. 넘길테니까 부디 목숨만......"
서거어억
목마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어느새 날아든 검기劍氣로 인해 머리통이 그대로 하늘에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스르르륵
그리고 힘을 잃어버린 목마의 시체는 그대로 바닥에 떨궈지기 시작하였다.
서럽게 울고 있는 아기를 붙잡은 상태로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 모습에 선우는 재빨리 내력을 내뿜어 아기를 부드러이 감쌌다.
둥 둥 둥
그러자 바닥을 향하던 아기가 그대로 허공에 둥실둥실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까딱
선우는 허공에 떠올라있는 아기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허공에 뜬 아이가 서서히 선우에게 다가오더니 그대로 품에 안착을 하였다.
무척이나 안정적으로 말이다.
덥석
선우는 조심스레 아기를 품에 안았다.
"늦었어."
그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목마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무척이나 차가운 어조로 말이다.
********
덜 덜 덜 덜 덜 덜
덜 덜 덜 덜 덜 덜
칸의 친위대이자
초원의 공포라고 불리우는 기병들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쉴새없이 떨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경악스러운 상황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낀 까닭이었다.
칸이 죽었다.
오직 무력만으로
신분 체계를 뒤엎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몽고제일인이
신에게 직접 선택받았다고 전해지는
위대한 지배자가 말이다.
더불어 남궁세가조차 멸문시켰다고 전해지는
무림의 공포 중 하나
목마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어떠한 저항조차 못한 채로 말이다.
칸이 신에게 선택받은 이라면
저자는 신 그 자체였다.
그런 신을 마주한 경악스러운 상황에서
어찌 온몸을 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려웠다.
끔찍할 정도로 두려워
전신을 떠는 것외엔 그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야."
그때 신과 동등한 위대한 존재가 가벼이 입을 떼어내었다.
"니들은 어떻게 할래?"
그리고 자신들의 의중을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이다.
".........무..무엇을 말입니까?"
그 물음에 친위대의 선봉장, 진 테르힌이 떨리는 어조로 입을 떼었다.
"뭐긴, 덤빌건지 아니면 도망갈 건지 선택하라는 거지."
선우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살...살려주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진 테르힌의 얼굴이 생기가 돋기 시작하였다.
그가 자비를 베풀어 자신들을 살려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니, 전부 다죽일 건데?"
선우는 곧바로 부정을 하였다.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무고한 백성들을 수탈하고 학살하였던 주적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이대로 놓아줄 리 만무하였다.
'하..하지만 분명 도망치라고.."
"맞서싸워도 도망쳐도 전부 다 처죽일거야."
선우는 차가운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러니까 선택해, 어떻게 할건지 말이야."
선우는 살의로 가득 찬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
그리고 그 살의에 마주한 진 테르힌은 알 수 있었다.
어떤 선택지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말을 내뱉은 순간
확정된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택하기 힘든가봐?"
"..............."
"좋아, 그럼 내 특별히 선택하기 쉬운 조건을 덧붙여주지."
선우는 인심써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맞서길 택한다면 너희 모두 고통없이 죽여줄게, 도망보단 맞서기를 택한 너희들의 의기를 높이 사서 말이야."
"..........."
"그리고 만약 도망치길 택한다면 정확히 일각동안 기다려주지.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도록 말이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아, 어떻게 할래?"
조건을 제시한 선우는 진 테르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도..도망치겠습니다!"
그리고 진 테르힌은 맞서싸우기보단 도망치기를 택하였다.
이대로 삶을 끝낼 수는 없다는 강렬한 본능에 선택을 맡긴 것이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일각이다."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입을 떼었다.
"지금 당장 퇴각한다! 전속력으로!"
그 말을 들은 진 테르힌은 곧바로 부하들에게 퇴각을 명하였다.
무척이나 다급한 어조로 말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리고 재빨리 고삐를 틀어 산문밖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전속력으로 말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그리고 곧이어 수많은 기병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생존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선우는 그런 기병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