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9화 〉 1010. 씨앗을 심다.
저벅 저벅 저벅
금옥 저편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척
그 소리에 금옥의 수문위사, 당건은 곧바로 창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긴장 어린 시선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는 시원스러운 인상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당건은 곧바로 창을 내려버렸다.
경계하고 말 것도 없는 완벽한 아군의 등장이라는 걸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이내 시원스러운 인상의 남자, 선우는 당건의 코앞까지 다가오게 되었다.
"충!"
그러자 당건은 그를 향해 큰소리로 경례를 하였다.
당가의 실질적인 실세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이다.
"경례할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당건의 경례를 본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외적으론 당가와 관련없는 직함을 가진 자신이었다.
이렇게까지 떠받들 이유가 하등없는 것이다.
"아닙니다! 어찌 선우님께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당건은 언성을 높이며 말을 내뱉었다.
비록 대외적으로 관계없다고는 하나
그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당가 최고의 실세였다.
그런 그에게 어찌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긁적 긁적
선우는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말이 통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지나가도 될까?"
이내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물론입니다! 선우님이 지나가시겠다는데 어찌 막아설 수 있겠습니까!"
당건은 큰소리로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눈앞에 남자는 당가의 실세 중에 실세이자 천하제일인으로서 그 위명을 떨치고 있는 무림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런 남자의 앞길을 어찌 막아설 수 있단느 말인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래, 고맙다. 수고하고."
탁 탁 탁
선우는 손을 뻗어 군기가 잔뜩 든 모습 당건의 어깨를 부드러이 토닥여주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가기 시작하였다.
"격려, 감사드립니다!"
당건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황송한듯 바라보며 감사를 표하였다.
선우의 격려에 진한 감동을 받은 까닭이었다.
끼이이이이익
이내 문이 열리고 바깥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바깥은 이미 어둠이 자욱히 깔려있었다.
분명 이른 아침에 들어갔건만
조련을 이어가다보니
어느새 밤이 된듯하였다.
"이제 끝났나보네?"
그때 선우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응?"
선우는 그대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고양이처럼 요요한 눈빛을 가진 고지식한 인상의 절세미인을 말이다.
"서윤?!"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떼었다.
"고생했어, 선우."
고지식한 인상의 절세미인,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가...어떻게..여기에?"
"내가 못 올 데라도 왔어?"
당서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설마...여태 날 기다린 거야?!"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이렇게 오래걸릴 줄 알았다면 기다리지 않았을 거야."
당서윤은 새침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미안해, 설마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
선우는 손을 뻗어 당서윤의 뺨을 쓰다듬었다.
미안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이다.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다.
당진설의 조련에 온신경을 쏟느라 그녀의 기감을 놓쳐버린 것이다.
"신경쓰지마, 내가 멋대로 기다린 것 뿐이니까."
당서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오랜 기다림에 서운할 법도 하건만
그녀는 서운한 기색따윈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배려 해주고 있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알 수 있었다.
당서윤이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이 괜한 신경을 쓰지 않도록 말이다.
'바보야....그러니까 더 미안하잖아.'
선우는 민망함을 느꼈다.
배려가 느껴지니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배가 된 까닭이었다.
".......미안해."
이내 선우는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신경쓰지말라고는 하지만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이른 아침에 들어가 늦은 밤에 나오게 되었다.
최소로 잡아도 네 시진 이상은 기다리게 만든 건데
어찌 미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과하지마, 내가 좋아서 기다린 거니까."
"거짓말, 기다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선우는 말도 안된다는듯한 어조로 반문하였다.
본디 기다림이란
지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기피하고 싶은 일인 것이다.
그런 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따위가 존재할 리 만무하였다.
"기다리는 게 좋다고 한 적 없는데?"
당서윤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되려 반문하였다.
"......어?"
순간 선우는 벙진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기다리는 게 좋은 게 아니면 대체 무엇이 좋아 기다렸다는 말인가
".....네가 좋아서 기다린 거라고....이 바보야."
당진설은 갈피를 못잡는 선우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자를 꼬시는 건 그리도 잘하면서
이런 건 왜 이리 둔감하단 말인가
"아......."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깨달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
그 모습을 본 당서윤은 고개를 휙 돌렸다.
언뜻 보면 답답함에 고개를 돌린 것 같았지만
그녀의 귓가는 잘익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부끄러운가 보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당서윤의 애정표현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서윤......다시..말해줄래? 왜 기다렸다고?"
그리고 되물었다.
"두 번은 말 안해."
당서윤은 새침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한 번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두 번 입에 꺼내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러지 말고, 말해줘어어."
선우는 되도 않는 앙탈을 부리며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싫어."
당서윤은 단호하였다.
되는 않는 앙탈에 넘어갈 정도로 쉬운 여자가 아닌 것이다.
"쩌업."
선우는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다셨다.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인지한 까닭이었다.
'다시 듣고 싶은데.....아쉽네.'
고지식한 당서윤의 애정 표현이라니
침대 위가 아니라면 좀처럼 듣기 힘들 정도로 희소한 일이었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보다 어때? 언니는 갱생이 됐어?"
이내 당서윤은 화제를 돌려버렸다.
냅뒀다간 선우 성격상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직은 갱생되지 않았어."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당진설은 아직 갱생이 되지 않았다.
조교가 완료된 게 아닌 까닭이었다.
"......역시 천성은 변하지 않나보네."
당서윤은 예상했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본디 천성이란 날 때부터 타고난 성정이었다.
쉽사리 바뀔 리 만무한 것이다.
"...가망이 없다면 죽여도 좋아...선우.....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혈육이란 이유로 끝까지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당서윤은 굳은 결심을 한 채 입을 떼었다.
변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죽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편이 모두에게 좋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도 선우에게도
그리고 당가의 입장에서도 말이다.
"안 죽여"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 혈육이라고 배려해줄 필요 없어, 그런 언니는 없는 편이....훨씬 나아."
"아니, 죽일 필요 없어서 안죽인다는 거야."
"........갱생이 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어?"
당서윤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맞아, 아직은 갱생이 되지 않았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직은' 말이야."
"......갱생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말이야?"
'아직은'이라는 말은
다시 말하며 훗날에는
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갱생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씨앗을 심어두었어. 이제 발아하기만 기다리면 될거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씨앗?"
당서윤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독기와 악기로 똘똘 뭉쳐진 악녀마저 순종과 복종으로 똘똘 뭉쳐진 선녀로 변모시켜주는 갱생의 씨앗 말이야....흐흐흐흐흐흐."
당서윤의 물음에 선우는 음흉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흘리며 답하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사악함이 느껴지는 웃음이였다.
"..........그렇게 웃지마...너 완전 악당같아."
당서윤은 질렸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흐흐흐......나도 고치고 싶은데...착해질 당진설을 생각하니까.. 악당같은 웃음이 절로 새어나오네."
".......휴우."
절레 절레
당서윤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저 사악한 웃음소리를 아무래도 천성인듯 싶었다.
고치고 싶어도 안고쳐지는 걸보니 말이다.
".........그럼 적어도 다른 사람 앞에선 하지마."
당서윤은 조건을 달았다.
고치는 게 어렵다면 자제를 시키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만큼은 말이다.
"..노력해볼게."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였다.
확실히 당서윤이나 이해심 많은 부인들이 아닌 다른 이들이 본다면 음흉한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를 웃음 소리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건 그렇고 갱생 씨앗의 발아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그리고 이내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몰라."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씨앗을 심어두었지만 언제 발아할 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발아 시기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당서윤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당진설은 자기애가 넘치는 인간이거든."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기애가 넘치는 인간만큼 부숴지기 쉬운 인간도 없는 법이지."
이내 선우는 진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 진한 미소에는 사악함이 가득히 서려있었다.
악당과 같은 사악함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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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독방
그곳에 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귀부인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저벅 저벅 저벅
두터운 철문 너머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번쩍
순간 감겨졌던 귀부인의 눈빛에 번쩍 뜨여졌다.
그리고 뜨거운 눈빛으로 철문을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커져가는 발소리에 집중한 채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집중을 하였을까
드르르륵
이내 철문 아래 달려있는 조그만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스르르륵
그러더니 음식이 담겨있는 배식판 하나가 미끄러지듯 안쪽으로 밀려들어왔다.
드르르륵
그리고 배식판이 밀려들어오자 조그만 문을 곧바로 닫히기 시작하였다.
마치 제 할 일을 다했다는듯이 말이다.
"아.."
그 모습을 본 귀부인, 당진설은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스스로 원하던 손님이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추우욱
이내 그녀는 몸을 추욱 늘어뜨리기 시작하였다.
크나큰 실망으로 인해 전신의 힘이 그대로 빠져버린 까닭이었다.
'......어째서..방문하지 않는 거지?'
당진설은 의문을 품었다.
장선우가 패배 선언을 한 지
정확히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선우는 단 한 번도 금옥을 방문치 않았다.
그저 죄수만이 왔다갔다하며
필요한 생필품을 전달해줄 뿐인 것이다.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요주 인물로 낙인 찍힌 자신을 이리도 방치하다니 말이다.
'나 따위는 이제 관심 밖이라는 건가....'
갑자기 슬픔이 차올랐다.
그에게 관심 밖으로 밀렸났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마치 버림받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차라리...잘되었어..과한 관심은 오히려 이쪽에서 사양이야!'
애써 자위를 하긴 하였지만
마음 한구석의 텅빈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었다.
우울함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선우가 자신을 잊었다는 가정만으로 말이다.
'내가 왜 이러지..어째서...그런..불구대천의 원수를....그리워하는 거지?..어째서..우울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선우는 자신에게 있어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니던가
그런 원수가 방문을 끊었다면 기뻐할 일이거늘
어찌 이리도 우울감이 치솟는단 말인가.
객관적으로 보면 행복하진 않아도
충분히 만족하며 지낼만한 상황에 놓여진 그녀였다.
최악의 감옥인 금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선우의 배려로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루에 한 번씩 지급되는 깨끗한 죄수복.
특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고급진 배식.
씻을 수 있을정도로 제공되는 풍족한 식수.
숙면을 위해 만들어진 간이 침상.
심심함을 달래줄 다양한 서책들까지
도저히 죄수라고 지칭할 수 없는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아..'
죄수로서 최상의 대우를 받고 있지만
그녀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장선우의 발길이 끊겨버리니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미쳤나봐...내가..그런 쓰레기를!'
당진설은 고개를 붕붕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인 이현경도 아니고
그딴 쓰레기를 그리워하다니 말이다.
'......생각이 많아져서..그런 걸꺼야...일단 자자....한숨 자면..괜찮아질거야..'
털썩
그녀는 한쪽 구석에 따로 마련된 간이 침상 위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잠을 청하려는듯이 말이다.
-하아...하아...좋은데?..
-하아...아아..좋은 시도였어...꽤 하잖아?
-네 승리다...당진설..
하지만 그녀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각인된 선우의 야릇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돈 까닭이었다.
".........하아...하아...하아...하아.."
그리고 머릿속에 맴도는 야릇한 소리는
당진설의 몸을 서서히 뜨겁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되뇌여지는 선우의 야릇한 목소리가
처절할 정도로 치열햇던 열락의 향연을 그대로 상기시킨 까닭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이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당진설은 양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각각 커다란 젖통과 아랫도리를 매만지기 시작하였다.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절로 치솟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흐으읏...하으윽...안되는데...이런..생각하면..안되는데에에에!!.....하아아아앙"
곧이어 당진설의 입에서 신음성을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배덕감과 쾌감이 섞여있는 격렬한 신음성을 말이다.
쩔걱 쩌걱 쩌걱 쩌걱 찌걱 찌걱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내 독방 안에는 야릇한 물소리와 함께 당진설의 격렬한 신음성이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