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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988화 (989/1,419)

〈 988화 〉 989. 손을 잡다.

"독왕毒王의 비자금?"

살혼은 흥미로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네에, 오직 저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자금이랍니다."

당진설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액수는?"

"오백 만냥."

"뭣이!?"

살혼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말한 액수가 경악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오백 만냥이라니

웬만한 중소 상단의 운용자금과 맞먹는 액수가 아니던가

일개 개인의 비자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커다란 금액이었다.

"그게 정말인가?"

살혼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믿기지 않으신가보네요?"

"개인이 가지기엔 너무나 큰 금액이 아니던가?"

"하지만 개인이 당가주라면 충분히 납득될만한 액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흐음..그도 그렇군."

납득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명실상부 천하제일가라고 불리우는 당가의 가주

독왕毒王의 비자금이 아니던가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만약 그 돈을 턴다면...독왕毒王이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살혼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독왕毒王이 누구란 말인가

괴물같은 장선우를 키운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런 그의 비자금을 건든다는 것은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인 것이다.

"걱정마세요, 독왕毒王이 나서는 일은 없을테니까요."

"독왕毒王이 나서지 않겠다고? 어째서지?"

살혼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오백 만냥이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웬만한 중소상단을 단번에 사버릴 정도로 큰 금액인 것이다.

그런 거금을 건들었음에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죽은 사람이 어찌 나설 수 있겠어요?"

"뭐라?!"

순간 살혼은 황당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혹스러움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죽은 사람이라니?

지금 저 말은 독왕이 죽었다는 말이 아니던가?

"독왕毒王은 오래 전 죽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비자금 또한 주인 없는 돈이라고 할 수 있죠."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독왕이...오래 전에 죽었다고?"

"네에, 아마 당신과 제가 이 곳으로 투옥되기 훨씬 전에 죽었을 거예요."

".......난 그의 죽음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

살혼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당가주가 죽었다니

아니 애초에 그런 소문이 돌았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최악의 살수집단인

혈해의 해주인 자신이 말이다.

"당연히 없겠죠, 그의 죽음은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을테니까요."

당진설은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가에서 독왕의 죽음을 은폐하고 있다는 말인가?"

"네에, 맞아요."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어째서지?"

"죽음을 은폐하는 편이 당가에게 더욱더 이득이 될테니까요."

당진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득? 이득 때문에 죽은 자를 살아있는 것처럼 거짓 연기를 했다는 말인가?"

"이곳은 당가예요, 핏물대신 독물이 흐르는 인간 독사들의 둥지 말이에요....세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런 거짓 연기따윈 얼마든지 펼칠 수 있답니다.."

"참으로 독한 곳이로군."

"그러니 당가가 아니겠어요?"

당진설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

살혼은 그런 당진설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떼었다.

"네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의문이 말이야."

"저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뚫린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전부 믿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네년이 탈옥 욕심에 거짓을 지껄이는 지 누가 알겠느냐?"

살혼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확실한 근거를 말해보거라.....은폐된 비밀을 네년이 어떻게 알았지?"

그의 눈빛에는 의혹이 가득 서리기 시작하였다.

"아귀가 들어맞지 않았거든요."

당진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아귀가 들어맞지 않았다?"

살혼은 그대로 반문을 하였다.

설명을 요구하는듯한 어투였다.

"반 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금옥에 갇힌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제가 비참한 꼴로 전락해버린 이유에 대해서 말이에요.....머릿속에서 인생 전체를 그대로 펼친 뒤 하나 하나 복기하며 떠올려봤어요.....대체 어떤 지점에서 어떤 선택을 잘못한 것인지 말이에요."

당진설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그건 제가 틀린 선택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어요......전 매 순간 틀리지 않은 선택을 했던 것이죠."

당진설은 확고한 의지가 담긴 의지를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미친년이군.'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살혼은 질린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의 자기 확신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모순이로군, 틀리지 않은 선택을 한 결과가 지금 이런 비참한 몰골이라니 말이야."

모순이었다.

매순간 틀리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지금처럼 금옥에 갇힌 채 죽음만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전락해선 안되었다.

떵떵 거리며 세상을 주름잡는 권력가로서 살아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하였다.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고귀한 혈통의 귀부인에서

한줌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죄수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어찌 모순이라고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맞아요, 모순이죠, 누구보다 현명하고 완벽한 제 선택이 옳았다면 이런 비참한 몰골이 될 리 없을테니까요."

당진설은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에 모순이 생겼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고뇌하고 고심하고 사유하고 또 사유해봤어요....완벽한 제 선택이 어째서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켰는 지....어째서 아귀가 전혀 들어맞지 않게 된건 지 말이에요.......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어요......애초에 선택지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당진설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선택지가 잘못되었다?"

살혼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전 평생을 당가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어요....당가를 한 몸처럼 생각하면서 말이에요.....당가의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어요, 사랑을 연기하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이재원에게 시집을 간 것도, 이재원을 충돌질해 천무맹의 힘을 당가에 실어준 것도, 경아를 공식 후계를 삼으려고 한것도 전부 당가를 위한 일들이었죠."

당진설은 차분한 눈동자로 살혼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인 독왕毒王 또한 저와 다를 바 없었어요, 아니 오히려 저 보다 더한 인간이라고 칭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인간이였죠. 세가 안정을 위해 지 새끼들까지 고독관에 던져버릴 정도로 냉혈한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런데 그런 오라버니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어요......자신외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주의자가 모자란 당서윤에게 가주 대리라는 직함을 맡긴 것은 물론 일선에서 물러난듯한 행동을 취하더군요. "

당진설의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핏물 대신 독물이 흐르던 냉혈한이 천한 것들을 위해 인정을 베풀더군요, 당가를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하던 저를 내치면서까지말이에요."

그녀는 독기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사람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뀌었다는 게? 천성만큼 변치 않는 것도 없을텐데 말이에요."

"........확실히....독왕의 실제 성격과 괴리감이 느껴지기는 하는군."

살혼의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하였다.

핏물대신 독물이 흐른다는 당가의 수장

당진철의 행보라고 보기엔 괴리감이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차라리 저를 팽하여 방계혈족의 민심을 얻는 것이라면 오히려 전 웃으며 팽당했을 거예요. 제 희생으로 인해 세가가 안정화되고 더욱더 높이 비상할 수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면 말이에요.....하지만 당가주에게 그런 의도따윈 없었어요...저를 공개 처형하지도 않고 그저 내치는 것에 그쳤으니까요."

".........."

"이질감이 느껴졌어요.....제가 아는 오라버니는 이렇게 물렁물렁한 인간이 아니였으니까요."

그녀가 아는 당진철은 냉혹하고 철저한 독사들의 왕이었다.

이렇게 이도저도 아닌 판단을 내릴 위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이질감은 머지 않아 의혹으로 탈바꿈됐어요.....내게 처벌을 내린 사람이....정녕 오라버니가 맞을까라는 의혹으로 말이에요."

의심스러웠다.

과연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오라버니가

맞는 것인지

정녕 그가 세가를 위해 몸바쳐 살아온 냉혈한이 맞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당서윤에 의해 금옥에 투입된 후 전 확신할 수 있었어요........오라버니는 옛적에 죽고 없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어떻게 확신 할 수 있게 된 거지?"

살혼은 의혹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저를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당진설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게.......어째서 독왕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근거가 된다는 거지?"

살혼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당진설과 척을 지긴 했지만

그녀는 엄연히 셋 밖에 남지 않은 당가의 직계혈족이었다.

가족간의 마지막 남은 정으로

그녀를 죽이지 않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저와 오라버니는 세상 밖에 알려져선 안될 수 많은 비밀들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예요. 제가 입이라도 한 번 잘못 놀렸다간 오라버니뿐 아니라 당가의 명예까지 땅바닥에 곤두박질쳐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죠...그런데 오라버니는 제가 금옥에 갇히고 단 한 번도 저를 찾지 않았어요, 세상물정 모르는 당서윤만이 저를 고문하기 위해 찾아올 뿐이었죠."

당진설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 확신할 수 있었어요. 오라버니가 세상에 존재치 않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오라버니가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물렁한 대처따위는 하지 않았을테니까요."

만약 당진철이 자신과 척을 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곧바로 죽여버렸을 것이다.

수많은 당가의 비사를

너무나 상세히 알고 있는 자신의 존재는

걸림돌밖에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당서윤을 통해 잘못을 인정하고 마공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라는 말밖에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재 당가를 좌지우지하는 존재가

당진철이 아닌 당서윤과 장선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둘에 거짓연기에 속아 완전히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니 모든 아귀가 딱딱 들어맞게 되더군요, 어째서 단 한번도 틀렸던 적 없는 제가 이렇게 금옥에 갇히게 되었는지.....어째서 이렇게 비참한 몰골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전부 말이에요."

당진설의 눈빛에는 독기가 어리기 시작하였다.

세상 전체가 당서윤과 장선우, 그 년놈들의 연기에 완전히 속아넘어간 거예요."

이내 독기 가득한 그녀의 표독스러운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

살혼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개소리에 불과하다고 여겼건만

들으면 들을 수록 설득이 되더니

이제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또한 지금껏 당가주를 직접 면전에서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가요? 제가 제시한 근거가, 충분한 설득이 되었나요?"

당진설은 그런 살혼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어째서.....선택지 자체가 틀렸다고 했는 지 이해가 되는군."

살혼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충분한 납득을 한 것이다.

당가주가 죽었다는 그녀의 주장에 말이다.

"그렇다면 저를 데리고 가주실 건가요?"

당진설은 올곧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 하나만 묻지. 독왕의 비자금인 오백 만냥 또한 알려져선 안될 비밀 중 하나인가?"

"네에, 알려져선 안될 비밀 중 하나예요. 그 비자금을 모은 방법이 무척이나 비인간적이었거든요. 명문세가답지 않게 말이에요."

"당진철은 참으로 지독한 인간이로군."

"그는 독사들의 왕이니까요."

"좋다, 데려가주지."

이내 살혼은 결심한듯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만약 네년이 탈옥 욕심에 말을 꾸며낸 것이라면 가장 잔인하고 참혹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주겠다."

살혼은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경고를 하였다.

"후회치 않을 거예요."

당진설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흥, 당연히 그래야지."

살혼은 콧방귀를 뀌며 퉁명스레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후회가 없어야할 것이다.

후회가 있다는 것은 곧 그녀의 죽음을 의미할테니까 말이다.

이내 살혼은 손을 뻗어 당진설의 족쇄를 풀어헤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몸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진살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두 사람은 곧바로 걸음을 옮겨 감옥 밖으로 완전히 나가버렸다.

그리고 이내 감옥 안에는

풀어헤쳐진 족쇄

당진설이 흘렸던 핏물과 체액들

핏물이 잔뜩 묻은 고문도구

옥 안을 밝히는 촛불

그리고 한쪽 구석에 빽빽한 거미줄을 쳐놓은 거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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