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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959화 (960/1,419)

〈 959화 〉 960. 몸으로 떼워야지.

'뭐지...분명..모용세가에서 사람이 왔다고 들었는데?'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모용가의 직계가 왔다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외빈실로 들어오니 흙먼지를 뒤집어쓴 꼬질꼬질한 개방도가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늦으셨군요, 가주."

그때 뾰족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거지꼴을 하고 있는 모용란이 말을 내뱉어낸 것이다.

"죄송합니다. 공사가 다망한터라...본의 아니게 늦게 되었습니다."

선우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공사가 다망하긴 하였다.

당서윤과 같이 목욕을 하면서 한 차례 더 열락의 시간을 보낸 까닭이었다.

"......뭐, 되었습니다. 기별도 없이 다짜고짜 방문한 저희쪽에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모용란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구태여 그의 잘못을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는듯 하였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모용가의 란이 가주를 뵙습니다."

모용란은 양손으로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며 인사를 건네었다.

추레한 거지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기품이 느껴지는 모양새였다.

'진짜 모용가였네...잠깐...모용란이라면..설마!?'

선우는 놀란듯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녀의 면면을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흙먼지에 가려진 미색이 군데 군데 보이기 시작하였다.

'진짜잖아!?'

그리고 경악을 하였다.

그녀가 진실로 모용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용란이라면 이재원의 마누라이자 과거 요동제일미로서 이름을 높였던 여인이 아니던가

어찌 그런 여자가 이런 추레한 몰골로 당가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그렇게 한창 경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쿡 쿡 쿡

당서윤이 옆구리를 쿡 쿡 찌르기 시작하였다.

어서 인사를 받으라는 손짓이었다.

"........반갑소이다. 당가의 가주 당진철이라고 하오."

그 손짓에 신색을 회복한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반갑습니다. 모용 부인, 당가의 가주 대리, 당서윤이라고 합니다."

곧이어 당서윤 또한 인사를 건네었다.

무척이나 공손하게 말이다.

"당가의 직계혈족분들께서 이리도 환대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그들의 인사를 받은 모용란은 도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물론 도도한 표정과 추레한 몰골이 상반된 터라 꽤나 우습게 보였지만 말이다.

"모용 부인, 상당히 고생을 하신듯 합니다..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입니까?"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저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모용가의 귀부인이

개방도 저리가라할 정도로 꼬질꼬질한 행색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모용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많은 일이..있었습니다..아주..많은 일이."

선우의 물음에 모용란은 안색을 굳힌 채 말끝을 흐리기 시작하였다.

도도하고 당당한 그녀였지만

세가에 일어난 크나큰 비극을 쉽사리 입에 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

선우와 당서윤은 그런 그녀를 얌전히 기다려주었다.

그녀 스스로 말을 내뱉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모용세가가....멸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천천히 입을 떼어내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

"!?!"

모용란의 말을 들은 선우와 당서윤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경악스러운 감정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범상치 않은 일을 겪었구나

생각하긴 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도도하고 오만한 귀부인이 저런 추레한 몰골로 나타나진 않을터이니

하지만 그 범상치 않은 일이 설마 세가의 멸문이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녕 그 말이 사실입니까?"

"믿기 어려우실테지만...사실입니다..가주."

모용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체 누가 모용세가를 멸문시킨 것입니까?"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모용가는 오대세가 중 하나로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강대한 무력을 물론 광산업을 통해 축적한 어마어마한 금력까지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금력과 무력을 두루 갖춘 팔방미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모용세가를 대체 누가 무너뜨렸다는 말인가

".........몽고."

모용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모용세가를 멸문시킨 이들은 몽고의 기병들입니다......수 만에 이르는 기병들을 모용세가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모용란은 몸을 살며시 떨며 말을 내뱉었다.

그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몽고 기병이라면....모용세가도 어찌할 도리가...없었을테지.'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강대한 무력과 풍부한 금력을 갖춘 모용세가가 속절없이 무너져내린 이유를 말이다.

아무리 모용세가가 요동의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고 해도

국가전력 앞에서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격차는 한낱 무림집단이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였으니

'그건 그렇고..심각하군...설마...몽고가 모용세가 마저 건들였을 줄이야.'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종남을 멸문시켰던 몽고기병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모용세가마저 건들인 것이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였다.

이러다간 수많은 정도문파들이 멸문당하고 말 것이다.

'아무래도 대책을 마련해야겠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훗날 마교와의 일전을 위해서라도

정도문파들의 전력을 최대한 보존시켜놓아야했다.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용가의 살아남은 이들은 당가를 방문한 이들이 전부인 것입니까?"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러하옵니다...가주를 비롯한 세가의 장로분들께서는....목숨을 바쳐 활로를 열어주셨습니다...세가의 새싹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군요."

선우는 수긍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염없이 달리고 달렸습니다...언제고 몽고의 기병들이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마을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고 새벽의 이슬을 마시며 목을 축였고 짐승들을 사냥하며 배를 채웠습니다....."

모용란은 설움이 북받친듯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언제나 고귀한 취급을 받으며 아랫것들만 부리며 살아온 그녀에게

수 많은 이들을 이끄는 책임자로서 강행군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설움이 북받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모용 부인."

선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부드러이 토닥이기 시작하였다.

"세가의...웃어른으로서...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모용한은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자신은 모용세가의 얼굴이었다.

타 세가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내보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당가로 오게 된 것입니까? 의천맹쪽으로 가서 신변 보호를 받는 편이 좀더 수월하였을텐데......"

선우는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구태여 머나먼 사천까지 발걸음을 옮긴 모용란의 의도가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장선우가 맹주로 있는...의천맹쪽으로는 갈 수 없었습니다........남편에게 크나큰 원한을 가진 그가...모용가를....반겨줄 것 같지 않더군요......"

모용란은 떨리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속이 좁은 녀석이 아닙니다...만약 모용가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흔쾌히 반겨주었을 것입니다."

선우는 속내를 직접적으로 밝혔다.

이재원에게 크나큰 원한을 가지고 있긴 하였지만 그 마누라들까지 밉지는 않았다.

죄를 지은 건 이재원이거늘

어찌 그의 친족들까지 죄인 취급을 하며 미워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해도 제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간이라고는 하나 이재원은 사사로이 제 남편이였고 딸의 아비입니다......그를 죽인 장선우와 어찌 한 공간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용란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재원은 죽어 마땅한 인간이였지만

한 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였고

딸의 하나 뿐인 아비였다.

그런 그를 죽인 이에게 어찌 도움을 청하겠는가

"그래서 당가로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비록 소원한 관계라고는 하지만 오대세가로서 어느정도 친목을 다져둔 당가라면......저희를 마냥 내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렇군요."

선우는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녀 입장에선

당가로 향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앞으로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모용세가를 재건할 생각입니다."

"재건을요?"

"네에, 비록 대다수 세가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는 하지만.......세가를 꽃 피울 새싹들이 남아있는 상황입니다........노력을 한다면...포기하지 않는다면...분명 모용가를 재건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모용란은 희망 어린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비록 모용가는 멸문하였지만

모용가의 의지를 잇는 새싹들은 멀쩡히 살아있는 형국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을 한다면

재건 또한 마냥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

'강한 여자네.'

선우는 그런 그녀를 감탄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최악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놓여진 그녀였다.

세가는 멸문하였고

세가원들의 대다수가 죽어버렸으며

어린 세가원들의 책임자로서 막중한 책임마저 지게 된 것이다.

분명 여러가지 중압감과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터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가의 재건이라는 희망을 품고 의지를 굳혔다.

어찌 강하다고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선민 의식 가득한 정신 나간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녀에 대한 인상을 수정해야할듯 싶었다.

정신 나간 여자에서

정신 나간 강한 여자로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때 모용란이 뜸을 들이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선우와 당서윤은 그런 그녀에게 집중을 하였다..

"당가에서.....여러모로...모용가의 재건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이내 모용란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이었다.

"당가에서 말입니까?"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걸 우리가 왜? 라는 반문이 담긴 표정이었다.

".........같은 오대세가로서...정이 있기도 하고.....무림의 위기가 아닌가요?.......이럴 때일수록...단합을 하며.....서로 돕고 돕는.."

"글쎄요.....모용세가와 당가 간의 그리도 정이 깊었는지는 의문이 드는군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예전에 당가가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때.......모용세가에선 저희를 도왔던가요?"

선우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

도와준 적 없었다.

"당가를 방호해줄 전력 급파한다던가, 식량이나 재화를 보낸다던가, 하다못해 위로의 말이라도 전해준 적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인."

"..............."

선우의 물음에 모용란은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모용세가는 원조따윌 해준 적이 없었다.

당가가 찢어지면서 발생할 이권을 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말이 없으시군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아닙니다. 그 어떠한 원조도 하지 않겠다는 게 모용세가의 선택이였을테니까요. 저희는 모용세가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그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져야하지 않겠습니까?......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은 모용세가에서......정을 기대고 재건에 대한 도움을 바란다니......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용란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당가가 멸문에 가까운 피해입었을 당시

오대세가 중 누구하나 도움의 손길을 보낸 이가 없었다.

하나같이 당가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오대세가로서의 정을 강조하며 도움을 구하다니

코웃음이 절로 나올 일이었다.

".............."

모용란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중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모용세가는 침묵과 무시를 택하였다.

당가의 멸문을 자축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도움을 바라는 건

날강도나 다름없는 심보였다.

"........저 또한 가주와 의견이 같습니다. 부인, 신변 보호와 같은 인도적인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곤란합니다. 세가는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당서윤은 동의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사정이 딱하긴 하였지만

모용세가의 재건을 돕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였다.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이익도 없는 일에 뭣하러 돈을 뿌려 남 좋은 일을 시킨다는 말인가

"하..지만........그..치만........"

모용란은 무어라 반박을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도저히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저들을 설득할 논리는 존재치 않은 까닭이었다.

"......많이 지치신 것 같군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부인.....머무실 곳은 바깥에 있는 시비가 안내해줄 것입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모용란은 축처진 얼굴로 답을 하였다.

꾸벅

그리고 공손히 인사를 건넨 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힘이 빠진 모습으로 말이다.

끼이이이이익

이내 문이 닫히고 모용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외빈실 내에는 선우와 당서윤만이 남게 되었다.

"화 많이 났나봐?"

당서윤은 은근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화 안났어."

"에이, 화난 것 같은데?"

"그냥 어이없었을 뿐이야, 오대세가의 정은 무슨 오대세가의 정이야, 당가가 힘들땐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인간들이."

선우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하긴 그건 또 그렇네."

당서윤은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황당해하는 그의 심정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건을 돕지 않을 생각이야?"

"그건 모용란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만약 만족할 만한 조건을 들고온다면 언제고 도와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를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만족할 만한 조건을 마련할 능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뭐, 몸으로 떼워야지."

선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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