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24 1025. 천벌天罰
"간단하다. 남아있는 공동의 제자들을 네 손으로 죽여라."
칸은 눈길로 참배객들을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공동의 제자들을 곁눈질하며 말을 이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일섭은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즉답하였다.
사형제들을 죽이라니
이 무슨 말같지 않은 소리란 말인가
"사문을 등지고 나를 섬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분명 당신을 섬긴다면 모두를 살려준다고.."
"내게 살려준다고 한건 네놈 뒤편에 있는 연약한 중원인들 뿐이었다. 애초에 공동의 제자따윈 논외였지."
칸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무리입니다."
"무리라면 어쩔 수 없구나...모두 죽이는 수밖에."
칸은 잔혹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차라리 죽이십시오! 생명으로 생명을 살 생각따윈 추호도 없습니다!"
일섭은 고함을 내질렀다.
생명으로 생명을 맞바꾼다니
자신따위가 그런 추악스러운 선택을 할 리 만무하였다.
차라리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나은 선택이리라
그렇게 한창 고함을 내지고 있을 때였다.
덥석
갑자기 어깨에서 무언가 안착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섭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광의 모습을 말이다.
"일섭."
일광은 침중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대의를 생각해라."
"대의가 사형제들을 희생하여 참배객들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끝까지 저들을 지키다 죽겠다고 다짐한 몸이야."
"경우가 달라! 항전하다 죽는 것과 목숨을 맞바꾸는 건 경우가 다르다고!"
일섭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참배객들을 살릴 수 있잖아? 오히려 난 좋다고 생각한다."
"말도..말도 안되는 소리 마!"
"평창 사숙과 약속했잖아? 끝까지...참배객들을 지키겠다고 말이야...그 약속을 이행할 때다....일섭."
"그럴 순 없어! 안된다고!"
일섭은 격렬히 반대를 하였다.
제 손으로 사형제를 죽이라니
어찌 그런 잔혹한 일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인가
"다들 뭐라고 말좀 해봐! 일광이 미쳤잖아!"
일섭은 다른 제자들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일광을 말려보라는듯이 말이다.
".............."
"............."
하지만 제자들은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침묵을 고수할 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다들 왜 그래....장난 치지마...장난치지 말라고!"
일섭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결심을 마친듯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까닭이었다.
"결단이 필요하다. 일섭."
일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릴 죽여줘."
"못해! 난 그럴 수 없어!"
"못해도 해야해. 네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하지만!"
"일섭!"
일광은 일섭의 말을 끊으며 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일섭의 눈동자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잘부탁한다."
쉴새없이 떨리는 눈빛으로 말이다.
".............일광."
그 눈빛을 마주한 일섭은 알 수 있었다.
일광 또한 죽음이 두렵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직 참배객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반칙이잖아...그런 건..."
주르르륵
일섭을 한줄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반칙이었다.
저런 결연의 의지를 보이는 것은 말이다.
'이러면...이러면.....진짜 벨 수밖에 없잖아.....'
꽈아아악
그리고 검을 강하게 움켜쥐기 시작하였다.
결연의 의지를 확인한 상태에서
검을 들지 않는다는 건
일광을 비롯한 다른 사형제들의 결단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검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광...정말...정말...미안하다..정말...미안해.."
일섭은 검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기 시작하였다.
단칼에 그를 벨 수 있도록 말이다.
"넌 최고이자 최선을 택했다. 일섭, 사과할 필요따윈 없다."
일광은 환하게 웃으며 답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안면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억지로 웃긴하였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신에 휘감겨진 까닭이었다.
"크크크크큭...크크큭.."
"히히히히히히"
두 사람을 관전하고 있던 칸과 목마는 재밌다는듯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비극적으로 연출된 상황이
꽤나 우습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칸께서는 극에 재능이 있군요. 이렇게 재미난 각본을 짜시다니 말입니다."
목마는 재밌다는듯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재밌었다.
사문을 등진 채
사형제를 스스로 죽여야하는 커다란 비극이 말이다.
"난 위대한 황제다. 뭐든 잘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닌가?"
칸은 당연한 걸 묻느냐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자신은 하늘에 선택한 위대한 지배자다.
못하는 것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였다.
"낄낄낄...제가 그런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군요."
목마는 깜빡했다는듯 능청스러운 어조로 입을 떼었다.
"불쾌하군, 하지만 용서토록 하지.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으니 말이야."
칸이 만면에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비극적이고 끔찍한 지금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든듯한 모습이었다.
'자아...어서 죽이거라...비극을 완성시키란 말이다.'
칸은 눈을 반짝인 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곧 완성될 비극의 끝을 말이다.
"자아, 어서 죽여라. 일섭....너라면 고통없이 보내줄 것이라 믿는다."
일광은 양팔을 벌린 채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정말...미안해."
일섭은 검을 치켜세우기 시작하였다.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부우우우우우우우
그리고 이내 검을 휘둘렀다.
일광의 목을 단번에 참수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일광은 환하게 웃었다.
슬퍼할 일섭을 배려하기 위해
치솟는 두려움을 꾹꾹 눌러담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칸과 목마 또한 환하게 웃었다.
머지 않아 완성될 비극적인 결말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서어어억
이내 일섭의 검이 일광의 목에 작은 생채기를 내며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목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렇게 환호 속에 목이 떨어지려는 그 순간이었다.
팡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일광의 목에서 상당한 반탄력이 터져나오더니 파고들던 일섭의 검이 그대로 튕겨내버린 것이다.
휘리리리리릭
덜그럭
"크으윽."
그 반탄력에 검을 놓친 일섭은 손목을 부여잡은 채 신음성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부담이 될 정도로 상당한 고통이 손목 전체를 시큰거리게 만든 까닭이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칸과 목마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당혹스러움이 느낀 까닭이었다.
분명 검날이 목을 파고들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이렇게 한순간에 튕겨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렇게 한창 당황을 하고 있을 때였다.
흠칫
움찔
어디선가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위다!'
휘익
칸과 목마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올렸다.
존재감이 느껴지는 하늘 위라는 걸 인지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하늘 위에서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한 명의 남자를 말이다.
'능공허도凌空虛道!?'
그 모습을 본 목마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늘을 유유자적 마음껏 누빈다는 전설적인 경신법.
능공허도의 등장에 경악스러움을 느낀 까닭이다.
그렇게 한창 경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스으으으윽
하늘 위에 떠있던 남자가 천천히 땅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마치 저 하늘 위에 신선이 현계에 강림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툭
이내 남자는 땅에 완전히 안착해버렸다.
"네놈은 누구냐."
칸은 긴장 어린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심상치 않은 존재감에 절로 긴장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천벌天罰"
칸의 물음에 남자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네놈들의 추악스러운 악행에 하늘이 노하여 내려온 천벌天罰이다."
스스로 천벌天罰이라고 자칭한 남자, 선우는 북풍한설보다 더한 한기를 싸늘함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달게 받도록 해라."
스르르릉
이내 선우는 옆구리에 매여있는 검을 빼어든 천천히 빼어들기 시작하였다.
"크으으윽.."
"으으으윽.."
"하으으윽.."
그리고 그 순간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칸과 목마를 비롯한 기병들을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완전히 뭉개버릴듯한 기세로 말이다.
쿵
쿵
쿵
이내 기병들이 게거품을 물며 하나둘씩 낙마를 하기 시작하였다.
온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중압감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콰아아아앙
그때 잠자코 있던 칸이 거창을 들어올리더니 자루 끝으로 바닥을 내리찍어버렸다.
파아아앗
그러자 공기마저 짓누르고 있던 중압감에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장난질이 심하군."
중압감을 지워버린 칸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재미 좀 보자고 동문살해를 조장한 새끼보단 나은 것 같은데?"
선우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비아냥거렸다.
"선택을 한 건 저놈이다."
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택을 강요한 건 네놈이고."
"말이 안통하는 군."
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는 거창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내려찍어버리겠다는듯이 말이다.
"피차일반이다."
선우 또한 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검을 강하게 움켜쥔 채 기수식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이다.
"날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칸은 검을 들어올린 그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왜 감당못한다고 생각하지?"
"난 칸이다. 하늘이 선택한 위대한 지배자지, 그런 나를 한낱 인간따위가 감당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칸은 오만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신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위대한 지배자이다.
한낱 범부따위가 감당할 만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네놈이 하늘에 선택 받았다면 난 하늘 그 자체다."
선우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공정상 실수로 불량품이 선택된 거 같으니까, 폐기하고 다시 선택하도록 하지. 아주 착한 놈으로 말이야. "
선우는 실실거리며 말장난을 치기 시작하였다.
"시덥지 않은 말장난을 좋아하는 군."
칸은 불쾌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을 자칭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불량품이라 칭하는 비아냥에
불쾌감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싫어하진 않아."
선우는 여전히 실실거리며 말을 이었다.
불쾌해하는 칸의 모습이 퍽이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다시는 그 주둥이를 못 놀리게 해주마."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칸은 거대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폭사시키기 시작하였다.
치솟은 분노가 그의 힘을 더욱더 증폭시킨 것이다.
"어디 한 번 해봐."
선우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거대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분노한 칸에 못지 않은 무지막지한 기운을 말이다.
이내 두 절대강자는 서로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빈틈이 보이는 즉시 그대로 달려들 요량으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응시하였을까
콰아아아앙
이내 칸은 발을 구르더니 남자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거창을 내지른 채로 말이다.
그 모습에 남자는 마찬가지로 검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달려드는 칸을 향해서 말이다.
'멍청한 놈.'
그 모습을 본 칸은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감히 자신에게 힘으로 맞서려드는 남자의 어리석음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온 까닭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애액
이내 바람을 찢어발기는듯한 소리와 함께
거창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달려드는 남자를 향해서 말이다.
'끝이다!'
칸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한수에 모든 것이 결판나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주르르르륵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칸의 믿음은 그대로 어긋나버리고 말았다.
눈앞의 남자가 내지른 검과 맞닿은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칸의 신형에 뒤편으로 쉴새없이 밀려난 까닭이었다.
"아...아니!?"
칸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체없이 밀려버린 스스로의 상태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강맹한 힘과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강건한 육체
무겁기 그지없는 거창까지 갖춘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어찌 한낱 검수따위에게 밀려난다는 말인가
칸은 재빨리 시선을 올려 정면을 응시하였다.
그러자 지체없이 밀려난 자신과 달리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아가리 턴 거에 비해 많이 빈약하네?"
선우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불량품이라 그런가?"
그리고 조롱 가득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