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23 1024. 선택의 기로.
저벅
칸이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끼이이익
퓨수우욱 퓨수우욱
그러자 이내 기관이 발동되면서 수많은 화살들이 칸을 향해 그대로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캉 캉 캉
하지만 쏟아지는 화살들은 칸의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하였다.
내공조차 담겨있지 않은 철촉으로는
극상의 외공으로 단련된 칸의 거죽을 꿰뚫지 못한 것이다.
저벅 저벅
칸은 쏟아지는 화살을 무시한 채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위협조차 되지 않는 화살따위가 그를 막아설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저벅 저벅
끼이이이익
이번에는 땅에 수많은 창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두두둑
우두두둑
하지만 치솟은 창 또한 화살과 마찬가지로 칸에게 어떠한 생채기도 입히지 못하였다.
그저 연약한 겨우살이처럼 한순간에 부러져버릴 뿐
저벅
칸은 치솟는 창들을 무시한 채 다시금 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감흥조차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쿠우우우우우우웅
데굴 데굴 데굴
곧이어 굉음성과 함께 집채만한 바위가 굴러들어오더니 그대로 칸을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콰지지지직
이내 집채만한 바위는 칸의 몸에 닿자마자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바위의 경도를 한참이나 웃도는 강건한 육체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순식간에 바위를 박살내버린 칸은 전진하고 또 전진하였다.
쏟아지는 수많은 기관들을 맨몸으로 받아내면서 말이다.
수십 발의 독침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독침의 연약한 촉으로는 칸의 강건한 살갗을 파고들 수는 없었다.
바닥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수화불침의 경지에 다다른 칸에게 그런 불길은 작은 불씨만도 못한 존재였다
땅이 갈라졌다.
칸은 허공을 걸어 갈라진 틈 위를 여유롭게 걸어갔다.
그밖에 수많은 기관들이 칸을 덮쳐들었지만
모두 무용無用할 뿐이었다.
그 어떤 것도 칸의 강건함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것이다.
'경이로운 괴물이로다.'
뒤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목마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맨몸으로 모든 기관들을 박살내버리는 칸의 경이로운 신체에 경악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내공조차 쓰지 않다니..'
칸은 내공따위는 쓰지 않았다.
그저 강건한 신체로 치명적이기 그지없는 기관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있는 것이다.
어찌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건하기 그지없는 육체에 재해에 가까운 파괴력까지 갖췄다니..'
목마가 느끼기에 칸은 공수가 완벽한 존재였다.
금강불괴에 다다른 신체와
지진을 일으키는 무지막지한 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위대한 천마가 아니라면 대적할 이가 없을 것이다.
목마는 생각하였다.
이런 괴물을 상대할 이는 천마외엔 존재치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칸에 대한 감상에 잠겨있을 때였다.
뚝
이내 칸과 기병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춰세웠다.
묵빛의 거대한 철문을 앞에서 말이다.
칸은 손을 천천히 뻗었다.
스으윽
그다음 찬찬히 철문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만년한철이군."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떼었다.
"하아.....공동파는 돈이 썩어넘치나 보군요. 그 귀하디 귀한 만년한철을 고작 문짝으로 사용하다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목마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강기조차 튕겨내는 경도를 가지고 있는 만년한철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칭해질 정도로 비싸디 비싼 금속이었다.
그런 만년한철로 문짝을 만들어버리다니
헛웃음일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값진 것이 숨겨져있다는 뜻이겠지."
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다음 옹골찬 주먹을 움켜쥐었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가벼이 만년한철로 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이 너머있다는 걸 알고 있다."
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너희들도 알 것이다. 더 이상의 저항따윈 무의미하다는 것을......."
칸은 철문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만 투항하도록 하라. 이대로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다면 고통없는 죽음을 선사해주겠다고 약조해주지."
칸은 문너머에 자리잡고 있을 이들에게 항복을 권하였다.
더이상의 저항따위는 무의미하다면서 말이다.
"..................."
하지만 문 너머에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것처럼 말이다.
"크크크크큭...크크큭....크하하하하하."
그때 칸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유쾌하다는듯이 말이다.
"이제와서 없는 척을 할셈이더냐? 기척조차 숨기지 못한 주제에? 하하하하하하...우습구나...너무 우스워...하하하하하."
칸은 웃고 또 웃었다.
그들의 눈에 훤히 보이는 얕은 수가
갓난 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미 다 들킨 마당에 오리발을 내밀다니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약하다는 건 참으로 가여운 일이로구나. 이런 수모와 비웃음조차 감내해야하니 말이야."
이내 웃음을 멈춘 칸은 연민 어린 눈동자로 철문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뭐 좋다, 너희가 선택한 게 발악이라면, 그 선택을 존중키로 하겠다."
스으윽
칸은 천천히 손을 뻗어 철문 위에 올려놓았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곧이어 그의 주위에 어마어마한 내력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중압감을 선사하는 흉악스러운 내력이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그 흉악스러운 내력들은
철문 위에 올려진 손바닥에 일제히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으지지직
으지지지직
그리고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강기조차 꿰뚫을 수 없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금속
만년한철이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서서히 우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지지지직
우지지지직
그렇게 얼마나 우그러졌을까
콰아아아앙
이내 커다란 폭음과 함께 철문이 터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만년한철로 된 문으로 가로 막혀있던 곳이 그대로 뻥 뚫려버린 것이다.
스으윽
칸은 시선을 올려 정면을 응시하였다.
그러자 푸른 도복을 입은 도사들과 그들 뒤편에서 벌벌 떨고 있는 중원인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더 발악할 셈이더냐?"
칸은 도사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모든 걸 내보이고 지키다 죽는 걸 택하겠다!"
그러자 가장 선두에 있는 젊은 도사, 일섭이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제법 기개가 있구나."
칸은 기특하다는듯 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압도적인 격차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목숨조차 도외시한 채 검을 들어올리는 본새가
꽤나 기특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난 인재를 아끼지."
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젊은 무인이여. 네놈에게 기회를 주겠다."
"기회?"
"그래, 위대한 칸을 섬길 수 있는 명예로운 기회를 말이야."
"허튼소리! 내게 네놈따위를 섬길 일따윈 존재치 않는다!"
일섭은 적대적인 눈빛으로 칸을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크크크큭...참으로 대쪽같은 성정이로구나."
칸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시간 낭비하지말고 창을 들어라! 검을 든 무인으로서! 공동의 자랑스러운 도사로서! 끝까지 항전하다 죽을 것이다!"
일섭은 청명하기 그지없는 눈을 빛내며 소리를 내질렀다.
평생을 공동에 적을 둔 채 살아온 일섭이었다.
공동파 자체가 삶의 전부인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 그에게 공동을 배신하라는 건
지금껏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죽더라도 공동의 제자로서 죽으리라.'
꽈아악
일섭은 검을 치켜세운 채 결연의 의지를 다졌다.
공동의 제자로서 죽겠다는 의지를 말이다.
"흐음...역시 단번에 넘어오진 않는 건가?"
칸은 예상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을 하긴 하였다.
애초에 죽음에 굴할 놈이였다면 영입 제안조차 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몇 번을 제안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네놈을 섬기는 일따위는 결코 없을터이니!"
"그렇다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칸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만약 네놈이 날 섬긴다면 뒤에있는 중원인들을 전부 살려주겠다."
"..........뭐..뭣이?!"
순간 일섭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조건에 당혹스러움이 치솟은 까딹이었다.
"어떤가? 구미가 당기는 가? 젊은 무인이여."
칸은 그런 그를 재밌다는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
그리고 그 물음에 일섭은 어떠한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대답여하에 따라
남은 참배객들의 목숨마저 걸리게 되버렸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쉽사리 답을 할 수 있겠는가
"어서 선택하거라..젊은 무인이여, 사문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명을 택할 것인가?"
칸은 그런 일섭에게 대답을 종용하기 시작하였다.
어서 빨리 선택하라는듯한 어투로 말이다.
"................"
하지만 일섭은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하였다.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문을 택하면 참배객들이 전부 죽는다.
하지만 참배객들을 택하면 사문을 등지게 되어버리고 만다.
무엇 하나 쉽사리 고를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나는 어떻게....어떻게..해야하지..'
그렇게 한창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뒤편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일섭은 고개를 살짝 뒤편으로 돌렸다.
그러자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참배객들의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원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문을 버리고 칸을 섬기기를
그리하여 자신들의 목숨까지 보존할 수 있기를 말이다.
그 눈빛을 마주한 일섭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내적 갈등이 더욱더 심화된 까닭이었다.
'나는....나는 어떻게...나는..'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문을 버리고 참배객들을 구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끝까지 사문과의 의리를 지키며 공동의 제자로서 죽는 게 맞는 건지 말이다.
"시간은 유한하거늘, 고민이 너무 길구나. 젊은 무인이여 "
그때 가라앉은 칸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셋을 세겠다. 만약 네가 그 안에 결정치 못한다면 네놈은 물론 도사들과 참배객들까지 모조리 도륙내버리겠다."
칸은 잔인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하나."
칸의 목소리에 심장이 쉴새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촉박함을 느낀 까닭이었다
.
"둘."
어떤 게 옳은 선택인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문과 무고한 이들의 목숨이라니
어찌 이런 것들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셋."
하지만 그럼에도 선택을 해야한다면
적어도 자신 혼자만 괴로운 선택을 하고 싶었다.
모두가 괴로운 선택이 아닌 선택을 말이다.
".........섬기겠습니다."
이내 일섭은 무거운 입을 떼어내었다.
"칸.....당신을 섬기겠습니다......부디 모두를 살려주십시오."
털썩
일섭은 검을 내려놓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사형제들을 도륙했던 잔인한 황제 앞에 말이다.
"크크크큭...크크큭....크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본 칸은 즐거운듯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대쪽 같던 그가 굴복했다는 사실이 퍽이나 기분 좋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결국 자신이 그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대쪽같은 성품으로 사문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했던 기개 높은 무인을 말이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명한 선택이다. 대의를 위해선 사소한 것을 희생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칸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부들 부들 부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일섭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시작하였다.
사문에 대한 의리를 사소한 것 취급을 하는 칸의 태도에 분노가 치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으드드득
하지만 일섭은 끓어오른 분노를 토해내진 못하였다.
사문마저 등진 채 잡은 기회였다.
이 기회를 허무히 날려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어린 양이 되었구나. 기개 높았던 무인이여."
칸은 그런 일섭은 가엾다는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드높았던 자존심과 기개마저 접어버린 채 설설 길 수밖에 없는 일섭의 처지가 퍽이나 가엾게 느껴진 것이다.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습니다."
"약속은 지키질 것이다. 네놈이 충성만을 증명할 수 있다면 말이야."
칸은 조건을 덧붙였다.
"......충성을...증명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사문을 등졌음을 내게 증명하라. 그렇다면 약속대로 뒤편에 있는 중원인들을 전부 살려주도록 하지."
"........어떻게 증명하면 되는 겁니까?"
"간단하다. 남아있는 공동의 제자들을 네 손으로 죽여라."
칸은 잔혹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일섭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사형제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말같지 않은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