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1화 〉 992. 입관하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커다란 짐마차가 숲길을 가로지르며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거친 움직임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마부로 보이는 남자가 말들을 멈춰세웠다.
"나오거라."
그리고 뒷편으로 고개를 돌려 마차 안을 바라본 채 입을 떼었다.
"벌써 도착한 건가요?"
그러자 안쪽에선 나른하면서 고혹적인 여인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아니, 교대다."
마부로 보이는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교대요? 무슨 교대요?"
"이제부터 네가 마차를 몰라는 말이다!"
"제가요? 왜요?"
여인은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그럼 나보고 계속 마차를 몰라는 말이더냐?"
남자, 살혼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당진설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당연한 태도로 자신을 부리는
당진설의 태도에 황당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전 말을 다룰 수 없답니다. 배운 적이 없거든요."
당진설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짐마차를 끌고와야한다고 주장한 건 네년이다."
살혼은 그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짐마차를 끌고와야한다며
바락바락 우긴 그녀였다.
그런 주제에 자신에게 마부짓거리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찌 부아가 치밀어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자금을 한 번에 옮기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비자금은 금원보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금원보를 비롯한 수많은 은자들까지 가득한 것이다.
그 양을 감당하려면
적어도 짐마차 정도의 크기는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른다면 모른다고 말을 하던가! 그럼 부하 하나를 끌고왔을 것 아니더냐!"
"전 아는 줄 알았죠. 척봐도 티가 나지 않나요? 고귀한 저와 마술이 어울릴리 없잖아요?"
"모든 아는 것처럼 뻐기더니 정작 마술馬術처럼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것이더냐?"
살혼은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모든 걸 다 내려다보는듯이 오만하게 행동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기초적인 마술馬術조차 모른다니
비웃음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알 필요가 없으니까요."
살혼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당진설은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뭐라?"
"본디 마술馬術은 운송을 생업으로 삼은 천한 자들이나 익히는 기술인 법. 고귀한 제게 그런 천한 기술따윈 어울리지 않아요. "
당진설은 당당한 태도로 말을 내뱉었다.
"참으로 오만하구나. 계집."
"오만이 아니라 당연한 말을 한 것 뿐이예요."
당진설은 올곧은 시선으로 살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되었다, 네년에게 정상적인 사고를 바란 내가 정신 나간 놈이지."
이내 살혼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미친년에게 정상적인 사고를 바랬던
자신이 정신 나간 놈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길 안내나 제대로 하거라. 많은 건 바라지도 않겠다."
살혼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그건 걱정마세요. 비록 마술馬術처럼 천한 기술을 소유하고 있진 않지만 길을 보는 눈썰미정도는 가지고 있으니까요."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얄미운 년......'
살혼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라도 못하면 얄밉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말을 잘해도 너무 잘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나빠질 정도로 말이다.
'비자금만 챙기고 어서 헤어지자.'
살혼은 말을 다시금 거칠게 몰기 시작하였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그녀와 헤어지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마술馬術이 너무 거칠군요. 암살자라 그런지 세심함이 부족한듯 싶네요."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이내 마차는 다시금 숲길을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전보다 훨씬 더 거칠게 말이다
.
.
.
.
.
.
.
그렇게 얼마나 내달렸을까
이내 살혼의 시야에 거대한 성벽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저곳이다.'
그리고 살혼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저 거대한 성벽 너머에
자신들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고독관의 내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멈추세요."
그때 뒤편에서 당진설은 차분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우뚝
살혼은 곧바로 말들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짐마차는 그대로 성벽 코앞에서 멈춰서게 되었다.
끼이익
그리고 마차가 멈춰선 순간
마차의 뒷문이 열리며
당진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타탁
당진설은 그대로 마차에서 걸음을 떼어
땅바닥에 발을 내딛었다.
그다음 천천히 시선을 올려 성벽을 응시하였다.
씨익
"옳게 왔네요."
그리고 이내 흡족스럽다는듯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이곳이 맞는 것이더냐?"
살혼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네에, 맞아요, 저 성벽 너머가 바로 고독관이예요."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더럽게 튼튼해보이는 성벽이로군."
살혼은 성벽을 바라보며 짤막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견고하기 그지없는 벽돌이 가득 들어차 있는 성벽이었다.
웬만한 힘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으리라
"온갖 부정한 독기들을 가두고 있는 성벽이에요. 충분한 내구성을 갖춰야하지 않겠어요?"
당진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도 그렇군."
살혼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였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입구는 어디있지?"
이내 살혼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저곳이요."
당진설은 손가락으로 성벽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장난할 기분이 아니다, 계집"
살혼은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장난질이나 치는 걸 보니 짜증이 절로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저희가 서로 장난을 걸 정도로 친한 사이던가요?"
당진설은 그런 살혼을 바라보며 되려 물었다.
".............."
그리고 살혼은 답하지 못하였다.
그런 친분따위를 쌓고 있을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었다.
"전 장난따윈 치지 않아요, 그딴 건 저열한 머저리들이나 하는 저급한 유희니까요."
당진설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살혼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장난이 아니라면 납득할 수 있는 설명하라, 어찌 성벽 정중앙을 입구라고 지칭한 것인가?"
살혼은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비자금의 의미를 아시나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비밀 자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더냐?"
"맞아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해요, 비자금의 존재는 물론 비자금의 행방까지 전부 말이에요."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그럼 오라버니께선 비자금을 어떻게 숨기셨을까요?"
"그거야 인적이 드문 고독관에다...."
"그럼 고독관에는 어떻게 들어갔을까요?"
"그거야 정문을 통해서.."
"고독관의 정문은 당가의 무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요. 정문을 통해 고독관에 주기적으로 입관한다면 비자금의 존재가 노출될 위험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정문이 아닌 다른 출입구가 존재한다는 말이군."
살혼은 깨달았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당진설은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굳건히 솟아있는 성벽을 향해서 말디다.
그리고 성벽을 이루고 있는 벽돌을 위에
손을 올리고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꾸우우욱
그러자 벽돌이 그대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수월하게 말이다.
꾸우우욱
꾸우우욱
그렇게 몇 개의 벽돌을 밀어냈을까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웅
이내 성벽에서 거대한 굉음과 함께 진동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그대로 성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완전히 개방되기 시작하였다.
마치 거대한 성문이 개문開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찌...성벽이."
그 광경을 본 살혼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거대하고 견고한 성벽이 저절로 갈라지다니
경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장난 따윈 치진 않는다구요."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불신으로 가득했던 그가 경악하는 모습을 보니
꽤나 통쾌한 감정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 이제 고독관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죠.....운행 부탁드려요."
휘익
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마차에 그대로 올라타버렸다.
살혼은 어안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 또한 다시금 마부석에 올라탄 뒤
마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갈라진 성벽 안쪽을 향해서 말이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이내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짐마차는
고독관 안쪽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
뚝
"왜 갑자기 멈추신거죠?"
당진설은 짜증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잘가다 갑자기 마차를 멈춰세운 살혼의 행태에 짜증이 난 상황이었다.
"독기 때문에 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내력으로 몰아내주지 않으면 쓰러질 것이다."
살혼은 말들을 부드러이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고독관 내부의 독기는 상상이상으로 심각하였다.
혈통 좋고 튼튼한 말들이 맥을 추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잠깐씩 멈춰서 독소를 제거해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북해산 한혈마를 데려와야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당진설은 짜증 어린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말하였다.
고독관의 독기를 견뎌내기 위해선
북해산 한혈마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살혼은 그런 자신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였고
지금 이렇게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어찌 짜증이 나지않을 수 있겠는가
"북해산 한혈마를 갑자기 어디서 구한다는 말이더냐!"
"마방에 가면 널린 게 한혈마인데, 그것 하나 못 구하시나요?"
"돈은 네가 낼 것이더냐?"
"결국 돈이 아까워서 굴러다니는 말을 데려왔다는 말이군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못 버텨잖아요!"
두 사람은 옥신각신하며 고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일이 지체되는 상황자체에
두 사람 모두 극도의 짜증이 치민 까닭이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년!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혼마저 죽이는 중원 최악이자 최고의 살수, 살혼이란 말이다! 그런 나를 이딴 취급을 해? 목숨이 여러벌이더냐?"
살혼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언성을 높였다.
"알다마다요, 잘알죠, 그런데 중원 최고의 살수라면 좀더 결행에 완벽을 기해야하는 게 아닌가요? 몸 상태만 최상이면 뭐하나요? 이렇게 세세한 부분을 전부 놓쳐버렸는데."
당진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그대로 반박하였다.
두려움 따위는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고성이 점점 더 커질 때쯤이었다.
쿠우웅
우우우웅
갑자기 커다란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전해져오기 시작하였다.
뚝
순간 말싸움을 하던 두 사람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돌렸다.
굉음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서 말이다.
쿠우우웅
그때 다시금 굉음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먼젓번보다 더욱더 큰 소리와 큰 진동이었다.
스르릉
스르릉
그리고 두 사람은 곧바로 검을 빼어들었다.
소리와 진동이 가까워졌음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그때 연속된 굉음과 커다란 진동이 쉴새없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점점 그 크기를 더해가면서 말이다.
꽈악
꽈악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 더욱더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무엇이 다가오든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응시를 하였을까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이내 대지를 쉴새없이 뒤흔들었던 장본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삼십 척에 다다르는 거대한 높이
살기가 머금어져있는 노란 빛깔의 눈동자.
온몸을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는 묵빛의 비늘
용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아가리
숨 쉴때마다 내뿜어져나오는 거대한 독기
삼심 척에 다다르는 거대한 몸통을 지탱하는 네 개의 두터운 다리.
모습을 드러낸 굉음성의 주인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용龍과 같았다.
네 개의 커다란 다리가 달려있는 흉악스러운 악룡惡龍말이다.
"............,."
"............."
살혼과 당진설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용龍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하기 그지없는 용이라니
성벽보다 더욱더 거대한 용이라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렇게 두 사람이 현실감을 되찾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쩌어어어억
갑자기 거대한 용이 커다란 아가리를 쩌억 하고 벌리기 시작하였다.
휘이이익
그리고는 그대로 머리를 휘둘러 아래를 쓸어버렸다.
"히이이잉!"
"히이이이이잉!"
그러자 짐마차를 이끌던 말들이 그 용의 아가리에 그대로 안착하게 되었다.
아래를 쓰는 순간 그대로 낚아채버린 것이다.
우적 우적 우적 우적
와작 와작 와작 와작
용은 그대로 말들을 씹어먹기 시작하였다.
-끼에에엑...끼이엑...끼에에엑..
무척이나 기분좋은 울음을 토해내면서 말이다.
"아..."
"저..저런.."
그리고 그 모습을 마주한 순간
두 악인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내 두 사람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관했을 때와는
무척이나 상반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