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3화 〉 1014. 그녀와 밀폐된 공간에서.....
"검을 맞대는 것만큼 서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법이죠."
운설은 호승심 가득한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비무로 인성을 파악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맞아요. 검수라면 검을 통해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게 가장 확실하지 않겠어요?"
운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있겠지만....비무로 인성을 파악한다는 건 너무 비약이 아닙니까?"
비무만능주의도 아니고
어찌 검으로 사람의 인성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생각보다 검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들어있기 마련이랍니다. 검을 쥔 방향, 세기에 따라 버릇을 파악할 수 있고 그 버릇을 통해 성격을 유추할 수 있죠."
단순히 검을 쥐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것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버릇만큼 성격을 잘대변하는 것 또한 없었으니
"뿐만 아니라 검을 맞대봄으로서 그 검에 녹아있는 신념과 가치관마저 파악할 수 있어요, 살리기 위한 활검을 추구하는 지 아니면 죽이기 위한 살검을 추구하는 지,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인지 아니면 부동심을 유지하는 차분한 성격인지까지 전부 말이예요."
검수에게 있어
검이란
수련을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평생을 추구해온 가치관과 신념이 녹아들어있는
매개체이자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분신인 것이다.
때문에 검수 끼리는 검을 맞대는 순간 파악할 수 있었다.
검을 쥔 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신념을 품고 있는 지까지
전부 말이다.
검을 통해 인성을 파악한다는 말이
마냥 비약된 것은 아닌 것이다.
"검수에게 있어, 검을 나누는 것만큼 확실한 대화수단도 없는 셈이죠."
".........그런겁니까?"
"네에, 그런거예요."
운설은 당당히 태도로 말을 내뱉었다.
내뱉은 말에 한치의 부끄럼따위는 없다는듯한 모습이었다.
".....검을 섞는다라..."
선우는 뜸을 들이며 슬쩍 운설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에 은은히 흐르는 신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선기仙氣.'
선우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현격히 높은 경지에 다다른 강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선기仙氣는 본디 신선만이 다룰 수 있는 선계의 기운.
그런 선기가 은은하게 흐른다는 건
그녀 또한 선계에 이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였다.
자신보다 명백히 상위에 위치한 강자인 것이다.
'.....붙어보고 싶어.'
선우는 호승심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겨루고 싶었다.
눈앞에 절대적인 강자와
느껴보고 싶었다.
자연검의 위대한 힘을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검이
현경 상경에 다다른 강자에게
얼마나 통할 지 말이다.
".....좋습니다, 선배님과 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선우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운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의 눈빛에는 진한 호승심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탁월한 선택이에요."
운설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이곳에서 검을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 그럼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운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곧장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운설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디 한 번 기대해보마, 장선우,'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머지 않아 두 사람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
철컥 철컥 철컥
쿠구구구구궁
열쇠가 이음새가 맞물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거대한 석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여기입니다."
선우는 석문 내부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호오...안쪽이 겉으로 봤던 것보다 휠씬 더 넓군요."
내부를 살핀 운설은 감탄했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겉으로 보기보다 더욱더 넓다란 내부공간에 감탄을 한 것이다.
"검을 나누려면 이정도 공간은 되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운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공간에 제약을 둘수록
실력은 반감되기 마련이었다.
움직임 또한 비례하여 제약되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이정도 넓이라면 그 제약이 덜할 것이다.
수백의 인원이 들어서도 남을 정도로 넓은 곳이였으니 말이다.
운설은 천천히 고개를 돌릴며 내부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수많은 병장기들과 벽곡단이 담겨져있는 수많은 항아리 등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여기는 연무장이 아니군요."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의 정체가 연무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맞습니다. 이곳은 가주 전용 폐관수련관입니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은밀함과 튼튼함에 있어 이곳을 따라올 장소는 없지요."
"그런 중요한 곳을 저희가 써도 되는건가요?"
가주 전용 폐관 수련관은 오직 가주를 위해 쓰여지는 장소였다.
외인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몇 년이나 방치되다시피했던 곳입니다. 이번 기회에 묵은 때를 벗겨낸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우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주 전용 폐관 수련관은 몇 년이나 방치되다시피했던 곳이었다.
유일한 사용자였던 독왕이 죽음을 맞이한 까닭이었다.
이번 기회에 묵은 때를 벗겨낸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리라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텐데요?"
자신과 선우가 맞붙게된다면 수련관의 반파는 각오해야할 것이다.
힘을 억제하긴 하겠지만
그 여파를 인간의 기술력으로 버텨낼 수 있을 리 만무할테니 말이다.
"무너지면 이참에 새로 하나 짓죠, 뭐."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무너지면 새로 지어주면 된다.
돈이라면 이미 썩어넘칠정도로 많지 않던가?
"비자금을 챙기더니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나봐요?"
그 말을 들은 운설은 재밌다는듯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요랑님께서 말해줬어요. 살혼과 당진설을 잡은 대가로 반절씩 나누기로 했다고 말이예요."
"별 걸 다말했군요."
"꽤 친하거든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만큼 말이에요."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요즘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지긴 했으니까요."
물론 많이 나아진 정도가 아니었다.
수백 만냥에 이르는 당가주의 비자금을 포함하여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잔혈검귀의 목이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 채 특송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많이 나아진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벼락부자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부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대단하네요. 재산을 몰수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막대한 부를 이룩하다니 말이예요."
".......그런 것도 말했습니까?"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네에, 덤으로 재산을 몰수당한 이유도 전해들었답니다. 모용 부인을 꼬신 명목이라죠?"
운설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으득
'요라아앙...'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이를 갈았다.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 요랑에 대한 분노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나중에 확실히 혼내야겠어.'
선우는 다짐하였다.
요 입싼 마누라의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겠다고
물론 침상 위에서 말이다.
"뭐, 어쨌든 돈이 많으니 좋네요, 건물이 무너져도 걱정이 없으니까요."
운설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경지에 오른 이후
심상 수련 위주로
도를 추구하던 그녀였다.
힘이 너무나 강대하여 자칫하다간
폐관 수련관은 물론 곤륜산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 까닭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무너져도 되는 연무장은 꽤나
반가운 손님이었다.
구태여 손대중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음껏 부숴도 됩니다. 선배님."
선우는 안심시켜주려는듯 다시금 강조해주었다.
얼마든지 부숴버려도 된다고 말이다.
씨익
그 말을 들은 운설은 가벼이 웃음을 흘렸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는 수련관 중앙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가벼운 걸음 걸이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뚝
이내 운설은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럼 이제 걸릴 것도 없으니 슬슬 시작하는 게 어떠신가요?"
그리고 이내 몸을 돌려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하였다.
이쪽이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쿠우우우우웅
이내 선우는 수련관 석문을 다시금 밀어넣기 시작하였다.
쿵
이내 문이 완전히 닫히고 밀폐된 공간에는 검을 쥔 두 남녀만이 남게 되었다.
***************
가주전용 폐관 수련관
두 남녀
선우와 운설은 검을 늘어뜨린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검을 본격적으로 맞부딪히기 전
서로에 대한 탐색을 하기 위함이었다.
'......빈틈이 없어.'
긴장 어린 눈빛으로 그녀의 곳곳을 탐색하던 선우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운설의 자세는 정석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였다.
아무리 뜯어봐도 비집고 들어갈 작은 빈틈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게 현경 상경에 다다른 검수라는 건가.'
선우는 감탄을 하였다.
검을 쥔 자세조차 그 높다란 깨달음이 절로 흘러나온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꽈아아악
선우는 검자루를 강하게 말아쥐었다.
그리고 더욱더 집중한 채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기를 말이다.
'.......특이하네..'
한 편 선우를 마주하던 운설은 흥미롭다는듯한 미소를 흘렸다.
특이한 검세를 취하고 있는 선우의 모습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는 검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채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겉멋만 가득한 빈틈투성이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 빈틈을 노리고 멋모르고 달려들었다간
되려 강력한 역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저런 빈틈투성이 검세로
어떤 검식을 펼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결코 얕봐선 안될 남자라고 말이다.
'재밌네.'
운설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검수에 있어
격검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검을 맞부딪히며
서로가 쌓아왔던 공부는 나누는 일만큼
흥분되는 일 또한 없는 것이다.
'어떤 검을 보여줄지 기대되는구나.'
운설은 별빛보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였다.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언제고 공격할 기회가 생기기를 말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응시하였을까
파앗
선우가 먼저 검을 내질렀다.
텅 비어있는 왼쪽 어깨죽지를 노리면서 말이다.
쇄애애애애액
이내 바람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검끝이 어깨죽지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꽤나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운설은 왼발을 뒤편으로 한걸음 내딛었다.
그다음 뒤편으로 보낸 왼발을 축으로 삼아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어깨죽지를 향해 날아가던 검이
그대로 허공을 꿰뚫기 시작하였다.
"빠르긴 한데 검로가 너무 단순하네요."
검을 여유롭게 피한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마치 가벼운 평을 내리듯이 말이다.
'여유를 부리다니!'
그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오른 선우는 그대로 손목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횡으로 검을 베어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목을 베어버릴 기세로 말이다.
타탁
그러자 이번에 운설은 오른 발을 뒤편으로 보낸뒤 그대로 축을 삼아 몸을 가벼이 돌려버렸다.
스으으윽
그러자 날아들던 선우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목을 스쳐지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도 빗맞춰버린 것이다.
'젠장할.'
부우웅 부우웅
부우웅 부우웅
그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오른 선우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유효타를 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선우는 그 어떠한 유효타도 내지 못하였다.
아니 검조차 맞대지 못하였다.
기초적인 보법만으로 선우의 모든 공격을 그대로 피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예측이 쉬우니 피하기가 너무 쉽네요. 좀더 변칙적인 공격을 해보는 게 어떠신가요?"
휘이익
"변칙적으로 공격하라고 했지. 속도를 줄이라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휘이익
운설은 평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검을 여유롭게 피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약이 오른 선우는 더욱더 맹렬히 검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한 방을 먹이고 말겠다는 일념하에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검을 휘둘렀을까
'빈틈!'
이내 운설의 옆구리가 훤하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바람 구멍을 내버리고 말겠다는 의지를 담은 채 말이다.
탕
하지만 선우는 그 뜻을 관철할 수 없었다.
운설이 검면을 후려쳐 검을 그대로 튕겨버린 까닭이었다.
"후배님께선 여인을 다룰 때와는 달리 무척 순진하시네요."
그때 귓가의 장난기 가득한 운설의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퍼어억
"크으으윽."
그리고 곧이어 가슴에 격통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운설이 텅 빈 가슴을 그대로 가격해버린 까닭이었다.
주르르르륵
선우의 신형이 뒤편으로 사정없이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운설의 발에 담겨있던 경력을 버텨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콰아아앙
이내 그의 몸이 벽면 한쪽에 그대로 처박혀버렸다.
그리고 운설은 그런 선우를 태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당연한 결과인 마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