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1화 〉 1012. 운설과 마주하다.
"하아..."
곤륜에서 온 반선半仙, 운설은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깊은 고민이 담겨있는듯한 한숨이었다.
"운설아, 무슨 일 있어?"
그 한숨을 들은 요랑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언뜻 들었음에도 고민이 가득 들어있는 한숨이었다.
걱정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요즘 통 잠을 자지를 못해서요..."
운설은 충혈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왜 잠을 못잤어?"
"시끄러워서요."
"시끄러워? 당가의 전각들은 워낙 방음공사가 잘되어있어서 소리가 새어나가거나 들어올 일이 거의 없을텐데?"
"이건 제가 살짝 특수해서 그래요, 경지에 이른 이후 만물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게 되었거든요."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물의 소리?"
요랑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만물의 소리라니
그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만물에는 각자 저마다 다른 호흡을 내뿜어요, 나무에는 나무만의 호흡을, 강철은 강철만의 호흡을, 바람은 바람만의 호흡을 말이예요......그 모든 호흡들이 제 귀에는 무척이나 선명히 울려퍼진답니다."
"우아아아.......되게 불편할 것 같아.."
요랑은 질린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재경각 옆에 위치한 특무각에서 나는 소음조차 견디지 못하고 특무각주의 멱살을 붙잡은 채 뒤흔들었던 요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만물의 소리는 무척이나 귀찮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듣기 원치 않는 소음만큼 귀찮은 존재도 없을테니 말이다.
"불편하죠........그러니 이렇게 잠을 못자는게 아니겠어요?"
"기막을 펼쳐서 안들을 수는 없는 거야?"
요랑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물었다.
"소용없는 일이예요.....만물의 소리는 기막으로는 차음할 수 없는 개념이니까요."
운설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만물의 소리는 기막으로 차음할 수 없었다.
기막을 펼친다해도 소리가 그대로 들려져오는 것이다.
"...운설은 힘든 삶을 사는 구나."
"뭐, 익숙해지면 엄청 힘들고 그렇진 않아요."
"지금은 완전 힘들어보이는데요? 눈밑에 그림자진거 봐봐. 완전 귀신 같아."
요랑은 운설의 눈밑에 있는 검은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가요...이러다 신선이 되기 전에...귀신이 먼저될지도 모르겠네요오오.."
운설은 축 처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귀신이 되면 내가 향불을 붙여줄게."
"보통 이럴 때는 위로를 해주지 않나요?"
"힘내."
"늦었거든요?"
운설은 어이없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이게 무슨 위로란 말인가
"운설은 까탈스러워, 그러니까 잠을 못자는 거야."
"까탈스럽다뇨, 저 처럼 둔감한 여자가 어디있다고."
운설은 발끈하며 말을 내뱉었다.
저 까탈스럽다는 말은 도저히 넘겨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둔감한 사람이 소리 좀 울린다고 잠을 못자?"
"그동안은 잘만 잤어요, 당가에 오고난 이후부터 제대로 못 잔 거지."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가에 오고부터?"
"정확히 말하면 장선우가.....당가에 머무른 순간부터예요."
"선우가 머무른 순간부터?"
요랑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운설에게 되물었다.
그녀가 잠을 못잔 것과 선우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낮이고 밤이고 사방팔방에서....낯뜨거운 소리가 들려오니까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잖아요."
운설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말을 내뱉었다.
"낯뜨거운 소리?"
"교접이요! 교접!"
운설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감정이 쌓여도 단단히 쌓인듯한 모습이었다.
"뭐야아아...그거 다듣고 있었어?......운설이는 변태...관음증 환자."
요랑은 운설을 조롱하기 시작하였다.
"말했잖아요.....가만히 있으면 들려온다구요....바람을 타고 당신네들 뜨거운 숨결과 신음성이 그대로 들려온다구요!"
"하지만....당가에서 우리만..그렇게..관계를 맺는 건..아닐거 아니야?"
"그쵸, 하지만 낮밤 가리지 않고 하루종일 관계를 맺는 인간은 장선우와 당신네들 밖에 없어요."
운설은 골치아프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가에서 뜨거운 관계를 맺는건 선우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방계나 무인들이 밤마다 서로를 탐하며 열락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장선우의 교접은 그런 그들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었다.
그건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세 시진은 기본으로 한다는 것과 세 시진을 꽉 채운 후에는 다른 여인과 또다시 세 시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잠조차 자지 않은 채로 말이다.
매일매일 열락의 향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맘편히 잠을 청할 수 있다는 말인가
"헤헤헤헤....우리 선우가 절륜하긴 해."
요랑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면서 말이다.
"칭찬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운설은 다시금 발끈하였다.
그놈의 절륜때문에
머리통이 터질 것 같건만
어찌 쑥쓰럽다는듯이 멋쩍은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어쨌든 이대로는 못참아요. 조만간 결판을 봐야겠어요."
이내 운설은 결심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결판?"
요랑은 의아한듯 물음을 던졌다.
결판을 내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장선우와 담판을 짓겠다는 말이예요!"
운설은 눈동자에는 굳은 의지가 발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을 먹어도 단단히 먹은 것이다.
"정말? 선우랑!?"
요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담판을 짓겠다는 말이 정녕 사실이라는듯이 말이다.
"정말이고 말구요"
그녀는 결심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와아, 그럼 재밌겠다!"
요랑은 해맑게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운설의 결심이 꽤나 흥미진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운설은 강하였다.
지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녀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괴물 영감의 제자.
선우가 맞붙겠된다면
꽤나 흥미로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누가 이길 수 있을 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
더욱더 흥미진진한 것이다.
"운설아, 이왕 싸우는 거 판을 벌리는 게 어때? 커다랗게 비무대를 세우고 입장표를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고 돈을 걸게하는 거야! 누가 이길지 예측해서 돈을 건만큼 배당을 받는 거지! 물론 수익 중 일부분은 떼어줄게, 주최자인 내가 반절먹고 나머지 반절은 너랑 선우가 나누는거야? 어때? 괜찮지? 좋을 것 같지?"
요랑은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운설과 선우의 뜨거운 비무를 생각하니 사업이 절로 구상이 된 까닭이었다.
본디 초월적인 강자들의 비무만큼 중원인들을 열광시키는 것도 없었고
짜릿한 도박만큼 미치게 만드는 것 또한 없었다.
자극적인 것에 자극적인 더한 사업이라니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업 명칭은 땅 위에서 펼쳐지는 합법적인 비무도박, 비무토도比武土賭로 하는 게 어때? 가벼이 줄여서 토도土賭라고 해도 되고!"
"당가에서 사행성이 짙은 도박 사업을 운영하겠다는 건가요?"
운설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사천제일세이자
정파 최고의 명문세가로 불리우는 곳이 바로 당가였다.
그런 당가에서 사행성 짙은 도박 사업을 운영하겠다니
어찌 어이가 없을 수 있겠는가
"사행성이란 게 나쁜 게 아니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무료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소액으로 새로운 자극을 선사해주는 거든, 오히려 좋을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들은 소액으로 일확천금이라는 딴꿈에 젖어 잠시나마 즐거움을 느끼고 우리는 그 꿈을 팔아 돈을 벌고, 얼마나 좋아? 이게 바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게 아니겠어?"
요랑은 돈독에 오른 눈빛을 반짝거리며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하게요?"
"괜찮아, 액수에 제한을 걸어두면 돼, 인당 은자 열냥정도면 적당할 거야, 그정도 액수면 패가 망신할 정도의 금액은 아닐테니까."
은자 열냥이면
웬만한 일용직 노동자의 한달 치 월봉이었다.
보는 시점에 따라선 큰 금액처럼 보이긴 하나
패가망신할 정도의 거액은 아닌 것이다.
"확실히 도박 액수에 제한을 걸면....패가 망신을 하진 않겠네요."
운설은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치? 괜찮지? 구미가 당기지?.....너랑 선우는 그냥 대판 싸워주기만하면돼! 그럼 돈이 넝쿨째 들어오는 거야!"
그녀의 수긍이 기쁜 것일까
요랑은 흥분에 차오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구미가 당기긴 한데, 아쉽게도 요랑님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뭐라구!? 어째서!?"
요랑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전 장선우와 비무할 생각이 없거든요."
".........안싸워?"
"왜 싸워요?"
"담판 짓겠다면서?"
"여기 온 목적을 이루겠다는 거예요. 애초에 전 전령 겸 지도자로서 당가에 임시적으로 머무르고 있는거지. 당가의 일원이 된 게 아니니까요."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
요랑은 생각났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면 운설의 목적은
선우에게 음양마의 전언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다른 목적따윈 없는 것이다.
"............선우가 당가에 머무른 지 한달이 다가되가는데 아직도 전달못했어?"
"부군께서 워낙 절륜하신터라, 만남을 가질라치면 항상 금슬을 확인하러 사라지시더군요. "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도 전언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을 갖은 노력을 했었다.
일부러 비는 시간을 찾아
그와 대면을 위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부 소용없는 짓이었다.
절륜하기 그지없는 장선우에게
비는 시간따윈 전혀 존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빌 때마다 수많은 부인들과 금슬을 확인하기 바빴건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요랑은 억울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오해가 있다면 처음부터 바로 잡아줘야하는 것이 아니던가
어찌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든단 말인가
"나 혼자 착각하고! 나 혼자 오해하고! 나 혼자 진심이였잖아!"
뭔가 억울하였다.
손짓발짓까지 섞어가며 열심히 열변을 토해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게 너무 열정적으로 설명하셔서.....마땅히 끊어낼 수가.."
운설은 민망한듯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말을 끊어내기엔 요랑은 너무나 열정적이었다.
또랑또랑한 눈빛을 마주하니
도저히 찬물을 끼얹을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이다.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운설은 바보야!"
요랑은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언성을 높였다.
"요랑님이 혼자 오해하신 거 잖아요?"
"운설이 맞장구를 잘쳐줘서 그런 거 잖아!"
"그럼 그렇게 열심히 말하는 데 무시할까요?"
"적절히 끊었어야지!"
"그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어떻게 끊어요!?"
"몰라 몰라 몰라! 운설이 다 잘못했어! 운설 바보!"
"요랑님이 더 바보예요, 혼자 착각이나 하고!"
"아니거든!"
"맞거든요!?"
이내 두 여인은 서로 말꼬리를 붙잡은 채 유치한 말싸움이 끊임없이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위대한 존재들의 대화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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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문짜리...흐으윽...하아앙....열..문..짜리...하아아아앙...
야릇하기 그지없는 울림에 귓가를 간질이기 시작하였다.
"흐흐흐흐흐흐"
지청술을 이용하여 그 야릇한 음성을 도청한 선우는 음흉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뿌려두었던 씨앗 중 하나가 제대로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모용란.......설마 이렇게까지 개변태였을 줄이야.'
모용란에게 직접 열락의 씨앗을 심어준 지
한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한달 동안 모용란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위를 하고 또 자위를 하였다.
열락의 씨앗이 발아하여
그녀의 몸을 음탕하고 천박하게 만든 까닭이었다.
'이제 수확을 할 때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드디어 수확의 때가 다가온 것이라고
이미 열락의 노예가 된 그녀는
이제 자신의 방문만으로 물을 질질 싸는 탕녀가 되어있을 것이다.
손도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어찌 수확철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진설에 이어 모용란까지 함락시키다니.....이러다 이재원 마누라 컬렉션을 다모으는 게 아닐까 싶네....흐흐흐흐.'
선우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모용란의 처소를 향해서 말이다.
선우의 발걸음을 한없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뚝
이내 선우의 걸음이 귀신같이 멈춰서게 되었다.
아직 처소에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선우는 인기척이 느껴진 방향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청아한 인상을 가진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이 야밤에 이곳에 어인 일이신지.."
그 여인을 본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조우에 당혹스러움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당신을 만나러왔어요."
그리고 그의 물음에 청아한 인상의 여인, 운설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를...말이십니까?"
선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딱히 친분이 깊은 것도
그렇다고 대화를 많이 섞어본 적도 없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당신을 찾아왔다고 하니
떨떠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에. 장선우, 당신을요."
운설은 심유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오늘은 밤이 늦었으니...다음에..."
선우는 그녀를 되돌려보내려고 하였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용란을 수확하는 일보다 급한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알맞게 무르익었을 때
열매를 따는 것만큼 급한 일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이호선."
그때 운설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선우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레 이름이 언급된 까닭이었다.
"전언을 가지고 왔어요."
운설은 심유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스승인 음양마 어르신의 전언을 말이에요."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의 표정이 한없이 진중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