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2화 〉 973. 선택의 기로
"....안아달라니....포옹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선우는 황당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니요, 포옹같은 게 아니에요."
모용란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제가 원하는 건 남녀 간의 정을 나누는 운우지락이예요."
모용란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 눈빛에는 결연의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정신을 놔버린 건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크나큰 충격으로 인해
정신줄을 완전히 놔버린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정신줄을 놓은 게 확실해.....그렇지 않고서야..저런..말을..'
선우는 확신하였다.
모용란이 정신줄을 놓은 게 확실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일 리 없지 않겠는가
"모용부인......지금 제정신입니까?"
"지극히 제정신이에요."
"아니요, 모용부인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제정신이라면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모용 부인은 지금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일단 손에 쥐고 있는 비녀를 내려놓고...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지요......그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정신적인 충격이 어느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말입니다."
선우는 부드러운 어조로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지극히 제정신입니다. 안아달라는 말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을 통해 도출해낸 결론이구요."
하지만 그녀는 확고한 태도를 고수할 뿐입니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어찌 명가의 귀부인께서 혼인조차 치르지 않는 남자의 품에 안긴다는 말입니까?"
모용란은 무림의 명가로 불리우는
모용세가의 적통이었다.
그 누구보다 품위를 지켜야하며
고귀함과 정결함을 유지해야하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입막음을 위해 외간 남자에게 안기겠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명가의 부인으로서 관음을 하며 야외에서 자위를 하는 건 납득이 되시나요?"
"..............."
선우는 할 말이 궁색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명가의 부인이라는 신분을 생각하면
관음觀淫을 하며 자위를 하는 행위 또한
납득이 되는 행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자신과 밤을 보내고 싶다는 모용란의 말이 진심인 이상
알아두어야했다.
그녀가 품고 있는 의도를 말이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나요? 확신이 필요하다구요."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확신이 본 가주와의 잠자리라는 말입니까?"
"네에, 맞아요."
모용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본 가주와의 잠자리가 모용 부인이 확신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비밀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비밀의 법칙?"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네에, 본디 사람과 사람은 서로 가지고 있는 은밀한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친근감과 더불어 신뢰감을 형성시키기 마련입니다. 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함으로서 당신은 내 사람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전해주기 때문이지요."
모용란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만 알고 있어야돼 라는 말은 어찌보면 너는 이제부터 내 사람이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비밀을 공유함으로서 신뢰와 우애를 쌓는 게....비밀의 법칙이라는 말입니까?"
"맞아요, 그걸 바로 비밀의 법칙이라고 한답니다."
모용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비밀의 법칙이랑 제가 모용 부인과 잠자리를 갖는 게 대체 무슨 상관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당가주께 들켜서는 안될 크나큰 비밀을 들킨 상황이에요....당가주께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인생을 나락으로 떨궈버릴 정도로 심각하기 그지없는 비밀을 말이에요......당가주께서는 함구해주신다고 말씀해주셨지만.....저는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어요.....실수로라도 입에 담지는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지요."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제겐 당가주께서 알고 있는 비밀과 상응하는 비밀이 필요해요........가주께서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말이에요."
"모용 부인의 비밀과 동등한 비밀을 공유함으로 확신을 가지겠다는 말입니까?"
"맞아요.......저와 잠자리를 가지게 된다면 가주 또한 들켜선 안될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가주께서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말입니다."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부디...저를 안아주세요..제게..확신을 주세요...가주."
이내 모용란은 간절한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제발 자신을 안아달라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달라고 말이다.
"................"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실상을 듣고보니
말도안된다고 여겼던 그녀의 말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대한 비밀을 공유함으로서
확신에 가까운 신뢰성을 확보한다.
인간 관계에서
이보다 효율적인 입막음도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알게된다면
실수라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러운 입막음 효과를 발휘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비밀을 공유함으로서 신뢰감을 형성시키는 것은 말이다.
'.........문제는 내가 관계를 가져선 안된다는 사실이다.'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충분히 납득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그녀의 제안을 따를 수는 없었다.
한 번의 잠자리에
사천만 냥이라는 거액이 걸려져있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당서윤과 계약을 맺었다.
만약 모용란에게 흑심을 저지르고 일을 치를 시
지금껏 모아뒀던 모든 재산들을 부인들에게 균등히 분배하겠다는 계약을 말이다.
그렇기에 모용란의 제안에 따를 수 없었다.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게된다면
사백만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이 그대로 공중 분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모용부인......혹여...다른 방도는 없는 것입니까?...모용 부인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도저히...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죠?......저같은 늙은 여자는 성에 차지 않다는 말인가요?"
모용란은 울먹이는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제가 어찌 모용 부인께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모용부인께서는 무척이나 품격있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가슴이 절로 떨릴 만큼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안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제게는 이미 사랑하는 부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그녀들 몰래 어찌 모용 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사랑하는 그녀들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핑계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녀를 자빠뜨려
풍만하고 육덕진 그녀의 몸매를 마구잡이로 주무르며
치솟은 욕정을 그대로 토해내고 싶었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이며 꼴리는 여인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리 할 수 없었다.
사백만 냥이라는 거금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선우에게 제동을 걸어버린 탓이었다.
'서윤아...넌 정말 똑똑하구나.'
선우는 속으로 감탄을 하였다.
자신의 행동을 정확히 판단하고
사백 만냥이라는 거금을 통해
발목을 완전히 묶어버린 그녀의 지략에
감탄이 절로 차오른 까닭이었다.
과연 당가 최고의 지낭이라고 불리우는 여인다웠다.
꾸욱
모용란은 목울대에 비녀를 더욱더 강하게 짓눌렀다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당가주께서..저와...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면...전..죽음으로서....마음의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언제 비밀이 들킬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일평생을......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녀 또한 죽음이 두려운듯한 모습이었다.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알고 있습니다...그런 상태에서 어찌...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다는 말씀입니까?........신뢰를 줄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그러니..부디..그 비녀를 내려놓고 말씀하시지요.."
선우는 그런 그녀를 애써 달래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 초상을 치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두려워요...죽기 싫어요...그래도...내려놓을 수 없어요......제겐 남은 선택지 따윈 없으니까요."
모용란은 울먹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울먹거리는 눈빛 안쪽에는 칼같은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미치겠네..'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죽을 결심을 한 것이다.
'.......대체..어떻게 해야하지...?'
그렇기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살리려면 관계를 맺어야한다.
잠자리를 함께하며 확신을 주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지금껏 무림에서 구르고 또 구르며 모았던 사백 만냥이 그대로 공중분해되어버린다.
내노라하는 거부에서 빈털털이로 전락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한쪽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선택의 기로에 말이다.
'망할.'
선우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고심을 하였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고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하였을까
".......비녀를 내려놓으십시오......모용 부인."
이내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럴 수....없어요...저는...이 방법외에는...."
"모용 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네에?"
모용란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으로 선우에게 되물었다.
"잠자리를 같이하자는 그 제안....비밀을 공유함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싶다는 그 제안....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그게 정말인가요?"
모용란은 확인하듯 재차 물음을 던졌다.
"정말입니다.....그러니 비녀를 내려놓아주십시오, 혹여 모용 부인의 목이 상할까 두렵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후회가 없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사백 만냥 대신
모용란을 살리겠다는 선택지를 말이다.
".....후회하시지 않겠어요?"
모용란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분명 후회할 것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분명 자신을 후회할 것이다.
한 번의 정사로
사백 만냥이라는 거금이 단번에 공중분해될텐데
어찌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어째서?"
모용란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후회를 감수하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여준
그의 선택에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모용 부인이 죽게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요."
손익을 떠나 모용란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이재원에 의해 방치되어
평생을 외롭게 살았으며
추악한 이재원의 범죄로 인해
범죄자의 아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으며
뜬금없는 몽고의 침략에
친정인 모용세가까지 멸문해버린 모용란이었다.
기구하다면 기구하다고 할 수 있는 인생을 겪은 불쌍한 여인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특수한 성적취향 때문에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선우는 선택하였다.
사백만 냥이라는 거금 대신
모용란의 목숨을 말이다.
돈을 모을 수 있지만
모용란이라는 여인은 다시 살아돌아올 수 없으니 말이다.
".......감사해요...정말...감사해요오......"
쨍그랑
모용란은 비녀를 그대로 바닥에 떨군 채 연신 허리를 숙이며 선우에게 감사를 표하기 시작하였다.
오직 자신을 살리기위해
말도 안되는 고집마저 들어준 그에게
더할 나위없는 감사를 느낀 까닭이었다.
그저 고마웠다.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그가 말이다.
선우는 그런 모용란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허리를 숙일 때마다
깊고 깊은 가슴골이 시야를 강탈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꽤나 커다란 유방이 쉴새없이 흔들리기까지 하였다.
절로 꼴릿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자존심 강한 귀부인 모용란의 무방비한 야릇함이라니
꼴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욱씬 욱씬
선우는 아랫도리에 반응이 오는 것을 느꼈다.
몸이 그녀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욕망이 터져나왔구나..'
그 모습을 본 알 수 있었다.
애써 억눌러온 욕정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백 만냥이 걸려있다는 걸 자각한 이후
선우는 의도적으로 모용란에 대한 욕정을 억눌렀다.
그녀에 대한 흥분을 차단하여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억눌렀던 욕정이 그대로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사백 만냥 대신 그녀를 택한 순간부터
욕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이성이
그대로 날아가버린 까닭이었다.
'모용란........'
이내 선우의 눈빛에 음욕이 가득 서리기 시작하였다.
차오른 욕정이 그의 전신을 완전히 휘감은 까닭이었다.
'이왕하는 거라면...제대로 범해주겠다....'
선우는 음욕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생각하였다.
그녀를 범하고 또 범하고 말겠다고
사백만 냥이라는 거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