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0화 〉 961. 각서를 쓰다.
덥석
당서윤의 손이 선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꽈아악
그리고 그대로 힘껏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멱살을 움켜잡은 손이 절로 떨릴 정도로 말이야.
"몸으로 때운다니......그게 무슨 말이려나?"
당서윤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몸을 때워야한다는 선우의 말이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잠..잠깐..서윤아..일단....진정하고..이거부터..놓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억압에 당황한 선우는 더듬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격한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이제야 사람다워진 낭군님께서 다시 개로 돌아가겠다는데?"
당서윤은 멱살을 더욱더 강하게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오해야...개선우로 돌아갈 생각따윈 전혀 없다니까?"
선우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쎄, 워낙 전적이 화려해서 믿음이 가질 않네."
당서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여인들에게 아랫도리를 놀리며 개선우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선우였다.
그런 그의 말을 어찌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진짜야, 한 번만 믿어봐, 그럴 의도가 아니였어!"
선우는 억울하다는듯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지금껏 개짓거리를 많이 하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실로 억울하였다.
정말로 그럴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스르르륵
선우의 억울한 표정에 당서윤은 그대로 손아귀를 놔버렸다.
"그럼 말해봐, 무슨 의도로 그딴 말을 내뱉었던 건지."
그리고 담담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모용가의 인력이면 교섭조건으로 괜찮을 것 같아서 내뱉은 말이었다고."
선우는 항변한듯 말을 내뱉었다.
"어린 애들밖에 없는 모용가의 인력이 교섭 조건으로 가당키나하다고 생각해?"
당서윤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모용란과 그녀의 딸 이화영, 소가주 모용계를 제외하면 사춘기조차 지나지 않은 아이들이 수두룩한 모용가였다.
그런 그들에게 무슨 인력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지금은 그렇지만 미래에는 그 가치가 달라지지 않겠어? 이러니 저러니해도 명가의 핏줄을 이은 아이들이니까 말이다."
무공에 대한 재능은 핏줄의 영향을 진하게 받는다.
오성과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체질은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용가 정도 되는 명가의 핏줄을 이은 아이들이라면
그것도 직계혈족들이라면 모두 미래가 보장된 이들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들이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언제고 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충분한 교섭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미래 가치를 선반영한다면 말이다.
"확실히......모용가의 핏줄을 이은 아이들이라면.....그럴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르지."
선우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명문가의 핏줄이 가진 재능은 일반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한 인적자원으로 성장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몸으로 때우라는 말은 모용가의 미래 가치를 염두해두고 내뱉은 말이야.....다른 의미는 없어."
선우는 못박듯이 다시금 강조하였다.
"미안, 오해를 했어."
당서윤은 고개를 숙인 채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자신이 오해를 단단히 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아니야, 워낙 전적이 화려하니까....네가 과민 반응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그러니까..사과안해도 돼."
선우는 그런 그녀를 부드러이 감싸안으며 말을 이었다.
당서윤의 과민 반응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간 개짓거리를 했던 전적이
차고넘쳤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과민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이리라
콩
당서윤은 선우의 넓은 가슴팍에 가벼이 머리를 두드렸다.
"그래도 미안해, 다음부턴....성질을 조금 줄여볼게."
그리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
쓰담 쓰담
선우는 그런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잘못에 대해 솔직히 사과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랑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사과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 자체가 모욕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잘못임을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되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기 마련이었다.
알량하고 자존심을 지키고 민망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당서윤은 그런 게 없었다.
스스로 잘못함에 있어
그대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오는 것이다.
어찌 이런 현명한 여인을 사랑하지않을 수 있겠는가
남자로서 말도안되는 일이었다.
"선우."
그때 귓가에 당서윤의 고운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응, 말해. 서윤."
"정말 이상한 생각 품은 거 아니지?"
"정말이고 말고."
"만약 모용 부인이 유혹해온다고 해도?"
"..............물론이지."
선우는 곧바로 즉답을 하지 못하였다.
순간적으로 모용란의 도도한 얼굴과 풍만한 몸매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까닭이었다.
"대답이 늦네?"
당서윤은 쌍심지를 켠 채 선우를 노려보았다.
그의 한 박자 느린 대답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하하하하, 그럴 리가...착각이겠지."
선우는 어색한 웃음을 흘린 채 말을 이었다.
"야, 장선우"
"..왜에?"
"설마 또 개짓거리를 할 생각은 아니지?"
그녀는 의심 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이지, 이제 애도 있는데, 설마 내가 개짓거리를 하겠어? 연우에게 모범이 되는 아빠가 되야지."
"이번에도 또 개짓거리하면 진짜 뒈질 줄 알아."
당서윤은 서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경고를 하였다.
".....알았어."
그 서늘함에 압도당한 선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서윤은 그런 선우를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대답을 곧잘하긴 하였지만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약속을 어긴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믿음이 안가."
"한 번 믿어봐, 그래도 사람인데, 설마 또 그런 짓을 저지르겠어?"
"넌 개잖아."
".........그렇긴 하지."
선우는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하윤을 비롯한 황보 모녀, 팽 모녀를 건드리고 난 뒤
개선우 칭호를 얻은 그였다.
그런 그가 믿음을 바란다는 것은 어찌보면 우스운 일인 것이다.
이내 당서윤은 선우에게서 몸을 떼어내었다.
"각서 써."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던 한지와 붓을 코앞에 놓으며 말을 내뱉었다.
"각서?"
"말로는 영 믿음이 안가서 말이야."
당서윤은 선우를 향해 붓대를 건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선우는 붓대를 붙잡았다.
"뭐라고 쓸까?"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나 장선우는 결코 개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음을 천지신명을 걸고 굳게 약조하는 바입니다. 만약 이 약조를 어기고 개같은 짓거리를 행할 시,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부인들에게 균등히 배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바입니다.........이렇게 써."
"전 재산을 배분한다고!?"
선우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맨날 말로만 뒈진다고 하니까, 네가 약속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물질적인 피해가 있으면 약속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간 항상 좋게 말로만 타일렀던 당서윤이었다.
선우라는 남자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말로만 타이를 수는 없었다.
그는 믿지만 그의 아랫도리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족쇄를 건 것이다.
물질적인 피해라는 실질적인 족쇄를 말이다.
"남창에 개인적으로 사놨던 땅들, 현물로 가지고 있던 재화들, 뒤로 꿍쳐놨던 은자들까지......전부 합치면 사백 만냥 정도 될거야."
당서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면 넌 아랫도리를 잘못 놀리는 순간 사백 만냥이 그대로 공중분해 된다는 거지."
"그....서윤아...꼭 그렇게까지 조건을 걸 필요가 있을까? 나라는 인간자체를 좀더 믿어준다면..."
"....능소화, 북궁연, 주소양, 이예설, 강하윤, 황보유연, 이소란, 팽가련, 이기연."
당서윤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 여인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전부 아름답다는 거?"
"틀렸어, 네가 약속따윈 내팽겨치고 꼬신 여인들이라는 거야."
".............."
"이렇게 전적이 화려한데 너라는 인간 자체를 믿어달라고? 너같으면 믿겠어?"
"............."
선우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누구보다 너를 믿지만, 네 아랫도리는 믿지 못해.....그러니까...각서로서 너의 결심을 보여줘."
당서윤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알았어."
이내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쓰윽 쓰윽 쓰윽
그리고 그대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말한 내용 그대로 말이다.
꾸우욱
그리고 마지막엔 손에 먹을 칠하여
수결을 찍어버렸다.
사백 만냥이 내걸린 각서를 완성시킨 것이다.
"여기 있어."
선우는 각서를 당서윤에게 건네주었다.
"내 고집에 따라줘서 고마워."
당서윤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 각서가 있는 한
저 음란마귀가 모용란을 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무리 색욕 화신이나 다름없는 선우라해도
사백 만냥이 걸려있다면 자제를 할 것이다.
사백 만냥은 한순간에 성욕에 날리기엔
너무나 큰 돈이였으니 말이다.
'분명 자중할거야.......자중하고 말고.'
당서윤의 눈빛에는 확신의 빛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
콩 콩 콩 콩
모용란은 벽에 머리를 가벼이 처박기 시작하였다.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이다.
그러자 방 안에는 벽이 울리는 소리가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였다.
"고모님...괜찮으십니까?"
그 모습을 본 소가주 모용계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가주와 면담을 한 이후부터 줄곧 저 상태였다.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잊은 채
머리만 처박고 있는 것이다.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콩 콩 콩 콩 콩
하지만 그런 모용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모용란은 여전히 머리를 처박을 뿐이었다.
어떤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러다 다치겠어.'
모용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말려볼 심산이었다.
덥석
그때 누군가 그의 손목을 그대로 붙잡아버렸다.
고개를 돌리니 사촌동생, 이화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내버려두세요. 오라버니"
이화영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아니...어찌........"
모용계는 무어라 말을 이으려고 하였다.
"어머니는 생각에 잠길 경우 종종 벽에 머리를 박고는 합니다. 일종의 버릇같은 경우지요. 저런 상태에선 냅두는 게 최선이에요. 방해하면 불같이 화를 내시거든요."
"하지만 저리 냅두면 고모님께서 다치지 않겠느냐?"
"안다쳐요."
이화영은 확고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생각없이 박는 것처럼 보여도 이마 근처를 내력으로 감싸고 소리만 약간 날 정도의 힘으로 박고 계세요. 다칠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그러냐?"
모용계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런 상황에선 자리를 비켜주는 게 더욱더 도움이 될거예요. 오라버니."
이화영은 모용계의 손을 잡아끌며 말을 이었다.
".....알았다."
모용계는 그런 이화영의 손에 이끌려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내 두 사람은 밖으로 완전히 나가버렸고
방 안에는 머리를 처박는 모용란만이 남게 되었다.
콩 콩 콩 콩 콩
머리를 쉴새없이 박던 모용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당가를 움직일 방도에 대해 생각에 잠긴 것이다.
모용세가의 재건을 위해선 당가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천하제일세라고 불리우는 그들의 도움이 있다면
재건 시기를 앞당기는 것따윈 일도 아닐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움직이지?'
하지만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 방도가 떠올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다.
당가는 자선 단체가 아니라고
과거에 당가를 외면했던 모용세가를 도와줄 만큼 착한 이들이 아니라고 말이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었다.
세가는 엄연히 혈족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단체였다.
그런 그들이 일말의 정조차 느끼지 않는 모용세가를 돕는 건 호구 짓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모용세가는..당가가 필요해..'
문제는
모용세가에게는 당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가라는 집단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우리는 저들에게 뭘 줄 수 있지?'
그녀는 교섭조건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세가의 재산은 불타버렸고
세가의 전력은 어린아이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금력도 무력도
별볼일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생각해내보자....모용란.....이대로 재건을...포기할 수는 없어...줄 수 있는 걸...생각해보자...'
모용란은 눈을 감은 채 오래토록 고심을 하고 또 고심을 하였다.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하였을까
스르륵
이내 그녀의 눈이 천천히 뜨여지기 시작하였다.
정답을 찾은 것이다.
모용가가 저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말이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내 모용란을 바깥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예에, 말씀하시지요, 부인."
끼이이익
그러자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전담 시녀가 문을 열어젖히며 말을 내뱉었다.
"내 목욕을 할 생각이다, 뜨거운 물을 준비토록 하거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녀는 공손히 답을 하였다.
"더불어 괜찮은 비단 옷과 화장을 위한 도구 몇 개를 빌리고 싶구나, 가능하겠느냐?"
"충분히 가능한 사안입니다."
시녀는 담담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최대한 모용가의 편의를 봐주라는 가주의 명이 있었다.
비단옷과 화장품을 제공하는 것따윈 아무것도 아닌 일이리라
"그럼 부탁하겠다."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확히 이각 뒤 모시러 오겠습니다."
끼이이익
쿵
말을 마친 시녀는 그대로 열어젖힌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방 안에는 모용란만이 남게 되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거야.'
홀로 남은 모용란은 눈을 빛내기 시작하였다.
기이한 열기가 담긴 뜨거운 눈빛을 말이다.
자신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