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9화 〉 990. 비자금의 행방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두 남녀, 살혼과 당진설은 구불구불한 금옥의 통로를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금옥을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멈춰요."
이내 당진설이 걸음을 멈추며 입을 떼었다.
뚝
그러자 살혼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멈추게 한 저의를 묻는 모습이었다.
"이 앞은 금옥의 수문위사들이 지키고 있어요. 이대로 지나간다면 들키고 말거예요."
당진설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입을 떼었다.
"걱정마라, 본좌라면 저놈들이 인지조차 못하도록 기절시킬 수 있으니."
살혼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안돼요."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금옥을 지키는 수문위사들은 일각 간격으로 금형각과 수신호를 교환하고 있어요......만약 그 수신호가 끊긴다면 금형각의 간수들이 저희들이 탈옥했다는 사실이 알아차리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대체 어쩌자는 거지?"
살혼은 눈살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들을 기절시키는 것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유일한 통로를 떡하니 지키고 있는 놈들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단 제 얼굴을 가려야해요.....제 정체를 들킨다면 필시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어요."
"이곳엔 네년의 얼굴을 가릴만한 게 존재치 않는다.'
살혼은 차가운 어조로 입을 떼었다.
구불구불한 통로와 철문 그리고 쇠창살만이 가득한 금옥이었다.
그런 곳에서 얼굴을 가릴만한 물품을 어떻게 구한다는 말인가
"품 안을 뒤져서보세요."
"품 안을?"
"당가의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상비약과 붕대를 가지고 다녀요. 당신이 몸을 차지하고 있는 금옥의 간수 또한 마찬가지일거예요."
당진설은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살혼은 곧바로 품을 뒤졌다.
그리고 이내 둘둘 말려져있는 천뭉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비상용 붕대인듯하였다.
".....여기있다."
살혼은 당진설에게 붕대를 건네었다.
덥석
당진설은 말없이 손을 뻗어 붕대를 받아들었다.
그다음 곧바로 얼굴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당진설의 표독스러운 얼굴은 붕대에 가려져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제 저를 부축하세요."
"네년을 말이냐?"
"금옥을 빠져나갈 핑계를 만들어야할 거 아니예요."
당진설은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알아처먹는
살혼의 우매한 머리에 짜증이 치민 것이다.
"부상 치료를 핑계로 빠져나가면 수월히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금옥의 간수들은 죄수들의 생사에 관여하지 않을텐데? 그 특수성을 고려하면 네년의 핑계가 먹혀들 것 가지 않구나."
금옥의 간수들은 죄수들의 생사에 관여치 않는다.
죽든 말든
다치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죄수가 다쳤다며 치료를 위해 호송을 한다?
대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죄수가 스스로 다치고 죽는 건 상관치 않지만 간수가 죄수를 다치한 것이라면 호송의 이유가 되지 않겠어요?"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보고 네년을 다치게 했다고 설명하라는 것이더냐?"
"맞아요, 그렇게 하면 금옥의 입구를 통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무슨 이유로 다치게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살혼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아무렇게나 말하세요. 심심풀이였다던가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던가 뭐, 이렇게요."
당진설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이런 사소한 핑계마저 되묻는 그의 멍청함에 답답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목소리가 참으로 퉁명스럽구나, 계집."
그 퉁명스러움을 인지한 살혼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무림 최대 공포라고 불리우는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럴 리가요, 착각이겠죠."
당진설은 태연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으드득
'사갈 같은 년.'
그리고 살혼은 그런 당진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누가봐도 무시하는 태도였다.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고보자.'
그는 다짐하였다.
이 수치를 돌려주겠다고 말이다.
"....어쨌든 알겠다..내 알아서 핑계를 대도록 하지."
"네에, 믿을게요."
당진설은 신뢰라곤 한점조차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살혼을 향해 몸을 기대기 시작하였다.
살혼은 그런 그녀를 부축하더니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금옥의 입구를 향해서 말이다.
*******
금옥 입구
철탑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건한 인상을 가진 두 명의 수문위사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거대한 철문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에는 그 누구도 쉽사리 통과시켜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새겨져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질 질 질 질
그때 금옥 저편에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무언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수문위사들은 금옥 저편에 시선을 돌렸다.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볼 수 있었다.
금형각 소속 간수 당태와 붕대로 얼굴을 칭칭 동여맨 죄수의 모습을 말이다.
"멈추어라."
수문위사 당잠은 손을 쭉 편 채 언성을 높였다.
뚝
그러자 당태와 죄수가 그대로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담담한 눈빛으로 수문위사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금옥에 투옥된 죄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출옥을 불허하고 있다, 그 사실을 자네 또한 모르진 않을 터인데, 어찌 죄수를 데리고 금옥의 입구까지 온 것인가?"
당잠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한 번 금옥에 투옥된 죄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출옥이 금지되었다.
죄인에게는 빛을 보게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초대 가주의 유지를 받든 까닭이었다.
그런데 어찌 아무런 보고도 없이 이렇게 멋대로 죄수를 데려온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 것이다.
"여기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소."
당태의 탈을 뒤집어쓴 살혼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사정? 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이렇게 멋대로 행동했다는 말인가?"
수문위사 당잠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죄수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었소이다...치료를 위해 불가피하게 호송을 할 수밖에 없었소."
살혼은 붕대로 칭칭 동여맨 죄수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죄수의 생사는 간수가 관여하지 않는 게 규칙일터, 그대로 냅두면 되는 것을, 어찌 위급하다하여 죄수를 데려온다는 말인가?"
당잠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죄수 스스로 자해를 하거나 자연사를 한 것이라면...간수가 무시하는 게 맞으나......이 죄수는 그 경우가 특수하오."
"특수하다? 대체 뭐가 특수하다는 거지?"
당잠은 이해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죄수에게 상해를 입힌 게 바로 본인이오."
살혼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뭐라!? 상해를 입은 게 간수인 당신이라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잠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소."
살혼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규정을 어긴 건가?"
당잠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간수는 금옥에 갇힌 죄수 어떠한 상해도 입혀선 안된다.
간수는 감시자지
벌을 주는 징벌자가 아닌 까닭이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살혼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대체 무슨 연유로 그런 짓을 한 것인가?"
당잠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죄수 폭행은 금옥의 규정에 명백히 어긋난 행동이었다.
이 규정을 어긴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리라
"............"
살혼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출옥 승인이 허가할 수 없다."
당잠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사실은...그녀를 강제하려고 하였습니다."
"강제하려고 하였다?"
"처음엔 호기심이였습니다.....미색이 워낙 출중한 지라........살짝만 만지다 말 생각이였습니다.....하지만...그게...한 번 만지다보니...도저히....주체할 수가 없게 돼서........."
"그녀를 겁간하려들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얼굴을 왜 저꼴로 만든 것이지?"
"....오늘따라.......반항이 워낙 심했던터라.."
"뭐라? 오늘따라!? 처음이 아니라는 말인가?"
"이런...관계를 가진 지..꽤 되었습니다."
"이런 망종같은 놈을 봤나! 어디 간수라는 작자가 직위를 이용해 사적인 욕망을 채운다는 말인가!"
당잠은 분노 어린 일갈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죄송으로 끝날 일이 아니야! 이정도면 중징계감이야!"
"............"
살혼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윗선에 곧바로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네. 옷 벗을 각오를 해야할 거야."
".............면목없습니다."
살혼은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쯔쯧"
그 모습을 본 당잠은 거칠게 혀를 찼다.
그다음 곧바로 몸을 돌려 뒤편에 있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끼이이이이익
그러자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철문이 그대로 밀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당장 데려나가게. 그리고 치료와 함께 성병과 임신 여부까지 꼭 검사시키도록 하게!"
문을 완전히 개방한 당잠은 살혼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알겠습니다."
살혼은 힘 빠진 얼굴로 대답 후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얼굴을 칭칭 동여맨 죄수를 부축한 채 말이다.
이내 두 사람은 금옥 밖으로 완전히 출옥하게 되었고 금옥의 입구는 다시금 폐쇄가 되었다.
어떠한 출입도 불허하겠다는듯이 말이다.
그렇게 두 악인들은 완전한 탈옥을 이룩하게 되었다.
*************
사천에 위치한 비밀스러운 가옥.
그곳에 두 남녀가 그곳에 들어섰다.
"정말 안전한 게 맞나요?"
당진설은 의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본좌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살혼은 기분나쁘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당가와 거리가 너무 가까운 터라....."
본디 도주란 추적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게 정석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곳은 자신들을 추적해올 당가와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언제 들이닥친다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말이다
"본디 등장 밑이 어두운 법이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이 도망친 곳이 사천 성도 코앞에 위치한 안전가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당가는 등잔 밑까지 샅샅히 뒤지는 철저함을 가지고 있어요."
"이곳은 혈해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안전가옥이다. 아무리 당가의 독물들이 지독하다고 해도 이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살혼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은밀함으로만 따지면
단연 중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혈해.
그 혈해에서 심혈을 기울여만든 안전 가옥이었다.
그런 곳을 찾아낼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하지만 당가의 추적대는......워낙..집요한터라.."
살혼의 호언장담에도 당진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당가의 전력을 너무나 잘알고 있으니
되려 불안감이 든 까닭이었다.
"집요하다해도 문제없다. 결국 우리 흔적을 찾을 수 없을테니."
안전 가옥을 둘러싼 진법은 모든 걸을 은밀하게 만들어준다.
사람이나 건물을 물론
발자취나 냄새, 기파까지 전부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흔적따위를 찾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따윈 할 필요 없느니라."
살혼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수긍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확고히 호언장담을 하니
어느정도 불안감이 가시는 걸 느낀 까닭이었다.
"그럼 이제 탈옥도 성공했으니......일 이야기를 하자구나..계집."
살혼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성질이 급하시군요. 아직 숨조차 제대로 돌리지 않았는데 일 이야기라니 말이에요."
"애초에 네년이라는 짐덩이를 이고 온 이유 자체가 돈때문이지 않느냐? 계산은 확실히 해야하지 않겠느냐?"
살혼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라는 짐덩이를 떠안은 채 탈옥한 이유는
오직 돈때문이었다.
독왕이 몰래 쌓아둔
오백 만냥이라는 거대한 자본 말이다.
안전이 확보된 후 그 대가를 받아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셈이 이리도 빠른 분일 줄은 몰랐네요."
"설마 이제와서 거짓이었다 고한 건 아니겠지?"
살혼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녀가 뜸을 들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가요,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게 아니고서야..어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어요?"
당진설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을 하였다.
"그렇다면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하거라."
살혼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독왕毒王의 비자금은 어디에 있지?"
살혼의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독왕의 비자금은......"
그의 물음에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화봉요원花鳳謠園이란 곳에 묻혀있어요."
"화봉요원花鳳謠薗?"
꽃과 봉황이 노래하는 동산이라니
이름 한 번 거창한 곳이었다.
"네에, 이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화원이지요."
당진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화원이 어디에 있지?"
살혼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고독관."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화봉요원은 고독관 내부에 위치해 있는 독초들의 화원이에요."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