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0화 〉 991. 음모陰謀
"화봉요원은 고독관 내부에 위치해 있는 독초들의 화원이에요."
당진설은 차분히 가라앉은 시선으로 살혼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고독관? 그게 뭐지?"
살혼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고독관이라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살혼께서는 고독蠱毒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당진설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고독蠱毒이라면 맹독을 지닌 독물들을 상쟁시켜 얻는 극독이 아니더냐?"
고독은 혈해에서도 곧잘 쓰이는 독이었다.
상쟁시킨 독물들의 질이나 갯수에 따라 독이 위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독은 해독제가 없었다.
무공이라도 익히지 않았다면
중독되는 즉시 저승 문턱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무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암살도 서슴지 않는 혈해 입장에선 애용될 수밖에 없는 독이었다.
일반인에게는 즉사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니 말이다.
"그럼 그 독물들을 어떻게 상쟁시키는 지도 아시겠네요."
"알다마다, 독물들을 작은 항아리에 억지로 우겨넣은 뒤 그대로 봉쇄시켜버리면 되지 않더냐?"
살혼은 뭘 그리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당진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의 대답에 꽤나 흡족스러움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고독관은 고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본따 만들어진 장소예요. 독물들을 가둬놓는 작은 항아리에 해당되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그리고 차분한 어조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장소를 만들어낸 거지?"
이해가 안되었다.
본디 고독이란 도망칠 틈조차 없이 조여드는 폐쇄되고 좁은 공간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넓으면 넓을수록 독물들의 독기와 악기가 그대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원이라고 칭할 정도의 독초들이 가득한 곳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취지에 어긋나는 곳을 어째서 만들어낸 것인지
"취지는 같아요, 고독관 또한 가장 지독한 것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니까요."
당진설은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군, 본디 독물은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맹독을 뿜어내는 법. 그런데 독초를 기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장소에서 고독을 만들겠다니? 그런 곳에서 제대로 된 극독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극독이 아니예요."
당진설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고독관에서 만들어내는 건 극독이 아니라 극독과 같은 독심을 지닌 당가의 후계자예요."
"뭣이!?"
순간 살혼의 눈동자가 일시에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벌언에
경악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수많은 독물들이 한데 모아 상쟁을 야기하여 독을 만들어내는 장소에서
당가의 후계를 탄생시킨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당히 놀라우신가보네요.."
그 모습이 재밌던 것일까
당진설은 살포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좀더...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독이 아니라...후계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니?.....그게 무슨..말도 안되는."
"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진설은 되려 물었다.
"고독은 맹독을 지닌 독물들에게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게 만들어 극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찌 그런 곳에 사람을 집어넣는단 말인가? 그것도 죄인도 아닌 후계 자격을 갖춘 이들을?!"
"사람도 같아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뭐라?"
"사람 또한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되면 속 안에 품고 있는 독기毒氣와 악기惡氣가 정점에 치닫게 마련이예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형제마저 스스로 죽인다면 그 정점에 치달았던 성정으로 독기毒氣와 악기惡氣 고착화되어버리죠."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독관을 만들어낸 선대 가주의 진정한 저의를 말이다.
"당가는 그런 후계가 원했던 거예요. 세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이든 혈육이든 얼마든지 끊어낼 수 있는 냉혈한을, 극도의 계산적 사고로 무장한 철저한 이성주의자를 말이에요."
당진설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고독관은 골육상쟁을 위한 무대였군."
살혼은 알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독관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말이다.
"네에, 맞아요, 고독관은 골육상쟁을 통해 단 한 명의 올바른 후계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무대예요. 마치 상쟁을 통해 만들어진 가장 지독한 독, 고독蠱毒처럼 말이에요."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지독하구나...정녕 지독해....원하는 후계를 배출하기 위해 그런 반인륜적인 일을 하다니 말이야."
살혼은 고개를 내젓기 시작하였다.
경악스러울 정도의 지독함이었다.
후계 경쟁에 피비린내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골육상쟁을 장려하는 곳은
들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었다.
어찌 명문세가의 탈을 쓰고 그런 반인륜적인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말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봐요? 전 무척이나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재밌다는듯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형제간의 상잔이 야기시키는 일이 효율적이라고?"
"어차피 후계 경쟁에선 필연적으로 피를 흘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흘린 핏물의 양만큼 가문의 힘 또한 쇠약해질 수밖에 없죠. 그럴 바엔 이렇게 판을 깔아주고 죽을 놈들만 알아서 죽는 게 낫지 않겠어요?"
고독관은 무척이나 효율적인 후계 선발 방식이었다.
보통 후계 경쟁이 시작될 경우
수많은 핏물이 흐를 수밖에없었다.
기싸움을 하겠다고
계파간의 갈등을 야기시키고
일부러 독하게 수를 써
각 계파원들끼리 서로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윗대가리의 기싸움에 쓸데없는 희생이 야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독관의 개관은
그런 쓸데없는 희생을 완전히 없애준다.
후계에 관련된 놈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한놈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어찌 효율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외척 세력의 개입 차단과 정적제거, 완벽한 인재상 탄생이라는 부가적인 효과 또한 누릴 수 있게 돼죠. 이보다 효율적인 후계 선발이 어디있겠어요?"
고독관은 외척 세력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당사자끼리 결판을 내는터라
외척세력이 나설 결정적인 기회가 완전히 박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후계가 선발된다해도 외척 세력에 좌지우지 되는 경우 또한 존재치 않는다.
게다가 혹시 모를 정적마저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본디 반란의 주동자는 후계 경쟁에서 탈락한 정적들이 대다수인 법.
고독관은 그런 화근들을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는 명분마저 던져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효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선정 방식인 것이다.
"........독하구나...참으로 지독해, 독사도 네년보다는 덜할 것이다."
살혼은 질린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혈족마저 장기말 취급하는 그녀의 태도에
질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친년.'
그녀는 상상이상으로 망가져있는 인간인듯 하였다.
돈만 쥐여주면 모든 죽여주는 자신 이상으로 말이다.
"독하다는 말은 당가의 무인에겐 더할나위없는 극찬인 법이지요."
당진설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독하는 그의 평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미친년."
살혼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에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 것이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그 끔찍한 곳에 독왕의 비자금이 묻혀있다는 말이더냐?"
"맞아요, 오래 전 폐쇄되어 인적이 거의 없다시피한 곳이 됐거든요."
"폐쇄되었다고? 이제 골육상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인격존중이니 생명존중이니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무지한 사상에 물든 자들이 고독관을 비난하더군요. 반인륜적인 끔찍한 사상이라고 말이에요."
당진설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가에 사람 새끼들이 존재하긴 했군.'
살혼은 납득간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냥 독기 가득한 독사들이 가득한 곳은 아닌듯 하였다.
저렇게 멀쩡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걸 보니 말이다.
"결국 고독관은 폐쇄되었고 지금은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장소로 변모해버렸어요.....떠올리는 것조차 끔찍하다며 언급조차 기피하였으니까요."
"비자금을 숨기기 딱 알맞는 곳이 되었군."
살혼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맞아요, 비자금을 숨기기에 이보다 적절한 장소도 없죠."
당진설은 마주보며 미소를 흘리며 그의 말 동의를 하였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것은 물론
불길하고 끔찍하다며 언급조차 기피되는 장소였다.
이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오라버니는 고독관 심처에 있는 꽃밭 아래 비자금을 묻어두었어요. 오백만 냥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비자금을 말이에요."
"설마 전표는 아니겠지?"
"비자금이 왜 비자금이겠어요? 출처를 알 수 없게 했으니 비자금이 아니겠어요? 오백만 냥 전부 금원보예요."
"금원보라니...오백만냥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금원보라니....흐흐흐흐흐.....마음에 드는군.""
당진설의 말을 들은 살혼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오백만 냥의 가치가 있는 금원보라는 말을 들으니
탐욕이 절로 치솟은 까닭이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당진설을 마주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화봉요원의 위치는 정확히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또 들었어요. 헷깔릴 수가 없었어요."
"당가주가 용케 네년에게 비자금의 행방을 털어놨군."
"가주라는 직책은 언제나 만일을 대비하는 존재니까."
"당가주의 신중함이 우리에게 홍복이 되었군. 이렇게 큰 거금을 챙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크흐흐흐흐"
살혼은 기쁜듯 웃음을 흘렸다.
오백 만냥이라는 거대한 액수에
정확한 위치가까지
모든 게 완벽하였다.
이제 찾아가 빼오기만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게요, 죽은 오라버니께 감사해야겠어요.후후후훗."
당진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내 안전가옥에는 두 사람의 웃음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웃음을 흘렸을까
"또 다른 변수는 없겠지?"
이내 웃음기를 지운 살혼이 담담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고독관에 독물들이 가득하긴 하지만......당신에게 위협적이진 않을 거예요. 애초에 당신을 해할 수 있는 독물따위가 존재할 리 없을테니까요."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고독관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독물들로 가득하였다.
밀폐된 고독관 속에서 자체적인 번식과 진화를 하며 수백 년동안 생을 이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리 걱정이 되진 않았다.
아무리 강대한 독기를 품고 있는 독물이라고 해도
눈앞에 있는 전설적인 암살자
살혼 앞에선 바람 앞에 등불일 수밖에 없을테니까 말이다.
"고독관의 독물들도 별거 아니로군."
살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골육상쟁을 야기하는 의도가 꺼림칙해서 그렇지
고독관의 수준 자체는 일천하기 그지없는듯 하였다.
고작 초절정 수준밖에 안되는 당진설이 이렇게 안전을 장담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럼 결행일은 언제가 괜찮으시겠어요?"
당진설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살혼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일단 무공의 회복이 필요하다. 마기를 채워야하기도 하고 새로운 육체에 익숙해지기도 해야하니 말이야."
살혼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말을 이었다.
곧바로 실행에 나서는 건 악수惡手였다.
아무리 일천한 곳이라고 해도
결행 자체는 최상의 상태로 임해야하는 것이다.
"사흘.....사흘 뒤에 결행하도록 하지. 그정도면 충분한 준비가 될테니까."
살혼은 세 개의 손가락을 펼친 채 말을 내뱉었다.
최상의 상태로 변모하는데는
사흘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좋아요. 그럼 결행일은 사흘 뒤로 알고 있겠어요."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사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는 기간
하지만 당진설은 충분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다림의 끝에는 어마어마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터이니
오백 만냥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이 말이다.
'가서 독초도 좀 챙기자.....분명 충분한 부수입이 되어줄거야.'
고독관의 독물들은
독공을 익힌 무인들에겐 영약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상당한 부수입이 되어줄 것이다.
'돈을 벌고 또 벌어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장선우에게....당서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말이야!'
당진설의 눈빛에 야망이 이글거리기 시작하였다.
복수라는 거대한 야망이 말이다.
그렇게 한창 야망을 이글거리고 있을 때였다.
흠칫
갑자기 목덜미쪽에서 무언가 기어가는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짜아악
깜짝 놀란 당진설은 그대로 목덜미를 후려쳐버렸다.
으지직
그러자 무언가 뭉개지는듯한 감촉이 손바닥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휘익
당진설은 재빨리 손바닥을 펼쳤다.
'거미!?'
그러자 완전히 찌부라진 거미의 잔해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더러워.'
당진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 좋던 기분이 거미때문에
완전히 잡치게 된 것이다.
"계집, 미쳤느냐?"
그때 살혼의 의문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목덜미를 후려친 그녀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듯하였다.
"청소를 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이렇게 불청객이 있는 걸 보면 말이에요."
"....쯔쯧...거미는 익충이거늘.....어찌 그렇게 고약하게 때려잡는단 말이더냐?"
거미는 익충이었다.
수많은 날벌레들을 손수처리해주는 고마운 포식자인 것이다.
그런 거미를 저렇게 다루다니
그것도 독을 다루는 인간이 말이다.
"해害가 되면 그때부턴 익충이 아닌 해충이 되는 법이죠."
"대체 네년에게 무슨 해가 되었더냐?"
"제게 불쾌감을 줬어요."
"참으로 엿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구나. 계집."
살혼은 당진설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정말 인성하나는 제대로 글러먹은 여자라고 말이다.
"원래 사람은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법이죠."
당진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씻어야겠어요, 물이 어디에 있죠?"
"뒤편으로 가면 작은 우물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물을 길어 씻던가 하거라."
"알겠어요."
말을 마친 당진설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다음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듯이 말이다.
그리고 살혼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비자금만 챙기면 뒤도안돌아보고
곧바로 헤어지자고 말이다.
본디 미친년은 가까이하는 게 아닌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